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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후학 중의 한 사람인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이 친일 연구에서 얻은 자료와 선생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동감 넘치게 쓴 독특한 평전이다. 지은이는 여느 평전에 더해 선생에 대한 비판, 연구 저술에 대한 명확한 해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통해 선생의 인간적 모습과 고뇌, 연구 집필에 대한 단상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지은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추적하고 확인하여 정확성이 보태졌고, 그런 과정이 평전의 엄숙함을 깨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가족들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 공개 등은 혹 있을 선생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시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첫 부인과의 두 번 이혼과 재혼 이야기, 화장품 외판원 등 선생의 가정사 역시 모두 공개됐다. 뒤에 덧붙인 집필 일기에서는 지은이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더불어 지은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추적하고 확인하여 정확성이 보태졌고, 그런 과정이 평전의 엄숙함을 깨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가족들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 공개 등은 혹 있을 선생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시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첫 부인과의 두 번 이혼과 재혼 이야기, 화장품 외판원 등 선생의 가정사 역시 모두 공개됐다. 뒤에 덧붙인 집필 일기에서는 지은이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목차
제1부 잘못 끼워진 첫 단추 - 방황과 좌절의 시절
‘그’를 찾아 3남 정택과 ‘여행’을 떠나며 / 어렵기만 했던, 그러나 자랑스런 아버지
평범했던 그의 태胎자리, 경남 창녕읍 / 첫 부인과 원만치 못했던 그의 부친
‘설중매’를 태몽에서 본 모친 / 서울 종로 일대에서 보낸 어린 시절
우수한 성적에 건강했던 소학교 시절 /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농고’ 진학
가축 예방주사도 놓지 못한 소심한 성격 / 해방, 경성사범 진학 그리고 독서회 사건
프로급 수준의 악기 연주 실력 / 계정식의 ‘서울음악전문학원’서 수학
도봉리 집으로 찾아든 식객들 / 한국전쟁 중에 합천서 3년간 경찰관 생활
피난길에 싹튼 ‘고시 공부’의 꿈 / 피난 시절 대구서 고려대 정치학과 입학
움막집서 자취 생활하며 고시 공부 / 자취방 친구 윤광모의 신출귀몰한 ‘상술’ / 대학 중퇴와 좌절된 판검사의 꿈
제2부 문학도의 꿈 -『이상전집』 출간과 등단
‘천재 시인’ 이상李箱에 빠지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상전집』 / 뒤이은 ‘이상 연구’의 성과들
이상을 닮은 임종국의 자화상 / ‘이상 연구’와 조지훈의 격려 / ‘이상 연구’로 ‘사학도’ 소리를 듣다
조지훈과 고대문학회 / 『이상전집』의 오류들 / 『문학예술』서 「비碑」로 시단에 데뷔
‘귀족 시인’ 이한직의 면모와 추천기記 / ‘철저한 자유인’을 꿈꾸다 / 미발표 유고 등 10여 편의 시詩 남겨
신경림이 전한 ‘그의 얼굴에 흉터가 생긴 사연’ / 첫 직장 신구문화사를 2년 다니다 그만둬
‘시시했던’ 신구문화사 시절 / 대학 동기생 이선숙과 결혼, 주례는 ‘은사’ 조지훈
첫 아이 출산 그리고 첫번째 이혼 / 화장품 외판원·참빗 장사 등 행상 시절
제3부 갈등속의 집념 - 결혼, 이혼 그리고 『친일문학론』 출간
재결합과 「흘러간 성좌」 연재 시작 / 5·16 쿠데타 세력과 한일회담 / 박노준이 빌려다 준 『친일파군상』 보고 충격
『친일문학론』을 쓰게 된 여러 이유들 / 고대 도서관서 자료 찾다 만난 김윤식
출판 거부당한 『친일문학론』, 평화출판사서 출간 『친일문학론』 일간지 광고와 서평 / 홍사중의 ‘친일 문학 공적론’ 비판
‘유진오론’과 신인들이 「서문」 「발문」 쓴 사연 / 28명의 개별 작가론에서 서정주가 빠진 까닭
『친일문학론』의 ‘옥의 티’, 오상순과 이병기 / 새벽에 고은 찾아가 “입산하고 싶다”
입원 중에 쓴 ‘처연한’ 시들 그리고 이혼 위기 / 손위 처남에게 도움 요청 편지 보내
이혼 소송과 이혼 전제 조건 놓고 다투는 두 사람 두 번째 이혼 전후 ‘일기장’에 심경 토로
하숙집에서 만난 ‘새 인연’ / 조정래의 『한강』에 실명 등장 / ‘풍운아’ 부친의 쓸쓸한 장례식
천도교 신파 간부 임문호의 ‘친일 행적’ / “내 이름 빼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문학평론가’ 면모 보여준 『한국문학의 사회사』/ 일제 말 ‘한국 문단의 이면사’ 『취한醉漢들의 배』
제4부 끝내 이루지 못한 꿈 - 80년 천안행과 불발로 그친 『친일파총사』
생계비 해결과 집필 전념 위해 ‘천안행’ / 전기·전화도 없는 녹록치 않은 시골 생활
오오무라 교수의 편지에 그려진 ‘요산재’ 시절 / 저술 활동 왕성했던 80년대, 매년 1권씩 출간
자료 조사차 상경, 자취 생활 6개월에 병 얻어 / 미야타 여사와의 ‘우정’과 편지
‘고향’에의 꿈 담은 『한국문학의 민중사』 / 다른 사람 이름으로 펴낸 『친일문학작품선집』 / ‘요산재’와 ‘보림재’
감방에서 『친일문학론』 보급(?) 앞장 선 백기완 / 김언호 사장이 문광부에 ‘도서 반환요청서’ 낸 사연
죽어서 ‘바람’이 되고자 했던 그와 막내 여동생의 ‘진혼곡’ / “증거 자료 보자”며 찾아온 어느 친일파 후손
‘북한엔 비판적, 미국엔 우호적’인 정치적 성향 / 납득하기 어려운 ‘대동아공영권’ 동조 발언
‘그릇된 신념’의 화신 춘원 이광수 / 유종호의 ‘친일 문서’론과 ‘몇 가지 소견’ 비판
정지용의 「이토」와 유종호의 변론 / 문덕수의 ‘임종국 비판’과 ‘유치환 옹호’
유종호와는 다른 문덕수의 비판 자세 / 건강 악화로 『친일파총사』 공동 집필 계약
건강·집필 전념 위해 천안 시내로 이사 / 『조선』 『동아』 기자들이 종국을 찾아온 사연
끝내 일어나지 못한 ‘마지막 입원’ / “정체성 갖되, 그저 참고 겸허하게 살아야”
‘기행 없는’ 기인의 삶… “60평생 후회는 없다”
부 록
집필 일기 / 연보 / 임종국 논저 목록 / 인터뷰 명단
‘그’를 찾아 3남 정택과 ‘여행’을 떠나며 / 어렵기만 했던, 그러나 자랑스런 아버지
평범했던 그의 태胎자리, 경남 창녕읍 / 첫 부인과 원만치 못했던 그의 부친
‘설중매’를 태몽에서 본 모친 / 서울 종로 일대에서 보낸 어린 시절
우수한 성적에 건강했던 소학교 시절 /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농고’ 진학
가축 예방주사도 놓지 못한 소심한 성격 / 해방, 경성사범 진학 그리고 독서회 사건
프로급 수준의 악기 연주 실력 / 계정식의 ‘서울음악전문학원’서 수학
도봉리 집으로 찾아든 식객들 / 한국전쟁 중에 합천서 3년간 경찰관 생활
피난길에 싹튼 ‘고시 공부’의 꿈 / 피난 시절 대구서 고려대 정치학과 입학
움막집서 자취 생활하며 고시 공부 / 자취방 친구 윤광모의 신출귀몰한 ‘상술’ / 대학 중퇴와 좌절된 판검사의 꿈
제2부 문학도의 꿈 -『이상전집』 출간과 등단
‘천재 시인’ 이상李箱에 빠지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상전집』 / 뒤이은 ‘이상 연구’의 성과들
이상을 닮은 임종국의 자화상 / ‘이상 연구’와 조지훈의 격려 / ‘이상 연구’로 ‘사학도’ 소리를 듣다
조지훈과 고대문학회 / 『이상전집』의 오류들 / 『문학예술』서 「비碑」로 시단에 데뷔
‘귀족 시인’ 이한직의 면모와 추천기記 / ‘철저한 자유인’을 꿈꾸다 / 미발표 유고 등 10여 편의 시詩 남겨
신경림이 전한 ‘그의 얼굴에 흉터가 생긴 사연’ / 첫 직장 신구문화사를 2년 다니다 그만둬
‘시시했던’ 신구문화사 시절 / 대학 동기생 이선숙과 결혼, 주례는 ‘은사’ 조지훈
첫 아이 출산 그리고 첫번째 이혼 / 화장품 외판원·참빗 장사 등 행상 시절
제3부 갈등속의 집념 - 결혼, 이혼 그리고 『친일문학론』 출간
재결합과 「흘러간 성좌」 연재 시작 / 5·16 쿠데타 세력과 한일회담 / 박노준이 빌려다 준 『친일파군상』 보고 충격
『친일문학론』을 쓰게 된 여러 이유들 / 고대 도서관서 자료 찾다 만난 김윤식
출판 거부당한 『친일문학론』, 평화출판사서 출간 『친일문학론』 일간지 광고와 서평 / 홍사중의 ‘친일 문학 공적론’ 비판
‘유진오론’과 신인들이 「서문」 「발문」 쓴 사연 / 28명의 개별 작가론에서 서정주가 빠진 까닭
『친일문학론』의 ‘옥의 티’, 오상순과 이병기 / 새벽에 고은 찾아가 “입산하고 싶다”
입원 중에 쓴 ‘처연한’ 시들 그리고 이혼 위기 / 손위 처남에게 도움 요청 편지 보내
이혼 소송과 이혼 전제 조건 놓고 다투는 두 사람 두 번째 이혼 전후 ‘일기장’에 심경 토로
하숙집에서 만난 ‘새 인연’ / 조정래의 『한강』에 실명 등장 / ‘풍운아’ 부친의 쓸쓸한 장례식
천도교 신파 간부 임문호의 ‘친일 행적’ / “내 이름 빼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문학평론가’ 면모 보여준 『한국문학의 사회사』/ 일제 말 ‘한국 문단의 이면사’ 『취한醉漢들의 배』
제4부 끝내 이루지 못한 꿈 - 80년 천안행과 불발로 그친 『친일파총사』
생계비 해결과 집필 전념 위해 ‘천안행’ / 전기·전화도 없는 녹록치 않은 시골 생활
오오무라 교수의 편지에 그려진 ‘요산재’ 시절 / 저술 활동 왕성했던 80년대, 매년 1권씩 출간
자료 조사차 상경, 자취 생활 6개월에 병 얻어 / 미야타 여사와의 ‘우정’과 편지
‘고향’에의 꿈 담은 『한국문학의 민중사』 / 다른 사람 이름으로 펴낸 『친일문학작품선집』 / ‘요산재’와 ‘보림재’
감방에서 『친일문학론』 보급(?) 앞장 선 백기완 / 김언호 사장이 문광부에 ‘도서 반환요청서’ 낸 사연
죽어서 ‘바람’이 되고자 했던 그와 막내 여동생의 ‘진혼곡’ / “증거 자료 보자”며 찾아온 어느 친일파 후손
‘북한엔 비판적, 미국엔 우호적’인 정치적 성향 / 납득하기 어려운 ‘대동아공영권’ 동조 발언
‘그릇된 신념’의 화신 춘원 이광수 / 유종호의 ‘친일 문서’론과 ‘몇 가지 소견’ 비판
정지용의 「이토」와 유종호의 변론 / 문덕수의 ‘임종국 비판’과 ‘유치환 옹호’
유종호와는 다른 문덕수의 비판 자세 / 건강 악화로 『친일파총사』 공동 집필 계약
건강·집필 전념 위해 천안 시내로 이사 / 『조선』 『동아』 기자들이 종국을 찾아온 사연
끝내 일어나지 못한 ‘마지막 입원’ / “정체성 갖되, 그저 참고 겸허하게 살아야”
‘기행 없는’ 기인의 삶… “60평생 후회는 없다”
부 록
집필 일기 / 연보 / 임종국 논저 목록 / 인터뷰 명단
출판사 리뷰
“임종국 선생의 생애와 저술 활동, 사상에 대한 총체적 해설”
해방 60주년이 지난 지금, 우린 아직까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그 청산 대상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역사를 농단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각국의 엄혹한 나치 잔재 청산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물론 이들 유럽 각국은 혹 있을 과거사에 대해서도 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응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했으며, 그나마 마련된 법안조차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누더기가 되었다. 또한 법제화 이후 조사결과에 따른 정치적 논쟁이 우리 사회를 한 차례 휘몰아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역사적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개정판에는 『친일파총사』 발간 계획의 전모를 소개
임종국 선생은 말년에 2명의 소장학자들과 『친일파총사』 발간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이 내용의 전말을 알 수 없었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만이 개략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평전 출간 2년 뒤인 2008년 계약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승태 선생이 우연히 계약서를 찾아냈고, 비로소 『친일파총사』발간 계획의 전모를 알게 됐고 이번 개정판에 이를 소개한다. 더불어 그동안 변화된 한글맞춤법에 따라 책을 전체적으로 교정하였으며, 소개된 인물들의 변화된 정보를 반영하였다.
친일 청산의 기회 마련한 임종국 선생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일제 청산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법제화에 성공한 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한다. 바로 임종국 선생이다. 비록 선생이 살아생전에 한 일은 아니지만 선생의 친일 연구 업적이 단초가 되어 많은 후학들이 친일 연구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 뜻이 모여 이렇게 친일 청산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임종국 평전』은 후학 중의 한 사람인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이 친일 연구에서 얻은 자료와 선생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동감 넘치게 쓴 독특한 평전이다. 저자는 여느 평전에 더해 선생에 대한 비판, 연구 저술에 대한 명확한 해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한 소심한 성격, 독서회 사건으로 경성사범학교 중퇴, 어머니와의 불화로 서울음악학원 중퇴, 3년간의 경찰관 근무, 『친일문학론』 집필 동기, 증거 자료 보자며 찾아온 어느 친일파 후손 이야기, 『조선』『동아』기자가 앞 다퉈 선생을 찾았던 사연 등)를 통해 선생의 인간적 모습과 고뇌, 연구 집필에 대한 단상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저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추적하고 확인하여 정확성이 보태졌고, 그런 과정이 평전의 엄숙함을 깨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한 가족들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 공개 등은 혹 있을 선생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시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책에서는 첫 부인과의 두 번 이혼과 재혼 이야기, 화장품 외판원 등 선생의 가정사 역시 민망할 정도로 모두 공개됐다. 그리고 뒤에 덧붙인 집필 일기에서는 저자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친일문학론』으로 본격 친일 연구
일찍이 문학도이고자 했던 선생은 대학 시절(고려대학교) 시인 이상과 닮은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사실 선생은 고시 공부를 통해 판검사가 되고자 했으나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몸과 정신에서 좌절과 절망에 이르렀고, 결국 고시를 포기하면서 시인 이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펴낸 『이상전집』은 문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 선생이 곳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심지어 이상이 일본서 보낸 편지까지 유족들에게 입수해 펴낸 역작이다. 저자는 『이상전집』 이후 출간된 다른 이상 연구 관련서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상전집』의 성과와 오류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평가를 시도한다. 이제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된 선생은 드디어 『문학예술』에 「비碑」로 등단하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선생은 총 10여 편의 시를 남겼으나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저자는 선생의 유품 중에 나온 시 몇 편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했다.
스승 조지훈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서울신문』 연재 「흘러간 성좌」는 선생의 친일 연구의 단초가 된다. 예술계의 기인을 발굴해 연재했던 이 글에서 선생은 각종 자료들을 조사할 수 있었고, 당시 한일회담에서 오는 정치적 난맥상, 『친일파군상』에서 받은 충격으로 『친일문학론』을 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생이 남긴 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설명한다. 『친일문학론』은 천황과 일제를 위해 바친 매국매족의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기록한 최초의 친일 문학 연구서였다. 이 책에는 그 당시 우리 문단에서 존경을 받던 인사들이 총 망라됐으며, 심지어 선생의 스승인 고려대 유진오 총장과 부친의 친일마저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냉대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때부터 선생의 연구는 고독 그 자체였다.
못다 이룬 친일 연구 후학들이 계승
선생은 친일 연구를 하면서 위토혈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망가져가는 몸을 붙들고 『한국사회풍속야사』『일제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침략사』『일제하의 사상탄압』『한국문학의 민중사』『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 2』『정신대 실록』『친일논설선집』등을 숨 가쁘게 쏟아냈다. 한편 저자는, 선생이 일본인 오오무라(『친일문학론』일본어 번역)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언급한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시각이 잘못됐다며 논거를 통해 비판하고, 미야타 여사(자신의 저서에서 『친일문학론』 언급)에게 편지를 보내 “책에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어쩔 수 없었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선생의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살아 계시다면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저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총론-친일시에 대한 소견」에 대해 친일 문제 연구가 입장에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문덕수 시인의 유치환 옹호 칼럼에 대해서도 친일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치졸하다며 엄중 비판한다.
선생은 말년에 친일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총사』(총10권)를 공동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은 선생의 지병이었던 폐기종으로 인해 펜을 놓으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연구 업적은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물려져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고, 친일 청산 법제화가 이루어지면서 고독한 연구가 아닌 국가적 과업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겐 “벼락이 떨어져도 내 서재를 떠날 수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현재 진행형인 친일 청산의 의지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건히 지켜나가는 일만 남았다.
해방 60주년이 지난 지금, 우린 아직까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그 청산 대상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역사를 농단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각국의 엄혹한 나치 잔재 청산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물론 이들 유럽 각국은 혹 있을 과거사에 대해서도 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응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했으며, 그나마 마련된 법안조차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누더기가 되었다. 또한 법제화 이후 조사결과에 따른 정치적 논쟁이 우리 사회를 한 차례 휘몰아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역사적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개정판에는 『친일파총사』 발간 계획의 전모를 소개
임종국 선생은 말년에 2명의 소장학자들과 『친일파총사』 발간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이 내용의 전말을 알 수 없었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만이 개략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평전 출간 2년 뒤인 2008년 계약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승태 선생이 우연히 계약서를 찾아냈고, 비로소 『친일파총사』발간 계획의 전모를 알게 됐고 이번 개정판에 이를 소개한다. 더불어 그동안 변화된 한글맞춤법에 따라 책을 전체적으로 교정하였으며, 소개된 인물들의 변화된 정보를 반영하였다.
친일 청산의 기회 마련한 임종국 선생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일제 청산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법제화에 성공한 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한다. 바로 임종국 선생이다. 비록 선생이 살아생전에 한 일은 아니지만 선생의 친일 연구 업적이 단초가 되어 많은 후학들이 친일 연구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 뜻이 모여 이렇게 친일 청산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임종국 평전』은 후학 중의 한 사람인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이 친일 연구에서 얻은 자료와 선생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동감 넘치게 쓴 독특한 평전이다. 저자는 여느 평전에 더해 선생에 대한 비판, 연구 저술에 대한 명확한 해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한 소심한 성격, 독서회 사건으로 경성사범학교 중퇴, 어머니와의 불화로 서울음악학원 중퇴, 3년간의 경찰관 근무, 『친일문학론』 집필 동기, 증거 자료 보자며 찾아온 어느 친일파 후손 이야기, 『조선』『동아』기자가 앞 다퉈 선생을 찾았던 사연 등)를 통해 선생의 인간적 모습과 고뇌, 연구 집필에 대한 단상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저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추적하고 확인하여 정확성이 보태졌고, 그런 과정이 평전의 엄숙함을 깨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한 가족들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 공개 등은 혹 있을 선생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시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책에서는 첫 부인과의 두 번 이혼과 재혼 이야기, 화장품 외판원 등 선생의 가정사 역시 민망할 정도로 모두 공개됐다. 그리고 뒤에 덧붙인 집필 일기에서는 저자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친일문학론』으로 본격 친일 연구
일찍이 문학도이고자 했던 선생은 대학 시절(고려대학교) 시인 이상과 닮은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사실 선생은 고시 공부를 통해 판검사가 되고자 했으나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몸과 정신에서 좌절과 절망에 이르렀고, 결국 고시를 포기하면서 시인 이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펴낸 『이상전집』은 문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 선생이 곳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심지어 이상이 일본서 보낸 편지까지 유족들에게 입수해 펴낸 역작이다. 저자는 『이상전집』 이후 출간된 다른 이상 연구 관련서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상전집』의 성과와 오류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평가를 시도한다. 이제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된 선생은 드디어 『문학예술』에 「비碑」로 등단하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선생은 총 10여 편의 시를 남겼으나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저자는 선생의 유품 중에 나온 시 몇 편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했다.
스승 조지훈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서울신문』 연재 「흘러간 성좌」는 선생의 친일 연구의 단초가 된다. 예술계의 기인을 발굴해 연재했던 이 글에서 선생은 각종 자료들을 조사할 수 있었고, 당시 한일회담에서 오는 정치적 난맥상, 『친일파군상』에서 받은 충격으로 『친일문학론』을 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생이 남긴 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설명한다. 『친일문학론』은 천황과 일제를 위해 바친 매국매족의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기록한 최초의 친일 문학 연구서였다. 이 책에는 그 당시 우리 문단에서 존경을 받던 인사들이 총 망라됐으며, 심지어 선생의 스승인 고려대 유진오 총장과 부친의 친일마저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냉대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때부터 선생의 연구는 고독 그 자체였다.
못다 이룬 친일 연구 후학들이 계승
선생은 친일 연구를 하면서 위토혈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망가져가는 몸을 붙들고 『한국사회풍속야사』『일제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침략사』『일제하의 사상탄압』『한국문학의 민중사』『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 2』『정신대 실록』『친일논설선집』등을 숨 가쁘게 쏟아냈다. 한편 저자는, 선생이 일본인 오오무라(『친일문학론』일본어 번역)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언급한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시각이 잘못됐다며 논거를 통해 비판하고, 미야타 여사(자신의 저서에서 『친일문학론』 언급)에게 편지를 보내 “책에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어쩔 수 없었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선생의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살아 계시다면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저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총론-친일시에 대한 소견」에 대해 친일 문제 연구가 입장에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문덕수 시인의 유치환 옹호 칼럼에 대해서도 친일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치졸하다며 엄중 비판한다.
선생은 말년에 친일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총사』(총10권)를 공동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은 선생의 지병이었던 폐기종으로 인해 펜을 놓으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연구 업적은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물려져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고, 친일 청산 법제화가 이루어지면서 고독한 연구가 아닌 국가적 과업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겐 “벼락이 떨어져도 내 서재를 떠날 수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현재 진행형인 친일 청산의 의지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건히 지켜나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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