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미술의 이해 (독서)/3.서양미술사

카파도키아 미술 (2023) - 비잔티움 천 년의 기억

동방박사님 2024. 2. 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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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술사학의 미개척지 카파도키아 현장 연구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문화예술의 증거이자
비잔티움 교회와 교리에 대한 시각적 응답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 시기의 카파도키아에서 전개된 예술의 면모를 조명한다. 카파도키아 교회의 회화를 초기 발달단계, 성화상 논쟁과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위기의 시대,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문화 접변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시기별 주요 도상(圖像)의 기원과 의미, 역할을 살폈다. 특히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대상으로, 각 도상의 해석, 조형적 요소의 기원과 의미, 그 변화 양상, 교회 내부 장식에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상황과의 관계와 의미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설명했다. 또한 이슬람과의 문화 접변으로서 어떻게 비잔티움 미술이 변용 혹은 재창조되는가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마지막 장에서 다루었다.

이 책의 저자 조수정 교수는 석사와 DEA, 박사 논문 모두 이 지역의 회화를 주제로 삼았으며 현재도 이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을 정도로 국내 카파도키아 연구의 권위자이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재학하던 시절 카파도키아 비잔티움 교회 연구팀의 일원으로서 여러 차례의 현지 조사와 학술 활동에 참여했다. 이 책은 현재까지 알려진 이 지역의 중요한 교회를 대상으로 하며,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도 저자의 개인 연구로 보충했다. 또 2000년도부터 카파도키아 지방 답사 결과를 토대로 비잔티움 교회의 목록을 부록으로 첨부했다. 국내에서는 카파도키아가 여전히 미술사학의 미개척지임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보기 드문 주제에 귀한 현장 연구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카파도키아

1. 카파도키아의 지리적 상황
2. 카파도키아 약사(略史)

제2장 초기 카파도키아 미술

1. 십자가 도상의 발달
2. 성 에우스타키우스의 환시

제3장 성화상 논쟁 이후의 카파도키아 미술

1.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2. 〈마예스타스 도미니〉
3. 〈데이시스〉
4. 〈아나스타시스〉

제4장 위기의 카파도키아

1. 11세기 후반의 상황
2. 이을란르 킬리세: 괴레메 28번 성당
3. 카파도키아의 성인 도상

제5장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문화 접변: 13세기의 카파도키아 미술

1. 그리스도교 전통의 수호
2. 타틀라른의 새로운 도상: 달덩어리 얼굴
3. 교회 벽화에 그려진 악마: 카르슈 킬리세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성당 목록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조수정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하였고,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 대학, 스트라스부르 제2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파리 제1대학에서는 졸리베 레비(C. Jolivet-Levy) 교수의 지도로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 벽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비잔티움 고고미술사연구소와 프랑스 학술원 산하의 비잔티움 도서관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와...

책 속으로

초기 비잔티움 미술은 로마제국의 처형 도구인 십자가의 부정적 의미를 극복하고 그리스도교 이전의 상징을 받아들임으로써 십자가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십자가는 형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주의 끝과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을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보편성과 우주적 성격을 강조하는 호교론적 목적에 일치하는 상징이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과거의 사건에 관한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그리스도인에게 벌어지는 영적 현실을 나타내며, 또한 구원의 최종적 완성을 위해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라는 종말론적이고 다중적인 상징이 되었다.
--- p.54~55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는 카파도키아의 수도자들은 사람의 형상 대신 식물이나 동물 문양, 기하학적이거나 장식적인 문양, 그리고 대표적으로 십자가라는 추상적 상징을 통해 비잔티움 교회미술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는 종교적 성찰을 떠나, 시각 이미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에 결부된 문제로서, 인간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미지의 창조, 즉 회화적 표현이 인간 존재 조건의 근본 요소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느 종교도 이미지나 상징, 특히 시각적 상징 없이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지에 가장 적대적인 이슬람조차도 무한히 반복되는 아라베스크 양식을 통해 신의 영원성과 초월성을 말없이 전달한다.
--- p.87

서방에서는 〈마예스타스 도미니〉가 하느님 아버지, 성부를 표현한 것으로 종종 해석된다. 그러나 카파도키아의 〈마예스타스 도미니〉는 예수 그리스도, 성자의 이미지이다. 비잔티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부는 비가시적 존재로 어떤 이미지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성자는 육화(肉化)된 존재로 지상에서의 삶을 살았으며, 따라서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이미지는 불가해하고 초월적인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 p.126

〈데이시스〉는 특정인을 위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기도나 간청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론에 집중된 도상이다. 데이시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세례, 수난과 부활처럼 구체적 사건을 보여주는 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에 위치시킴으로써, 인류 구원사에서 성자의 위치를 보여주려는 교회의 오랜 노력이 반영된 신학적 성찰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 p.140

비잔티움의 〈아나스타시스〉는 그리스도가 무덤에 묻힌 이후 부활하기 전까지의 삼일이라는 기간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 즉 저승으로 내려가 아담과 하와를 죽음의 세계로부터 끌어내는 그림이다. 서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부활 도상은 관으로부터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비잔티움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형태, 즉 〈빈 무덤의 발견〉과 〈아나스타시스〉 도상으로 시각화되었다.
--- p.161

튀르크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 카파도키아의 화가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전통적 모델을 모방하려고 애쓰거나 당대의 지역적 유행에 따른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카파도키아가 비잔티움 미술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는데, 비잔티움의 주요 도시에서 교육받은 재능 있는 그리스 화가들이 카파도키아 지역에 당도하여 세련된 화풍과 새로운 도상학적 요소를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카파도키아 미술에는 다양한 도상학적 요소들이 추가되었고 기존의 요소들과 융합되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p.245

출판사 리뷰

비잔티움 교회미술의 보고, 카파도키아 미술
비잔티움 제국에서 마케도니아 왕조기-이슬람 지배기의 변천 살펴


카파도키아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교회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4세기경에는 카이사레아의 성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성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저명한 교부(敎父)들이 활동했던 곳으로서 그리스도교 성지로 이름이 높았던 지방이다. 이렇게 많은 은수자들이 모여들어 수도원 밀집 지역을 이루었기에 카파도키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하게 교회미술이 전개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바위산을 깎아 만든 암혈 건물이라는 건축적 특성과 대도시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외딴곳에 세워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후대의 파괴를 모면할 수 있었고, 상당히 많은 수의 교회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또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혈 교회라는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내부를 그림으로 장식한 교회는 300개가 넘으며, 장식이 없는 단순한 교회를 합하면 교회의 수는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기 카파도키아의 역사는 미술 양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비잔티움 제국 초기부터 성화상 논쟁까지의 시기로, 특히 7세기 초반부터 9세기 중반까지는 ‘변모의 시기’ 혹은 ‘암흑기’로 불린다. 이 시기는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뿐 아니라 성상파괴주의의 여파로 건축과 회화 등 예술 분야에서 일대 침체기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성화상 논쟁 시기를 대변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남아 있어 당대 성상파괴주의가 교회와 예술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마케도니아 왕조 시기로 당대 사람들은 이를 ‘제2의 헬레니즘’으로 생각했을 정로도 번영을 누리던 때였다. 종교예술 활동은 절정에 달했는데, 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새로 지어지거나 보수되었고, 다수의 예술품이 제작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의 암혈 교회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된 시기로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튀르크 정복과 카파도키아의 문화 재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13세기 동안의 기간이다. 비잔티움의 세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1082년 카이사레아가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은 카파도키아는 이후 룸 이슬람 왕조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니케아 왕조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비잔티움 제국의 생활상과 종교상이 반영된 카파도키아 미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문화 접변은 유례없는 문화유산 남겨


카파도키아의 프레스코화는 문헌 사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단순히 교회 내부 장식의 기능을 넘어서 건물의 용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후원자의 역할이나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상황, 카파도키아 지역민의 종교심과 생활상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파도키아에서 초기 비잔티움 시기부터 유행했던 도상인 십자가는 당대의 성 십자가 경배 신심과 풍습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건축되었던 성당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성화상 논쟁 시기에는 교회 내부 장식을 위해 양식화된 덩굴 문양 등으로 채워진 바탕 위에 커다란 십자가를 그려 넣는 경우가 많으며, 고전적 모티프인 풍요의 뿔, 포도나무, 석류, 아칸서스, 월계수, 공작 깃털을 장식적으로 변형한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십자가의 형상을 빌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다. 당시에 건축된 성당들은 모두 작은 규모이며 내부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으로만 장식되어 있어 정치적 혼란이 몰고 온 경제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로 불리는 9~10세기에 카파도키아 미술은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때 매우 많은 교회가 건립되었고 그 내부도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 시기는 비잔티움 문화예술의 절정기로 알려졌지만 이를 보여주는 자료는 매우 빈약했다. 그런데 카파도키아에는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이러한 자료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십자가 도상은 10세기 이후 점차 감소했고, 교회 내부를 십자가로 장식하던 비표상적 문양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바뀌어 수많은 작품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특히 마케도니아 왕조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에 힘입어 제국의 변경이었던 카파도키아는 종교적 위상뿐 아니라 군사적·정치적 중요성도 높아지게 되면서 카파도키아 미술은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와 성인들은 물론, 당대의 황제와 군인의 초상까지 그리게 되어, 주제 면에서 매우 풍요로워졌다.

카파도키아에서는 11세기 중반까지 매우 많은 성당이 세워졌는데, 수도원 성당이나 개인용 성당이 주를 이루었고, 후원자는 대부분 비잔티움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평신도들이었다. 후원자의 초상이 카파도키아 지역의 성당 곳곳에 남아 있는데, 때로는 그들의 이름이나 관직 등 부가 사항도 적혀 있어 당대 카파도키아 지역의 생활상과 그리스도교 신심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당 내부장식은 후원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회화처럼 정교한 신학 체계를 반영하는 도상 체계를 도입하기도 하고, 십자가나 후원자의 초상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도상체계를 따르기도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12세기에 이슬람 세력권으로 편입된 카파도키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 그리스도교 도상이 큰 변화를 겪었다. 이슬람권 정치체제로의 편입이라는 사회의 전 분야에 걸친 근본적인 변모에 따라 이 시기의 예술은 카파도키아 지방 전통, 튀르크 문화, 비잔티움을 계승한 니케아 제국의 영향이 복합된 일종의 문화 접변 현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하여 새롭게 탄생한 카파도키아의 미술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셀주크 튀르크에 점령된 12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도상을 지우고 비표상적 문양으로 대체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비잔티움 전사인 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테오도루스의 그림에서는 갑옷 위에 걸쳐 입은 망토에 술프린지 장식이 덧붙여져 있고, 말갖춤이 아랍 문자로 꾸며져 있어 당시 점증하던 튀르크 문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또한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이후에는 이슬람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는 상황을 반영하듯, 이슬람 문자를 모방한 장식적 모티프가 성당 내부 장식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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