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폭력연구 (책소개)/2.테러리즘

테러

동방박사님 2022. 10. 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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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가 테러와 테러리즘의 개념과 형태, 변화 양상을 짚어보고 있는 책이다. 앞서 전작 『폭력』을 통해 '제국' 시대에 폭력/권력의 의미와 양상이 변화해가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던 저자는 테러를 다른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칠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여기에 다른 여러 형태의 폭력과 다른, 테러라는 폭력의 특별한 차이가 존재하고, 이러한 테러가 정치적 목적으로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수단으로서 사용될 때 그러한 폭력의 사용을 '테러리즘'이라고 일컫는다. 테러리즘은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테러'라는 특수한 형태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테러와 정치가 결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방식의 변화와 함께 테러리즘의 형태와 의미도 달라진다.

저자는 우선은 ‘도덕’을 배제한 상태에서 테러의 의미와 작동 방식, 테러리즘의 역사와 변화를 섬세하게 분석한 후, 테러리즘에 대한 도덕적 평가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지배의 기술’이자 ‘저항의 기술’이며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테러리즘이 정치적 목적과 어떻게 결합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로마 제국의 통치술부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혁명의 시대와 9ㆍ11의 스펙터클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살펴보며, 도덕적 정당화의 문제로서의 테러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테러리즘에 진정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에게 테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테러가 일상에 스며들어 시민들을 개별화ㆍ무력화ㆍ탈정치화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목차

1장 테러란 무엇인가
1. 왜 테러인가
2. 테러란 무엇인가
깊이 읽기 / 형벌과 테러

2장 테러리즘과 정치
1. 공포를 이용한 지배와 저항
2. 혁명과 테러리즘
깊이 읽기 / 암살과 테러

3장 테러리즘의 변화
1.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
2. 테러리즘의 탈정치적 자율화
3. 탈영웅적 사회와 영웅적 테러리스트
깊이 읽기 / 테러와 경제

4장 테러리즘과 도덕
1. 테러리즘은 정당할 수 있나
2. 도덕적으로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기
깊이 읽기 / 인도적 군사 개입의 도덕성

5장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테러인가

개념의 연표 - 테러
 

저자 소개 

저 : 공진성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06년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에 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9월부터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17세기 유럽 관용론의 두 유형: 스피노자와 로크」, 「스피노자, 관용, 그리고 종교적 불복종의 문제」, 「스피노자의 정치이...
 

출판사 리뷰

1. 테러와 테러리즘에 대한 가치중립적 이해 ― 공포를 넘어 자유로 나아가기 위하여

일상에서 테러란 어떤 의미이며 어떤 국면에서 쓰이고 있을까? 최근 뉴스를 살펴보면 “사찰 공화국에서 벌어진 시민 백색테러”, “영등포구, 생물테러 대응 경진대회 최우수구 선정”, “박근혜 또 테러, 기습 시위로 손목에 찰과상” 등의 헤드라인이 보인다. 이렇게 ‘테러’는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 행위라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한편에서는 무슬림 전사들로 상징되는 테러리스트들의 전유물로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국제 뉴스의 단골 기사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 ‘전쟁’을 벌여 응징해야 할 절대 악이거나 반대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이라는 이중의 가치 편향적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보듯, 폭력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그것이 추구한 정치적 평가를 혼동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테러라는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또 유포하며, 이념의 잣대로 그것을 평가하고, 마치 우리는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 사회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개념사’ 시리즈 열아홉 번째 권으로 출간된 『테러』는 사회과학적 엄밀함과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테러와 테러리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추구한다. 이 책에 따르면 ‘테러’란 공포를 생산하는 기술, 즉 타인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칠 의도 아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것이 ‘테러리즘’이다. 저자는 우선은 ‘도덕’을 배제한 상태에서 테러의 의미와 작동 방식, 테러리즘의 역사와 변화를 섬세하게 분석한 후, 테러리즘에 대한 도덕적 평가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지배의 기술’이자 ‘저항의 기술’이며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테러리즘이 정치적 목적과 어떻게 결합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로마 제국의 통치술부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혁명의 시대와 9ㆍ11의 스펙터클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살펴보며, 도덕적 정당화의 문제로서의 테러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테러리즘에 진정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에게 테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테러가 일상에 스며들어 시민들을 개별화ㆍ무력화ㆍ탈정치화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테러와 테러리즘의 구분, 공포의 확산이라는 테러의 본질에 대한 사유, 테러리즘과 도덕 곧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성찰, 그리고 현대 사회의 일상에서 유동하는 테러의 은밀한 모습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책은, 기존의 논의를 넘어 보다 근원적이고 폭넓은 테러/테러리즘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테러가 유발하는 공포를 넘어 자유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일깨우고 있다.

2. 테러는 공포를 생산하는 기술이며, 테러리즘은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행위다

앞서 보았듯이, 테러는 공포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테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기능할 때, 테러는 단순한 폭력이 아닌 ‘테러리즘’이 된다. 오래전부터 테러는 지배를 위한 합리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테러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로마 제국의 유대 민족 지배사가 그러했고,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일제 치하의 일본군이 항일 독립군에 가한 처벌에서 테러 행위의 목적과 효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반면 테러리즘이 반식민 저항 운동의 성공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 일례로 파르티잔의 게릴라 전쟁을 들 수 있다. 1950~1960년대의 테러란 무고한 민간인이나 종교적 제3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도덕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행위였다.

오늘날 근본주의적 테러리즘은 그동안 테러리즘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되던 제3자의 중요성이 쇠퇴하면서 사상자의 규모와 무기의 선택이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스케일을 능가할 정도로 분별력을 잃었다. 메시지 없는 테러의 이미지는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숭고한 주체를 향해 발화한다. 2001년 9월 11일에 벌어진 테러는 테러 형식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테러의 출처를 밝히는 책임 성명은 사라지고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테러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테러 경제를 유지하고 지속시키기도 한다. 테러 행위자와 수신자의 의미와 양상의 변화를 통해 오늘날의 테러리즘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테러리즘은 본격적으로 국제화되었고, 종교적ㆍ근본주의적 이념을 테러 공격의 정당화 근거로 삼는 집단의 출현함에 따라 오늘날 테러에 대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제한은 소멸되었다.

3. ‘도덕 없는 정치’와 ‘정치 없는 도덕’에 반대한다

테러리즘이라는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도덕과 무관하게 다룰 필요가 있지만, 윤리나 도덕의 문제를 영원히 비껴 갈 수는 없다. 이 책은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왈저의 논의를 중심으로 테러리즘에 대한 도덕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테러리즘을 판단할 때 결과에 초점을 맞춰 쉽게 그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사법적 틀 안에서 테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법실증주의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도덕적 판단을 법적 판단으로 대체한다. 백색 테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파들의 법실증주의적 입장은 사실상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보이는 기만적 태도에 불과하다. 반대로 테러리즘을 과잉 정치화해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좌파적 입장이 있다. 이때 테러리즘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법체계와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문제 삼는 숭고한 행위가 된다. 이들은 약자이기에,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테러리스트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테러의 동기와 방식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뒤로한 채, 저항의 원인과 정치적 대의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셈이다.

마이클 왈저는 두 번째 태도, 즉 테러리즘을 직접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표방하는 정치적 목표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입장을 ‘변론과 변명의 문화’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왈저는 근본주의적 평화주의와 무력 사용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모두, 즉 정치 없는 도덕도 도덕 없는 정치도 모두 잘못이라고 말한다. 도덕과 정치의 문제는 반드시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희생자를 계획적으로 선택해 처벌하는 것과 무고한 사람을 무작위로 선택해 처벌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왈저는 ‘무고한’의 반대말이 ‘참가하고 있는’이라며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무작위의 공격을 테러리즘이라 부른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무고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사실상 가리키는 것은 공존의 거부다. 상대방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그 가능성 자체를 거부하며 상대방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테러의 대상을 관념적으로 구성하고 모든 적을 제거하려는 것은 지극히 반정치적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어떠한 대의로도 감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왈저는 테러리즘이 ‘최후’의 수단이며 ‘약자’의 수단이라는 입장에 대해 과연 그러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변명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정치는 테러리즘’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대중적 지지를 결여한 이들이 자신을 일반화하는 것이라며 거기 담긴 과도한 정치적 냉소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우리의 행위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도덕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러리즘에 맞서 도덕적으로 사유하고 싸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정치는 공존을 위한 기술이 아닌 지배의 기술로 타락하고 만다.

4. 오늘날 무엇이 테러인가 ― 가상의 공포 또는 ‘예방 전쟁’

9ㆍ11 이후, 그리고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력이 더욱 강고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테러이며 무엇이 테러리즘인가? 이 책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 삶에서 ‘현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테러의 의미를 살펴보며, 원인 모를 공포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자유의 회복을 촉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의 모든 국면에 스며든 공포의 기표는 시민들을 개별화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정치라는 문제로부터 분리시킨다. 더불어 ‘9시 뉴스’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는 위기의 기표들을 생산해 공포를 재현하고 공포를 일상화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테러리즘은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니라 먼저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테러 행위와 정치적 메시지가 결합되지 않고 우리가 테러 행위의 정치적 메시지를 알 수 없는 경우, 테러는 테러리즘으로 형식화하지 못하고 테러 행위에 그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테러에서 테러리즘을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학습되고 일상화된 공포를 소비한다면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다.

테러가 일상에 균열을 내고 일상의 일관된 서사를 일그러뜨릴 때 일반적인 폭력과 테러는 구별된다. 테러리즘은 늘 일상적 공간에 등장해 주체를 재구성한다. 테러의 무대는 결코 일상의 외부가 아니다. 테러가 정치적 사건이 되는 순간은 그 일상의 불안과 불안정을 폭로했을 때이다. 체첸 분리독립주의자인 ‘검은 미망인’들은 놀랍게도 자신의 죽음을 일상 안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그들은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조건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비타 악티바 시리즈 중『폭력』을 저술했던 지은이가 일관되게 지금, 여기에서쟀 폭력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의 하위 개념인 테러에 맞서는 사회의 책임 윤리 역시 일상적 삶의 조건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테러가 전체주의적 지배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체주의 체제에서 실정법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 테러를 ‘총체적 테러’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에서도 총체적 테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일례로 ‘용산 참사’와 ‘천안함 침몰 사건’이라는 비극적 사건에서 국가 권력이 ‘철거민’과 ‘북한’이라는 가상의 공포를 만들어 정치 경제적 효과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한편 올해 3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대학생 김예슬의 자퇴 선언문은 학습화된 공포, 가상의 공포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정치학자 셸던 월린은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예방적’ 전쟁 또한 “민주적 통제의 약화와 체제의 전체주의화를 위한” 지배 계급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9ㆍ11 이미지, 사고, 노년, 비참한 죽음, 해고, 성범죄, 경제난, 북핵 등 매스 미디어가 생산하는 테러리즘의 기표는 이 같은 ‘예방 전쟁’에 정치적 합리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 예방 전쟁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수혜자는? 용산 철거민은 우리의 이웃일까, 사건 하루 만에 ‘도심 테러’라는 규정을 내린 이들의 말처럼 테러리스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