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11.양화진묘역

스크랜턴 대부인(이화여대)

동방박사님 2018. 8. 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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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턴 대부인 (1832~1909)

스크랜턴 대부인은 우리나라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이다. 그녀는 53세 되던 1885년 미감리교회 선교사로 외아들 내외와 함께 한국에 왔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성벽 주위에 버려진 아이들과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학당을 시작했다. 한 명으로 시작한 학당은 점차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 1896년에는 50명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한국인임을 더욱 자랑스러워하도록 이끌었다.

스크랜턴은 1891년부터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접 전도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당시는 여성 선교사가 아주 적었고, 온갖 관습의 벽에 둘러싸인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일은 조선의 여성들만이 할 수 있었다. 이에 스크랜턴은

이들과 동역 하였다. 전도부인들은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이태전인 1907년 75세 때 쓴 보고서를 보면 이 할머니 선교사의 사랑과 열정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만약에 열 사람의  선교사가 있었으면 훨씬 일을 잘 해냈을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조선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24년 동안 일한 스크랜턴 대부인은 76세 때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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