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1.한국사찰기행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2024-04-18)

동방박사님 2024. 4. 19. 18:38
728x90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왕사.국사제도는 신라때 국통(國統) 이라는 제도와 그 맥을 같이한다. 불교 법계를 정비하고 영향력있는 승려를 대우해 신앙적 믿음과 정치적 이념을  결부시켜 안녕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운영하고자 했다. 백성의 덕망을 얻은 고승을 총해 믿음을 돌보고 결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 제도는 고려 태조를 거쳐 광종대에 이르러 보다 정교하고 체게적으로 정립된다. 덕망이 높은 고승을 추대하여 국왕이 예를 갖춰 모셨다. 불교가 국교로서 많은 사람의 신앙으로 청착되어 있었으므로  님중이 정치에 참여 못하는 대신, 그들을 도덕으로 교화할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인 고승을 국사로 책봉함으로써나라의 안녕과 안정을 도모하였다.

왕사와 국사의 역할에는 그 기능에서 차이가 있다. 고려전기 왕사는 국왕을 대신해 불교계를 통합학여 승과(僧科) 승정(僧政)에 관여하였고,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국왕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였다. 반면 국사는 불교계의 지도자로서 상징성을 가질 분 구체적인 활동이 없었다.

왕사와 국사는 말년에 국가에 청하여 하산소를 지정받을 수 있었다. 하산소의 지정은 왕사.국사에 대한 우대임과 동시에 경제적지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문경 봉암사, 여주 고달서원. 원주 거돈사와 법천사, 여주 부석사, 개풍 귀법사, 청도 운문사, 군위 인각사, 대구 동화사, 보은 법주사, 영광 불갑사, 양주 회암사 등 많은 절들이 하산소에 속한다. 오아사와 국사제도는 고려 초부터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명맥이 윶되었으나 고려말 불교가 정치권력에 휘들리며 왕사.국사의 기능은 변별력을 잃고 모두 고승으로서 대우 받는 지위가 인식되고, 신지사류들의 불교계 부패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조선건국 이후 성리학이 유입되며 왕사.국사제도는 완전히 폐지된다.

거돈사 居頓寺터는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현계산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원주는 신라 5소경 중 북원경으로, 충주를 통과한 남한강과 원주북부를 섬강이 합류하여 여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중부와 영남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정치, 문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 였으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운송, 교역 시설과 함께 많은 사원들이 건립되고 유지되었다

거돈사의 창건연대는 알수 없으나 864년(신라경무왕4) 지증도헌(智證 道憲 824-882년)이 교종사찰 이었던 안락사를 돈오 頓悟 (단박깨닭음) 속에 살겠다' 는 뜻을 가진 거동사로 이름을 바꾸어 중창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거돈사의 제1차 중흥기라 할 수 있는 지증 도헌 큰스님의 15년불사(佛事)는 경문왕과 경분왕의 누이인 단의 장옹주의 후원영향이 컸다.

건돈사의 2차중흥기는 원공 지종 원공(圓空 智宗, 930~1018년)이 1018년 4월 하산하여 보름여만에 입적하면서 맞이하였다.지종이 하산한 그해, 법천사 지광국사 해린은 30대이었고, 지금은 경북대학교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제135호 대구 산격동 연화운룡장식승탑으 주인공 그 즈음해서 거돈사에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지종은 참선과 염불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선전쌍수(禪淨雙修)의 법문을 설한 법안종 3세인 영명 연수(英明延壽 904~975) 를 스승으로 공부한 법안종 스님이었다, 뿐만 아니라 1131년 대각국사 의천의 비문을 쓴 林存임존(생물년미상)은 고려때 천태학의 여섯 학파로 낙동강 합천의 영암사, 진주의 지곡사, 칠곡의 선봉사, 남양주여달의 고달사, 충주의 정토사와 함께 원주 거돈시를 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동 천태종의 효시로 諦觀제관과 함께 지종을 들고 있다. 원공지종은 법안종 스님이면서 고려 천태종의 효시가 되는 스님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9세기 중반과 11세기 전반 고승을 배출한 바 있던 거돈사는 이후 고려 시기와 조선 전기 내내 유명스님과 이름난 불사(佛事) 기록을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 그러다 조선 중기를 끝으로 폐사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