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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인권길 3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6국 취조실 기억공간)

동방박사님 2022. 7. 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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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정보부가 소유하고 있었던 부지 일부는 '인권숲'이라는 이름으로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다.

 

중정 부장의 공관으로 쓰던 집은 현재 문학의집으로 조성되어 있다. 소방재난본부 건물 인근에 있으며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지하에는 카페가 영업 중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민간의 방첩 활동까지 육군 특무대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인권 및 월권 문제로 말이 많았던 터라 순수하게 민간의 방첩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기관의 창설이 필요했다. 2공화국 당시부터 이런 계획이 있었는데, 이는 5.16 군사정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쿠데타 며칠 뒤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다. 2공화국 하에서 이런 정보기관의 창설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이후락이다. 실제로 이후락은 5.16 군사정변 직후 체포되기까지 했다. 3공화국때 정보부 수장이 되었다는 점을 보면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이후락이 능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성기에는 각 부처마다 요원들이 상주하여 공무원 동향을 감시하기도 하고 검찰, 경찰, 교정기관을 배후에서 휘두르면서 수사권 뿐만 아니라 기소권까지 실질적으로 행사했다. 형식상으로는 중앙정보부에서 수사를 한 다음 검찰에 송치를 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검찰이 중앙정보부에서 송치한 범죄자를 기소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검찰은 그냥 장식에 불과했다. 교도소 역시 중정 요원들이 비전향장기수 등 좌익 재소자의 사상 전향 공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중앙정보부는 이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단순 정보기관을 넘어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자리했다. 중앙정보부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니 당연히 박정희를 뒷받침하는 역할이고, 한국사 교과서에도 박정희 정권의 권력기관이 중앙정보부라고 기술되어 있다. 박정희의 말 한마디에 여당의 중진급 국회의원들이 남산으로 잡혀가 풀코스 접대를 받고 그대로 정계에서 축출당하거나(10.2 항명 파동) 전 중앙정보부장이 외국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 사례(김형욱 실종 사건)에서 그 위세를 엿볼 수 있다[출처: 나무위키]

 

 

일반적으로 중앙정부의 기관들 중 '~'로 끝나는 곳의 수장은 장관이기 때문에 중앙정보부 장관이 되어야 하지만 중앙정보부 부장인 점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부는 대통령국무총리각 부처 장관으로 이어지지만 중앙정보부는 지금의 감사원이나 국가정보원처럼 대통령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장관이 아니라 부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무회의 배석권도 없다. 물론 국가 비상 사태나 안보 회의에는 참석한다.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과 같이 일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은 관계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분류되었다. 중앙정보부장의 지위는 부총리급으로 장관보다도 높았다. 국무총리 바로 밑이었으며 역시 부총리급인 경제기획원 장관과 동급이었다. 일부 드라마들을 보면 국가안보회의에서 중앙정보부장이 국방 장관 아래에 앉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설정으로 실제로는 모든 장관들의 상석이자 국무총리 바로 아래에 앉는다. 장관급으로 격하당한 현재도 국정원장은 의전서열상 부총리들 중 가장 낮은 교육부총리의 바로 다음 순위라 장관급 공직자들 중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공화국 때부터 미국 CIA 한국측 인사가 창설에 도움을 주었지만 중정이 일반 정보 기관으로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수사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FBI의 수사권을 본따서 공안 사건에 한정해 수사권 발동을 가능하게 한 중앙정보부에 관한 법률이 생겨서 가능해졌다. , 검사 없는 단독 수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당연히 간첩을 잡는 목적이어야 하지만 악용된 경우가 엄청 많았다.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확인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4대 의혹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코리아게이트가 있다. 특히 김대중 납치 사건과 윤이상의 경우는 외국의 사정이고 뭐고 무시하고 일을 벌였기에 당시 심각한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었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과시했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사살하는 10.26 사태가 터지고 김재규가 전두환에게 체포되면서 중앙정보부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국가안전기획부로 간판을 바꿔달고 새로 출범했지만, 3~4공 때 수행했던 권력기관의 역할은 보안사에게 일부 넘어갔다. [출처: 나무위키]

 

 

이곳 서울 북쪽은 경술년인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국치를 당한 한국통감관저 (국치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거의 같은 위치에 5.16쿠테타 (1961년) 세력이 군사정변 직후 설치 (6월10일) 한 중앙정보부가 들어왔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에 '남산'이란 말은 돋 '중정'을 뜻 했습니다. 이 기관은 주권자인 국민 감시와 통제를 주로하는 '권부 위 권부'로 군림해왔습니다.

 

 

중앙정보부

퇴계로 쪽에서 바라본 남산 중앙정보부 본청 전경. 왼쪽 위에 있는 건물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지하실(6별관)이다.

 

좌측 상단의 건물은 중앙정보부 본관의 우측에 위치했던 제 1 별관 건물로 1996년에 발파 해체되었다. 동아일보 보도

 

6국 건물은 위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진의 중앙 앞쪽에 보이는 구 감찰실 건물(2017년 철거)의 오른쪽에 위치했고 서울특별시청 남산별관과 균형발전본부로 사용되었다. 2017816일 서울시에서는 해당 건물을 지하실까지 정밀 해체하고 '중앙정보부 6'과 부끄러운 역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을 담아 "기억 6"으로 명명했다. 해체된 지하실은 기억 6 전시실 지하에 다시 재현되었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