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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 최선의 공동체를 향하여 (2018)

동방박사님 2023. 11. 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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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플라톤과 함께 서양 고대 철학의 두 거대한 봉우리를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그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도 정치경제학의 효시라 불리는 『정치학』은 도덕성에 기반을 둔 윤리적 정치체제, 최고의 좋음인 ‘행복’에 이르는 정치 공동체의 모습을 치밀하게 사유한 서양 고대 철학의 정수이다. 이 책은 『정치학』을 원전 번역으로 출간한 바 있는 저자의 깊고 풍부한 해설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핵심적으로 붙들어야 할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좋은 국가, 좋은 시민,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정치학』에서 규명한 ‘최선의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목차

머리말_아직도 《정치학》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1장 정치학의 목표와 과제
2장 《정치학》의 전체적 논의 구조와 분석
3장 모듬살이 존재로서의 인간: 폴리스란 무엇인가
4장 누가 좋은 인간이고 좋은 시민인가
5장 우리는 어떤 정치체제를 꿈꾸는가
6장 호모 오이코노미쿠스homo oeconomicus

맺음말_민주정을 옹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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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김재홍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 고전철학을 전공해 1994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고중세 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를 한 후,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을 지냈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있다. ...

책 속으로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적 공동체는 인간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인 셈이다. 따라서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통하지 않고는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은 지배하고 지배 받음으로써 정치적 행위를 수행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전체 공동체의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에 정치가, 즉 입법가는 시민을 ‘좋은 시민’으로, 나아가 ‘좋은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 방법은 입법가가 규정해야만 하는 교육을 통해서 성취된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좋은 시민과 좋은 인간의 탁월성(덕)은 다르다. 그러나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민’이어야 하고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 --- p.26

정치철학적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하는 이상적 폴리스는 도덕적 인간과 정치적 인간의 교섭적 관계에서 성립하는, 즉 도덕성에 기반을 둔 윤리적 정치체제의 질서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정치체제는 어떤 ‘정치체제’일까? 시민의 도덕성, 시민의 평등성, 시민 자신의 이익이 아닌 전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총의에 따르는’ 정치체제가 아닐까? 폴리스(국가)의 도덕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정치철학적 국가 이론은, 오늘날 이윤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체제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 p.28

폴리스는 최고의 좋음인 행복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공동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좋음을 위해서 행위를 선택한다는 기본 전제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각각의 ‘공동체’도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임을 추론해낸다. 그 목적의 지향에 따라 공동체 간에도 서열이 생긴다. 이 하위의 공동체에는 가정, 마을, 학문 공동체, 종교적 집단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좋음 중에서 최고의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은 공동체 중에서 ‘최고의 공동체’인 폴리스이다. 폴리스는 오직 행복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폴리스의 기원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을 받아들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가 정치적 공동체임을 밝히면서, 단순히 생활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폴리스는 ‘폴리스를 형성하는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을 부연해서 밝혀주고 있다. 그저 먹고사는 방편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 공동체를 넘어서, 폴리스가 공동의 좋음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천명하고 있다. --- pp.56-57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치중립적이고 순전히 경험적인 정치 사상가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다층적 정치 이론에서 한 단면만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정치적 현실에 개입하면서 이상적 정치체제가 가능할 수 있는 더 나은 조건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치 현상에 대한 기술적(descriptive) 작업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정치체제에 대한 가치 평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이상적으로 지배될 수 있는 정치체제에 귀속되는 여러 물음을 검토한다. 실제로 그는 이상적 정치체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현존하는 폴리스의 개선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상적 폴리스에 대한 그의 정치 이론은 자신의 윤리 이론에 터전을 잡고 진행되어간다. 윤리 이론에 기반을 둔 정치 이론가로서 그의 임무는 정치적 이상에 직면하는 이론적 모델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 pp.121-122

최선의 정치체제의 목적은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이다. 이 삶은 개인과 공동체에 공통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은 무엇인가? 개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은 ‘덕을 동반한 삶’이다(1324a25). 개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이 공동으로 가장 바람직한 삶과 동일한 것인가 동일하지 않은 것인가? 가장 바람직한 삶은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인간의 행복과 폴리스의 행복이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반적 통념으로 받아들인다.
--- p.130
 

출판사 리뷰

좋은 국가, 좋은 시민,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시민 행복의 궁극을 탐구한 서양 고대철학의 정점!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모든 시민이 행복한 최선의 정치체제는 가능한가?
참된 공동체를 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진리

[리더스 클래식]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최선의 공동체를 향하여


“모든 공동체들 중에서도 최고의 공동체이면서 모든 좋음들 중 최고의 좋음(행복)을 목표로 하는 정치 공동체.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공동체이다.”
플라톤과 함께 서양 고대 철학의 두 거대한 봉우리를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상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이었던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식의 철학’을 추구한 철학자라 불린다. 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 또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폴리티콘 존)’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도 정치경제학의 효시라 불리는 『정치학』은 도덕성에 기반을 둔 윤리적 정치체제, 최고의 좋음인 ‘행복’에 이르는 정치 공동체의 모습을 치밀하게 사유한 서양 고대 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리더스 클래식’ 시리즈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최선의 공동체를 향하여』는 우선 국내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비롯해 『관상학』, 『소피스트적 논박』, 『변증론』 등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을 꾸준히 번역해온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의 『정치학』 해설이라는 점이 가장 눈길을 끈다. 지난 2017년, 그가 10여 년에 걸친 원전 번역 작업을 통해 출간한 『정치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사상, 전체 저작물의 체계를 치밀하게 연구한 해제와 3200여 개에 달하는 상세한 역주가 달렸다. 다시 말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핵심적으로 붙들어야 할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최적의 안내자인 셈이다.

『정치학』은 전체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어 번역판도 800쪽에 달해 어지간해서는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최선의 공동체’의 모습을 깊고 풍부한 해설로써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사익과 공익의 조화를 이끄는 정치 없이
어느 인간 공동체도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정치학』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로 되돌아가서, 그가 논의했던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익할까? 유익한 것이 있다고 하면 어떤 것일까? 정치적 정의와 법치에 근거한 정치적 행위, 정치적 공동체로의 시민 참여를 의무로 부과하는 것, 공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미, 집단 지성의 실현, 자유와 평등에 기반을 둔 공동체의 삶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개인과 집단의 행복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7쪽)

이런 질문들은 최근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사법농단, 사립유치원 비리, 이민자 문제, 점점 심각해지는 계층 간 불평등, 무엇보다도 시민의 행복에 무관심한 정치(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규정한 이상적 정치체제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개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의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통하지 않고는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은 지배하고 지배 받음으로써 정치적 행위를 수행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전체 공동체의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에 정치가, 즉 입법가는 시민을 ‘좋은 시민’으로, 나아가 ‘좋은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민’이어야 하고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26쪽)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정치체제는 어떤 ‘정치체제’일까? 시민의 도덕성, 시민의 평등성, 시민 자신의 이익이 아닌 전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총의에 따르는’ 정치체제가 아닐까?”(28쪽)

“어떤 삶이 행복하고 좋은 삶인가?”
“좋은 국가, 최선의 공동체란 무엇인가?”


『정치학』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개인의 행복을 다루는 ‘윤리학’과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다루는 ‘정치학’을 하나로 다루었다는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둘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보았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학문 체계를 ‘안다(이론학)’, ‘행한다(실천학)’, ‘만든다(제작학)’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윤리학, 정치학, 경제학을 포함하는 실천학이었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개인은 덕에 바탕을 둔 행위의 반복과 실천을 통해서 윤리적 성품을 함양할 수 있고, 이는 사익이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공동의 유익함을 진작시키는 정치체제는 정의로운 것이고, 단지 지배자의 이익만을 위한 정치체제는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 정신, 동등성(평등)의 이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화두로 던지고 있는 ‘좋은 국가, 좋은 시민,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보듯, 윤리 이론에 기반을 둔 정치 이론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임무는 정치적 이상에 직면하는 이론적 모델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공동의 이익을 기준으로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발휘할 줄 아는 도덕적 정치지도자 모델은 물론 시민의 역할과 의무까지 포함된다. “시민은 지배하고 지배를 받는다. 시민은 민회에 참석하고 재판의 배심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의 역할은 개인적인 리더십에 한정되지 않는다.”(59-60쪽)

‘상식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떤 삶이 행복하고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정치학』에서 그가 다시 던지는 질문, “좋은 국가, 최선의 공동체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고,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덕을 갖추지 못한 정치가와 리더들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고, 가장 좋은 공동체의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뜻밖에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정치학』을 더욱 깊고 충실하게 읽기 위한 최고의 마중물일 뿐만 아니라 최선의 공동체 저 너머에 있는 ‘에우다이모니아(행복)’를 찾는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