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종교의 이해 (독서)/3.신화학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방박사님 2022. 5. 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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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궁극의 바이블이자 서구 문명의 기반인 그리스·로마 신화를 한 권으로 개괄할 수 있는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김헌은 [차이나는 클라스], [책 읽어 주는 나의 서재], [벌거벗은 세계사]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고전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있는 고전학자로서 그간 연구하고 들려주었던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 책에 집대성했다.


· 오직 이 한 권으로 읽는 인류 궁극의 필독서
· 고전학자의 깊은 성찰로 새롭게 태어난 신과 영웅의 세계
· 신화에 기반하여 정성껏 그린 고전 작품의 세밀화
· 희랍어와 라틴어 원전을 바탕으로 한 21세기형 신화

 들어가며: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


1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1 카오스, 천지 창조의 하품을 하다 | 2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 3 야누스, 세상의 문을 열다 | 4 카오스의 무시무시한 자손들 | 5 가이아, 최초의 질서를 세우다 | 6 타르타로스, 지하 세계를 지배하다 | 7 에로스, 세상을 움직이다 | 8 우라노스, 땅 위에 군림하다 | 9 자식들을 땅속에 가둔 우라노스 | 10 크로노스, 아버지를 거세하다 | 11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다양한 이야기 | 12 제우스,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다 | 13 영원한 권력을 쥔 제우스 | 14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까닭은? | 15 프로메테우스, 제우스를 굴복시키다 | 16 아틀라스의 어리석은 선택 | 17 신마저 거부할 수 없는 스튁스강의 맹세 | 18 포세이돈, 종살이하다 | 19 하데스, 죽은 자들의 왕이 되다 | 20 사후 세계에 대한 플라톤의 상상 | 21 헤라, 제우스의 아내가 되다

2부 신들의 영광

1 무사(Mousa), 신화를 노래하다 | 2 아홉 명의 무사, 어떤 일을 했을까? | 3 아테나,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다 | 4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세상을 비추다 | 5 월계수를 사랑한 아폴론 | 6 아스클레피오스, 의술의 신이 되다 | 7 아르테미스, 오리온을 사랑하다? | 8 아레스, 전쟁의 신이 되다 | 9 헤파이스토스, 불굴의 장인이 되다 | 10 아프로디테의 남자들 | 11 마이아, 오월의 여왕이 되다 | 12 헤르메스, 전령의 신이 되다 | 13 질투의 여신, 아글라우로스를 망치다 | 14 디오뉘소스, 포도주의 신이 되다 | 15 비극의 주인이 된 디오뉘소스 | 16 밤하늘에 빛나는 처녀는 누구인가? | 17 천칭은 누가 들고 있는가? | 18 제우스, 거신들의 반란을 제압하다 | 19 거대한 튀폰, 무시무시한 자식들을 낳다 | 20 제우스의 영광, 올륌피아와 네메니아 제전 | 21 포세이돈의 영광을 기리는 이스트미아 제전 | 22 포세이돈의 여자, 메두사 | 23 케이론, 영웅들의 스승이 되다 | 24 에로스, 프쉬케를 사랑하다 | 25 판, 사람을 놀라게 하다 | 26 가뉘메데스, 불멸의 시종이 되다 | 27 신들, 과학 속에 살아 있다

3부 영웅의 투쟁


1 최초의 인간과 영웅의 탄생 | 2 판도라, 항아리 뚜껑을 열다 | 3 데우칼리온과 퓌르라, 홍수에서 살아남다 | 4 이오, 암소로 변해 세상을 떠돌다 | 5 파에톤, 태양의 마차에서 추락하다 | 6 에우로페, 유럽 문명의 어머니 | 7 페르세우스, 뮈케네 문명을 세우다 | 8 탄탈로스,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프다 | 9 시쉬포스,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리다 | 10 벨레로폰테스, 페가소스에서 추락하다 | 11 테세우스, 영웅의 길을 가다 | 12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 | 13 아이게우스, 에게해에 빠지다 | 14 힙폴뤼토스, 무고하게 죽다 | 15 이카로스, 날개를 잃고 추락하다 | 16 카드모스, 테베를 세우다 | 17 하르모니아의 목걸이, 테베의 비극이 되다 | 18 카드모스에서 오이디푸스까지 | 19 오이디푸스, 운명에 맞서 싸우다 | 20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전쟁을 벌이다 | 21 안티고네, 목숨을 걸고 권위에 도전하다 | 22 이아손, 황금 양털을 찾다 | 23 황금 양털은 왜 콜키스에 있었나? | 24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랑·배신·복수의 아이콘이 되다

4부 불멸과 필멸


1 헤라클레스, 열두 과업을 완수하다 | 2 죽음을 이겨 내고 신이 된 헤라클레스 | 3 오르페우스, 하데스로 내려가다 | 4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쌍둥이자리가 되다 | 5 헬레네의 남자들 | 6 아가멤논, 딸을 제물로 바치다 | 7 클뤼타임네스트라, 자식들의 손에 죽다 | 8 아킬레우스, 불멸의 명성을 선택하다 | 9 아이아스의 딜레마 | 10 트로이아의 목마, 전쟁을 끝내다 | 11 오뒷세우스가 10년 동안 방랑한 까닭은? | 12 필멸의 세계로 돌아온 오뒷세우스 | 13 아이네아스, 트로이아를 탈출하다 | 14 아이네아스의 선택, 사랑인가 조국인가? | 15 로물로스,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우다 | 16 바우키스와 필레몬, 한 그루 나무가 되다 | 17 아라크네, 거미가 되다 | 18 나르키소스, 사랑에 빠지다 | 19 귀게스의 반지, 정의를 묻다 | 20 미다스, 황금 손과 당나귀 귀 | 21 퓌그말리온의 기적 | 22 사랑의 비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 23 쇠똥구리를 탄 농부, 평화의 여신을 구하다

나가며: 신화를 위한 우화
 

 

 

저자 소개 

저 :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교수. ‘지혜를 사랑한다’의 합성어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말에 이끌려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에 정진하게 된 고전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따르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고전 비극, 역사, 철학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20여 년 가까이 이어온 그의 그리스·로마 신화 강의는...
 

책 속으로

이제 여러분을 신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대부분 신과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존재로서 신적인 능력과 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신과 인간의 경계선에서 추락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웅이든 신이든 모두 인간의 본성을 비춰 주는 거울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p.10

‘바람둥이 제우스’라는 이미지 안에 담긴 신화적 상징과 은유적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면, 아주 중요한 배울 점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사실 저는 제우스가 무척 부럽습니다. 그가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여성을 취하며 마음껏 바람을 피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행위가 갖는 의미 때문에 말입니다. (…) 그가 바람둥이가 된 것은 단순히 그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권력을 확장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믿을 만한 협력자를 얻으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던 셈입니다.
--- p.83

『프로타고라스(Pr?tagoras)』에서는 신들이 땅속에서 흙과 불,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혼합된 것들을 잘 섞어서 동물과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들에게 동물과 인간 각각에게 잘 어울리는 능력을 나눠 주라고 맡겼답니다. 일단 에피메테우스가 다양한 능력을 생명체들에게 나눠 주면 프로메테우스가 최종적으로 검사를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이 있는 줄을 까맣게 잊고는 글쎄 다른 동물들에게 모든 능력을 나눠 주었답니다. 일단 일을 저질로 놓고 ‘나중에(Epi-) 생각하는 자(metheus)’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겁니다. 형이 이 일을 알면 어쩌나 쩔쩔 맸겠지요? 그러니까 두 형제가 일을 바꿔 맡았어야 이런 실수가 없었을 겁니다. ‘미리(Pro-) 생각하는 자(metheus)’가 능력을 분배하고, 에피메테우스가 나중에 검사를 했더라면 좋았겠지요.
--- p.293

콜키스에 정말로 황금 양털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런 신비로운 물건이 진짜로 있었다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허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 2009년의 일인데요, 감바시즈와 시카루리즈라는 고고학자는 여러 명의 독일과 그루지야 고고학자들를 데리고 그루지야 남서에서 발굴 작업을 하였습니다. 지금의 그루지야가 옛날의 콜키스였는데, 바로 그곳에서 약 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광이 발견됐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광이라고 주장했지요. 그리고 그곳을 흐르는 강에서 사금을 채취할 때, 주로 양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금 양털의 신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p.412

이 작품의 주인공은 트뤼가이오스(Trugaios)입니다. ‘트뤽스(trux)’가 ‘새로운 포도주’라는 뜻이니까, 트뤼가이오스는 ‘포도 농사꾼’이라는 뜻입니다. 극이 시작되면 두 명의 하인이 무대로 나와 똥을 가지고 떡을 빚으면서 툴툴거립니다. 뭐에 쓰려고 똥으로 떡을 만들까, 관객들이 궁금하겠지요? 알고 보니 트뤼가이오스가 어디에선가 어마어마하게 큰 쇠똥구리를 잡아 왔는데, 하인들이 만들던 똥 떡이 그 거대한 쇠똥구리의 먹이였던 겁니다. 트뤼가이오스는 그 똥 떡을 먹여 쇠똥구리를 더 크게 키워서, 그걸 타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칩니다. 그런데 트뤼가이오스는 왜 하늘에 올라가려는 건가요?

그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를 만나 단판을 짓겠다는 겁니다. “제우스께서는 왜 그리스 사람들이 전쟁을 계속하게 만드십니까. 우리가 다 죽으면 누가 당신께 제사를 드리나요?” 이렇게 따지려는 것이었죠.
--- p.552
 

출판사 리뷰

서울대 고전 열풍의 주역,
김헌 교수의 신화 마스터클래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인 김헌의 성찰로 재탄생한 신과 영웅의 세계를 담고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비롯한 고전을 연구하며 20여 년 가까이 이어온 저자의 그리스·로마 신화 강의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권을 관련 서적으로 바꿔 놓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런 그의 강의를 집대성한 책으로, 천지 창조가 시작되는 카오스부터 올륌푸스의 여러 신과 반신반인의 영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신화 전체를 한 권으로 개괄할 수 있다. 경어체를 사용한 일목요연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 고대 신화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존에 출간된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한 저서들 중에서 상당수가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을 참고하여 쓰인 데 반해 이 책은 고전학자가 희랍어와 라틴어 원전을 직접 해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아울러 이 책은 기존 도서와 달리 신화와 관련된 고대 문헌이나 고전 비극 장면을 직접 원문과 함께 소개해 좀 더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제우스가 에우로페에게 접근하기 위해 황소로 변신하는 일화는 단순히 설명적인 해석만으로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어렵다. 하지만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그분께서 황소의 모습을 입고 소 떼에 섞여 / 음매 하고 울며 부드러운 풀 속을 폼 나게 돌아다닌다” 같은 시구와 함께 해당 신화를 이야기하면 한결 유쾌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장면이 연상된다. 즉, 당시 그리스·로마인들에게 신화는 우리가 지금 접하는 것처럼 건조한 텍스트가 아닌, 노래이자 시이고, 종교이며 유흥일 수 있다는 점을 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정통한
고전학자의 어원을 통한 신화 읽기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과 인물의 명칭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속에 해석의 열쇠가 담긴 또 다른 단서다. 고대 희랍어와 라틴어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어원 분석을 통해 신화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헤라클레스가 데이아네이라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유추해 낼 수 있다. 데이아네이라는 켄타우로스족이었던 네소스의 계략에 속아 본의 아니게 헤라클레스를 죽이고 만다. 네소스는 자신의 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데이아네이라에게 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변심했다고 오해하고는 그의 옷에 피를 묻혀 영웅에게 보낸다.

하지만 다시 사랑을 얻을 것이라는 그녀의 기대와 달리 새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중독되어 고통 속에서 죽고 만다. 놀라운 결말이지만 사실 ‘데이아네이라’라는 이름에는 이미 이런 비극이 담겨 있다. 고대 희랍어에서 ‘데이(D?i-)’는 ‘파괴하다’는 뜻이고, ‘아네르(an?r)’는 남자라는 뜻이어서, 그녀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남자의 파괴자’가 된다. 즉, 남자 중의 남자라 할 수 있는 영웅 헤라클레스는 그녀의 손에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신화 속 여러 인물의 이름을 풀이해 가며 마치 낱말 퀴즈를 해결하듯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국내 연구자의 시선으로 재탄생한
우리 실정에 맞는 그리스·로마 신화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는 토머스 불핀치나 구스타브 슈바브의 저서들은 각각 영어권과 독어권을 대표하는 그리스·로마 신화 책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서들이 해당 문화권의 시각을 전제로 해석했다면 이 책은 국내 연구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그리스·로마 신화라 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지역의 신화가 우리 고유 신화와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요소다. 목신인 판과 아폴론 신과의 연주 대결에서 판 신의 편을 들었다가 아폴론에 의해 길쭉한 귀를 갖게 된 미다스 왕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린 경문왕의 당나귀 귀 설화를 연상시킨다. 또한 해와 달을 대변하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전래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와 비슷하다.

많은 나라들이 대체로 해는 남성으로, 달은 여성으로 본 반면에 독일 북부에서는 달의 신 마니(Mani)는 남성이고 해의 신 솔(Sol) 또는 순나(Sunna)는 여성이다. 하지만 해와 달을 남매 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독자들은 이러한 각 문화권에 얽힌 전승을 통해 그리스·로마 신화가 단순히 먼 타국의 신화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권과 직간접적으로 유사성을 보이는 콘텐츠이자 인류의 근원적인 집단 무의식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가치를 더하는
사진 같은 세밀화 수록


기존에 출간된 여러 도서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명화나 조각 이미지를 그대로 싣고 있는 데 반해, 이 책에는 출판사가 책의 본질에 맞게 전문가에게 의뢰해 고대 조각상을 대상으로 정성껏 직접 그린 세밀화를 실어 책의 가치를 더했다. 조각상 이미지를 그대로 싣는 것과 이를 다시 연필로 일일이 질감을 표현해 수록하는 것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유사하게 전승되는 여러 그리스·로마 신화 중에서 어떤 연구자가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판본을 취사선택해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결이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과 비슷하다.

본문에 수록된 삽화 역시 흔히 보이는 명화나 조각상과는 다른, 수작업을 통해 연필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또 다른 작품처럼 느껴진다. 특히 일부 그리스·로마 신화 책들이 화보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컬러 이미지를 과도하게 사용한 반면, 이 책에서는 흑백으로 본문에 수록해 텍스트의 가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아들어 독자들이 좀 더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곧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신화를 재해석하는 인문학적 관점이 돋보이는 것도 이 책만의 장점이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카오스를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아르케’를 이야기한다. 아르케는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뒤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카오스가 생겨나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고전에 관한 저자의 해박한 식견은 단순히 그리스·로마 신화 해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신화에서 등장하는 하데스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플라톤이 제시한 또 다른 사후 세계인 일명 에르 신화도 같이 이야기한다. 이 내용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등장하는데, 정의롭게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적을 띠에 적어 가슴에 달고 하늘로 올라가고, 못된 짓을 했던 사람들은 악한 행적을 적은 띠를 등에 달고 땅으로 난 구멍으로 떨어져 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과 유사하다. 반면, 그렇게 하늘과 땅에서 천 년을 지낸 다음 다시 불려 와 운명의 여신 앞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 받는다는 점은 불교의 윤회설과 닮아 있다.

이처럼 저자는 단순히 흥미로운 신화를 소개하는 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각 문화권에서 전승되는 설화 등을 깊이 있게 비교 설명함으로써 고대의 가치관과 철학을 다각도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두 인간의 본성을 비춰 주는 거울이자 전형적인 표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오늘날에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고전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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