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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 발발 200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것으로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기획 시리즈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 받은바 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 속에 다양한 활동가들의 면모, 놓쳐서는 안 될 주요 사건들과 당대의 풍조가 잘 녹아 있고, 특히 생생한 인물 묘사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으로 독자들에게 소설이나 영화를 접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인 존 찰스 채스틴(John Charles Chasteen, 1955~ )은 1810~20년대 독립투쟁에 나선 인물 군상이 누구인지, 그들이 새로운 독립국가를 수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여러 세력 간의 충돌 양상이 어떠했는지 등에 주목하면서 매력적인 필치로 19세기 라틴아메리카의 혼란스러운 정치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상을 위해 현실의 가파른 고비를 넘으려던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진지한 헌사를 바치고 있다.
목차
등장인물
부왕
주요 등장인물
연표
머리말 왜 '아메리카노'인가
제1장 아메리카의 발견 1799~1805년
제2장 군주정의 기둥들 1806~10년
제3장 야만적인 내전 1810~12년
제4장 독립운동의 패배? 1812~15년
제5장 독립의 성취 1816~24년
제6장 국가 건설이 시작되다 1825~40년
에필로그 유산이 지속되다
용어해설
출처와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파노라마
찾아보기
부왕
주요 등장인물
연표
머리말 왜 '아메리카노'인가
제1장 아메리카의 발견 1799~1805년
제2장 군주정의 기둥들 1806~10년
제3장 야만적인 내전 1810~12년
제4장 독립운동의 패배? 1812~15년
제5장 독립의 성취 1816~24년
제6장 국가 건설이 시작되다 1825~40년
에필로그 유산이 지속되다
용어해설
출처와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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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 -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 이주 흑인 노예의 배제
흔히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로 쓰든, 아니면 영어로 쓰든 모두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단 한 번도 '아메리카'를 미국과 동의어로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아메리카인'은 미국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포함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을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인'(americano)이란 영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1807~08년, 다시 말해 나폴레옹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침공해 아메리카에 중대한 변화가 조성된 시기에 '아메리카인'이라고 하면 흔히 백인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혈 진압으로 소요가 가라앉는 1825년에 이르면 아메리카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때 아메리카인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그리고 혼혈인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780년대 페루의 투팍 아마루 반란이나 1790년대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의 노예 봉기를 발판으로 181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에 가장 먼저 항거한 리오데라플라타(현재의 아르헨티나), 시몬 볼리바르의 활약이 두드러진 누에바그라나다(현재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인적ㆍ물적 피해가 가장 컸던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멕시코), 그리고 유혈투쟁의 양상이 덜 심각했던 브라질 등 네 지역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사례가 예증하듯이, 초창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원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였지만 곧 이들의 봉기가 좌절된 뒤 식민 당국의 반(反)혁명이 얼마간 지속되었고 결국 독립은 정치체제의 제한적인 변화를 바라는 안정 지향적인 크리오요(criollo,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 / 영어식 표현으로는 '크리올')들의 주도로 성취되었다. 어디서나 독립투쟁은 지배 세력인 페닌술라르(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백인)와 크리오요 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특징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지적한 대로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의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오요의 독립투쟁은 페닌술라르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에서 점차 유럽 혈통과 아프리카 혈통이 섞인 파르도(pardo)가 에스파냐인의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보수적인 혁명으로 변모했다. 앞서 1790년대에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휘 아래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발생한 '흑인 혁명'같이 급진적인 대중 봉기와 인종 갈등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훔볼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귀족들은 아메리카 출신 하층민의 통치보다 외국인의 지배를 선호"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도 「앙고스투라 의회 연설」(1819)에서 크리오요의 복잡한 형편과 이중적 갈등을 "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의 혼혈입니다.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며 법적으로는 유럽인인 우리는 원주민과 소유권을 놓고 다투어야 하고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살기 위해 침략자에 맞서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분리를 이뤄냈지만 각 지역의 독립투쟁은 아메리카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손실과 희생을 초래했다. 광산과 대농장의 생산량은 독립투쟁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유럽이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1820년대에 독립하게 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서는 신생 공화국 미국이 179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이득의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을 배제한 채 크리오요 엘리트층이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화는 국가의 독립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걸출한 개인과 집단 차원의 독립으로 여겨졌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 -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
오늘날 아메리카는 서양과 그 밖의 다른 지역 간의 경계에 다소 모호하게 서 있다. 아메리카인들은 언어, 종교, 물질문화, 정치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압도적으로 서양적이다. 대다수 아메리카인들은 순수한 유럽인 혈통을 계승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사회 또한 유럽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도 라틴아메리카의 다인종국가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자유주의적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 있다. 다인종 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 시민권의 충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어온 투쟁이었고 여전히 결코 끝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의 과업이다. 아메리카인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가파르고 장애물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과정은 이런 가치들의 혁명적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이한 전통에 따라 형성된 사회에 전파되었을 때 어떤 저항을 유발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은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었다. 아메리카의 인민주권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1945년에 전 세계적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흔히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로 쓰든, 아니면 영어로 쓰든 모두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단 한 번도 '아메리카'를 미국과 동의어로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아메리카인'은 미국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포함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을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인'(americano)이란 영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1807~08년, 다시 말해 나폴레옹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침공해 아메리카에 중대한 변화가 조성된 시기에 '아메리카인'이라고 하면 흔히 백인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혈 진압으로 소요가 가라앉는 1825년에 이르면 아메리카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때 아메리카인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그리고 혼혈인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780년대 페루의 투팍 아마루 반란이나 1790년대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의 노예 봉기를 발판으로 181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에 가장 먼저 항거한 리오데라플라타(현재의 아르헨티나), 시몬 볼리바르의 활약이 두드러진 누에바그라나다(현재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인적ㆍ물적 피해가 가장 컸던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멕시코), 그리고 유혈투쟁의 양상이 덜 심각했던 브라질 등 네 지역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사례가 예증하듯이, 초창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원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였지만 곧 이들의 봉기가 좌절된 뒤 식민 당국의 반(反)혁명이 얼마간 지속되었고 결국 독립은 정치체제의 제한적인 변화를 바라는 안정 지향적인 크리오요(criollo,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 / 영어식 표현으로는 '크리올')들의 주도로 성취되었다. 어디서나 독립투쟁은 지배 세력인 페닌술라르(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백인)와 크리오요 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특징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지적한 대로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의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오요의 독립투쟁은 페닌술라르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에서 점차 유럽 혈통과 아프리카 혈통이 섞인 파르도(pardo)가 에스파냐인의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보수적인 혁명으로 변모했다. 앞서 1790년대에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휘 아래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발생한 '흑인 혁명'같이 급진적인 대중 봉기와 인종 갈등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훔볼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귀족들은 아메리카 출신 하층민의 통치보다 외국인의 지배를 선호"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도 「앙고스투라 의회 연설」(1819)에서 크리오요의 복잡한 형편과 이중적 갈등을 "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의 혼혈입니다.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며 법적으로는 유럽인인 우리는 원주민과 소유권을 놓고 다투어야 하고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살기 위해 침략자에 맞서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분리를 이뤄냈지만 각 지역의 독립투쟁은 아메리카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손실과 희생을 초래했다. 광산과 대농장의 생산량은 독립투쟁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유럽이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1820년대에 독립하게 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서는 신생 공화국 미국이 179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이득의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을 배제한 채 크리오요 엘리트층이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화는 국가의 독립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걸출한 개인과 집단 차원의 독립으로 여겨졌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 -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
오늘날 아메리카는 서양과 그 밖의 다른 지역 간의 경계에 다소 모호하게 서 있다. 아메리카인들은 언어, 종교, 물질문화, 정치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압도적으로 서양적이다. 대다수 아메리카인들은 순수한 유럽인 혈통을 계승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사회 또한 유럽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도 라틴아메리카의 다인종국가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자유주의적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 있다. 다인종 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 시민권의 충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어온 투쟁이었고 여전히 결코 끝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의 과업이다. 아메리카인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가파르고 장애물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과정은 이런 가치들의 혁명적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이한 전통에 따라 형성된 사회에 전파되었을 때 어떤 저항을 유발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은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었다. 아메리카의 인민주권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1945년에 전 세계적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27.세계국가의 이해 (독서>책소개) > 7.남아메리카(라틴.중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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