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만들지 않았다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파헤친다.
‘아는 역사’를 넘어 ‘잘못된 역사’의 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말은 사실(史實)이 아니다?
문헌과 역사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을 20년 동안
답사하며 얻은 의혹은 놀라웠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배운다. 이것은 국어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한글을 만든 이가 세종대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는 2002년 속리산 복천암에서 월성스님을 만나 훈민정음에 관련된 자료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한글 창제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세종대왕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명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 관련 문헌을 샅샅이 조사하며 전국 현장을 답사하며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을 확인했다.
‘훈민정음을 누가 만들었나?’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충격과 의외성을 몰고 온다. 강렬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훈민정음을 만든 신미대사는 누구일까? 다른 나라 문자를 보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언제부터 훈민정음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을까? 얼마 동안 훈민정음을 연구하여 완성하였을까?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훈민정음 창제는 모두 사실(史實)일까?
한글 창제에 얽힌 이야기의 진짜 내막은 무엇일까? 모두가 ‘그렇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것은 아닐까? 사실과 가설, 추정과 확인을 넘나들며 끈질기게 실체를 밝히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역사의 진실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책은 한글 창제의 역사적 오류를 밝히려는 저자의 20년간의 노력의 결과이며, 세종실록 등 철저하게 문헌과 기록에서 근거를 찾아낸 연구서다.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정해지고 닫힌 결말’이 아니라 ‘자유롭게 열린 결말’의 유연함 속에서 누구나 역사 속 한글 창제의 진면목과 거짓을 가리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1장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창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뜻일까?
신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뜻일까?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에 전해진 문자들을 모방하였을까?
중국의 한자와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와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훈민정음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모방하였을까?
훈민정음은 중앙아시아의 위구르 문자를 모방하였을까?
세자에게 나랏일을 맡기려고 하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오랫동안 눈병을 앓으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자주 경연에 참석하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날마다 윤대를 하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날마다 상참의를 하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왜 훈민정음이라 하였을까?
왜 훈민정음은 여러 이름이 있을까?
[더 알아보기] 최세진
왜 훈민정음 해설서까지 훈민정음이라 하였을까?
세종어제란?
왜 세종어제 서문의 글자 수가 다를까?
누가 세종어제훈민정음을 번역하였을까?
[더 알아보기] 백팔번뇌
세종대왕은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 초수로 행차하였을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해례본을 간행하였을까?
[더 알아보기] 정의공주와 훈민정음
[더 알아보기] 변음과 토착
2장 집현전 학자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집현전 학자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학자는?
집현전 학자가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았다는 학자는?
왜 세종대왕은 집현전 설치를 재촉하였을까?
언제 집현전을 설치하였을까?
집현전의 목적과 조직은 훈민정음과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경연과 서연
집현전에서 펴낸 책과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왜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였을까?
[더 알아보기] 최만리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집현전 학자들은?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고 받은 벌은?
[더 알아보기] 임금을 속인 죄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었을까?
정인지 서문에 나오는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더 알아보기] 정인지 서문에 나오는 학자들
[더 알아보기] 사가독서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으로 상을 받았을까?
[더 알아보기] [고금운회거요]와 [홍무정운]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서 중국 음운학자를 만났을까?
왜 집현전을 폐지하였을까?
3장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왜 훈민정음은 비밀리에 연구되었을까?
인재가 중요하다고 한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세종대왕의 인사 원칙
세종대왕이 총애한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혜각존자 신미대사는 누구인가?
[더 알아보기] 함허대사
[더 알아보기] 원경왕후
신미대사는 훈민정음을 만들 능력이 있었을까?
[더 알아보기] 제주 고관사의 목조 아미타 불상
[더 알아보기] 영가부부인 신씨
신미대사가 불교적인 숫자를 훈민정음에 적용하였을까?
높은 예절로 대우한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두 왕자가 공양한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조선 최고의 봉작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신미대사가 받은 봉작의 뜻은?
[더 알아보기] 교지
스님들에게 잔치를 베푼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고양 대자사
복천사 중창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복천사 삼존불 봉안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복천사 어기대와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묘당에 모시자는 것과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세종대왕 때 묘당에 모신 분들
[더 알아보기] 정효강
[더 알아보기] 정효강의 집안 형제
원각선종석보와 훈민정음 발명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천불사
[더 알아보기] 신미대사와 김시습
[더 알아보기] 정시한의 산중일기
4장 언제 훈민정음을 만들기 시작하였을까?
김화 사건과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강상죄
삼강행실과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효행록
언제 삼강행실을 편찬하였을까?
[더 알아보기] 설순
언제 삼강행실을 간행하였을까?
삼강행실에 넣은 그림과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언제 삼강행실을 각도에 나눠주었을까?
삼강행실을 가르치는 것과 훈민정음은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정창손
세종대왕 때 삼강행실을 번역하였을까?
언제 삼강행실을 번역했을까?
[더 알아보기] 어우동
[더 알아보기] 유감동
[더 알아보기] 조선의 형벌 제도
왜 삼강행실을 보완하여 계속 간행하였을까?
언제 훈민정음을 만들기 시작하였을까?
5장 언제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을까?
제 자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상친제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신제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제작언문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임금을 속인 죄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극욕광포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선갑선경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약행언문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의혹 없이 시행해야 하는 것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풍속을 바꾸는 일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목판에 언문을 새긴 일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훈민정음 공문서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환관
훈민정음으로 시행한 과거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조선의 과거제도
운회의 번역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석보상절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더 알아보기] 소헌왕후
동국정운과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까?
왜 섣달그믐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을까?
6장 언제 훈민정음해례본을 간행하였을까?
훈민정음해례본은 어떤 책일까?
어디서 훈민정음해례본을 샀을까?
[더 알아보기] 간송 전형필
간송본을 팔면서 왜 거짓말을 하였을까?
긍구당에서 간송본을 보관했을까?
[더 알아보기] 긍구당
누가 훈민정음해례본을 편찬하였을까?
누가 세종어제를 기초하였을까?
누가 훈민정음해례를 지었을까?
사람들을 깨우치라고 한 것과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훈민정음성과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왜 훈민정음성을 달리 해석하였을까?
왜 한글날이 10월 9일 일까?
왜 세조대왕은 권선문을 훈민정음과 한문으로 지었을까?
월인석보와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간경도감과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복천사 행차와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왜 효령대군은 세조어제 후기를 지었을까?
누가 간경도감에서 일하였을까?
[더 알아보기] 학조대사
언제 간경도감을 폐지하였을까?
상주본의 발견으로 밝혀진 것은?
안동 광흥사와 훈민정음해례본은 관계 있을까?
광흥사에 보관된 훈민정음해례본은 어찌 되었을까?
[더 알아보기] 서여 민영규
조선 백성은 언제 훈민정음을 사용하였을까?
책 속으로
--- p.9
세종실록에 훈민정음은 고전(古篆)을 모방하였다고 하였다. 고전을 모방하였다는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 우리나라에 전해진 여러 문자를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좁게 해석하면 중국의 전서를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 p.26
세조 5년(1459)에 편찬된 훈민정음 언해본에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올바른, 정확한, 바로잡는)한 소리’라 하였다. 그리고 정음은 ‘정음은 정한 소리니, 정히 반듯하게 옳게 쓰는 글일지니 이름하여 정음이라 하나니라’ 하였다. 풀이하면 훈민(訓民)은 부모를 잘 섬기도록 자식들에게 효를 가르친다는 뜻이고, 정음(正音)은 어떤 소리라도 바르게 적을 수 있는 소리글자라는 뜻이다. 부모를 잘 섬기도록 자식들에게 효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소리글자가 훈민정음인 것이다.
--- p.45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은 훈민정음 연구가 시작된 계기이자 김화사건이 일어난 세종 10년(1428)에 과거 급제를 못 하였다. 집현전 부제학인 정인지는 여러 관직을 옮겨 다녔고, 부친상으로 사직한 적이 있으며, 여러 책을 편찬하느라 훈민정음을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정인지는 한문에는 능통하였으나 소리글자를 몰랐으므로 훈민정음을 만들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따라서 정인지 서문에 있는 학자들은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 p.89
세종 10년(1428) 진주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면서 한문은 물론 산스크리트 문자와 파스파 문자에 해박한 신미대사에게 훈민정음을 만들게 하였다. 신미대사는 세종 10년(1428) 10월 3일부터 사대부와 유생들의 눈을 피해 궁궐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서울의 흥천사, 청계사, 경기도 가평의 현등사, 예빈사, 황해도 장연의 천불사, 강원도 춘천의 청평사 등에서 훈민정음을 연구하였을 것이다.
--- p.112
제(制) 자와 훈민정음 반포는 관계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세종실록에서 제 자만을 사용하였다. 제 자는 반포라는 뜻으로 사용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옥편에 제(制) 자의 뜻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뜻과 반포하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상친제(上親制), 신제(新制), 창제(創制), 제작언문(制作諺文) 등과 비교하여 제 자는 반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출판사 리뷰
가리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 25년에 창제된 후 1446년 세종 28년에 반포된 문자로서, 한글의 옛 이름이다. 한국 사람은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정말 세종대왕이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충격과 의외성을 가져다준다. 지금껏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했다는 말을 의심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 [세종실록에 숨은 훈민정음의 비밀]은 하나의 질문에 이어지는 다음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은 문자를 새로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었나? 훈민정음을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언제 반포했을까? 훈민정음해례본을 누가 편찬했을까?
남아 있는 기록은 다른 말을 한다.
대담한 주장을 검증하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뒤따른다. 수많은 질문에 근거 있는 답변을 해야만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질문을 나열하고 그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세세한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할 때 근거는 문헌에서 따왔다. 《세종실록》, 《세조실록》 등 조선왕조실록을 주로 인용했고,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세종어제], [훈민정음해례], [정인지 서문]을 샅샅이 훑었고, 그 외 《복천보장(김수온 필사본)》, 《청권집유(효령대군 문집)》, 영산김씨 족보 등 기타 자료에서 찾았다. 서울, 충북 보은, 경북 안동, 강원 평창 등 전국에 있는 훈민정음의 흔적을 쫓아다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세종실록에 있었다. 모든 단서는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었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 검증하면서 실제로 현장을 답사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는 20년간 훈민정음에 얽힌 비밀스러운 얘기를 풀어헤쳤다.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묻고 답하는 식으로 글을 썼다.
훈민정음을 만든 이는 승려 신미대사이고, 훈민정음을 완성한 이는 세종대왕이다. 세조대왕은 훈민정음을 보급했고 학조대사는 훈민정음해례본을 간행했다. 세세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종실록 등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으며, 조사하고 검토하고 추정하고 확인한 결과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과 지명과 이야기들, 조선 사회의 여러 장면을 다채롭게 그려내는 칼럼도 곁들였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하나로 묶고 핵심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왜, 누가, 언제 훈민정음을 만들었나?’ 세종 10년(1428) 경남 진주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김화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훈민정음을 만들기로 결정되고, 한문은 물론 산스크리트 문자와 파스파 문자에 해박한 신미대사에게 훈민정음을 만들게 하였다.
신미대사는 세종 10년(1428) 10월 3일부터 사대부와 유생들의 눈을 피해 서울 흥천사, 청계사, 경기도 가평 현등사, 예빈사, 황해도 장연 천불사, 강원도 춘천 청평사 등에서 훈민정음을 연구하였을 것이다.
드디어 훈민정음이 만들어지자 세종대왕은 세종 25년(1443) 12월 30일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신미대사는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나서 2년 8개월 동안 훈민정음해례를 집필하고 세종28년(1446) 9월 상한에 훈민정음해례본을 편찬하였다. 세종실록에 등재된 것은 세종28년(1446) 9월 29일이다.
훈민정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가 필요하다
훈민정음은 우수한 문자 체계다. 세종대왕이 만들었고 발성기관의 형태와 성리학 원리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고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것이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과 다르다면 바로잡아야 옳은 일일 것이다. 최근 ‘한요부 타삼오해(고려한글)’ 등 한글 기원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과 함께,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신미대사 창제설’도 논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글, 훈민정음, 세종대왕에 관심 있는 이들, 특히 우리 역사를 깊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중요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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