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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동양 고전 (2023)

동방박사님 2023. 5. 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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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번역가이자 ‘고전 전도사’인 김욱동 교수가 사랑한 고전들

번역가이자 ‘고전 전도사’인 김욱동 교수가 오랫동안 고전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소개한 책. 이 책에서 다룬 고전은 그동안 저자에게 삶의 나침반 구실을 해 온 작품들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의 범주에 들어가는 특징 중 하나로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칼비노는 어떤 책을 읽기 전과 그것을 읽고 나서 이렇게 독자의 생각과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작품은 일단 고전으로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고전은 사람들이 “나 지금 책을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 지금 책을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 책이다. 여기서 ‘다시’라는 이 한마디 낱말이 고전과 고전이 아닌 작품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고전에 속하는 작품은 한 번 읽고 나서 책장에 영원히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두고두고 읽는 책이다. 그리고 고전은 시대마다 다시 읽히면서 독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은 작품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맥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작품 집필 과정이라든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이라든지, 작품의 현대적 의미 등에 주목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1. 우파니샤드
2. 라마야나
3. 바가바드 기타
4. 논어
5. 맹자
6. 도덕경
7. 장자
8. 산해경
9. 법구경
10. 만요슈
11. 마쿠라노소시
12. 겐지 이야기
13. 바쇼 하이쿠 선집
14. 도연명집
15. 이태백 시집
16. 두보 시집
17. 수호지
18. 삼국지연의
19. 서유기
20. 홍루몽
21. 기탄잘리
22. 간디 자서전
23. 삼민주의
24. 아Q정전
25. 생활의 발견
26. 학문을 권함
27.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8. 라쇼몬
29. 설국
30. 금각사
31. 계원필경
32. 삼국유사
33. 동국이상국집
34. 퇴계집
35. 율곡집
36. 징비록
37. 열하일기
38. 목민심서
39. 금오신화
40. 홍길동전
41. 구운몽
42. 춘향전
43. 청구영언
44. 송강가사
45. 동경대전
46. 무정
47. 진달래꽃
48. 임꺽정
49. 백범일지
50. 토지
 

저자 소개

저 : 김욱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미시시피대학교에서 영문학 문학석사 학위를,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문학박사를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을 국내 학계와 문단에 소개하는 한편,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국문학과 문화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듀크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등에서 교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책 속으로

『라마야나』는 종교의 옷을 입고 있지만 종교의 옷을 한 꺼풀만 벗겨내고 나면 『라마야나』는 문학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의 『춘향전』이나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 작품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어떤 번역자는 이 작품을 아예 ‘라마의 로맨스’나 ‘라마의 사랑 이야기’로 옮기기도 한다. 이 서사시에서 라마와 시타의 이야기는 곧 러브스토리라는 것이다. 라마는 용모가 수려하고 학덕이 뛰어나며 궁술에도 능하다. 인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인 라마와 현모양처로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인 시타가 서로 사랑을 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라마야나』는 남녀가 우여곡절을 겪지만 끝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점에서 『춘향전』보다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더 가깝다.
--- p.22

『바가바드 기타』는 처음에는 독립된 작품이었지만 뒷날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제6권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듯 이 작품은 ‘바라타 왕조의 대사서시’라는 뜻을 지닌 『마하바라타』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마하바라타』가 거대한 사찰이라면 『바가바드 기타』는 이 사찰에 딸린 작은 암자에 빗댈 수 있다. 무려 십만 대구(對句)로 되어 있는 『마하바라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합해 놓은 것보다도 여덟 배쯤 길고,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보다는 줄잡아 30배쯤 길다.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독립적이고 문학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오늘날 이 작품은 『마하바라타』에서 따로 떼어내어 독자적인 작품으로 널리 읽힌다. 어떤 의미에서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타』보다도 훨씬 더 유명한 세계적인 종교 문헌이요 작품이다.
--- p.26

『논어』는 모두 501개에 이르는 짧은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것은 채 한 줄도 되지 않고, 아무리 길어도 열다섯 줄을 채 넘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논어』는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다. 마치 기독교의 신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쓰지 않은 것과 같다. 공자에게는 흔히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하는 제자 열 명이 있었는데 스승이 사망한 뒤 그 제자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였고,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 곧 재전제자(再傳弟子)들이 공자의 언행을 기록하였다. 후한대(後漢代)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논어』는 공자께서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여러 인사와 일반 사람에게 보여 준 언행, 제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말을 제자들이 저마다 기록했다가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문인(門人)들이 그것을 추려 모아 논찬한 것이다. 그래서 ‘논어’라고 한다”라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논어』에는 자장(子張)이 스승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자기가 매고 있는 띠에 적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 p.34

『논어』와 『맹자』가 실천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도덕경』은 좀 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면이 강하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비교적 쉽게 피부로 느끼지만 노자의 사상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중국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말대로 이 책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아주 짙다. 도가 사상이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이러한 신비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유가 사상의 집은 실천성이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다. 공자와 맹자에게 구체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론이란 허공의 메아리처럼 공허할 따름이다. 서양 철학의 할아버지 플라톤처럼 유가에서는 인간을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 파악한다. 공자는 혼탁한 난세를 버리고 은거하며 자연 속에 묻혀 살라는 권유에 대하여 “사람은 새와 짐승과는 무리지어 살 수 없다. 내가 천하의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살겠느냐?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내가 애써 변혁하려고 하겠느냐?”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노자는 ‘천하의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을 비웃으며 오히려 세속과 등지고 ‘새와 짐승과 더불어 어울려’ 살 것을 가르친다.
--- p.48

장자의 학문 세계에 대하여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의 학문은 살펴서 이르지 않은 것이 없지만 요점은 노자의 말에 귀착된다”고 밝힌다. 장자도 노자처럼 세속적인 생활을 초월하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고 살아가는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본다. 그러나 같은 도가 전통에 속하면서도 장자와 노자는 몇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난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창하면서도 정치적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성인을 말하는 등 여전히 현실 정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구어 내지 못하였다. 반면 장자는 정치를 비롯한 모든 현실에 대한 애착을 훌훌 벗어 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하였다. 도의 개념도 노자는 정적으로 파악한 반면, 장자는 변화무쌍하고 동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장주는 노자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극도의 자기중심주의인 양자(楊子)의 위아설(爲我說: 양자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학설. 남을 위하거나 해침이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옳다는 주장)과 만물이 서로 평등하다는 전병(田騈)의 귀제설(貴齊說: 만물 평등설)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 p.60

『산해경』을 좀 더 꼼꼼히 읽어 보면 이 책에 기록된 몇몇 신화는 서양 신화와도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석실 속에 두 손이 뒤로 묶이고 형틀에 매달린 사람은 무덤 속에 그려진 하늘의 별자리 모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의 허영심으로 딸 안드로메다를 바다뱀의 제물로 만들어 버린다. 메두사를 퇴치하고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해안의 바위 위에 쇠사슬에 묶여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구해 준다. 또 황제에게 덤벼들다가 모가지가 달아난 뒤 젖가슴을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다시 황제에게 달려든 형천(形天)의 머리는 바로 페르세우스가 손에 들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와 비슷하다. 이렇듯 『산해경』을 읽다 보면 서양 신화의 주제나 인물, 모티프 등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p.6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만요슈』가 처음부터 일본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각광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이 제대로 빛을 보기까지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을 비롯한 몇몇 학자는 『창조된 고전』이라는 책에서 흥미 있는 이론을 제기하여 관심을 끌었다. 『만요슈』를 비롯한 『고지키(古事記)』, 『니혼쇼키(日本書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같은 내로라하는 일본의 고전은 하나같이 국민국가 일본이 ‘창조해 낸’ 작품이었다고 지적한다. 1880년대 메이지(明治) 시대에 이르러 일본은 밖으로는 다른 나라와 구별 짓는 한편, 안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통합을 이룩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명시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지금껏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던 옛날 작품을 고전으로 떠받드는 작업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고전화’ 작업은 국민국가 일본의 건설이라는 지상 명제와 서로 맞닿아 있었다는 것이다.
--- p.80

무라사키 시키부는 『겐지 이야기』에서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소설이란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수신 교과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문학은 문학만의 독특한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에도(江戶) 시대에 활약한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겐지 이야기』의 본질적 특성을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즉 대상에 대한 그윽한 정취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그에 따르면 겐지의 여성 편력은 “유교와 불교의 도리에서 보면 그 이상 더 죄악이 없을 정도로 아주 나쁜 악행으로, 어떤 다른 선행이 있다고 하여도 좋은 사람이라 하기는 어려운데도 (작가는) 그 도에 어긋난 악행을 특별히 지적하여 언급하지 않고 다만 ‘모노노아와레’가 깊은 것만을 반복하여 쓰고 있고, 겐지가 마치 선인의 규범같이 좋은 것은 다 모아 놓고 있다”고 평한다.
--- p.94

두보가 마치 보석을 갈고닦듯이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반면, 이백은 샘물이 저절로 흘러넘치듯이 자연스럽게 시를 읊었다. 당시의 정형화된 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구사하는 능력이야말로 이백의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두보가 인간의 고뇌에 깊이 침잠하여 시대적 아픔을 깊은 울림으로 노래한 반면, 이백은 타고난 자유분방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뛰어난 감각으로 인간의 기쁨을 드높이 노래한다. 두보는 천재적인 이백을 두고 “붓을 들면 비바람이 일어나고 / 시가 완성되면 귀신마저 울게 한다”라고 읊었다.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을 ‘천상적선(天上謫仙)’, 곧 하늘에서 인간이 사는 누추한 지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위로는 임금에게 비굴할 줄 모르고, 아래로는 처자식도 돌볼 줄 몰랐던 이백은 그야말로 세속을 초월한 천재 시인이었다.
--- p.116

『삼국지연의』에서 나관중은 169년부터 280년까지 백여 년에 걸쳐 일어나는 이야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앞부분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고 나중에 제갈공명이 가담하는 줄거리를 플롯의 중심 뼈대로 삼는다. 이 부분에서는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화공(火攻)으로 무찌르는 적벽(赤壁) 대전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바로 이 대전의 결과로 조조가 이끄는 위나라와 손권이 이끄는 오나라, 그리고 유비가 이끄는 촉나라의 삼국이 나뉜다. 뒷부분은 활시위처럼 팽팽히 맞서던 삼국정립(三國鼎立) 시대가 바야흐로 막을 내리기까지의 사건을 다룬다. 유비의 아들 유선 대에 이르러 촉나라는 날로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가다가 사마소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쉽게 무너진다. 그 뒤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조조의 손자인 위나라 황제 조환에게 퇴위할 것을 강요하여 진나라를 세워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 p.136

작품의 줄거리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홍루몽』은 작가 조설근의 삶과 그 주변에서 소재를 빌려 온 자전적 소설이다. 지금까지 중국 소설은 역사적 사실이나 다른 사람의 삶에서 작품의 소재를 빌려올 뿐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비교적 무관심하였다. 조설근에 이르러 작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 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개국 공신 집안으로 100년 가까이 대를 이어오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사치와 낭비로 몰락해가는 가 씨 집안의 이야기는 곧 작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라고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근대 이후 후스(胡適)나 위핑보(兪平伯) 같은 학자는 이 작품을 조설근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 p.147

『기탄잘리』에 실린 시는 주제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먼저 종교나 철학적 명상을 다룬 계열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범아일여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까마득히 멀리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와 힌두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이 사상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마와 개인의 자아가 하나로 일치한다고 본다. 타고르의 시 작품은 이러한 사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둘째로는 영국 식민주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인도의 비참한 상황을 노래하는 민족적 또는 사회적 저항시다. 이러한 계열의 작품에서 그는 조국이 해방을 맞이할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한편 제국주의의 침탈과 횡포에 과감하게 맞선다. 셋째로는 인간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 서정시다. 이러한 작품에는 인도 고유의 풍속과 향토색이 짙게 배어 있다. 마지막으로 속세와 현실에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동심의 세계를 노래한 시들이 있다.
--- p.154

루쉰은 주인공 ‘아Q’라는 인물을 통하여 이 무렵 중국인의 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공허한 영웅주의, 자기비하와 합리화, 무력한 패배주의, 과거에 대한 근거 없는 향수, 그리고 맹목적인 망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주인공의 모습은 곧 서구 열강의 갖은 모욕과 유린 속에서도 각성할 줄 모르고 오직 황제의 후손이라는 자기기만 속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의 모습이다. 루쉰은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이 보여 주는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태도,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현재의 중국인의 모습을 꼬집는다. 그런가 하면 혁명 당원을 자처하지만 강도로 몰려서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총살당하는 ‘아Q’의 운명과 혁명 앞에서도 끄떡없는 지주 계급을 대조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신해혁명의 허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 p.176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하필이면 왜 고양이를 화자로 삼았을까? 한국과 중국 같은 다른 동아시아 사람들과는 달라서 일본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일본 식당에 가면 ‘마네키네코’라는 흰 고양이 인형을 진열해 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흰 고양이는 왼 발을 드는 습성이 있는데 그러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과 행운과 건강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애완동물이다. 또 고양이는 이웃의 어느 집이든지 자유롭게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은 인간의 온갖 세태를 관찰하고 풍자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치다. 소설 기법으로 말하자면 고양이는 전지적 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p.194

아쿠타가와는 「라쇼몬」에서 인간성,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관심을 기울인다. 만약 내가 상대방의 물건을 빼앗거나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인간으로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상대방의 물건을 빼앗거나 죽여야 하는가? 아니면 나는 이기심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 것인가? 아쿠타가와는 후자보다는 전자가 인간성에 훨씬 걸맞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이나 정글 법칙은 짐승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라쇼몬」에서 하인은 살아가기 위하여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노파의 말을 듣고 “그럼, 내가 도둑질을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렷다.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몸이니 말이다”라고 내뱉는다.
--- p.204


가와바타의 작품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서도 남녀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평소에 극장으로 쓰던 누에고치 창고에 불이 나고 고마코가 요코를 가슴에 안고 뛰쳐나오는 맨 마지막 장면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만, 요코를 고마코에게서 빼앗아 안으려는 사나이들에게 밀려 비틀거린다. 그는 “발을 버티고 바로 서면서 눈을 치켜뜬 순간, 쏴아 하고 소리를 내면서 은하수가 시마무라 속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는 시마무라가 손에 잡을 수 없는 천상의 별 은하수처럼 끝내 고마코를 붙잡을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듯 『설국』은 심층적 의미를 대부분 언어 뒤에 숨긴 채 오직 일부만을 언어의 표층에 드러낸다. 행간에 숨은 의미를 읽지 않으면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p.211

『삼국유사』는 한 개인이 편찬한 탓에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연은 이 책에서 『삼국사기』가 가치 없다고 빼버렸거나 소홀히 다룬 자료에 좀 더 무게를 실어 기술하였다. 궁궐이나 관청 안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보다는 절이나 민가에 떠도는 이상하고도 신비스러운 민담이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최남선(崔南善)은 일찍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이렇게 『삼국사기』를 제쳐두고 『삼국유사』를 고른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우리 문학사의 맨 첫 장을 장식하는 신라 향가 14편을 비롯한 고대 시가 같은 귀중한 문학 유산이 전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신화, 전설, 설화까지도 풍부하게 싣고 있어 해당 분야뿐 아니라,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 p.227

퇴계의 학문 태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과 나눈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변’이다. 이 무렵은 장유유서의 유교 질서를 목숨처럼 존중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사대부들은 학문을 하는 데도 권위주의적으로 일방적인 전수만을 고집하였다. 그러므로 후배가 선배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하기가 무척 어려운 풍토였다. 뒷날 이러한 퇴계의 태도를 두고 그의 제자는 “선생님은 겸허로써 덕을 삼아 털끝만큼도 교만하여 잘난 체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평하였다. 이들의 논의는 당시 정체된 학문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한국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 p.245

『징비록』에서 가장 끔찍한 대목은 이여송 부대가 한양을 수복한 뒤의 기록이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성안에 남아 있던 백성들은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시피 하고 모두가 굶주리고 병들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거리마다 사람과 짐승 썩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10월 선조가 궁으로 돌아온 뒤 한양의 모습은 더더욱 참혹하였다. 심지어 아버지는 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서로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지부자부부상식(至父子夫婦相食)”이라는 구절에서 ‘상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그러하다. 물론 이 ‘상식’이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서로를 잡아먹을 만큼 먹을 것이 없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가 우리 에 보낸 공문에도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는다[人民相食]”는 구절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잡아먹는다고 풀이해도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근 한 일간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이라는 제목을 단 까닭을 이해할 만하다. 왜군이 휩쓸고 간 한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다.
--- p.260

『열하일기』에 실린 연암의 소설 가운데 조선 시대 양반 계층의 형식주의와 위선, 무능력과 허약성, 도덕적 타락과 부패를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으로는 역시 「호질」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호랑이가 배가 고프다고 말하자 호랑이에 붙어 다니는 귀신이 호랑이에게 의사와 무당을 잡아먹으라고 권하지만, 호랑이는 그 몸속에 독소가 있어 먹을 수 없다고 대꾸한다. 이번에는 또한 다른 귀신이 호랑이에게 양반을 잡아먹으라고 권한다. 귀신은 양반을 두고 “저기 숲속에 고기가 있지요. 인간(仁肝)·의담(義膽)에다 충성심을 품고 품행이 깨끗하고 예악을 받들어 지키며, 입으로 백가(百家)의 말씀을 외고 마음에 만물의 이치를 통달했으니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라 배앙체반(背囊體?: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짐)하여 오미(五味)가 고루 갖추어 있습지요”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아주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고기가 ‘잡될’ 것이고 그 맛도 ‘순순치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