59.생각의 힘 (독서>책소개)/2.한국사회비평

오염된 정의 (2024) - 기자 김희원, 탈진실의 시대를 말하다

동방박사님 2024. 11.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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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모두가 저마다 정의로워서 아무도 정의롭지 않은 사회
32년 차 기자가 파헤친 대한민국의 무책임과 몰염치

“김희원은 끝내 원칙의 힘을 긍정한다.
그는 그 긍정을 위해 존재하는 저널리스트다.”
- 손석희 (전 JTBC 총괄사장)

정의가 넘치는 나라, 한국이다. 모든 이가 저마다 자신의 정의를 내세운다. 

자기만의 진실, 자기만의 도덕을 사수한다

그래서 결과는? 심판과 비토, 비방과 린치, 끊임없는 내로남불의 악다구니가 우리 사회와 정치를 집어삼켰다.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에 관한 고발과 특검이 난무하고, 상대를 적(敵)으로 규정하는 혐오와 냉소가 온 사회에 일렁인다. 

한국의 제도권 언론인들과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불신받는 중이다. 

그 틈을 비집고 탄생한 사이버 레커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물어뜯으며 돈을 번다. 

4년 넘게 ‘김희원 칼럼’을 연재하며 당대 최고의 글쟁이, 우리 언론계의 독보적인 칼럼니스트라 불리고 있는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김희원은 바로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그는 32년 차 기자의 눈으로 우리 사회의 무책임과 몰염치를 낱낱이 파헤친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어느 진영에도 기대지 않는다. 

당연히, 자기 자신이 속한 언론계를 비판하는 데도 여념이 없다.

김희원은 이 책에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들 떳떳한지”를 묻는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묻는다. 

전국민적 불신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범법과 준법의 선을 줄타기하며 정당을 방탄으로 이용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성하지 않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 윤석열 정권과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묻는다. 

끊임없이 실패하는 기성 언론의 기자들에게 묻는다. 

음모론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김어준과 가로세로연구소에 묻는다. 

이준석과 홍준표에게 묻고, 유시민과 강준만에게 묻는다. 

김희원의 서슬 퍼런 질문을 받는 대상은 정치인과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희원은 부동산 한탕주의에 적당히 눈을 감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육체노동을 은근하게 멸시하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팬덤 정치를 지탱하는 시민에게, 사이버 레커 유튜버들을 슈퍼챗으로 응원하는 시민에게,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시민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당신들은 누군가의 과오를 자신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건 아니냐고. 당신들은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성찰적인 자세와 지적 성실함을 잃어버린 건 아니냐고.

김희원은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며, 2013년 사측에 의해 뉴스룸이 폐쇄됐던 ‘《한국일보》 사태’를 겪으면서 벼랑 끝의 처지에 몰렸던 바 있다. 

황우석이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던 때 주위의 많은 사람이 “왜 잘 나가는 사람 곱게 봐주지 못하느냐”며 자신을 탓하거나, 사측에 선 뉴스룸 간부들이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와 노조를 없애야 할 적으로 취급하는 일을 직접 겪었다. 

그래서 김희원은 단언한다. 

비겁함은 죄라고. 반성하지 않고 자기 몫의 판단과 결정을 미루거나, 자신의 원칙을 조금씩 포기하며, 자기 진영과 지지자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죄라고. 누구나 그런 ‘쉬운 길’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오염된 정의』는 그처럼 모두의 정의와 진실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남은 건 ‘오직 우리만이 정의이고 대의’가 된 이 불우한 사회를 샅샅이 파헤치는 책이다. 

30여 년간 뉴스룸을 지켰던 김희원은 뼈아프게 고백하고, 대담하게 비판한다. 

정교한 분노의 언어를 벼려낸다. 위축돼 가는 ‘상식과 원칙의 편’에게 말을 건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지는 것이라는 거듭 강조한다. 끝내 우린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목차
서문

제1부 타락한 진실의 시대

비겁함이 죄다
언론은 왜 자꾸 실패하는가
입틀막’ 하려고 청와대 나왔나
자격 없는 두 사람의 정치
얼어 죽을 ‘관전 포인트’
정의 잃은 국가, 지킬 가치 있나
노동을 멸시하는 사회
‘오십억 게임’에 분노한다면
미안함이 세상을 바꾼다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가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

제2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

윤석열, 자기 배반의 정치
한동훈의 비겁함
이재명의 진짜 문제
조국의 반성할 용기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음모공동체, 김어준과 민경욱
가세연의 피 묻은 돈
홍준표의 유머에 웃어도 될까
원희룡의 정치적 파산
윤희숙의 이상한 ‘책임정치’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

제3부 차별이라는 폭력

차별 국가에서 아이 낳으면 뭐 하나
의원님, 교회가 두렵습니까?
차별할 권리란 없다
박성민 자격론과 뒤틀린 공정
이미 도래한 포퓰리즘
마리화나 합법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성범죄 조장 국가, 대한민국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

제4부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기에

소방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엑스포 실패, 그 불길한 징후
검사, 증거 인멸의 기술자들
사법농단, 무죄면 없었던 일인가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민주 없는 민주당
기본소득을 말할 기회
그럼에도 〈뉴스타파〉는 있어야 한다
희망을 한 뼘 넓히는 정치인들
절망의 정치를 넘어

에필로그: AI, 존재의 전환기 앞에 선 인류

저자 소개 
저 : 김희원 
1993년 한국일보사에 입사해 32년째 재직 중이다. 

‘김희원 칼럼’을 연재하면서 팩트에 기반해 사회·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사회부장, 문화부장, 기획취재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을 맡고 있다.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진실 규명에 기여한 보도로 한국여성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기자상, 사이엔지(SCIENG) 과학기자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진실은 타락하고 정의는 오염되었다. 제도는 불신받고 권위는 조롱당한다

사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 또한 아수라다. 

정치적 양극화와 맞물려 정파성이 심해졌다. 

무슨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모를 기사들이 넘쳐난다. 

언론의 문제를, 

1인 미디어라는 더 큰 문제가 덮는다.

 탈진실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궤변이 살아남고 선동이 승리하기 쉬운 시대다.
--- 「서문」 중에서

그러므로 성찰하지 않은 잘못은 죄다.

각성하지 않은 것은 죄다. 

작정한 무지는 그것만으로 죄가 된다. 

자기 몫의 판단과 결정을 미루는 이들은 얼마나 흔한가. 

듣기 좋은 말을 누가 못 하겠는가. 심기 경호만 하다가 진짜 문제를 방치하고, 결과를 내는 것보다 자리를 보존하는 게 우선인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대통령 밑에서 일하지만 않으면 선택의 갈림길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관과 회장의 한마디에, 아니 부장과 팀장의 낯빛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제1부, 비겁함이 죄다」 중에서

이런 기자들이 합심해 실패를 이룩한다. 저널리즘 가치를 버리고 불신을 자초한다. 

그러고도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장이 쓰라고 시켰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 제일 심하게 쓴 건 아니니까, 

다들 그렇게 썼으니까,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으니까…. 

이런 생각으로 자신이 일으킨 파장을 외면한다. 

성찰과 각성 없는 기계적 수행이 거대한 악을 구성하는 순간이다.
--- 「제1부, 언론은 왜 자꾸 실패하는가」 중에서

이제 채수근 사망 사건은 군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킬 만한 나라인가를 가늠하는 잣대다. 

군사법원이 박정훈의 정의를 찾아줄 것인지, 최고 권력이라는 몸통 앞에서 공수처가 진실을 드러낼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박정훈의 정직이 항명으로 취급돼 처벌받는다면, 군사법원법을 무력화한 수사 외압이 덮이고 만다면, 또 다른 채수근을 막지 못하는 사회로 남는다면, 이 나라가 지킬 가치가 있겠는가.
--- 「제1부, 정의 잃은 국가, 지킬 가치 있나」 중에서

인간의 삶은 공동체 속에서 분업화된 노동으로 영위된다.

 남의 노동이 없을 때 나의 삶은 종종 불편해지고 때로 불가능해진다.

 아이 돌보미가 아프기라도 하면 출근을 못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멀리서 원두를 재배하고 배달하는 이들이 있기에 아침마다 커피를 마신다. 

기관사와 기사들 덕분에 발이 묶이지 않는다. 

없으면 안 되는 노동에 감사하는 건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김영은 말했다. “내가 향유하는 삶이 누구의 노동의 산물인지를 생각해 보라. 

노동이 있어 세상이 있다. 

이를 생각하는 게 시민으로서의 도덕이고 의무다.

” 우리의 삶은 결국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하찮게 여겨도 좋은 노동은 없다. 

노동이 세상을 만든다
--- 「제1부, 노동을 멸시하는 사회」 중에서

때로 소신을 바꾸는 일이 비난을 받지만,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극적인 일이다.

자기 성찰이 없는 이들은 성장할 수도, 시대에 적응할 수도 없다.

꼰대의 생물학은 근거가 있다.

나이가 들면 사고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고집은 강해진다.

이제 직장인이 된 큰딸은 어느 날 동네 호프에서 세대 간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 친구들 중엔 부모와 터놓고 말 못 하는 애들도 많은데,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라고 말했다.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제1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가」 중에서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는 강골 검사’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윤석열이 훌륭하게 연기한 가면이었다. 

그의 실체는 위험하게 수사하는 검사, 자기 사람을 챙기는 리더였다. 

검찰의 독립성, 중립성을 오염시킨 검찰총장이었다. 

적폐청산에 몰두한 문재인이 이를 간과했고, 문재인 정권 심판의 정념에 빠진 유권자들이 이를 몰라봤다. 

이제 와서 국민들이 ‘역(逆) 내로남불’이라 분노하고 심판한 것은 너무 늦은 것이다.
--- 「제2부, 윤석열, 자기 배반의 정치」 중에서

정권의 실세 법무부 장관으로서 야당과 싸움에 전념했을 때도, 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이재명·조국 심판’으로 총선을 치렀을 때도 한동훈은 비겁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그는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것을 감수하고라도 쓴소리를 해서 변화를 이끌어낼 막중한 임무가 있었다. 

대통령과 선을 긋고 선거를 이끌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정권을 성공시키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윤석열과의 갈등을 90도 폴더 인사로 봉합했다.

 정권심판론을 뒤집을 만큼의 역량이나 결단력이 없었다.
--- 「제2부, 한동훈의 비겁함」 중에서

하지만 민주당을 쪼그라뜨린 건 어쩔 것인가. 

이재명이 당대표로 있는 동안 민주당은 도덕성이 후퇴하고 민주주의가 손상됐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조사할 권한이나 상황이 안 된다”며 경찰에 떠넘긴 일부터 2024년 총선 때 막말 이력의 양문석, 김준혁 후보를 아무렇지 않게 공천한 일, 

코인 투자 논란으로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복당시킨 일까지, 이쯤 되면 민주당은 자정능력이 없는 당이다. 공직 자격의 기준도 없다.
--- 「제2부, 이재명의 진짜 문제」 중에서

한국 사회는 조국 일가의 위선이 문제냐,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 문제냐를 놓고 물러섬 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진영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정권의 향배를 결정한 변수였다. 

우리는 양면 모두 자명한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쪽의 잘못으로 다른 쪽 문제를 지울 수 없고 남의 과오를 내 정당성의 알리바이로 삼을 수 없다. 

잘못을 그 자체로 잘못임을 인정하는 염치는 엘리트 권력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며 권력을 감시할 기준점이다. 

시민들은 권력자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이렇게 촉구해야 한다. 

조국은 검찰 독재를 비판하기 전에 진지한 반성부터 하라. 

검찰은 직업적 양심과 자존심이 남아있다면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사활을 걸라. 

윤석열은 대통령 거부권을 거둬들이고 자신과 배우자의 혐의를 겸손하게 정의의 저울에 올려라. 

권력이 떳떳함을 주장하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 「제2부, 조국의 반성할 용기」 중에서

여기에 유시민의 문제가 있다. 

그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 선전이라 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고 진보 정당이 집권하는 것만이 ‘대의’이고 ‘정의’다. 

자신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실은 사실이라 말하지만, 부합하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거나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중요한 사건에서 그의 발언이 종종 흑역사로 남은 것은 그래서다. 

조국을 옹호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PC 반출이 증거 보존이라는 궤변을 남발했을 것이다. 

검찰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허위사실인 계좌추적을 무모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정당 내 성추행 사건을 문제 제기하자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한 발언에는 정치 권력을 잡는 것 외엔 어떤 가치도 부차적이라는 인식이 투영돼 있다. 

황우석 사태 때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PD수첩〉팀이 황 교수 연구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 「제2부,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나만의 세상에 빠져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내가 조롱했던 그 사람이 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내가 믿는 그분도 틀릴 수 있다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의 신념이 반박당할 때 화 내기 전에 깊이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내 믿음과 상충하는 뉴스를 보도한 기자에게 욕설을 뱉어내는 쉬운 배설보다, 

다양한 정보를 비교하고 판단하는 어려운 연습이 필요하다. 

김어준과 민경욱이 음모론자로서 상통한다는 걸, 내가 믿었던 셀럽과 유튜버의 말이 궤변이란 걸 발견하게 될 때 내 삶의 지주가 뽑히는 공허함에 빠질지도 모른다. 

대신 보상이 있다. 선동가에 속지 않는 당신의 주체적 삶이 열린다.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와는 상관없는, 지성의 삶이 시작된다.
--- 「제2부, 음모공동체, 김어준과 민경욱」 중에서

‘이준석 스타일’의 정치적 효능을 나는 안다. 

대선 주자급인 안철수 의원,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수위를 조절하지 않는 그의 독설과 조롱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엔 ‘권위에 대한 저항’ ‘통념의 전복’이라는 통쾌함을 안긴다. 

논점을 이탈하든, 궤변을 동원하든, 내용과 무관하게 상대를 ‘발라’ 이긴 것처럼 보이는 그의 토론 방식에도 이들은 열광한다. 

구태에 찌든 윤핵관보다 나은 면도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이나 부정선거론 같은 음모론에 선을 그을 줄 안다. 

분명 그는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 

그 차별화가 나쁜 차별화여서 문제다.
--- 「제2부,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 중에서

진짜 과감한 해법은 이 오랜 인습을 깨뜨리는 것이다. 

직장에 올인하는 관습을 버리고 가정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려 부모가 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남성은 육아에 보조자가 아닌 책임자로 동참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강력한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기업은 근로자의 출산과 육아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여겨야 한다. 

누군가에겐 달갑지 않을 변화이기에 파격적이고, 오랜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기에 근본적이다. 

남자는 야근하고 여자는 집안을 돌보는 성역할 분담은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아직 오지 않은 일-가정 양립과 성평등을 앞당겨야 한다.
--- 「제3부, 차별 국가에서 아이 낳으면 뭐 하나」 중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오작동이다.

 정치가 실재하는 불만을 해결하지 못할 때, 설득하고 타협해서 공동체를 통합하지 못할 때, 포퓰리즘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미국 정당들이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불만을 간과했을 때 트럼프는 부상했다.

 유럽의 정당들이 이민자에 대한 불안, 물가고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기성 정당들이 이대남의 불만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여성혐오의 포퓰리즘 정치가 한국 사회에 도래했다. 

정치인들은 이대남 표를 가져오겠다고 이준석 정치를 뒤따를 때가 아니다.

방치된 불만의 위험을 걱정해야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할 때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집권할 날이 올 수 있다
--- 「제3부, 이미 도래한 포퓰리즘」 중에서

“캐나다에서 좋은 마약, 나쁜 마약의 개념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간 사회적으로 용인되다가, 범죄가 되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의해 규정된다.

” 보이드의 글에서 ‘마약’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많다.

어떤 종교를, 인종을, 국적을, 출산을, 성정체성을, 가족의 자격을, 우리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이 자리에 어떤 단어를 놓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 사회의 한계를 규정할 것이다.
--- 「제3부, 마리화나 합법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서

선량한 그들이 좀 까칠해지고, 예민해지고, 배반하기를 소망한다. 

방관함으로써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분위기 망치지 않으려 맞장구치며 웃는 대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정색을 하는 거다. 

‘여자가 꼬리를 쳤네’ ‘뭔가를 노리고 무고를 했네’라며 근거 없는 의심과 비난이 돌 때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거다. 

내 앞가림 한답시고 모른 척하지 말고 상사와 동료의 성희롱을 증언하는 거다. 

선량함으로 가장한 비겁함을 극복하고, 남자들의 연대를 버리는 거다. 

이 공고한 성범죄 문화는 그래야 무너진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
--- 「제3부, 성범죄 조장 국가, 대한민국」 중에서

내가 강준만에게서 느낀 배신감은 DJ의 멍에, 호남 차별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했던 그가 이준석의 약자 혐오를 예민하게 보지 않고 ‘호남 끌어안기’만 높이 평가한 점이었다. 

강준만이 그럴 수는 없다.

차별에 대한 반대는 모든 차별에 대한 반대여야 한다.

호남을 식민지 삼아선 안 된다면 여성을 식민지 삼는 성차별 또한 없어야 한다. 

그의 대표적 저서 『김대중 죽이기』는, 지역·호남·영남 등을 젠더·여자·남자 등으로 치환해 읽으면 주옥 같은 페미니즘 운동서가 된다.
--- 「제3부,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 중에서

소방관은 여느 공무원과 다른 직업정신, 특별한 DNA를 가졌다. 

소방관 DNA란 그러니까,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며 “제발 살아만 있어라, 

내 목숨 걸고 구하겠다”고 되뇌는 그런 것이다. 

경기 용인시 아파트 지하에서 LPG 가스에 질식된 이에게 자기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고 쓰러진 그런 것이다. 

미국 9·11 테러 때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으로 당연하다는 듯 진입하는 그런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간담회를 시작한 지 12초 만에 출동 벨이 울리자 박차고 뛰어나가는 그런 것이다. 

휘두를 권한은 없이 오직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스스로 다치고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구하러 가는, 헌신의 DNA다. 9·11 테러 사망자 약 3,000명 중 330여 명이 소방관인 이유,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1위로 소방관이 흔히 꼽히는 이유다.
--- 「제4부, 소방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중에서

한동훈은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증거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딸의 부정 스펙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논문 대필, 영문 전자책 발행, 돈 내고 게재하는 미국 신문 인터뷰 등 부정이 보도될 때마다 문제의 논문과 기사들이 속속 삭제됐다.

 더욱이 그는 부정 스펙에 대해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법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불법이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인식을 갖고 범죄자를 잡아 정의를 실현하는 검사를 했고 법무부 장관을 하겠다니, 소름이 돋을 일이었다.
--- 「제4부, 검사, 증거 인멸의 기술자들」 중에서

팬덤의 달콤함에 빠져 민주당은 많은 것을 잃었다. 

당원을 방패막이 삼아 원칙을 저버림으로써, 더 큰 지지를 잃었다. 

민심과 멀어져갈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다양성을 잃었다. 

문재인 팬덤을 향유하던 친문 지도부는 더 거칠게 이재명 팬덤을 이용하는 친명 지도부에게 밀려났다. 

민주당은 문자폭탄으로 이견과 토론을 막는 것은 양념이 아닌 테러임을 천명해야 했다. 

전당대회 룰을 바꿔 강성 당원들에 휘둘리는 일을 제어해야 했다. 

이는 당심과 민심을 저울질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다. 문재인이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다.
--- 「제4부,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중에서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혜안과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혜안은커녕 후보로 삼을 변변한 인물이 없어 상대 진영 검찰총장 출신을 대통령 후보로 세우지 않았던가. 

21세기 한국은 한 사람의 걸출한 리더가 시대 과제를 풀 수 없는, 복잡하고 글로벌한 사회다. 

연금개혁, 한중 패권경쟁에 낀 경제안보 환경, 기후변화, 저출생 등 무엇 하나 대통령 결단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의회의 집단지도 체제로 대통령제를 대체할 때가 됐다. 

도박처럼 한 명의 지도자에게 모든 걸 거는 것보다는 300명을 믿는 게 리스크가 작다.
--- 「제4부, 절망의 정치를 넘어」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당신들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
한국 사회는 왜 내로남불에 포위되었는가?

저널리스트 김희원이 한국 사회의 비겁함에 주목하는 이유
30여 년간 뉴스룸에서 벼린 단단한 사유와 언어

한국에선 아무도 기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고 진실 규명에 기여해 대한민국과학문화상, 한국여성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기자상 등을 수상했던 김희원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칼럼을 읽고 자신을 신뢰해서 만난 어느 변호사가 “기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로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엉망인 기사를 쓰고서도 ‘데스크 지시’라는 핑계를 대며, 취재원 보호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았던 기자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기자뿐이랴. 현직 대통령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공당의 대표들은 검찰과 법원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검사들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병원의 의사는 어떻고, 학교의 교사는 또 어떤가.

군의 지휘관들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덮으려 안간힘을 쓴다.

우리 현대사를 진전시켰던 ‘민주인사’들은 줄줄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편법적인 재산 증식 혹은 자녀의 입시 비리를 고발당했다.

사회의 법과 질서, 기틀을 잡아야 할 ‘보수의 아이콘’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귀 기울이거나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조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이어간다.

우리의 공론장엔 오로지 냉소와 비방, 파괴적인 공격만 남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 누구를 존경해야 한단 말인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한결같이 유지하는 떳떳함이다. 

권력을 가졌거나 자신의 스피커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다들 상대편을 악마화하며 모든 게 다 ‘네 탓’, ‘저쪽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김희원에 따르면, 그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지적인 나태이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은 죄가 없다고 강변한다. 

한 점 부끄럽지 않으며 당당하다고 잡아뗀다. 진영에 따라 무수히 다른 진실과 도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정의는 그렇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
위선과 냉소, 혐오와 탈진실의 시대를 뛰어넘는 법

그렇지만 그로 인해 온 사회에 만연한 냉소와 내로남불의 분위기는 이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편적 정의와 진실을 내팽개치고 모두가 서로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상황에선, 심각한 허물이 있는 이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겐 도리어 더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와 언론을 비롯한 모든 공적 영역에 스며든 ‘정의의 오염’, 탈진실의 비극은 우리의 목전까지 차올랐다. 

199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뉴스룸을 지켰던 김희원은 이처럼 정의와 진실이 송두리째 사라진 한국 사회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김희원은 “비겁함이 죄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의 첫머리를 연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직분과 책임을 다하다가 좌천되었던 관료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가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직업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는 게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털어놓는다. 

저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2013년 ‘〈한국일보〉 뉴스룸 폐쇄 사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사건들의 회고로부터 책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는 게 그것이다. 

정의와 진실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타성에 젖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그저 기계적으로만 수행한다면, 때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누군가의 고뇌와 결단이 없다면,  거기에서 이 사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1,258명의 무고한 죽음을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사건도, 끊임없이 실패하는 언론도. 우리 공동체를 절망에 빠지게 하는 정치인들도 다 마찬가지다.

이 책의 

1부 「타락한 진실의 시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입체적으로 펼쳐놓는 ‘대한민국론’이다. 김희원은 자신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취재하고, 성찰한 것을 정돈해 열한 개 글을 완성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했던 아동학대 문제, 군대문화 문제, 부동산과 집값 문제, 정치 현안과 저널리즘, 인권과 소수자와 노동 문제를 정리하고 우리 공동체의 앞날을 고민한다. 

이어

 2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에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오염시킨 정치인들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가 비판하는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이준석과 홍준표, 유시민과 김어준 등 진영과 소속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비판해야 할 대상에 성역을 두지 않는다.

김희원이 기록한 바를 뒤쫓으며 이들의 아찔한 궤변과 몰염치를 보는 일은 우리 사회가 ‘탈진실의 시대’를 용인한 대가를 확인하는 것만 같다.

김희원에 따르면, 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세계 보편의 가치를 아직 내면화하지 못했다. 

그는 책의

 3부 「차별이라는 폭력」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과 차별금지법 논란, 성범죄와 페미니즘, 우리 사회의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 한국 사회에서 득세 중인 여성혐오와 포퓰리즘 관련 논의를 펼쳐놓는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우리는 이제 구시대적인 차별에서 벗어나 성평등을 비롯한 세계의 도도한 흐름으로 더 빠르게 합류해야 한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

 4부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기에」에는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첨예한 쟁점들이 묶였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과 언론의 정파성 관련 논란, 팬덤 정치의 한계, 기본소득 논쟁, 나아가서 우리 정치구조의 근본적인 변혁까지…. 김희원은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의 오랜 고민을 풀어놓는다.

김희원이 기자로서 오랫동안 세공해 온 지성의 힘
위선과 냉소, 혐오와 탈진실의 시대를 뛰어넘는 법

저자가 4년여간 〈한국일보〉에서 연재 중인 ‘김희원 칼럼’은, 진보와 보수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언론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신뢰하는 이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아왔다. 

김희원은 시대의 균형추, 날카로운 비판자로 불리면서 지금 이 순간도 신문사의 뉴스룸을 지키는 중이다. 

모두가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에서, 언론의 사명을 기억하는 한 사람의 기자가 그것을 의심하길 기대하며.

 사회를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 들이미는 기자가 있기를 기대하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가장 먼저 경책하고 깊이 반성하며. 

큰딸의 문신을 자꾸만 탓하고 싶어 하던, 일과 가정의 양립에 무심했던, 소수자에게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아프게 돌아보면서 말이다.

굳이 기자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김희원은 우리 사회가 ‘오염된 정의’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열한 노력과 성찰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는 남의 과오를 내 정당성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꾼다. 

상식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개인들의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김희원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을 기대하고, 우리 시민들 모두가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하고,

대다수의 ‘선량한’ 남자들이 남자-연대의 분위기를 떨치고 성범죄 문화에 ‘정색’할 것을 기대한다. 

시민들이 정치인을 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치를 향한 고민을 멈추지 않길 희망한다. 

김희원은 민주주의자다. 내가 조금만 무책임했다간 공동체를 금방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믿는, 다소 엄격한 민주주의자인 것이다.

추천평
“통독했다. 저널리즘의 원칙이 주는 통렬함은, 소위 말하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그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은 후련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고민할지도 모른다. 

후련함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원칙이 이 혼란스러운 현상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김희원은 그런 고민에 대한 긍정의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저널리스트인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저널리즘이 흐트러지는 지금의 시대에, 그가 마지막이어서 귀한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 손석희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객원교수, 전 JTBC 총괄사장)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가가 되었다. 

비단 K-문화나 기업의 활약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삶은 매우 피곤하고 짜증스럽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오염된 정의』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한 언론인의 치열한 탐구와 성찰을 담고 있다.

오늘의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머리도 마음도 늘 허했던 기자 시절, 짧지만 강렬하게 충만한 순간이 더러 있었다. 

대개가 그와 함께했을 때다. 책 속 문장처럼 그는 항상 “더 알고 싶었고 늘 할 말이 있었다.

” 삼십여 년을 농축한 그의 앎과 말은 깊고 단단하고 정교하다. 

숱한 정치인을 가차없이 베는 글들도 통쾌함만 주지 않는다. 

냉소를 거두고 뭐라도 해 볼 마음을 먹게 한다. 

세상이 자꾸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은 요즘, 기자 김희원이 우리 곁에 있어 다행이다.”
- 이희정 (《미디어오늘》 대표)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758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