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11.양화진묘역

셔우드 홀 가족묘

동방박사님 2018. 8. 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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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족

양화진에 안장된 홀 가족의 삶은 숭고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윌리암 홀은 캐나다 출신으로 자수성가로 의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조선선교를 준비하던 의사 로제타를 만나 서울에서 결혼했다. 이들은 평양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윌리엄은 1894년 평양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한국에 온지 3년만인 1894년 소천했다. 로제타는 남편사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89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평양에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설립했으며, 한국여성을 미국으로 유학시켜 한국 최초의 여의사(박에스더)로 육성했다. 로제타는 한글 맞춤법에 맞는 점자법을 개발하였고, 평양에 최초의 맹아학교를 세웠다. 우리 민족을 위한 그녀의 헌신은 4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들의 아들, 셔우드 홀은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역시 의사이던 아내 마리안과 함께 한국에 와서 16년 동안 의료 선교를 하였다. 그는 해주에 우리나라 최초의 폐결핵 요양원을 세워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여 결핵 퇴치운동을 펼쳤다.

양화진에는 윌리엄 홀 부부와 아들 셔우드홀 부부를 비롯해 모두 6명의 가족이 묻혀 있으며, 셔우드홀 박사 공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