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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늘도 나는 그림 속에서 인생을 만난다.”
참 곱게 늙은 인생의 멘토, 옛 그림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라는 생각으로, 한?중?일 삼국의 옛 그림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기』가 인생을 공부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가 되듯이, 사람살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옛 그림 또한 인생의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옛 그림은 속 깊은 멘토다.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 탱화, 불화, 우키요에 등 멘토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은이의 옛 그림 읽기는 내면을 직시하며 삶을 확장시키는 인문학적 그림 읽기다.
저자의 옛 그림 사용방식은 특이하다. 옛 그림을 이야기하되, 그 시대와 화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모란꽃을 보여주면서 모란꽃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모란꽃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6쪽) 감상 주체인 자기 삶을 통해서 옛 그림과 만난다. 그것도 사계절을 나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은 소소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독자는 옛 그림과 일상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옛 그림이 고리타분한 유물이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일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도 저자처럼 얼마든지 옛 그림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 수 있음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오랫동안 옛 그림의 권위에 주눅이 들었던 독자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림과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옛 그림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 옛 사람들이 자기네 삶에서 길어낸 ‘지혜의 경전(經典)’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살이의 발견으로, 옛 그림을 인생이라는 넓은 범주에서 다시 보기 시작한 셈이다.
참 곱게 늙은 인생의 멘토, 옛 그림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라는 생각으로, 한?중?일 삼국의 옛 그림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기』가 인생을 공부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가 되듯이, 사람살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옛 그림 또한 인생의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옛 그림은 속 깊은 멘토다.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 탱화, 불화, 우키요에 등 멘토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은이의 옛 그림 읽기는 내면을 직시하며 삶을 확장시키는 인문학적 그림 읽기다.
저자의 옛 그림 사용방식은 특이하다. 옛 그림을 이야기하되, 그 시대와 화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모란꽃을 보여주면서 모란꽃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모란꽃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6쪽) 감상 주체인 자기 삶을 통해서 옛 그림과 만난다. 그것도 사계절을 나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은 소소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독자는 옛 그림과 일상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옛 그림이 고리타분한 유물이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일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도 저자처럼 얼마든지 옛 그림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 수 있음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오랫동안 옛 그림의 권위에 주눅이 들었던 독자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림과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옛 그림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 옛 사람들이 자기네 삶에서 길어낸 ‘지혜의 경전(經典)’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살이의 발견으로, 옛 그림을 인생이라는 넓은 범주에서 다시 보기 시작한 셈이다.
목차
시작하는 말 |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
봄 기운생동 氣韻生動 | 가슴 뛰는 삶을 살자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 | 전기 「매화서옥도」, 조희룡 「홍매」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 히시다 소 「왕소군」, 강희언 「소군출새」
꽃에서 세상의 도리를 취하다 | 우타가와 히로시게 「다마가와 강둑의 벚꽃」, 남계우 「화접도」
그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 김홍도 「마상청앵」
어젯밤에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안견 「몽유도원도」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 김득신 「파적도」
여름 골법용필 骨法用筆 | '온리 원Only one'의 내공을 쌓자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기를 | 정선 「인왕제색도」 「시화환상간」
물 흐르듯이 사는 길 | 마원 「황하역류」 「세랑표표」
소망의 아이콘, 오리를 품다 | 홍세섭 「유압도」, 심사정 「연지유압」
죽비 같은 연꽃이 하는 말 | 신윤복 「청금상련」 「연당의 여인」
아우슈비츠보다 더한 지옥에서 | 작자 미상 「감로탱」 「시왕도-제4오관대왕」
포도알에 담긴 특별한 사랑 | 임춘 「포도 초충도」, 작자 미상 「나전 포도 옷함」
가을 응물상형 應物象形 | 세상과 함께 춤추자
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적 있는가 | 장승업 「미산리곡」
사막에서 만난 현장법사와 누란의 미녀 | 작자 미상 「현장삼장」, 누란의 미녀
상대를 알고 싶다면 배경을 보라 | 빈센트 반 고흐 「귀를 붕대로 감은 자화상」, 가쓰시카 호쿠사이 「붉은 후지산」
뜨거운 단풍나무 숲에서 불타는 세상을 보다 | 안중식 「풍림정거」 「도원문진」
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 | 혜허 「수월관음도」, 작자 미상 「수월관음도」 「아미타삼존」
행복해 보였는데 당신도 힘들었군요 | 이유신 「행정추상도」 「포동춘지」 「귤헌납량」 「가헌관매」
겨울 수류부채 隨類賦彩 | 나만의 색깔을 갖자
너만 화가냐, 나도 화가다 | 작자 미상 「맹호도」 「송하맹호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 | 장자오훠 「어머니의 희망」 「쓰레기 줍는 노인」
나도 누군가에게 한결같은 소나무가 될 수 있을까 | 김정희 「세한도」
당신께 드리고 싶은 새해 첫 선물 | 작자 미상 「십장생도 10곡병」 「백자문자도」
용이 여의주를 얻듯 비상하라 | 작자 미상 「운룡도」 「약리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 이인상 「병국」 「설송도」 「검선도」
다시 봄 경영위치 經營位置 | 삶의 구도를 그리자
봄은 겨울의 품에서 시작된다 | 곽희 「조춘도」
조연의 입장에서 참세상을 보다 | 심사정 「파교심매도」
무릉도원이 어디인지 궁금하세요 | 임득명 「등고상화」, 정선 「필운대상춘」, 원명유 「도원춘색」
묵자에게 영혼의 위로를 받다 | 광주미술인공동체 「공수부대만행1」, 에드바르 뭉크 「절규」
사랑하려거든 나비처럼 | 남계우 「화접」, 신명연 「백합도」
더불어 숲이 되기 위해 홀로 서라 | 최북 「호계삼소」, 윤두서 「자화상」
봄 기운생동 氣韻生動 | 가슴 뛰는 삶을 살자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 | 전기 「매화서옥도」, 조희룡 「홍매」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 히시다 소 「왕소군」, 강희언 「소군출새」
꽃에서 세상의 도리를 취하다 | 우타가와 히로시게 「다마가와 강둑의 벚꽃」, 남계우 「화접도」
그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 김홍도 「마상청앵」
어젯밤에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안견 「몽유도원도」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 김득신 「파적도」
여름 골법용필 骨法用筆 | '온리 원Only one'의 내공을 쌓자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기를 | 정선 「인왕제색도」 「시화환상간」
물 흐르듯이 사는 길 | 마원 「황하역류」 「세랑표표」
소망의 아이콘, 오리를 품다 | 홍세섭 「유압도」, 심사정 「연지유압」
죽비 같은 연꽃이 하는 말 | 신윤복 「청금상련」 「연당의 여인」
아우슈비츠보다 더한 지옥에서 | 작자 미상 「감로탱」 「시왕도-제4오관대왕」
포도알에 담긴 특별한 사랑 | 임춘 「포도 초충도」, 작자 미상 「나전 포도 옷함」
가을 응물상형 應物象形 | 세상과 함께 춤추자
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적 있는가 | 장승업 「미산리곡」
사막에서 만난 현장법사와 누란의 미녀 | 작자 미상 「현장삼장」, 누란의 미녀
상대를 알고 싶다면 배경을 보라 | 빈센트 반 고흐 「귀를 붕대로 감은 자화상」, 가쓰시카 호쿠사이 「붉은 후지산」
뜨거운 단풍나무 숲에서 불타는 세상을 보다 | 안중식 「풍림정거」 「도원문진」
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 | 혜허 「수월관음도」, 작자 미상 「수월관음도」 「아미타삼존」
행복해 보였는데 당신도 힘들었군요 | 이유신 「행정추상도」 「포동춘지」 「귤헌납량」 「가헌관매」
겨울 수류부채 隨類賦彩 | 나만의 색깔을 갖자
너만 화가냐, 나도 화가다 | 작자 미상 「맹호도」 「송하맹호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 | 장자오훠 「어머니의 희망」 「쓰레기 줍는 노인」
나도 누군가에게 한결같은 소나무가 될 수 있을까 | 김정희 「세한도」
당신께 드리고 싶은 새해 첫 선물 | 작자 미상 「십장생도 10곡병」 「백자문자도」
용이 여의주를 얻듯 비상하라 | 작자 미상 「운룡도」 「약리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 이인상 「병국」 「설송도」 「검선도」
다시 봄 경영위치 經營位置 | 삶의 구도를 그리자
봄은 겨울의 품에서 시작된다 | 곽희 「조춘도」
조연의 입장에서 참세상을 보다 | 심사정 「파교심매도」
무릉도원이 어디인지 궁금하세요 | 임득명 「등고상화」, 정선 「필운대상춘」, 원명유 「도원춘색」
묵자에게 영혼의 위로를 받다 | 광주미술인공동체 「공수부대만행1」, 에드바르 뭉크 「절규」
사랑하려거든 나비처럼 | 남계우 「화접」, 신명연 「백합도」
더불어 숲이 되기 위해 홀로 서라 | 최북 「호계삼소」, 윤두서 「자화상」
책 속으로
벚꽃은 어떤 경우에도 잔소리가 없다. 간섭이 없다. 민첩한 사람에게도, 굼뜬 사람에게도 그 행동을 탓하지 않고 함구한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사람은 벚꽃이 될 수 없지만 벚꽃의 인자함은 닮을 수 있다. 상대방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벚꽃에게 배워야 한다.---「꽃에서 세상의 도리를 취하다」
세월이 흘러 주름이 하나둘 늘어나게 되면 사랑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이 별거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풍류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까짓 것이 입에 거품 물고 따져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도 아닐 뿐더러 목숨을 걸만큼 절박한 사건은 더더욱 아니란 걸 알게 된다.---「죽비 같은 연꽃이 하는 말」
그래도 나는 아이를 낳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완벽한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는 자식밖에 없을 것이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자식을 기르다보면 나 아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다. 아이를 통해 모나고 날카롭던 반쪽자리 인격이 둥글둥글해지고 너그러워진다.---「포도알에 담긴 특별한 사랑」
나이 들어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게 되면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혹은 남편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고향 가는 길이다. 더 나이 들어 육신의 옷을 벗고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날까지 부부는 서로에게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고향이 된다.---「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적 있는가」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격식을 갖춘 행동 너머의 배경을 잘 살펴보라. 얼굴 표정과 손짓, 말투와 언어, 입고 있는 옷과 걸음걸이 등 모든 행동 속에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방식과 전 생애가 담겨 있다.---「상대를 알고 싶다면 배경을 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가 찾는 문제의 해답이 선배들의 작품 속에 전부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고리타분해서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선배들의 작품이 사실은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 다만 그것을 보는 눈이 없을 뿐이다.---「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
내가 누구를 안다는 것도 그렇다. 겉에 드러난 화려한 색에 취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내면 깊이 자리한 슬픔까지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진정한 앎이 아닐까. 항상 웃고 있어서 행복해보였는데 알고 보니 당신도 힘들었군요, 그렇게 위로할 수 있는 사이. 그런 관계를 우리는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행복해 보였는데 당신도 힘들었군요」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내가 몸담고 사는 이곳이 극락이고 천당이고 파라다이스고 유토피아다. 아무리 극락이 좋다한 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이라면 미래의 행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선은 내가 있는 이곳이 극락이 되어야 한다. 천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화가가 복숭아꽃이 핀 도원도를 그린 이유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 주름이 하나둘 늘어나게 되면 사랑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이 별거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풍류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까짓 것이 입에 거품 물고 따져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도 아닐 뿐더러 목숨을 걸만큼 절박한 사건은 더더욱 아니란 걸 알게 된다.---「죽비 같은 연꽃이 하는 말」
그래도 나는 아이를 낳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완벽한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는 자식밖에 없을 것이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자식을 기르다보면 나 아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다. 아이를 통해 모나고 날카롭던 반쪽자리 인격이 둥글둥글해지고 너그러워진다.---「포도알에 담긴 특별한 사랑」
나이 들어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게 되면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혹은 남편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고향 가는 길이다. 더 나이 들어 육신의 옷을 벗고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날까지 부부는 서로에게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고향이 된다.---「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적 있는가」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격식을 갖춘 행동 너머의 배경을 잘 살펴보라. 얼굴 표정과 손짓, 말투와 언어, 입고 있는 옷과 걸음걸이 등 모든 행동 속에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방식과 전 생애가 담겨 있다.---「상대를 알고 싶다면 배경을 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가 찾는 문제의 해답이 선배들의 작품 속에 전부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고리타분해서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선배들의 작품이 사실은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 다만 그것을 보는 눈이 없을 뿐이다.---「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 속에 있다」
내가 누구를 안다는 것도 그렇다. 겉에 드러난 화려한 색에 취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내면 깊이 자리한 슬픔까지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진정한 앎이 아닐까. 항상 웃고 있어서 행복해보였는데 알고 보니 당신도 힘들었군요, 그렇게 위로할 수 있는 사이. 그런 관계를 우리는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행복해 보였는데 당신도 힘들었군요」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내가 몸담고 사는 이곳이 극락이고 천당이고 파라다이스고 유토피아다. 아무리 극락이 좋다한 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이라면 미래의 행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선은 내가 있는 이곳이 극락이 되어야 한다. 천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화가가 복숭아꽃이 핀 도원도를 그린 이유일 것이다.
---「무릉도원이 어디인지 궁금하세요」
출판사 리뷰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
잘 사는 법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전하는 옛 그림 인문학
“오늘도 나는 그림 속에서 인생을 만난다.”(51쪽)
이 책은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라는 생각으로, 한ㆍ중ㆍ일 삼국의 옛 그림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기』가 인생을 공부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가 되듯이, 사람살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옛 그림 또한 인생의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옛 그림은 속 깊은 멘토다.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 탱화, 불화, 우키요에 등 멘토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은이의 옛 그림 읽기는 내면을 직시하며 삶을 확장시키는 인문학적 그림 읽기다. 그것도 ‘잘 사는 법’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밝혀주는.
일상에서 옛 그림으로, 옛 그림에서 일상으로
지은이의 옛 그림 사용방식은 특이하다. 옛 그림을 이야기하되, 그 시대와 화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모란꽃을 보여주면서 모란꽃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모란꽃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6쪽) 감상 주체인 자기 삶을 통해서 옛 그림과 만난다. 그것도 사계절을 나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은 소소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독자는 옛 그림과 일상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옛 그림이 고리타분한 유물이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과거의 그림이 현재의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박제된 형식이 아니라 현재 내 삶과도 얼마든지 동행할 수 있다는 생각”(13쪽)의 결실인 까닭이다. 이는 향유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지은이의 특별한 옛 그림 사용 전략에 힘입고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일상에 그림이 함께 있었다. 선비는 문인화를, 서민은 민화를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미술과 일상은 ‘분단’되었고, 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곳으로 유폐되었다. 찾아가지 않는 이상 실물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분단현실에서 미술은 전문가들만의 세계로 인식되었고,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미술을 대하기 시작했다. 한번 고착화된 분단 상황은 미술계 내부의 열성적인 ‘미술의 대중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통일’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런 미술과 일상의 분단 상황 허물기에 힘을 보탠다. 자신의 일상사를 소재로 옛 그림을 이야기한 것도, 부단히 대중적인 저술이나 강연에 매진하는 것도, 사람들이 옛 그림과 친해지는 가운데 삶의 질을 높이고, 옛 그림에 깃든 생활의 지혜와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옛 그림이 실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임을 꾸준히 전파해온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에피소드를 버무린 일련의 대중서로 지은이가 들려주고 싶어 한 이야기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사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독자도 지은이처럼 얼마든지 옛 그림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오랫동안 옛 그림의 권위에 주눅이 들었던 독자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림과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나의 개인사를 마중물삼아 독자들 또한 그림을 볼 때 자신만의 감정을 그림에 투사하고 찾아보는 감상방식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림이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와야 그림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애정이 생겨야 건성건성 보지 않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 되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법이다.”(6쪽)
참 곱게 늙은 인생의 멘토, 옛 그림
지은이의 옛 그림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 기초한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지은이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옛 그림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이 사람이었다. 옛 그림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 옛 사람들이 자기네 삶에서 길어낸 ‘지혜의 경전(經典)’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살이의 발견으로, 옛 그림을 인생이라는 넓은 범주에서 다시 보기 시작한 셈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작품보다 작가의 생애가 더 중심이 될 때가 많다. 한 사람의 생각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애 중심의 글쓰기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작품을 통해 가장 정직하게 반영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설령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작품을 제작했다 해도 그것조차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림을 단지 학술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써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삶을 산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던 그림이 갑자기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5쪽)
옛 사람도 시대는 다를지언정, 현재 우리와 동일 고민을 하며 살았다는 점에서 그들이 남긴 그림은 내밀한 삶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은이는 그림 속에서 먼저 산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찾아보고, 그들의 고민과 지혜에 공감하는 가운데 내면으로, 삶의 안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때 통찰해낸 것이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이다”라는 명제다. 사마천의 『사기』가 수많은 사람의 언행과 행적을 기록한 것이듯, 옛 그림도 각 작품이 화가의 삶이나 화가가 보고 겪은 당대의 사람살이를 조형적으로 기록한 것이란 점에서 서로 통한다. 지금까지 지은이의 저술 작업은 이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은이의 글은 “그림을 그린 화가의 얘기일 수도 있고, 그림 속의 주인공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사람 사는 문제에 대해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내용”(13쪽)이라 하겠다.
이 책의 전작 격인 『그림공부 사람공부』(2009, 앨리스)가 옛 그림의 조형적인 기법을 통해 그 속에 깃든 삶의 지혜를 번역해내고(‘그림공부’), 옛 화가들의 삶 속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면(‘사람공부’), 이번 책은 사계절의 변화 속에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지은이가 일상에서 자기답게 사는 법을 전한다. 그렇다면 왜 일상일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역사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한 번뿐인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함부로 살수 없어서다.”(7쪽) 그런 만큼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반짝이는 것 천지다. 지은이가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이유다. 산책, 미팅 자리, 여행, 명절, 병원, 영화 관람, 텔레비전 시청 등 누구나 공유하는 생활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다. 때로 이야기는 소소한 개인사를 넘어 실업문제, 출산 문제, 노인복지, 고독사(苦毒死), 수학능력시험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나답게 사는 길은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해서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임을 역설한다.
사계절을 나답게 사는 맞춤형 노하우
지은이는 자신의 인생 공부 노하우를 계절에 따라 다섯 가지로 정리해준다.
첫 번째는 봄-가슴 뛰는 삶을 살자.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 뛸 일이 적어진다. 다행히 설렘이 메마른 자리에 성찰의 시간이 찾아든다. 이 장에서는 가슴 두근거렸던 지나온 시간이나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돌아보고 굽어보며, 자가 충전의 필요성을 곱씹게 한다.
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지은이는 『논어』의 첫장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구절[“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는 기쁨’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은 공감의 차원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표현한 작품이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라며, 그림을 힘껏 껴안는다. 이야기는 다시 매화에 대한 ‘러브스토리’로 확장되어 두 폭의 매화가 용트림하는 듯한, 우봉 조희룡의 「홍매」(대련)로 나아간다. 그리고 “젊은 시절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알고 난 후 나이 들어 벗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굳이 명예가 없어도 노여워할 이유가 없다. 혼자 있을 때의 충만함 위로 마음을 나눌 친구까지 왔는데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한들 무예 그리 서운하겠는가. 그만하면 됐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28쪽)고 말한다.
산책에서 만난 수양버들에서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을 떠올린 지은이는 그러나 마냥 기분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출근한 대낮에 수양버들을 보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실직의 아픔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상청앵」 속의 선비도 혹시나 삭탈관직되어 낙향하는 중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가닿는다. 지은이는 두근거리는 삶을 잃어버린, 우리시대의 남자들을 조용히 응원한다.
그런가 하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는 꿈의 의미를 묻는다. 꿈은 소중하되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꿈’인지, ‘나를 무너뜨리는 꿈’인지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것이지만 계유정란으로 인해 그림과 관련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안견을 비롯한 몇몇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살아남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을 무너뜨렸다.
지은이가 「파적도」에서는 부부간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것도 잔잔하지만 가슴 뛰는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여름-‘온리 원’의 내공을 쌓자. ‘진경산수화’로 일가를 이룬 겸재 정선과 ‘진경시’로 일가를 이룬 사천 이병연.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그것으로 서로에게 힘이 된 ‘절친’이었다. 겸재는 말년 작품인 「인왕제색도」에 병든 친구의 쾌유를 비는 마음을 담았다. 평생의 쌓은 내공으로 치유의 기운을 그림에 쟁여 넣은 산삼 같은 작품이 이 그림인 것이다. 두 마리의 오리가 헤엄치고 있는 「유압도」는 어떤가. 암수 서로 다정한 오리의 모습에서, ‘장원급제’라는 상징성과 오늘날의 수학능력시험을 짚어주고, 화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한 경이로운 생명에 대한 찬탄에 감동한다. 불교의 ‘탱화’에서는 지옥도에 주목하며, 지옥도에 심판자와 형벌을 받는 자 외에 지장보살을 그려 넣은 이유를 찾아주고, 임춘의 내공이 담긴 「포도초충도」에서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한 자손번창을 각각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가을-세상과 함께 춤추자. 대인관계, 부부관계 사회적인 관계처럼 삶은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완성을 향해간다. 추석을 앞두고 소개한, 오원 장승업의 「미산리곡」에서는 고향 생각을 펼치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고향 같은 부부애를 통찰한다. “나이 들어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게 되면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된다.”(125쪽) 작자 미상의 「현장삼장」에서는 여행의 신기루가 가르쳐주는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호쿠사이의 「붉은 후지산」에서는 한생애가 압축된 ‘배경’의 중요성을, 안중식이 봄을 그린 「도원문진」과 가을을 그린 「풍림정거〉에서는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인생의 깊이를, 또 일명 ‘물방울관음’으로 통하는 걸작 「수월관음도」에서는 전통의 중요성을 각각 읽어낸다.
네 번째는 겨울-나만의 색깔을 갖자. 사람들은 대중문화와 SNS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행에 민감하다. 비슷한 제품과 스타일로 자신을 치장한다. 존중받아야 할 개성이나 취향 따위는 뒷전이 된다. 같은 유행을 즐기는 무리 속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누린다. 지은이는 이런 삶에 제동을 걸며, 각자 자기 삶의 주연으로서 남을 따라하기보다 주체성 있게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추사 김정희의「세한도」에서, 제자 이상적이 누가 뭐라고 하든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제주도로 유배 간 스승을 대하는 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서로운 동물의 천국인 「십장생」에서는 우리 모두가 왕이나 대통령처럼 귀하고 소중한 사람임을 일깨워주고, ‘용’과 ‘잉어’ 그림에서는 여의주 같은 영묘한 삶의 ‘비밀병기’가 있는지를 묻는다.
다섯 번째는 다시 봄-삶의 구도를 그리자. 어떤 사안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결과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삶에서도 ‘전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곽희의 「조춘도」에서는 그림 전체의 조화를 파악한 뒤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까닭을 묻고, 사계절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며 ‘시작은 어려울수록 좋다’고 말한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에서는 한겨울에 매화를 찾아 나선 선비에 감동하기보다 선비를 시중드는 아이에 주목하며 그 아이의 고통을 헤아린다. 여러 화가의 무릉도원 관련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임을 간파해내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며 남보다 자신에게 가장 엄격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 다섯 가지를 지은이는 동양화의 제작원리와 접목시킨다. 사혁이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주장한 ‘육법(畵六法)’이 그것. 기운생동(氣韻生動: 정신적인 기운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봄, 골법용필(骨法用筆: 붓을 쓰는데 오랫동안 수련하고 단련한 능력)-여름, 응물상형(應物象形: 물체에 따라 형상을 부여하는 것)-가을, 수류부채(隨類賦彩: 대상에 의거하여 채색하는 것)-겨울, 경영위치(經營位置: 구도)-다시 봄이 그것인데, 육법의 마지막인 전이모사(傳移模寫: 본떠서 그림)는, 『사기』를 본떠서 집필한 이 책 자체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고색창연한 동양화론도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삶의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덤으로 알려준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옛 그림 한 점의 지혜
지은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에피소드로 옛 그림의 지혜를 찾아내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사람들은 곧장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며 자기 삶을 폄하하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빛나 보이는 타인의 인생도 자기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남과 비교하는 데서 열패감을 맛보기보다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하루하루를 값지게 경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 강렬한 희열을 담고”(10쪽) 산다. 삶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자신이다. 자기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남처럼 살기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지은이가 그랬다. 뜻밖의 뇌종양 진단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조차 생의 의미를 묻고 글을 썼다. 이인상의 「병든 국화」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기 직전의 자신을 보고는, 병든 국화와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봄이면 국화가 살아나듯이 자신도 살아날 것임을 믿으며, 뇌종양조차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행복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부에 있다. 행복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때, 외부적인 조건은 행복해지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직위에 있든, 어떤 집에 살든,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든 전혀 상관이 없다.”(270쪽)
이 책에 등장하는 옛 그림들은 두 겹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화가나 작품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에다가, 지은이의 사적인 이야기를 새로 부여받았다. 이제 그림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은이의 생각이다. 객관적인 정보는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은이의 체취가 담긴 이야기는 거기서 찾을 수 없다. 독자는 지은이의 안목과 가슴을 통과해서, 지은이가 그림으로 “날마다 추락하는 삶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확인”(13쪽)하며, 옛 그림을 음미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해당 작가와 작품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지은이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즉 그림 이야기 너머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인생은 정답을 안다면 조금 쉬워질지도 모른다.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렵고, 그래서 더욱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위대한 영혼들한테, “어느 누구의 삶도 아닌 오직 나만의 삶을”(이상 인용은 148쪽) 살기 위해 개인교습을 받는 일이다. 그림과 독대를 해서, 보고 귀 기울이는 가운데 내면에서 차오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현재 위치한 그 상태 자체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그래야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유다.”(270쪽)
우리가 옛 그림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잘 사는 법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전하는 옛 그림 인문학
“오늘도 나는 그림 속에서 인생을 만난다.”(51쪽)
이 책은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다!’라는 생각으로, 한ㆍ중ㆍ일 삼국의 옛 그림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기』가 인생을 공부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가 되듯이, 사람살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옛 그림 또한 인생의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옛 그림은 속 깊은 멘토다.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 탱화, 불화, 우키요에 등 멘토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은이의 옛 그림 읽기는 내면을 직시하며 삶을 확장시키는 인문학적 그림 읽기다. 그것도 ‘잘 사는 법’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밝혀주는.
일상에서 옛 그림으로, 옛 그림에서 일상으로
지은이의 옛 그림 사용방식은 특이하다. 옛 그림을 이야기하되, 그 시대와 화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모란꽃을 보여주면서 모란꽃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모란꽃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6쪽) 감상 주체인 자기 삶을 통해서 옛 그림과 만난다. 그것도 사계절을 나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은 소소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독자는 옛 그림과 일상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옛 그림이 고리타분한 유물이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과거의 그림이 현재의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박제된 형식이 아니라 현재 내 삶과도 얼마든지 동행할 수 있다는 생각”(13쪽)의 결실인 까닭이다. 이는 향유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지은이의 특별한 옛 그림 사용 전략에 힘입고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일상에 그림이 함께 있었다. 선비는 문인화를, 서민은 민화를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미술과 일상은 ‘분단’되었고, 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곳으로 유폐되었다. 찾아가지 않는 이상 실물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분단현실에서 미술은 전문가들만의 세계로 인식되었고,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미술을 대하기 시작했다. 한번 고착화된 분단 상황은 미술계 내부의 열성적인 ‘미술의 대중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통일’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런 미술과 일상의 분단 상황 허물기에 힘을 보탠다. 자신의 일상사를 소재로 옛 그림을 이야기한 것도, 부단히 대중적인 저술이나 강연에 매진하는 것도, 사람들이 옛 그림과 친해지는 가운데 삶의 질을 높이고, 옛 그림에 깃든 생활의 지혜와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옛 그림이 실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임을 꾸준히 전파해온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에피소드를 버무린 일련의 대중서로 지은이가 들려주고 싶어 한 이야기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사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독자도 지은이처럼 얼마든지 옛 그림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오랫동안 옛 그림의 권위에 주눅이 들었던 독자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림과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나의 개인사를 마중물삼아 독자들 또한 그림을 볼 때 자신만의 감정을 그림에 투사하고 찾아보는 감상방식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림이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와야 그림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애정이 생겨야 건성건성 보지 않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 되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법이다.”(6쪽)
참 곱게 늙은 인생의 멘토, 옛 그림
지은이의 옛 그림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 기초한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지은이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옛 그림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이 사람이었다. 옛 그림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 옛 사람들이 자기네 삶에서 길어낸 ‘지혜의 경전(經典)’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살이의 발견으로, 옛 그림을 인생이라는 넓은 범주에서 다시 보기 시작한 셈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작품보다 작가의 생애가 더 중심이 될 때가 많다. 한 사람의 생각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애 중심의 글쓰기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작품을 통해 가장 정직하게 반영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설령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작품을 제작했다 해도 그것조차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림을 단지 학술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써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삶을 산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던 그림이 갑자기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5쪽)
옛 사람도 시대는 다를지언정, 현재 우리와 동일 고민을 하며 살았다는 점에서 그들이 남긴 그림은 내밀한 삶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은이는 그림 속에서 먼저 산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찾아보고, 그들의 고민과 지혜에 공감하는 가운데 내면으로, 삶의 안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때 통찰해낸 것이 “옛 그림은 사마천의 『사기』이다”라는 명제다. 사마천의 『사기』가 수많은 사람의 언행과 행적을 기록한 것이듯, 옛 그림도 각 작품이 화가의 삶이나 화가가 보고 겪은 당대의 사람살이를 조형적으로 기록한 것이란 점에서 서로 통한다. 지금까지 지은이의 저술 작업은 이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은이의 글은 “그림을 그린 화가의 얘기일 수도 있고, 그림 속의 주인공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사람 사는 문제에 대해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내용”(13쪽)이라 하겠다.
이 책의 전작 격인 『그림공부 사람공부』(2009, 앨리스)가 옛 그림의 조형적인 기법을 통해 그 속에 깃든 삶의 지혜를 번역해내고(‘그림공부’), 옛 화가들의 삶 속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면(‘사람공부’), 이번 책은 사계절의 변화 속에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지은이가 일상에서 자기답게 사는 법을 전한다. 그렇다면 왜 일상일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역사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한 번뿐인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함부로 살수 없어서다.”(7쪽) 그런 만큼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반짝이는 것 천지다. 지은이가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이유다. 산책, 미팅 자리, 여행, 명절, 병원, 영화 관람, 텔레비전 시청 등 누구나 공유하는 생활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다. 때로 이야기는 소소한 개인사를 넘어 실업문제, 출산 문제, 노인복지, 고독사(苦毒死), 수학능력시험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나답게 사는 길은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해서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임을 역설한다.
사계절을 나답게 사는 맞춤형 노하우
지은이는 자신의 인생 공부 노하우를 계절에 따라 다섯 가지로 정리해준다.
첫 번째는 봄-가슴 뛰는 삶을 살자.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 뛸 일이 적어진다. 다행히 설렘이 메마른 자리에 성찰의 시간이 찾아든다. 이 장에서는 가슴 두근거렸던 지나온 시간이나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돌아보고 굽어보며, 자가 충전의 필요성을 곱씹게 한다.
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지은이는 『논어』의 첫장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구절[“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는 기쁨’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은 공감의 차원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표현한 작품이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라며, 그림을 힘껏 껴안는다. 이야기는 다시 매화에 대한 ‘러브스토리’로 확장되어 두 폭의 매화가 용트림하는 듯한, 우봉 조희룡의 「홍매」(대련)로 나아간다. 그리고 “젊은 시절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알고 난 후 나이 들어 벗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굳이 명예가 없어도 노여워할 이유가 없다. 혼자 있을 때의 충만함 위로 마음을 나눌 친구까지 왔는데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한들 무예 그리 서운하겠는가. 그만하면 됐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28쪽)고 말한다.
산책에서 만난 수양버들에서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을 떠올린 지은이는 그러나 마냥 기분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출근한 대낮에 수양버들을 보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실직의 아픔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상청앵」 속의 선비도 혹시나 삭탈관직되어 낙향하는 중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가닿는다. 지은이는 두근거리는 삶을 잃어버린, 우리시대의 남자들을 조용히 응원한다.
그런가 하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는 꿈의 의미를 묻는다. 꿈은 소중하되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꿈’인지, ‘나를 무너뜨리는 꿈’인지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것이지만 계유정란으로 인해 그림과 관련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안견을 비롯한 몇몇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살아남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을 무너뜨렸다.
지은이가 「파적도」에서는 부부간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것도 잔잔하지만 가슴 뛰는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여름-‘온리 원’의 내공을 쌓자. ‘진경산수화’로 일가를 이룬 겸재 정선과 ‘진경시’로 일가를 이룬 사천 이병연.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그것으로 서로에게 힘이 된 ‘절친’이었다. 겸재는 말년 작품인 「인왕제색도」에 병든 친구의 쾌유를 비는 마음을 담았다. 평생의 쌓은 내공으로 치유의 기운을 그림에 쟁여 넣은 산삼 같은 작품이 이 그림인 것이다. 두 마리의 오리가 헤엄치고 있는 「유압도」는 어떤가. 암수 서로 다정한 오리의 모습에서, ‘장원급제’라는 상징성과 오늘날의 수학능력시험을 짚어주고, 화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한 경이로운 생명에 대한 찬탄에 감동한다. 불교의 ‘탱화’에서는 지옥도에 주목하며, 지옥도에 심판자와 형벌을 받는 자 외에 지장보살을 그려 넣은 이유를 찾아주고, 임춘의 내공이 담긴 「포도초충도」에서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한 자손번창을 각각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가을-세상과 함께 춤추자. 대인관계, 부부관계 사회적인 관계처럼 삶은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완성을 향해간다. 추석을 앞두고 소개한, 오원 장승업의 「미산리곡」에서는 고향 생각을 펼치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고향 같은 부부애를 통찰한다. “나이 들어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게 되면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된다.”(125쪽) 작자 미상의 「현장삼장」에서는 여행의 신기루가 가르쳐주는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호쿠사이의 「붉은 후지산」에서는 한생애가 압축된 ‘배경’의 중요성을, 안중식이 봄을 그린 「도원문진」과 가을을 그린 「풍림정거〉에서는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인생의 깊이를, 또 일명 ‘물방울관음’으로 통하는 걸작 「수월관음도」에서는 전통의 중요성을 각각 읽어낸다.
네 번째는 겨울-나만의 색깔을 갖자. 사람들은 대중문화와 SNS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행에 민감하다. 비슷한 제품과 스타일로 자신을 치장한다. 존중받아야 할 개성이나 취향 따위는 뒷전이 된다. 같은 유행을 즐기는 무리 속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누린다. 지은이는 이런 삶에 제동을 걸며, 각자 자기 삶의 주연으로서 남을 따라하기보다 주체성 있게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추사 김정희의「세한도」에서, 제자 이상적이 누가 뭐라고 하든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제주도로 유배 간 스승을 대하는 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서로운 동물의 천국인 「십장생」에서는 우리 모두가 왕이나 대통령처럼 귀하고 소중한 사람임을 일깨워주고, ‘용’과 ‘잉어’ 그림에서는 여의주 같은 영묘한 삶의 ‘비밀병기’가 있는지를 묻는다.
다섯 번째는 다시 봄-삶의 구도를 그리자. 어떤 사안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결과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삶에서도 ‘전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곽희의 「조춘도」에서는 그림 전체의 조화를 파악한 뒤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까닭을 묻고, 사계절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며 ‘시작은 어려울수록 좋다’고 말한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에서는 한겨울에 매화를 찾아 나선 선비에 감동하기보다 선비를 시중드는 아이에 주목하며 그 아이의 고통을 헤아린다. 여러 화가의 무릉도원 관련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임을 간파해내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며 남보다 자신에게 가장 엄격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 다섯 가지를 지은이는 동양화의 제작원리와 접목시킨다. 사혁이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주장한 ‘육법(畵六法)’이 그것. 기운생동(氣韻生動: 정신적인 기운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봄, 골법용필(骨法用筆: 붓을 쓰는데 오랫동안 수련하고 단련한 능력)-여름, 응물상형(應物象形: 물체에 따라 형상을 부여하는 것)-가을, 수류부채(隨類賦彩: 대상에 의거하여 채색하는 것)-겨울, 경영위치(經營位置: 구도)-다시 봄이 그것인데, 육법의 마지막인 전이모사(傳移模寫: 본떠서 그림)는, 『사기』를 본떠서 집필한 이 책 자체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고색창연한 동양화론도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삶의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덤으로 알려준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옛 그림 한 점의 지혜
지은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에피소드로 옛 그림의 지혜를 찾아내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사람들은 곧장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며 자기 삶을 폄하하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빛나 보이는 타인의 인생도 자기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남과 비교하는 데서 열패감을 맛보기보다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하루하루를 값지게 경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 강렬한 희열을 담고”(10쪽) 산다. 삶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자신이다. 자기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남처럼 살기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지은이가 그랬다. 뜻밖의 뇌종양 진단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조차 생의 의미를 묻고 글을 썼다. 이인상의 「병든 국화」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기 직전의 자신을 보고는, 병든 국화와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봄이면 국화가 살아나듯이 자신도 살아날 것임을 믿으며, 뇌종양조차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행복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부에 있다. 행복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때, 외부적인 조건은 행복해지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직위에 있든, 어떤 집에 살든,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든 전혀 상관이 없다.”(270쪽)
이 책에 등장하는 옛 그림들은 두 겹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화가나 작품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에다가, 지은이의 사적인 이야기를 새로 부여받았다. 이제 그림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은이의 생각이다. 객관적인 정보는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은이의 체취가 담긴 이야기는 거기서 찾을 수 없다. 독자는 지은이의 안목과 가슴을 통과해서, 지은이가 그림으로 “날마다 추락하는 삶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확인”(13쪽)하며, 옛 그림을 음미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해당 작가와 작품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지은이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즉 그림 이야기 너머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인생은 정답을 안다면 조금 쉬워질지도 모른다.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렵고, 그래서 더욱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위대한 영혼들한테, “어느 누구의 삶도 아닌 오직 나만의 삶을”(이상 인용은 148쪽) 살기 위해 개인교습을 받는 일이다. 그림과 독대를 해서, 보고 귀 기울이는 가운데 내면에서 차오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현재 위치한 그 상태 자체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그래야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유다.”(270쪽)
우리가 옛 그림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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