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1.독일역사와 문화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2023) - 1 나치 과거사

동방박사님 2024. 5. 3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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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문화-메시지의 ‘행복한 만남’
미려하고도 묵직한, 독일 현대사 톺아보기

볼거리·읽을거리·생각거리 풍성한 베를린 역사기행

20세기 전반에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의 수도였고, 후반에는 동독의 수도로서 냉전과 분단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도시 베를린. 그만큼 베를린은 독일의 과거사가 거듭 다르게 읽히는 의미전환과 기억문화의 이전이 계속되는 곳이다. 동시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기념물만 1만 2천 개 이상인, 기억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독일에 머문 지은이는 이런 베를린의 공공장소를 천천히 걸으며 독일의 불편한 과거사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현장감 있게 전하고 있다. 과거사를 둘러싼 무거운 논쟁들을 시와 예술, 음악을 곁들여 읽을거리와 생각거리가 풍성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 읽는 재미를 더한 것 또한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목차
서문

1. 떠나간 자들과 돌아온 노래들─그루네발트역 선로

· 떠나간 자들 · 추방의 길|죽음으로 가는 열차, 기억으로 오는 열차|신속한 이송, 느린 기억|이름 없는 아이들로 남겨두지 않으리 · 돌아온 노래들 · 〈브룬디바〉, 아이들의 꿈이 되다|‘소녀들의 방 28호’|강제수용소의 노래, 계속되는 저항의 기억|추방된 음악 불러오기

2. 망각을 거부하는 책읽기─베벨 광장과 분서작가들에 대한 기억

굴뚝과 연기의 기억-기억은 대속代贖이다|분서의 현장이 된 자유와 토론의 광장|나를 불태우라-예감과 결말 사이|계속 읽는 자는 사살될 것이다-시사비평지의 전설 《세계무대》|‘니 비더 크릭!’-1920년대 반전?평화운동|‘금지 4관왕’과 수확되지 못한 평화|올라가던 불길, 가라앉은 서가, 그리고|금서 읽기-분서작가들을 기억하는 방식

3. 기억되는 여성, 기억하는 여성─젠더와 기억문화

· 뭉뚱그려지고 분절되다-기억되는 여성 · 마녀사냥-희생자들의 부활|히믈러의 ‘마녀카드 파일’|여성 나치 저항자와 현모양처|장미꽃길의 언 눈물, 독재의 폭력을 제압하다!|잔해를 치우는 여성-정치화된 여성 기억문화 · 기억의 나선으로 채우다-기억하는 여성 · 독일여성디지털협회DDF-#여성들이 역사를 만든다|기억의 나선, 여성묘지운동|펨비오FemBio-여성이 여성의 인생을 기억하다|기억문화에서 여성 보여주기|때늦은, 그러나 이리도 작고 초라한|의회 최초의 ‘신사 숙녀 여러분’|변화의 바람-세계를 여성적으로도 해석하라!

4. 꽃무덤 베를린, 그 지형도─젠더와 기억문화

독일 미제레레|《독일 미제레레》가 공연되지 못한 이유|“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경고비를 세워라!”|독일 전체가 경고비-추모의 개념을 바꾼 사람들 · 꽃무덤, 연방하원 의사당을 포위하다 · 꽃무덤 1_신티와 로마 희생자를 위한 눈물의 샘|꽃무덤 2_모인 돌들과 흩어진 돌들|꽃무덤 3_절규의 변주곡-베를린 필하모니는 듣고 있다|꽃무덤 4_진실과 침묵 사이-희생된 동성애자들을 기억하는 터|꽃무덤 5_13분의 세계사, 〈엘저의 기호〉 앞에|꽃무덤 6_저항이냐 반역이냐, 독일 저항 기념관의 저항적 역사|연방하원 의사당, 역사의 증인이 된 미래를 위한 기억, 의회에서 꽃피다

5.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자 룩셈부르크 광장

광장에 담긴 20세기 극단의 역사|광장 위의 책갈피-다르게 생각하기|운하에 던져진 다르게 생각할 자유|안식 없는 안식 방해자|68학생운동으로 살아돌아온 로자-서독|상징적 순교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상징으로-동독|로자 To Go, 어디나 있다-통독 이후|다시 광장으로-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억문화

6. 아이들의 천국─콜비츠 광장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잊힌 전쟁, 남겨진 어머니|콜비츠 광장, 아이들의 천국이 되기까지|평화와 인권마당 콜비츠 지구|노예를 해방시키는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소서|콜비츠를 기억하는 두 개의 특별한 전시|평화 속에서 안식하라|동서남북의 콜비츠, 평안하십니까

저자 소개

저 : 장남주
이화여대와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20년 넘게 생활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특히 역사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문화적으로 전승/기억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왔다. 현재는 베를린에 머물며 외국인·일반시민의 시선에서 독일 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베를린 기억문화의 변화 추이를 계속 눈여겨보고 있다. 아울러 한-독 관계사의 일부로서 옛 동독과의 역사에도 눈길을...

책 속으로

그루네발트역에서만 1만 7,000명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로 이송되었다. …… 대개의 이송 열차는 화장실조차 갖춰지지 않은 말 그대로 화물차들로 꾸려졌고, 추방되던 사람들은 ‘인간화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더 기막힌 것은 독일제국철도Reichsbahn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료 운행을 했다는 사실이다
--- p.22

광장엔 각 도서관과 서점을 뒤져 수거해 온 2만 권 이상의 책들이 ‘축제’를 위한 희생 제물로 쌓여 있었다. …… 증오와 저주에 찬 구호 속에 그들의 저서가 차례로 불의 제단에 던져졌다. 광장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일제히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 환호했고, 자정쯤 “과장된 유대 지성주의의 시대는 끝났다”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연설과 함께 나치가를 부르며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 p.64

삼각형 모양의 강철판을 이어 만든 단단한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것 같은 강한 철조물, 마리 유카츠를 기리기 위해 2017년 8월 베를린 메링 광장에서 제막된 조형물이다. 유카츠는 1919년 바이마르 제헌국민회의에서 “신사?숙녀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을 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낸 최초의 여성의원이다
--- p.141

1939년 11월 8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직후 뮌헨의 한 행사장이 폭탄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 히틀러가 폭발 13분 전 계획보다 빨리 행사장을 떠나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히틀러에 대한 총 42번의 암살계획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의 하나였다. 폭탄을 설치한 게오르크 엘저는 그날 밤 스위스 국경을 넘다 체포되었다. 평범한 목수였던 그의 목적은 그저 “전쟁을 막고 싶었다”는 게 전부였다
--- p.191

로자는 ……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당대의 대가들과 권력에 맞서서도 굽힘이 없었다. 그래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오죽하면 로자 사후 100주년 되던 2019년 독일의 한 신문이 그녀에 대한 기사 제목을 ‘엄청난 안식 방해자’라고 했을까? 그 이유의 하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대해 평생 타협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싸운 그녀의 삶 때문이라는 것이다
--- p.227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는 …… 약 2,600만 명, 독일 내에서만 1,300만 명이 강제노역에 투입되었고, 베를린에서도 50여만 명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독일 교회들도 이 시기 1만 2,000명 내외의 강제노역자를 수용했다고 한다. 베를린에는 1942년 예루살렘교회 주도로 이 교회 묘지에 이른바 ‘묘지수용소’라는 강제수용 시설이 만들어졌다. 전쟁으로 사망자들이 급격히 증가하자 27개 교회 묘지 담당자들이 모여 ‘외국인 노동자’들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p.288

출판사 리뷰

역사-그루네발트역과 브란덴부르크 문의 콰드리가

1941년 10월 18일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을 실은 첫 열차가 강제수용소로 향했던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현장. 당시 수용소행의 참상을 보여주면서 그 덕분에 최대 호황을 누렸던 ‘독일철도’가 박물관을 세우고, 배상기금 조성에 참여하고, ‘선로 17’에 기념조형물을 기증하는 등 기억문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촘촘히 보여준다.

‘평화의 문’으로 예정됐던 브란데부르크 문이 ‘승리의 문’으로, 그 위에 세워진 사두마차 콰드리가의 기수가 ‘평화의 여신’에서 ‘승리의 여신’으로 바뀌는 등의 곡절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가. 지은이는 “권력의 상징정치를 위해 이보다 더 자주 오용된 기념물은 없었다”며 준엄하게 역사의 의미를 묻는다.

문화-〈브룬디바〉와 ‘문화마차’가 보여준 사미즈다트

체코 작곡가가 1938년 작곡해 나치 선전용 어린이 오페라 〈브룬디바〉를 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순간의 자유였던 그러나 행복의 무대였던” 이 작품이 테레지엔트 게토에서의 공연이나 2020년 재연되기까지의 사연은 역설적으로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옛 동베를린에 속했던 판코우 지역의 ‘빵공장’ 문화센터 또한 그렇다. “예술은 음식이다”란 건물 외벽의 구호처럼 지금은 어엿한 복합문화예술센터 노릇을 하는 현장을 살피면서, 여기서 운영하는 ‘문화마차’가 2019년 동독 시절 불법 지하 출판되었던 반정부 유인물 사미즈다트의 현실을 보여주어 통일 전 동독에서도 89평화혁명의 맹아가 싹텄음을 증언한다.

메시지-“자유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

지은이를 따라가다 보면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만난다. 독일제국은 물론사민당 지도부에게도 눈엣가시 같은 ‘붉은 장미’. “정부 지지자나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들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 등의 어록이 새겨진 조형물들을 찬찬히 접하노라면 절대 권력에 맞섰다가 우익 민병대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여성 사상가의 치열한 삶이 떠오른다.

196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학생운동단체 SDS의 대표자회의에서 단상을 향해 토마토를 던진 베를린자유대학 여학생 지그리트 뤼거가 전한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남자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지만 여성 문제는 네 벽 안에 그대로 가두려 했다”고 비판한 그녀는 ‘반란자들 중의 반란자’로 꼽히지만 말이다.

독일과 베를린 그리고 독일의 과거사 정리에 관한 책자는 이미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나치 과거사와 냉전사 두 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애쓴 많은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여기에 쉽고 유려한 서술과 지은이가 직접 찍은 귀한 사진들, 여기에 꼼꼼한 미주를 더해 대중성과 학술적 엄밀성의 균형을 확보한 점도 돋보인다.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이 책은, 역사 전공자와 베를린을 여행하려는 이들뿐만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꼭 한번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꼭 100년 전 9월 1일 벌어졌던 관동대지진 학살을 기억하는 일본의 자세를 보면, 일본에서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해지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