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3.일제식민지배

식민지 조선을 논하다

동방박사님 2023. 3. 1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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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식민지 지식인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 조선인을 어떻게 보았을까

근대는 민족국가의 시대였다.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일본인에 관한 담론이 넘쳐났다. 조선인에 대한 담론 역시 존재했다. 차이가 있다면 조선인론은 당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일제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인론이 우세했다는 점이다. 즉, 타자화된 시선에서 조선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그 핵심에 다카하시 도루가 있다.

다카하시 도루는 대표적인 식민지 지식인으로, 경성제대 창립위원회 간사,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 혜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해방 후 일본에서 조선학회를 창립한 학자이다. 그의 조선인 이해는 일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의 대표적 속성으로 사상의 고착성과 사상의 종속성을 꼽았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이후에 이광수, 해방 후의 이어령에도 이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는 양장본과 보급판, 2종으로 출간되는데 이 책은 보급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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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 책을 펼친 독자들에게

제1부 조선인

제1장 _ 조선, 조선인
1. 지리적 고찰
2. 지질적 고찰
3. 인종적 고찰
4. 언어적 고찰
5. 사회적 고찰
6. 역사적 고찰
7. 정치적 고찰
8. 문학·예술의 고찰
9. 철학적 고찰
10. 종교적 고찰
11. 풍속·습속의 고찰

제2장 _ 조선인의 열 가지 특성
1. 사상의 고착固着
2. 사상의 종속
3. 형식주의
4. 당파심黨派心
5. 문약文弱
6. 심미관념審美觀念의 결핍
7. 공사公私의 혼동
8. 관용(寬擁)과 위엄(鷹揚)
9. 순종從順
10. 낙천성

제3장 _ 조선인의 특성에 대한 보론

제4장 _ 조선인의 특성에 대한 종합론

제2부 『조선인』 전후의민족성개조론

제1장 _ 조선 개조의 근본 문제
1. 진정한 조선 개조의 근본 문제
2. 학문과 종교의 전통적인 정치적 구속에서 해방
3. 조선 교육제도의 개정과 종교대학의 설립
4. 정실 사회에서 실력 경쟁의 사회로

제2장 _ 조선의 문화정치와 사상문제
1. 문화정치의 의의
2. 문화정치의 요건
3. 문화정치와 교화정책, 그리고 개척사업
4. 문화정치의 반응
5. 문화정치에 반항하는 사상과 운동
6. 문화정치에 반항하는 사상과 운동의 장래
7. 문화정치의 폐해
 

저자 소개

저자 : 다카하시 도루 高橋亨(1877~1967)
도쿄東京제국대학 졸업. 조선총독부 학무국 촉탁으로서 구관제도조사사업舊慣制度調査事業에 참여하여 조선의 구술문화유산 수집, 고도서의 정리·해제를 담당했다. 경성京城제국대학 창립위원회 간사를 거쳐 법문학부 조선어조선문학전공 교수, 동국대학교의 전신 혜화惠化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경성경학원經學院제학提學겸 명륜연성소明倫鍊成所소장과 조선유도儒道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45년 패전 이후에는 일본에 귀국하여 텐리...
 
역자 : 구인모具仁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 그리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비교문학비교문화과정에서 수학했다. 같은 대학의 일한문화교류기금 초빙 펠로우,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연구교수를 거쳐, 지금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단 HK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근대시의 이상과 허상』(2008)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으로

조선민족이 도대체 다른 민족과 비교해서 어떤 특성이 있는지, 특히 우리 일본인과 비교해서 분명히 다른 특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을 이 논문의 주안점으로 삼는다. --- p.10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정치가 부패한 데에 따라 더욱 이러한 특성이 백성 사이에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무렵에 이르러 정부로부터 새롭게 시행된 정책은 한결같이 점점 백성을 해치고 학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백성은 기존 정치가 희망을 주는 선정善政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가 바뀌어 새로운 정책이 시행될 때에는 반드시 한층 더 나빠져서 가장 나쁜 지경으로 나아갔으므로, 백성이 바라는 바란 그저 고통이 비교적 적은 옛 시정 그대로 변혁하지 않는 것이었다. --- p.35

조선인이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도덕과 윤리의 형식을 중요시하여 자주 실질實質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사리를 따지고 논의하는 일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도덕의 형식주의는 유교의 특색으로서 4백여 년 동안 지속된 유교사상으로 교육을 받아 유교사상으로 사회를 통제해 온 조선인이 형식주의에 침윤된 것은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 p.43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면 자연스럽게 유유상종으로 당파를 만들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사회는 개인의 의견보다도 당파의 의견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래도 조선인과 같이 구태의연한 당파심을 끌어안고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펴지는 않는다. 가문, 계급, 신앙, 이익을 근간으로 손쉽게 튼튼한 당파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선인 이외에는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 p.49

일본이 건국한 이래 상무尙武의 나라였던 데에 비해, 조선은 상문尙文의 나라였다. ‘무武’의 폐해란 난폭함이고, ‘문文’의 폐해란 약함이라고 하겠다. 조선인의 특성 가운데 ‘문약’을 더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 p.54

심미관념의 결핍 또한 조선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꼽아야 할 것이다. 최근 조선이 일본 제국에 합병되자, 부자나 명문가들 가운데 관직에 의거하여 생계를 꾸려 갔던 이들이 점차 가문의 형세가 곤궁해지자 집안의 보물이나 가산을 파는 비루한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인 호사가 가운데에는 어쨌든 4백여 년이나 된 나라라면 예술품이나 골동품같이 값어치가 있는 물건들이 적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 양에서나 질에서나 볼 만한 것이 없다.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일본의 가장 큰 한 개 현縣이 소장한 것만도 못하다. 그나마 가장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은 중국의 것이다. --- p.58

조선의 정책 시행을 고찰해 보면, 모든 제도와 법령도 당초에는 모두 그 나름대로의 취지와 필요가 있었다. 또는 새롭게 백성의 복리를 늘리거나 종래의 폐단을 고쳐 국정을 이롭게 하는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어떠한 정책과 제도도 그것을 실시하게 되면 머지않아 갑자기 폐해가 일어나 당초의 취지를 몰각하고, 모든 방면에서 새로이 민폐를 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조선조는 이미 퇴폐하여 오로지 폐단만 더하게 되었고, 게다가 새로운 정책 역시 실패하여 민폐를 낳으니, 옥상가옥屋上架屋의 형국으로 조선 시대 만년의 참상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 p.65

조선인만큼 모든 일에 순종하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국가는 중국의 통제에 순종하여 복종했고, 상류 사대부들은 국왕의 권력에 복종했고, 중인과 상민은 계급제도에 순종하여 사대부의 압제에 복종했다. 백성들은 관청의 명령에 복종하여 얼어 죽고 굶어 죽지 않는 한 세금을 바치지 않는 일이 없었다.
--- p.81
 

출판사 리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이어령의 ‘한국인론’을 돌아본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1922)에서 조선인이 조선시대 형성한 허위, 나태, 이기심 등의 부정적인 민족성을 버리고, 고대로부터 유구한 관대함, 금욕, 예의와 같은 민족성을 지니도록 민족성을 개조하자고 했다.

이어령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72)에서 한국인의 상징인 흰옷을 통해 색채감의 결여를 지적하거나, 말과 글의 주어로 ‘나’와 ‘우리’를 혼동하는 현상을 통해 자아관념의 부재를, 한복의 평면성과 비기능성을 통해 허례허식을, 또 윷놀이를 통해 조선시대 당쟁을 읽어내고 비판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인』이라는 책에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담론이 다음과 같이 집약되어 있다.

“조선인의 대표적인 심성인 ‘사상의 고착성’과 ‘사상의 종속성’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인의 형식주의, 심미관념의 결핍, 문약함, 당파심 그리고 공사를 구분하지 못함과 같은 심성과 태도는, 앞으로 조선인이 근대적인 학문을 배우고 또 일본인의 통치를 통해서 개조해 갈 수 있다.”

이것은 민족(국민)성 담론을 고안해 낸 서구 제국의 눈이고, 또 한 세기 남짓한 예전에 일본인이 조선을 바라보던 눈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광수를 비롯한 1920년대 ‘조선’의 지식인들과 해방 후 이어령을 비롯한 한국 지식인들도 이러한 눈으로 민족개조론을 주장했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논했다.

경술국치 100주년에 읽는 내면화된 식민지 잔재의식의 원형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면서 형성된 한민족 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성찰해볼 수 있는 책,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동국대학교출판부)가 출간됐다.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는 1921년에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인』을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책이다. 『조선인』은 총독부 관리들이 일종의 대외비 식민통치지침서로서 숙독한 자료다.

『조선인』의 집필자인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경성제대 창립위원회 간사,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 혜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해방 후 일본에서 조선학회를 창립한 자로서 우리 어문학, 역사학, 철학, 종교학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 일본학자이다. 국내학계에서 그는 대표적인 ‘일제 어용학자의 표본’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대해 구축한 앎의 실상을 어떻게 체계화하였고, 그 체계를 바탕으로 통치대상인 조선인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드러낸다. 가히 일본이 조선인의 정형(stereotype)을 형성하고 확립한 논리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식민지를 겪으면서 우리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어떤 고정관념과 의식을 불편하게 건드린다.

경술국치 100년,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민족성론이며 문화론이라고 한다. 이 책은 조선인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다. 그 내용은 불편하고 불온하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화된 의식 속에서 아직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잔재를 씻어낼 수세미를 챙겨들게 하는 책이다.

별도로 간행 된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양장본]에는 다카하시 도루의 朝鮮人 원본(도쿄대 소장본)영인본과 저자 구인모의 학술적 주석과 해제 논문이 수록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