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폭력연구 (독서)/2.테러리즘

테러시대의 철학

동방박사님 2022. 10. 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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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테러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우리 시대의 두 사상가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이 책은 9·11 테러 직후, 미국의 철학자 보라도리가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인터뷰하고, 그 대화에 대한 해제를 덧붙인 책이다. 하버마스와의 대화는 2001년 12월에, 데리다와의 대화는 2001년 10월에 각각 이루어졌다. ‘테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재하기는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 책은 발간 직후 서구의 지성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서가 발간된 것이 2003년 6월의 일이며, 2004년 1월에 불어·독일어·일어 번역판이 일제히 출간되었다. 불어 번역판은 “Le concept du 11 septembre”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Galilee에서, 독어 번역판은 “Philosophie in Zeiten des Terrors”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Philo에서, 그리고 일어 번역판은 “テロルの時代と哲學の使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이와나미에서 각각 출간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두 철학자가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루어진 생생한 대화는 현실 문제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훌륭한 모범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긴급한 국제적 현안으로부터 출발하되 거기에 쉽게 매몰되지 않고, 그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정치한 반성을 보여주며, 그러한 관념적 분석으로부터 다시 낙하하여 현실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목차

책머리에 테러시대의 철학

서 론 테러리즘과 계몽주의의 유산 ― 하버마스와 데리다

제1부 위르겐 하버마스
하버마스와의 대화 근본주의와 테러
테러리즘의 재구성 ― 하버마스에 대하여

제2부 자크 데리다
데리다와의 대화 자가-면역, 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자살
테러리즘의 해체 ― 데리다에 대하여

부 록 공동선언문
위르겐 하버마스·자크 데리다 우리의 혁신: 전쟁 이후, 유럽의 재탄생
 

저자 소개

저자 :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오반나 보라도리Giovanna Borradori는 바싸르 대학Vassar College 철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The American Philosopher: Conversations with Quine, Davidson, Putnam, Nozick, Danto, Rorty, Cavell, MacIntyre, Kuhn』(Chicago Univ. Press, 1994)이 있고, 편집한 책으로는 『...
 

책 속으로

하버마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당신이 던졌던 질문들 속에 울려퍼지고 있었던 불길한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좌파 진영에는 우리가 역사의 전환점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 자체가 약간의 편집증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테러 공격의 가능성을 알리는 발표가 전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방심하지 말고 경계하라!”는 주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이것은 불확실한 대비에 따른 불안과 공허감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바로 테러리스트들이 의도했던 것입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록 ‘전쟁war’이라는 용어가 ‘성전(聖戰)crusade’이라는 용어보다는 오해를 더 적게 불러일으키고 또한 도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더 적다고 할지라도, 저는 부시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요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규범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부시는 이러한 범죄자들의 지위를 격상시켜서 그들을 전쟁에서의 적들과 같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실제적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이라는 용어가 일정한 의미를 유지하려면 ‘네트워크’와의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위험의 불확실성은 테러리즘의 본질에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9·11 테러 이후에 여러 달 동안 미국의 대중 매체는 생물학전이나 화학전의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또한 다양한 형태의 핵무기 테러를 예상하기도 했는데, 이는 적어도 그 위험의 정도를 판단해야 할 정부가 능력 부족으로 그러한 판단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데리다:

“실제적인 ‘테러’는 세계무역센터의 파괴나 국방부 건물에 대한 공격, 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살해 그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실제적인 테러는 표적 자체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테러의 이미지입니다. 실제적인 테러는 이러한 테러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이용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게임 이론과 연계되어 있었던 두 강대국(미국과 소련) 사이의 결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양국가가 서로의 위험을 상호적이고 조직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적의 핵 보유력을 중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핵 위협, ‘총체적’ 위협은 더 이상 한 국가로부터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예견 불가능하고 계산 불가능한 익명의 힘들로부터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절대적 위협은 냉전의 종결과 미국 진영의 ‘승리’로 인해 은폐되어 있을 터이기에, 그리고 이 위협은 세계 질서를, 세계 자체의 가능성 및 세계화(국제법, 세계 시장, 보편 언어 등등)의 가능성을 지탱해준다고 여겨지는 것을 위협하기에, 이제 이 공포스러운 자가-면역의 논리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건 다름아닌 세계의 실존, 세계적인 것 자체의 실존입니다. 이 위협은 그 전건과 원천을 냉전의 역사 전체에서 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 자체가 냉전보다 무한히 더 위험스럽고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워 보이기에, 이 같은 위협에는 더 이상 한계가 없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듯, 실상 바로 이러한 위협이야말로 이와 같은 냉전의 종결을 가속화시키고 공고화하고 있음을, 똑같이 겁에 질린 두 적들로 하여금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화해하도록 재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기호들이 있습니다. 부시와 그 동료들이 ‘악의 축’을 비난할 때, 우리는 아마도 이를 웃어넘기는 동시에 비난해야 할 겁니다. 이 허풍이 지닌 종교적 함축을, 유치한 책략을, 몽매주의적 신비화를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절대적 ‘악’이 위협의 그림자를 뻗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절대적 악, 절대적 위협인데,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건 다름아닌 세계의 세계화, 지구 및 그외 다른 곳에서의 삶을 모조리 남김없이 세계화하는 움직임이니까요.”
--- 본문중에서
하버마스는 테러의 목표들이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중심으로 테러리즘의 정치적 내용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오직 회고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그 정치적 내용을 확보한다. 민족 해방 운동의 과정에서는 테러리스트로 간주되거나 또는 심지어 테러리스트라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이 상황이 급격하게 역전됨에 따라 새로운 정치 지도자로 부상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렇지만 9·11 테러로 인해 주목을 받은 그러한 테러리즘 형태는 정치적으로 현실주의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테러리즘은 정치적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버마스는 비판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하버마스는 테러리즘과의 전쟁 선언에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테러리즘과의 전쟁 선언은 테러리즘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하버마스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왜냐하면 하버마스가 볼 때 이러한 정부들은 알려지지 않은 적에 대해 과도하게 대응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내적, 국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 부담이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일상생활의 병영화가 입헌 국가의 운영을 침해할 수 있으며, 또한 민주적인 참여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군사 자원이 불균형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테러리즘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책임감 있는 유일한 행동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마치 자명한 개념인 양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테러리즘 운동을 도착적인 방식으로 도와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체의 본질적 내용은 우리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준거가 되는 일련의 구별사항들이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리다의 생각에 따르면, 우선 전쟁 역시 시민들에 대한 위협을 수반하며, 따라서 테러리즘적 요소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국내적 테러와 국제적 테러, 지역적 테러와 전지구적 테러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테러 행위를 구분하기 위해 엄격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테러리즘이라는 가상된 실체에 어떤 술어를 덧붙일 가능성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테러리즘이 어떤 고정된 의미나 의사일정, 정치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부정하게 된다.

데리다는 우리에게 테러리즘과 전지구적인 의사소통 체계의 관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한다. 실제로, 9·11 테러 공격이 발생한 이후에 대중 매체는 세계를 향하여 테러리즘과 관련된 이미지나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퍼부어댔다. 데리다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은 대체적으로 외상적[정신적 쇼크] 기억을 계속 떠올림으로써,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어떤 사건에 대한 충격을 견딜 수 있다고 자신들을 안심시킨다. 9·11 테러 이래로 우리는 테러가 과거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으로 나타난다는 결과 앞에서, 스스로를 안심시키도록 강요받았다. 정말로 데리다는 대중 매체의 매우 순진한 태도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대중 매체가 이러한 외상적[정신적 쇼크] 사건의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데리다는 과학 기술과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테러리즘의 위협이 정말 실제적인지에 대해 당혹해했다.
--- 본문중에서
이라크 전쟁 발발 이전 암담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우리를 유인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작업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한편에서는 군대를 배치하는 거대한 병참 작전이,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적 원조기구들의 열에 들뜬 분망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움직임은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서로 맞물려 들어갔다. 이 장엄한 광경은 이후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를, 모든 주도권을 박탈당한 주민들의 눈 앞에서 완수되었다. 유럽 시민들을 떨쳐 일어나게 만든 건 분명 감정의 힘이다. 이와 동시에, 전쟁은 유럽인들에게 그들 공동의 대외 정책에서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온 파산을 비로소 의식하게 해주었다. 자신들이 내건 대외 정책이 파렴치하게도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세계의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국제 질서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다.
--- 공동선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하버마스·데리다의 최초의 만남 “이 위기의 테러 시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9·11 테러’ 3주년에 즈음하여 세계적인 철학자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테러 시대’에 대한 철학적 대화와 공동선언문을 한데 묶은 『테러 시대의 철학: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서 언급되었듯이 우리는 현재 진행형의 ‘테러 시대’에 살고 있다. 9·11 이후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한 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몇몇 국가들이 이에 동조하여 파병을 하거나 군수 물자를 지원했고, 미국은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한 국가에 대해 외교적·경제적으로 강한 압력을 가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 노선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 역시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9·11은 미국에서 신보수주의를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으며, 이것은 세계 각국의 정치·외교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한 원유 공급지인 중동의 정세 불안은 유가를 상승시켜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또한 9·11 이후 전세계적으로 테러가 2,900여 건이나 발생하여, 테러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미국 NBC 9월 2일자 보도 내용, ‘연합뉴스’ 9월 3일 인용 보도). 20세기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홀로코스트로 인해서 우리가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처럼, 21세기의 역사도 이미 전지구적 테러에 의해서 얼룩지고 있다. 요컨대 세계사적 사건으로서 9·11은 우리 시대를 ‘테러 시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테러 시대’가 이렇듯 전면적으로 등장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파병을 둘러싼 정치적인 찬반 논의, 그리고 우리나라도 더 이상 테러로부터 안전한 지대는 아닐 것이라는 자책만이 이 ‘테러 시대’를 둘러싼 유일한 담론이었다. 테러는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근본적인 철학적 반성을 요하는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 시대가 ‘테러 시대’로 규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테러 또는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 테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테러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조건 아래서인가? 테러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테러에 대한 우리 시대의 대응 방식은 적절한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바람직한 국제 질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테러 시대’로부터의 탈출은 도대체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이와 같은 ‘테러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우리 시대의 두 사상가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이 책은 9·11 테러 직후, 미국의 철학자 보라도리가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인터뷰하고, 그 대화에 대한 해제를 덧붙인 책이다. 하버마스와의 대화는 2001년 12월에, 데리다와의 대화는 2001년 10월에 각각 이루어졌다. ‘테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재하기는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 책은 발간 직후 서구의 지성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서가 발간된 것이 2003년 6월의 일이며, 2004년 1월에 불어·독일어·일어 번역판이 일제히 출간되었다. 불어 번역판은 “Le concept du 11 septembre”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Galilee에서, 독어 번역판은 “Philosophie in Zeiten des Terrors”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Philo에서, 그리고 일어 번역판은 “テロルの時代と哲學の使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이와나미에서 각각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두 사상가 고유의 논점들이 분명한 형태로 개성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와의 대화는 치밀하면서도 매우 간결하며 또한 전통적인 고상함을 지니고 있으며, 데리다와의 대화는 독자들을 더 길고 구불구불하며 예측하기 힘든 길로 이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대화를 통해 하버마스와 데리다 사이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명백한 일치점이 형성되었다. ‘테러’라는 개념의 정체성을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국민 국가를 전제로 삼고 있는 고전적인 국제법으로부터 대륙적 차원의 동맹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시민주의적 질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화와 이에 대한 보라도리의 해제뿐만 아니라, 이 책의 말미에는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공동선언문이 함께 실렸다. 2003년 5월 31일 독일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각 유력 일간지에 발표된 이 선언문은 철학적·정치적 관점이 극명하게 상이한 두 철학자가 공동으로 글을 작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현 국제 상황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공동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던 계기가 바로 이 책의 출간이었으며, 따라서 이 책은 하버마스와 데리다 간의 최초의 만남의 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이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켜서, ‘유럽의 미래’라는 테마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으로까지 이어졌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두 철학자가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루어진 생생한 대화는 현실 문제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훌륭한 모범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긴급한 국제적 현안으로부터 출발하되 거기에 쉽게 매몰되지 않고, 그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정치한 반성을 보여주며, 그러한 관념적 분석으로부터 다시 낙하하여 현실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9·11 테러는 전지구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테러 공격의 가공할 파괴력이나 그 방법의 새로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되었던 건물들의 상징성과 그것이 사건화된 방식 때문이었다. 9·11 테러는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힘, 더 나아가 서구 자본주의의 경제적·군사적 힘을 상징하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건물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다. 또한 9·11 테러는 대중 매체를 통해 전세계에 동시에 중계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세계인이 그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가 되었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9·11 테러를 ‘최초의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데리다는 테러리즘의 발호를 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난 ‘냉전’ 이후 시대의 특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이후’는 단지 시간적 후속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테러리즘의 전세계적 발호는 냉전 자체의 후속 효과로서,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된 미국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전 이후 이제 전세계가, 기대했던 평화 대신 비가시적인 익명의 적들이 가하는 더 큰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를 ‘냉전보다 더 나쁜 것’이라 부르고 있다.

저자인 보라도리는 우리 시대의 저명한 철학자인 하버마스, 데리다와 각각 대담을 하였다. 이 대담에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테러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를 피력하였다. 여기서는 테러리즘의 정체나 개념의 문제, 테러리즘이 추구하는 목표의 문제, 종교적 근본주의의 문제, 모더니즘이나 근대화의 문제, 테러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대응의 문제, 매스컴의 보도 방식의 문제, 타자에 대한 관용과 환대의 문제, 세계시민주의의 문제 등이 폭넓게 거론되고 있다.
 

추천평

“이 책은 데리다와 하버마스의 실질적인 최초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사상가인 두 사람은 그동안 매우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으며, 최근까지도 철학적으로 서로 엇갈리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두 사람은 테러 공격과 그것의 정치적 여파에 대해 각자 독창적인 탐구 방식을 동원하여 중요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부시 행정부가 조장한 위협과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경제적·군사 전략적 지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도덕적, 정치적으로 긴급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논의했던 적이 없었다.” ― 크리스토퍼 노리스(카디프 대학교)

보라도리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을 해냈다. 이 책에서 현대 유럽 철학의 거장들은 신보수주의에 경도된 미국이라는 괴물에 함께 맞서고 있다. ― 닉 스미스(뉴 햄프셔 주립 대학)

『테러 시대의 철학』은 9·11에 대한 가장 건설적인 반응의 예를 보여준다 : 그 사건을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 질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 그레고리 프라이드(캘리포니아 주립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