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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순간 (2024) - 대한민국을 설계한 20일의 역사

동방박사님 2024. 7. 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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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헌법이 제정된 순간
1948년 6월 23일부터 7월 12일까지
제헌국회 회의록에 담긴 정치의 향연
대한민국을 설계한 20일의 역사에서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찾는다
대한이 세워진 순간

1948년 5월 10일. 하늘이 권력을 하사하던 종래의 질서를 뒤엎고 국민이 작대기를 그어 일꾼을 뽑았다. 약 748만 명의 투표인과 95.5%의 투표율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제1대 국회의원 198인이 당선된다. 개원식이 끝난 직후 서울 시청 앞과 태평로, 세종로 일대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 제헌의원을 응원하고 자주독립을 축복하기 위한 시가행진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시기부터 염원하던 만민이 평등한 나라,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순간은 기나긴 압제를 물리친 해방의 커튼콜답게 성대하고 화려했다. 그러나 광복은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탄생하는 데에 걸린 기간은 고작 20일. 1948년 6월 23일에 헌법초안이 제헌국회 본회의장에 상정된 후 7월 12일에 이르러서야 헌법안 10장 103개 조항이 모두 통과된다. 대한민국을 설계한 20일의 역사는 제헌국회 회의록에 고스란히 기록되었고, 그 기록에 담긴 내용은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 따위에 함몰된 오늘날의 개헌 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속기사가 빼곡하게 작성한 20일의 기록에는, 당시 198명의 제헌의원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제헌헌법 제작에 착수했는지를 세밀하게 알 수 있다. 좋은 헌법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사명감, 하루속히 헌법을 제정해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책임감,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더 좋은 조항을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 국민의 삶을 더욱 이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치열함이 회의록 곳곳에 가득하다. 그런즉 제헌의원들이 혀끝으로 펼친 ‘정치의 향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한 원동력이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제공하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헌법은 자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약속이고, 약자의 삶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며, 공동체의 미래를 밝히는 이정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와 국민이 유리되고 희망이 상실되는 오늘날. 절망의 시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1948년 제헌국회의 헌법 제작 과정을 다룬 《헌법의 순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그날의 순간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미래를 찾는다.

목차

제헌헌법 제정 당시 국회 구성 …7
추천사 … 8
머리말 헌법의 순간을 기다리며 … 12

제1장 대한 사람 대한으로 -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결정한 이유 … 25
제2장 빼앗긴 좋은 단어 - 국민이냐 인민이냐, 기본권 주체 논쟁 … 47
제3장 내 사랑 한반도 - 영토 조항을 둘러싼 갑론을박 … 71
제4장 잃어버린 혁명 - 3·1혁명과 3·1운동 사이 … 91
제5장 암탉도 울어야 할 시간 - 축첩폐지, 남녀동권을 위한 첫걸음 … 111
제6장 ‘적어도’에 담긴 큰 힘 -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을 실시하라 … 131
제7장 민족의 양심으로 - 친일파 청산 의지가 담긴 제101조 … 149
제8장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라 - 신체의 자유, 고문받지 않을 권리 … 171
제9장 정치는 정치, 종교는 종교 - 국교 금지와 정교분리 … 199
제10장 진정한 광복은 경제민주화 - 노동자의 경영참여권과 이익균점권 … 223
제11장 찌개 냄비와 앞접시 - 양원제를 유보하고 단원제를 채택한 사연 … 253
제12장 단 한 사람만을 위한 -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뀐 까닭 … 277
제13장 대독총리와 대쪽총리 - 국무총리의 역할, 보좌인가 견제인가 … 307
제14장 낯선 이름, 심계원 - 회계검사기관의 역할이란 … 327

맺음말 다시, 헌법의 순간을 기다리며 … 342
참고 문헌 … 352
 

저자 소개

저 : 박혁
1971년, 전남 신안에 있는 작은 섬, 재원도에서 태어났다. 독일 남부에 있는 레겐스부르크대학교, 프리드리히 알렉산더(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서울시 시민대학에서 강의했고 동국대학교 객원 교수, 상명대학교 초빙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민주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저서로는 『이솝에게 배우는 민...

책 속으로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한에서만 치러진 총선거로 뽑힌 제헌의원들을 무시했습니다. 남북 영구 분단을 초래할 선거가 시행된 것이 안타깝고 못마땅했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만든 제헌헌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대로 된 헌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만든 졸속 헌법이라 하찮게 여겼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문서라고 낮잡았습니다. 다른 나라 헌법을 짜깁기한 모방 헌법이라 얕잡았습니다.

우연히 헌법의 순간과 마주쳤습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찬찬히 볼 기회가 있었지요. 그때 느낀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헌의원들이 들려준 생생한 목소리와 그들의 생각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활기에 넘치던지요! 간절함과 의지가 빚은 광경이 제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상대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언변과 논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정치의 향연’입니다. 그 향연이 가슴을 뛰게 하고, 가슴 속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머리말」중에서

1919년 3월 1일, 온 국민은 일본이 자행한 ‘대한 말살’에 저항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것도 백주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칩니다. 대한이라는 이름 자체가 독립을 의미했고, 대한을 외치는 일 자체가 항일입니다. ‘대한을 되찾는 일’이 광복입니다. 그런 자주독립정신과 항일정신이 이어져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합니다. 일본이 말살하려 했던, 대한이라는 국호를 지켜 자주독립의 기상을 드높입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자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입니다.
---「제1장 대한 사람 대한으로」중에서

국민이냐 인민이냐는 논쟁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나요? 기본권 주체를 인민으로 하자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주장에는 우리가 지향하고픈 한국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구성원 개개인에게 자유와 평등을 충실히 보장하는 나라이기를,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인권이 국가 구성원인 국민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 아니기를,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권리를 보장하고 이방인에게는 어떤 권리도 허용하지 않는 근대 국민국가와는 다른 나라이기를 바란 것입니다. 1948년, 변방에 있는 작은 독립국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세계 모범국가로 거듭나기를 열망합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오랜 시간 무국적자로 타국살이를 해야 했던 경험이 빚어낸 소중한 가치를 헌법에 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인민을 국민으로 바꾼 것은 단어 하나만 빼앗긴 게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분단과 이념갈등을 겪으며 위대한 열망과 소중한 가치까지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제2장 빼앗긴 좋은 단어」중에서

현행헌법 전문에는 “평화적 통일”을 대한국민의 사명이라고 밝힙니다. 현행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밝힙니다. 현행헌법 제66조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로 삼습니다. 1987년 개헌 이후 영토 조항은 북한을 평화통일을 위해 대화하고 협력해야 할 동반자로 삼는 근거가 됩니다.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하는 대한이 미래 목표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헌법의 순간, 영토 조항에 담고 싶었던 진정한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영토 조항은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회복하거나 팽창하지 않겠다는, 평화 국가를 향한 약속입니다. 또한 우리 영토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영토를 지키는 것이 주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3장 내 사랑 한반도」중에서

헌법의 순간 이전에도 시중에서 3·1혁명을 흔히 독립운동이라 불렀습니다. 문제는, 헌법의 순간이 3·1혁명의 역사적 성격과 국가적 의미를 재평가하고 재규정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입니다. 제헌헌법 전문에서는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민주공화국을 건립한다고 선언합니다. 3·1운동이 대한민국 뿌리라고 합니다. 그 평가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한 순간, 혁명 대신 운동을 선택한 것입니다. 과연 그 선택이 적절한 선택이었을까요?

헌법의 순간 이후 3·1혁명이란 단어는 낯설어졌습니다. 물론 혁명이라 부르려는 시도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정부 수립 뒤 국경일에 관한 법을 만들 때 3·1절 명칭을 ‘혁명일’로 하자고 소리친 이가 있었지만, 호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이미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한차례 정리된 터라 혁명일로 하자는 제안은 행차가 끝난 뒤에 부는 나팔소리 취급을 받습니다. 이제라도 한번 고민해야겠습니다. 과연 3·1혁명이라 부르는 게 부당할까요?
---「제4장 잃어버린 혁명」중에서

헌법의 순간, 제헌의원들은 ‘양성평등’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안 심사에서 바뀐 조항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제20조를 새롭게 만들어 냅니다. 그만큼 성차별 문제가 중차대한 사회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유진오 전문위원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제20조가 신설된 것이 제2독회에서의 가장 큰 성과였다.”라고 뿌듯해합니다. 그런데 1962년, 박정희 정권은 제헌헌법 제20조를 바꿉니다. 그간 남녀평등이 달성되어 세상이 많이 변하기라도 한 걸까요?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제헌헌법에 있던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라는 문구를 삭제해 버립니다. 대신 “모든 국민은 혼인의 순결과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하는 바람에, 제헌헌법 제20조를 만든 취지가 무색해져 버립니다. 다행히 현행헌법은 제헌헌법 제20조를 제36조로 옮겨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정합니다. 문구가 약간 바뀌었을 뿐, 가족과 혼인에서 여성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제헌헌법 제20조가 지녔던 정신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헌법의 순간에 탄생한 제20조는 남녀가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지향점을 제시합니다.
---「제5장 암탉도 울어야 할 시간」중에서

헌법의 순간, 제16조에 적어도라는 세 글자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그 단어 하나가 헌법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요. 최소한 초등교육 6년간은 무상의무교육을 실현하고 나라 경제가 나아지면 점차 중등교육으로 무상교육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약속입니다. ‘적어도’라는 단어 하나로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범위를 확대하자는 약속을 언제든 지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제6장 ‘적어도’에 담긴 큰 힘」중에서

신현돈 의원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반대하는 주요 논리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는 법은 망민법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검토해봅시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 “면장이고 구장이고 동장이고 반장이고 모두를 잡아넣을 수 있게 되어있어 온 국민을 그물로 옭아맨다.”라며 공포를 유발합니다. 둘째, 친일파 청산 문제를 이념대립의 쟁점으로 몰아갑니다.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은 빨갱이”라는 선동이 횡횡합니다. 끝내 선동에 그치지 않습니다. 헌법에 따라 반민법 제정을 주도했던 소장파 의원들을 간첩으로 몹니다. 북한 지원과 지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거짓말로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해 감옥살이를 시킵니다. 셋째, 정부를 수립한 후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주장합니다. 인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친일파를 모두 처벌하면 나라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넷째,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주장입니다. 이젠 과거를 잊고 모두 멀쩡히 살고 있는데 왜 긁어 부스럼을 내느냐는 투정입니다. 다섯째, 민생우선론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왜 한가하게 친일파 청산을 운운하냐고 합니다. 거리에 나가면 배고파 못 살겠다며 밥 달라 옷 달라 하는 사람은 있어도, 친일파 때문에 못 살겠으니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 논리들이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친일파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었습니다.
---「제7장 민족의 양심으로」중에서

헌법의 순간 불거진 ‘인권이냐, 치안이냐’는 갈등은 사실 화해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며 개인이 자유롭게 살려면 안전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어요? 헌법의 순간, 불안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는 치안을 내세워 인권을 탄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찰 관리들의 패악질은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매한가지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를 악랄하게 다루었던 고문왕 노덕술이 치안기술자랍시고 다시 활개를 치는 당시 현실이 얼마나 참담했겠어요?

역사를 보면 독재는 늘 안전을 빌미로 자유를, 치안을 빌미로 인권을 억누르며 득세합니다. 자유나 인권이 밥 먹여 주냐고 윽박지릅니다. 자유와 인권도 강력한 안전과 안보를 바탕으로 가능하다고 협박합니다. 그러면서 자유와 인권을 뒷전으로 밀어냅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야만적인 독재의 논리가 오랫동안 힘을 떨쳤습니다. 그 논리 앞에서, 헌법의 순간 마련된 신체의 자유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뤄 온 한국 사회의 민주화란, 헌법 안에서 박제된 채 웅크리고 있던 자유와 인권을 살아서 펄펄 뛰게 해 온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유와 인권도 안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룹니다.
---「제8장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라」중에서

헌법의 순간에 새겨진 헌법 정신은 분명합니다. 다양한 종교인은 물론 무신론자까지 모두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민주공화국을 바랍니다. 민주공화국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합니다. 국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고 종교는 특정 정치집단에 협력하는, 정치의 종교화나 종교의 정치화는 그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정치인이 종교인의 표를 얻으려고 특정 종교에 빌붙거나 종교 지도자가 표를 무기로 정치세력을 주무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국가는 종교적 중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종교도 국가권력에 휘둘리거나 결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헌법 정신입니다. 정치 지도자들도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종교 편향적인 발언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런 발언들이 종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헌법 정신을 잘 실천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평화로운 다종교 국가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제9장 정치는 정치, 종교는 종교」중에서

노동자 경영참여권은 빠지고 노동자 이익균점권만 헌법에 담기게 됩니다. 이 결과는 어떤 의미일까요? 기업가의 경영권을 자유롭게 보장하되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일종의 타협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공산주의 체제의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말하며 이 사안을 이념문제로 몰고 간 수정안 반대파 전략이 성공한 셈입니다.
---「제10장 진정한 광복은 경제민주화」중에서

유진오 전문위원은 자신이 설계한 양원제는 영국식 양원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국민대표로 하원을 구성하고, 지역대표나 직능대표를 별도로 뽑아 상원을 구성하자고 합니다. 양원 의원들을 달리 뽑아서 달리 활동하게 하면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내세웁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더 신중하고 차분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원과 상원이라는 두 단계를 거치는 건 마치 뜨겁게 끓는 냄비에서 찌개를 바로 먹지 않고 앞접시에 한 번 덜어 먹는 모습과 같습니다. 뜨거운 상태 그대로 먹지 말고, 알맞게 식혀 먹자는 것입니다.
---「제11장 찌개 냄비와 앞접시」중에서

강욱중 의원 발언 중에 유난히 매력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내각책임제에서 일어나는 잦은 정치변화(정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대통령제에서는 정치변화가 없어서 의원내각제보다 훨씬 안정적이라는 이원홍 의원의 시각이 편협하기 그지없다고 성토합니다. 국회가 정부를 불신임하고 정부가 국회를 해산하여 생기는 정변은 오히려 정치를 더 생생하게 하고, 현실을 개혁할 수 있게 한다는 멋진 반론을 폅니다. 내각책임제에서 일어나는 정변은 오히려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반란이나 쿠데타 같은 극단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어 유익하다는 주장도 합니다.
---「제12장 단 한 사람만을 위한」중에서

헌법의 순간, 제헌의원들이 국무총리에게 건 기대는 분명합니다. 대통령 1인이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거나 인사를 전횡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정부가 대통령 사랑방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행정부와 국회가 협치하는 데 큰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통령은 결코 총리와 권력을 나누지 않습니다. 총리를 국회와의 협치를 주도하는 매개로 삼지도 않습니다. 국회에 나가 자기 대신 국회의원들과 싸울 만한 사람을 국무총리로 세웁니다. 국무총리도 자기 권한을 헌법대로 행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헌법에 담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도 종이 위에만 있는 권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대독총리, 식물총리’라는 조롱을 견디며 삽니다.
---「제13장 대독총리와 대쪽총리」중에서

헌법의 순간에도 회계검사는 중요한 주제로 부상했습니다. 이제 막 해방된 나라여서 국가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1948년 10월쯤 나라의 적자가 약 85억 원이나 됩니다. 같은 해 1년 예산이 194억 정도였으니 예산 대비 적자 폭이 엄청납니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습니다. 나랏빚은 늘어만 갑니다. 나라 살림을 더 꼼꼼하고 알뜰하게 처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랏돈을 부정하게 쓰거나 허투루 새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회계검사기관 설치 조항을 헌법에 마련합니다. 헌법초안(헌법안) 제94조는 “국가의 수입 지출의 결산은 매년 심계원에서 검사한다.”라고 해 심계원(審計院)이라는 회계검사기관을 둡니다.
---「제14장 낯선 이름, 심계원」중에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헌법의 순간 이후 헌법은 몇 차례 바뀝니다. 그 변화가 이어지면서 헌법의 순간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 뿌리인지 드러납니다. 이런저런 흔들림에도 헌법의 순간에 새겨진 헌법 정신은 면면히 이어집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자유롭고 평등하며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헌의원들이 만세토록 이어지기를 바랐던 정신입니다. 이 헌법 정신이 뿌리가 되어 대한민국이 세계 모범국가로 성장해 온 것입니다.
---「맺음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1948년 제헌국회를 둘러싼 14개 논쟁

1948년에 성립된 제1대 국회는 숱한 위기에 둘러싸였다. 남한 단독선거가 남북 분단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로 좌익 세력이나 임시정부 출신 명망가는 선거에 불참했다. 선거에 참여한 이들도 각자의 목적과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하고 갈등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순간은, 198인의 동상이몽으로 점철된 처절한 사상전(思想戰)이자 향후 정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권력 암투의 전초전(前哨戰)이기도 하였다. 박혁 작가는 《헌법의 순간》에서 제헌국회를 뒤흔든 14개 논쟁을 엄선하여 각 장에 하나씩 소개한다. 숨이 막히도록 치열한 논쟁의 순간을 소설에 견줄 만큼 상세하게,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서술하였다. 그런즉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당시 제헌국회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국가 정체성으로 성립하고자 노력했다. 독립운동은 일본제국을 몰아내기 위한 물리적 투쟁이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상적 저항이기도 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제1장 〈대한 사람 대한으로〉는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과정을 소개한다. 일제는 한민족의 주권을 강탈한 직후 통합된 한국을 염원한 ‘대한’이란 이름을 말소하고 망국을 상징하는 ‘조선’을 부활시켰다. 즉 1919년 3월 1일의 혁명은, 대한의 이름과 뜻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에는 자주독립정신과 항일정신으로 성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제3장 〈내 사랑 한반도〉에서도, 국토를 부르는 명칭인 ‘한반도’ 역시 빼앗겼다 되찾은 말로 여기며 헌법에 담겼다.

독립운동을 대한민국의 시원으로 세우기 위한 작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제4장 〈잃어버린 혁명〉에서, 이승만을 포함한 여러 의원은 3·1혁명을 3·1운동으로 명칭을 바꾸며, 그 의미를 격하했다. 제7장 〈민족의 양심으로〉에서 친일파 청산을 규명한 제101조 통과 여부를 둘러싼 갈등을 살펴보자. 한국민주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끈질기게 친일파 청산조항을 만들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방해했다. 훗날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무참히 탄압받았던 것처럼, 공동체의 정의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친일세력의 저항에 번번이 시달려야 했다.

둘째, 제헌헌법에는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제헌의원들은 민주공화국 헌법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고들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이다. 제2장 〈빼앗긴 좋은 단어〉, 제8장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라〉, 제9장 〈정치는 정치, 종교는 종교〉, 제10장 〈진정한 광복은 경제민주화〉에서는 과거의 부조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용 전반을 관통한다. 제2장에서는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할 주체로 ‘국민’과 ‘인민’ 중 무엇이 옳은지로 논쟁한 과정을 보여준다. 법이 국가와 국가 구성원 간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국민’이라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1948년 제헌국회에서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인민’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의원도 여럿 있었다. 제8장에서 ‘신체의 자유’와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봐도, 제헌국회가 보편 인권에 얼마나 민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제9장에서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위해 국교를 금지와 정교를 분리한 과정을 소개한다. 제10장에서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숱한 의원이 수정안을 제안하고 보수세력과 맞서 싸웠다. 즉 제헌의원들은 식민지배 36년을 겪으며 인권, 신체와 양심의 자유, 경제적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느꼈고, 그 가치를 헌법에 담아 세계 모범국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부단히 애썼다.

또한 제헌헌법에는 당대 사회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제5장 〈암탉도 울어야 할 시간〉에서는 당시 만연했던 축첩의 폐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설명한다. 여성참정권이 도입되고 여성 후보도 출마했으나 제헌국회는 영락없이 ‘홀아비 국회’가 되었다. 국회 밖에서는 고위공직자가 버젓이 축첩하고 아내를 억압하며 가정파탄에 일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헌법초안에도 없던 제헌헌법 제20조가 신설된 것은 참으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제20조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라는 조항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받았던 차별을 없애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제헌국회가 노력한 증거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제6장 〈‘적어도’에 담긴 큰 힘〉의 경우, 무상의무교육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헌의원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당시, 초등교육만 무상의무교육으로 보장한다는 조항을 두고 모두가 아쉬워했다. 또한 1947년부터 시행된 ‘미성년자노동보호법’에 따르면, 초등교육까지만 이수하고 이후 중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아동들은 노동도 할 수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헌의원들은 조항 안에 ‘적어도’라는 세 글자를 새로 삽입해 훗날을 도모하기로 잠정 합의한다. 제헌헌법 제16조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에서, ‘적어도’라는 단어 덕분에 추후 무상의무교육의 범위를 넓힐 근거를 확보하였다.

한국식 대통령제가 탄생한 내막

앞선 두 가지가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두고 대립한 사상전과 밀접하다면, 마지막은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쟁의 전초전과 밀접하다. 셋째, 한국만의 독특한 정치제도, ‘한국형 대통령제’는 헌법의 순간에서 헌법초안이 번복된 결과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던 당시에는 사실 양원제와 의원내각제로 구성된 정치체제를 지향한 의원이 적잖았다. 제12장 〈단 한 사람만을 위한〉에서, 헌법초안을 제작한 헌법기초위원회는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를 기초에 둔 헌법을 설계했다. 대통령제에서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마땅한 방도가 없고, 정부와 국회가 대립하는 국면을 해소할 방도가 없어서였다. 실제로 헌법 설계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유진오 박사는, 공교롭게도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를 1948년 그날에 예측했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무리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어도 불신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회가 무슨 횡포를 저지르든 다음 선거 때까지는 국회를 해산할 방도가 없다. 헌법을 위반하거나 크나큰 위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대통령제 아래서는 정부나 국회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현 대통령의 무리한 거부권 남발, 정부와 제1야당의 대립 등으로 현실 정치에 유감을 느끼던 독자라면, 《헌법의 순간》에서 소개하는 제헌의원들의 논쟁이 참으로 절묘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계산하여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맥락도 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보수정당인 한국민주당 출신과 무소속 의원이 주도했는데, 그들은 이승만처럼 대통령으로 내세울 명망 있는 인물이 없었다. 그들은 내각책임제가 아니라면 추후 주도권을 확보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의원내각제를 헌법초안에 담기로 구성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하지만 누군가 강력하게 대통령제를 주창하며 헌법초안의 내용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바로 당시 임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이었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그는, 의원내각제 헌법 아래서는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헌법기초위원회를 압박했다. 가뜩이나 임시정부 출신 인사가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머지않아 수립될 정부에 이승만조차 없다면 그 정부는 국민의 신망을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대통령제로 헌법초안이 바뀌게 된다.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결국에는 “사회안정과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다.”라는 정세론에 밀려 대통령제가 채택된다.

의원내각제가 하루아침에 대통령제로 바뀐 것처럼 헌법초안의 많은 내용이 여러 정파의 정치적 이권과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세에 따라 뒤집혔다. 제11장 〈찌개 냄비와 앞접시〉에서도, 양원제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서 양원제를 유보하고 단원제를 채택한 사연을 알 수 있다. 또한 갑작스럽게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초기 헌법기초위원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내용이 헌법에 담겼다. 가령 제13장 〈대독총리와 대쪽총리〉와 제14장 〈낯선 이름, 심계원〉에서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뀐 이후 헌법초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린다. 국무총리 임명 시 국회 승인을 받으면서도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추천권은 보장받지 못하게 된 점, 정부가 전년도 예결산을 국회에 심사받지 않고 보고만 하고 끝나는 점이 그러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들어간, ‘한국식 대통령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당시 강욱중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이는 헌법안이 갑자기 바뀌면서 ‘잡탕’이 된 결과에 가깝다. 즉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한국식 대통령제란, 의도적으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안배가 아니라 제헌국회에서 벌어졌던 논쟁과 대립에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다.

제헌헌법에서 발견하는 민주공화국의 오래된 미래

《헌법의 순간》의 지은이는 제헌국회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관해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자 여러분이)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처럼 헌법의 순간을 마음껏 상상했으면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산’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제헌국회가 제정한 대한민국 헌법은 단순히 그날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헌법이다. 제헌의원이 펼친 정치의 향연은 그날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토론이다. 지은이가 맺음말에서 한 번 더 언급하듯 제헌국회 회의록에 적힌 그들의 논쟁, 토론, 고뇌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담겨 있다.

현행헌법이 개정된 지 40년 가깝게 흘렀다. 서서히 개헌이 화두에 오르고, 나아가 ‘제7공화국’을 언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응당 현행 대통령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관심이 있을 테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바가 단순히 대통령제 혹은 정치체제 개혁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헌법은 국가와 인민의 약속이자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헌법이 제정된 이래 총 아홉 차례를 개헌했다. 그런데 그중 태반이 소수를 위한, 또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개헌이었다. 즉 한국현대사에서 개헌은, 헌법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비정상적 정치 파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시행됐다. 그런 점에서 정치체제 변화에만 함몰된 오늘날의 개헌 논의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보편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 독재정권 시기의 개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개헌 이야기는 이전과는 달라야 하고, 그런 점에서 《헌법의 순간》은 개헌을 둘러싼 논의를 질적으로 뒤바꿀 것이다.

이 책은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제헌국회는 정부 형태를 둘러싼 논쟁에만 함몰되지 않았다. 당시 제헌 국회의원들은 노동권의 보장(이익균점권), 여성의 권익 확충(남녀 혼인동권과 축첩폐지), 공동체의 정의 실현(친일파 청산), 보편 인권의 보장(신체의 자유와 고문받지 않을 권리), 무상의무교육의 필요성 등 중차대한 가치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였다. 당시의 논쟁을 꼼꼼히 살펴보면, 당대인이 꿈꾸던 미래가 곧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던 문제 대부분이 제헌헌법을 제정하던 순간부터 논의되었던 것이고, 제헌의원은 치열하게 논쟁하며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분명히 가리켰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간 잊고 있던 오래된 미래를 발굴한다는 의의가 있다.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에게 이 책을 당당하게 추천한다.

추천평

뜨겁습니다. 제헌의원들은 ‘헌법의 순간’에 우리 공동체의 과거를 진단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친 숨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열정이, 그들의 의견이 우리의 조국을 ‘대한민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은이는 제헌의원들의 그 뜨거운 열정을, 그 거친 숨결을 하나씩 하나씩 펼쳐갑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긴박한 뜨거움으로 얼굴과 손이 데일 것 같습니다.

뛰어납니다. 지은이는 현실에 기반을 둔 구체적 상상력으로 제헌의원들의 뜻을 읽습니다. 지은이는 직접 제헌의원이 되어 그들의 감정, 그들의 열망, 그들의 애국심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제헌의원의 옛 말을 현재 우리의 말로, 수려한 문장과 문학적 표현으로 바꿉니다. ‘헌법의 순간’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포착하여 우리에게 눈으로 보여줍니다. 박혁 박사의 이야기는 그저 상상이 아닙니다. 헌법에 쓰인 차가운 단어를 뜨거운 가슴의 언어로 치환합니다. 우리에게 국가가 무엇인지, 헌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가슴으로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순간을 맞이합니다. 삶이 순간이고, 순간의 연속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순간이 뜨거운 것처럼, 우리의 순간이 벅찬 것처럼,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입법의 순간도, 곧 다가올 ‘헌법의 순간’도 뜨겁고 벅찬 과정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공동체가 진정 ‘우리’의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공동체가 진정 우리의 ‘미래’를 향한 단단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모두 ‘헌법의 순간’을 숙명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제헌의원과 같은 엄숙한 사명으로 ‘입법의 순간’을 살며 지금의 공동체를 미래로 향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헌법의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박혁 박사의 책은 우리가 맞이할 ‘헌법의 순간’을 현재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께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헌법과 우리나라를 위하여!
- 곽상언 (제22대 국회의원)
헌법, 그것도 1948년 7월 17일의 헌법이 어쩌면 이토록 생생한 논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이 책이 다루는 제1공화국이 탄생하기까지의 논쟁은, 제7공화국을 향한 도전이 번번이 무산되고야 마는 이 시대의 개헌 논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행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지은이의 지성과 상상력 덕분에 잿빛에 묻힌 제헌헌법 조문들이 총천연색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헌법 정신’으로 되살아났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제헌’이라는 역사속 순간을 보편적 가치와 오늘의 의미로 풀어낸 이 책은, 현재와 과거의 가장 뜨거운 대화라고 평가할 만하다.
- 엄지원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헌법은 나라의 정신적 기틀을 표현한 것이다. 기틀을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해서는 그 기틀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살아갈수록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지는 사람이라면, 그 기틀이 세워진 순간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바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헌법의 순간』은 나라의 기틀을 세운, 1948년 건설자들의 열정적 고뇌와 토론을 생생하게 복기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우리의 내일을 질문하게 될 것이다.
- 김율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중세의 아름다움』의 지은이)
이 책은 멀고도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과정을 오늘의 일상처럼 생생하게 소개해주는 ‘제헌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정교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헌법 제정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제헌의원들이 치열하게 논의했던 쟁점을 75년이 지난 현재로 소환한다. 본격적인 개헌논의를 앞둔 시점에 독자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왜 제헌헌법에서 의원내각제 대신 대통령제를 채택했는가? 고문 금지 조항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고 노동자 경영참여 조항은 왜 누락됐는가? 이 질문들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향후 개헌 추진 과정에서 국민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알려줄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갈수록 희망이 옅어지는 오늘날,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헌법의 순간』은 정치와 역사가 어우러진 흥미로운 내용으로 독자를 한걸음 성장시킨다. 소설에 견줄 만큼 상세한 묘사와 드라마처럼 생생한 서술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게끔 이끌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정치와 법을 가르치는 사회과 교사로서,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아이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그토록 치열하게 만든 것이 제헌헌법이고, 그때의 헌법 정신이 여전히 한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며, 우리 사회를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한국현대사와 헌법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김지은 (의정부여고 일반사회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