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본학 연구 (독서)/5.일본천황제

히로히토 : 신화의 뒤편

동방박사님 2022. 8. 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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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수한 훈장을 달고 있는 흑백 사진 속의 남자 위로 떠있는 붉은 이름이 상징하는 바, '일본에서 천황이 모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역사적 진실을 생매장시키고 전쟁 지향적인 군부의 희생양으로만 미화되었던 히로히토에 대해 에드워드 베르가 내미는 기소장. 『마지막 황제』의 작가인 그는 만주에서 자료를 수집하던 도중 히로히토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히틀러, 무솔리니와 더불어 세계제2차대전을 야기한 전범 가운데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일관하며 전쟁과는 무관한 생물학자로서 그 죄를 사면 받았던 제124대 일왕 히로히토. 에드워드 베르는 메이지유신, 다이쇼 시대, 히로히토의 침략으로 이어지는 3대 100년간에 감춰지고 은폐된 습습한 일본 과거사에 매스를 들이대며 과감한 어조를 시종일관 놓치지 않는다. 교활한 기회주의자로서의 히로히토의 본모습, 히로히토 승려 만들기, 한발 늦은 원폭 개발 등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침략사의 어두웠던 구석구석이 드러난다.

목차

역자의 말
감사의 말

서문

Chapter 1 열강의 대열로
Chapter 2 조슈와 사쓰마
Chapter 3 Moga(Modern Girl), Mobo(Modern Boy)
Chapter 4 만주 군벌, 장작림
Chapter 5 흑룡회, 벛꽃회
Chapter 6 꿈틀대는 군국주의
Chapter 7 아키히토의 탄생
Chapter 8 기근은 불만으로
Chapter 9 2 · 26 폭동
Chapter 10 가자! 만주로
Chapter 11 남경학살, 그리고 731부대
Chapter 12 야마모토 이소로쿠
Chapter 13 천황의 야욕
Chapter 14 어전회의
Chapter 15 매직
Chapter 16 수상, 도조 히데키
Chapter 17 진주만 기습
Chapter 18 그림자 없는 지휘관, 히로히토
Chapter 19 유닌 호오
Chapter 20 한발 늦은 원폭 개발
Chapter 21 길었던 하루, 8월 14일
Chapter 22 학의 목소리
Chapter 23 종전의 회오리
Chapter 24 맥아더의 월권
Chapter 25 빼앗긴 백마
Chapter 26 열리지 않는 황궁의 문

책을 마치면서

부록
1. 히로히토 천황의 종전 연설문
2. 일본의 역대 천황
3. 일본의 역대 수상
4. 대동아 전도
 

저자 소개 

저 : 에드워드 베르 (Edward Behr)
 
로이터통신 파리 특파원을 거쳐, 프랑스 수상 장 모네의 공보비서를 역임하였스며 파리, 베이루트, 델리에서『더 타임스』와『라이프』의 특파원으로 일했다. 1957년부터 1962년까지 알제리 전쟁을 취재했고,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알제리 문제』는 미국무성의 필독 도서가 되기도 하였다. 1962년『더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인도차이나(베트남) 전쟁을 취재했고, 그 후『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서 활약했다. 베...

역자 : 유경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을 나와 해태제과를 거쳐 한불종합금융에 근무하면서 기획이사, 투자금융본부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싱가포르에 있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너럴은행의 아시아 대양주지역본부에서 일하기도 하였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저술한 책『금융은 신음한다』는 갤브레이스 교수의『금융 환상의 역사』에 비견할 만한 훌륭한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와 경영대학원의 '화폐금융론 연습' 교재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책 속으로

전쟁을 선포한 입장에서 초기의 기습 공격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히로히토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며, 최고 사령관으로서 육군과 해군에 대해 승리를 축하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히로히토의 환희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12월 8일 진주만 공격에 대한 뉴스를 듣고 기도와 스기야마에게 "이 기쁜 소식은 선조들의 은총이다." 라고 말했던 것은 그날의 분위기를 감안해 봤을 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기도는 천황이 그낭 하루종일 황홀감에 취해 있어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2월 중순 기도가 히로히토에게 싱가포르의 함락을 축하하자 천황은 기분이 한층 고조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기도 씨, 예전에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 준비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승전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1942년 2월 10일 히로히토가 도조에게 가능한 평화협상안을 구상해 보라고 말했을 때의 진의는 연합군측의 부분적인 양보를 받아내자는 뜻이었다. 일본군의 승전으로 대단한 협상력이 생겼다고 예상한 히로히토는 도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협상은 물론 미국, 영국 그리고 동부 전선의 상황에 달려 있다. 남방에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히로히토가 생각했던 연합군의 실질적인 항복은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 들어서자 히로히토에게서 소박한 인간성은 자취를 감추는 듯 했다. 히로히토는 도조에게 전쟁은 가능한 빨리 끝내는 것이 좋은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 기간이 길어지면 인명 손실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군의 사기가 저하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조 같은 군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로 들렸지만, 냉혈한 같은 바람이기도 하였다.
--- p.364~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