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0.경북권 관광

경주 감응사터 삼층석탑 13.3.9

동방박사님 2013. 3. 14.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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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대종천(大鐘川)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곳이 바로 동해구(東海口)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은 삼국을 통일한 뒤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을 완공하기 전에 죽음이 임박하자,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구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大王岩)이고, 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로 정하였다. 감은사는 아들인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이 682년에 완공하였으며, 완공된 후에는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이라는 관청을 두어 관리를 파견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을 받았다.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는 감은사 금당 밑에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도록 구멍을 하나 만들어 문무왕의 혼(魂)인 호국룡(護國龍)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1980년 발굴조사 결과 호국룡 설화가 어느 정도 사실임이 입증되었는데, 금당의 기단면(基壇面)보다 두 자 정도 낮은 곳에 귀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홈이 파진 사각초석을 놓았다. 그런 다음 그 위에 돌귀틀을 짠 뒤 돌마루를 깔고, 다시 원형초석을 올려놓고 기둥을 세웠다. 다시 말해서 금당 바닥 아래에 완전한 지하공간을 조성한 매우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연대산 중턱을 깎고 9m 높이의 우람한 석축(石築)을 쌓아 평지를 만들었다. 석축 아래에는 연못이 있고, 석축 중앙부에 동서 11m, 남북 7m 크기로 돌출된 부분이 있다. 이 돌출부에는 계단이 연못으로 이어져 있어서 과거에 도선시설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석축은 군데군데 1.5m 길이의 돌못을 꽂아 축대석들을 지지하는 구조로, 불국사 석축이나 영암사(靈巖寺)터 석축에도 응용된 기법이다. 석축의 구조는 매우 고급스러우며, 상부에 난간을 설치했던 흔적도 있다.

 

발굴된 결과를 가지고 복원적으로 고찰해보면, 중심축 선상에 중문-금당-강당을 앞뒤로 놓았고, 중문과 금당 사이에 한 쌍의 우람한 삼층석탑을 동서로 나누어 세웠다. 이들을 감싸는 중심곽의 크기는 동서 76m, 남북 74m로 거의 정방형에 가깝다. 금당은 5×3칸 규모의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고, 네 면의 중앙에 계단을 설치하여 중심성을 높였다. 기단은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이 뚜렷한 가구식(架構式) 기단이며 그 위에 전돌을 깔았으리라 추정된다.

 

기둥 중심에서 기단 끝까지의 거리가 3.5m에 달해 처마가 매우 깊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의 처마 깊이를 확보하려면 하앙(下昻)구조와 같은 특별한 구조를 사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중문은 3×2칸의 크기이며, 강당은 8×4칸으로 88평의 내부는 모두 통칸으로 길쭉한 비례를 갖는다. 금당 좌우로 동·서 회랑에 이르는 익랑(翼廊)이 연결되어 있고, 강당 좌우로는 7×3칸의 기다란 건물 한 쌍이 동·서 회랑에 맞닿아 있다

 

감은사의 평면적인 배치 계획은 쌍탑식 가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기하학적인 1:2 비례가 주조를 이룬다. 쌍탑식 가람은 671년 창건된 망덕사와 사천왕사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이 두 가람의 쌍탑은 모두 목탑이었고, 감은사는 최초의 석탑으로 이루어진 쌍탑식 가람이라 할 수 있다.

 

통일 이후 신라 건축계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형식들이 시도되었는데, 현존 유구(遺構)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가람배치법과 석탑의 형식이다. 감은사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실험작이자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백제계 석탑이 목탑의 구조를 석조화한 것이라면, 원(元) 신라의 석탑은 전탑의 구조를 석조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강석을 벽돌 모양으로 잘게 쪼개 쌓아올린 분황사(芬皇寺) 모전석탑(模塼石塔)이 대표적이다.

 

 

통일 후 경주 지역에서는 백제의 목탑적 전통과 신라의 전탑적 전통을 융합하여 새로운 형식의 석탑을 창조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였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하나의 전형을 창조하였는데, 감은사탑에서 그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탑의 몸돌 모퉁이에 새겨진 귀기둥과 유려한 처마선을 가진 옥개석이 목탑적 전통이라면, 4∼5개 단을 내쌓기한 모양의 층급받침은 전탑적 전통에서 온 형태이다. 이중기단 형식의 차용, 3개 층의 전형성, 상륜부(相輪部)의 완성 등 전체적인 형식과 비례 체계가 감은사탑에서 완성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적 완성뿐 아니라, 13.4m에 달하는 당당한 스케일을 가진 한 쌍의 석탑은 그 입체감만으로도 완벽한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감은사탑은 이른바 '신라계 석탑'의 전형이며, 이 계열의 석탑은 반세기 후 불국사 석가탑에서 더 이를 데 없는 형식을 완성하게 된다. 불국사 석가탑이 세련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감은사탑이 지닌 완벽한 비례의 추상적인 실루엣은 정교하면서도 웅장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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