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2.여성젠더

젠더 수업 리포트 (2023)

동방박사님 2023. 12. 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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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대로 된 성교육’은 무엇일까?
:한 젠더교육 활동가의 치열한 성교육 분투기
성교육 책 아닌 성교육 책?


우리 사회가 차별과 혐오의 진탕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젠더’는 빠지지 않는 축이고, 성범죄을 포함한 젠더기반 폭력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 성교육(젠더교육)의 필요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곤 한다. 특히 미투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인 2018년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올라가 2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동의한 바 있고, 2020년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후 피해자 다수가 미성년자라는 점과 범죄 가담자의 숫자가 6만 명 이상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성교육의 중요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특히 아동 및 청소년과 가까이 생활하는 교육자나 양육자들에게 성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자주 언급되곤 한다.

그렇다면 ‘성교육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우리가 우리 사회 성교육의 방향과 구체적 실천을 고민하고 있을까? 성교육이 무엇인지, 그 실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기회가 우리 사회의 시민들에게 충분히 주어진 적이 있었을까? ‘성교육’이라고 하면 으레 ‘2차성징’과 같은 생물학적 지식, 성기 및 성관계 중심의 성 지식을 배우는 시간, 혹은 피해자/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양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콘텐츠 역시 많은 경우 “우리 아이가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를 중심에 둔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콘텐츠의 수용자 역시 그것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을 비롯해 인권과 젠더, 철학과 윤리까지 아우르며 몸과 세계를 연결해 바라보아야 하는 인식 체계를 담고 있는 영역”(141)이다. 성에 대한 지식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성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성평등한 관점과 가치관을 배우는 시간이며, 이는 민주 시민의 기본적 자질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성교육 책이 아닌 성교육 책이다.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성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진 태도나 인식이 무엇인지부터 되돌아볼 수 있도록 질문하는 책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란 무엇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기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의 조건과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그래서 명확한 지침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도리어 혼란과 고민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 ‘성교육이 중요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성교육이 무엇인지 충분한 논의를 해왔는지, 지금 우리의 성교육 현실이 어떠한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지하게 해왔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성교육은 여전히 구시대적 성교육이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예방에만 초점을 맞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넘어선 성교육(폭력예방교육)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이 책은 우리를 바로 그 고민과 질문의 장으로 초대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1부 젠더교육을 한다는 것

실은, 성교육 못 받아본 성교육 강사입니다: 제대로 된 성교육?
“성교육 수업에서 왜 페미니즘 교육을 하세요?”: ‘정상성’에 도전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성교육의 효과를 묻는 당신에게: 변화는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의무교육 현장 이야기
네가, 아니, 내가 정말 괜찮아지기 위해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목소리
신념과 존엄 사이: 젠더교육 강사의 노동권과 건강권
성교육, 왜 해도 해도 어려울까?: 듣고 배우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2부 젠더교육의 현장

샘, 메갈이에요?: 10대 남성들과의 대화
“남자 선생님들 기분 상하지 않게 강의해주세요”: 학교가 평등한 곳이었다면
남학생은 ‘자위’를, 여학생은 ‘월경’을 묻는다: 생물학적 성차를 넘어서
교실에 두고 온 너희들이 생각난다: ‘n번방’ 사건을 접하고, 파노라마처럼 떠오른 기억들
성차별이 뭐냐고 아직 묻지 못했다: ‘남성가족부’를 주장하는 학생을 만나고
성교육 현장의 ‘기울어진 젠더’: 교실의 ‘젠더권력’에서 소외되는 여학생

3부 젠더교육의 질문들

“조심하라고만 배웠어요”: ‘예방’의 주체는 누구일까
아이 성교육에 ‘응급 매뉴얼’ 기대하지 마세요: 양육자를 위한 젠더교육
그건 놀림이 아니라 혐오야: 교실에서 가장 흔한 폭력, ‘외모 품평’에 반대하는 교육
‘안전 이별’ 말고 ‘평등 연애’: 10대 여성과 나눈 연애, 사랑과 폭력의 경계에 대한 질문
“섹스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금기와 혐오 사이에 갇힌 ‘성’
당신의 ‘첫 경험’: 여성이 성에 대해 ‘말하기’
교실 밖 젠더 수업: 새로운 실험과 시도

나가는 글: 젠더교육의 현장을 기록한다는 것
 

저자 소개

저 : 이유진
전북 남원에서 친구들과 지역서점 겸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를 공동운영하면서 젠더교육, 타로상담, 글쓰기 등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저서로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가 있다.

책 속으로

“나는 젠더교육 활동을 하면서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민주 의식이 정착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리고 이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피/가해자 되지 않기’가 아닌, ‘정의로운 시민 되기’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었거나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솔직히 강사인 나조차도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교육으로 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 p.7

우리가 성에 대해 안전하게 말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들을 준비가 잘 되어 있을 때, 구체적인 삶과 연결해 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상상력을 허용할 때, 성교육은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제대로 된 성교육의 정의나 형태가 아니라, 그 조건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p.27

“그러나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교육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배우거나 사유해보지 못했다. 성적자기결정권에서 말하는 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실천해야 하는가. 이를 우리가 성교육 안에서 토론하거나 합의해본 경험이 있는가.”
--- p.31

“나는 성폭력이나 성착취, 임신과 임신중지, 가정폭력을 경험한 10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들었다. 이들이 자신을 비정상이라 여기는 이유는 폭력 피해가 없는 상태만을 정상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신체 중심의 성교육, 피해 ‘예방’교육의 틀 속에서 ‘정상성’이란 아무런 성적 이슈도 겪지 않는 ‘진공’의 상태임을 내포한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의 성교육이 도입된다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더 다각적이면서 섬세한 시선으로 젠더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34

“성을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거나 무엇이 가장 좋은 성교육인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교육이 서로를 통해 ‘일어날’ 때 우리 삶에 가장 가까워지고, 거기에 변화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꾸준히 목격했기에,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에 대해 말하고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믿을 뿐이다.”
--- p.41~42

“나는 궁금하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면서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놓지 않고 취미로 전문 분야를 섭렵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왜 성에 대해서는 더 배울 게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지, 그리고 다 안다며 강의 시작부터 팔짱을 끼는지 말이다. … 성교육은 성관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에 통달하는(?) 것도 아니다. 성교육은 몸과 성을 넘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며 그것은 평생에 걸쳐 꾸준히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 p.45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어렵거나 자신의 노동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계속 맞닥뜨리다 보면, ‘신념’은 때론 덧없게 느껴지고 힘없이 무너진다. 열심히 인권을 가르치지만 정작 교육 현장에서 나의 인권은 짓밟히는 것 같을 때 느껴지는 허망함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온다.”
--- p.63

“성(젠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그것을 뒤흔드는 자극이 일어났을 때 교육 현장에는 그에 대한 반작용과 같은 저항(백래시)의 에너지가 돋아나기 쉽다. 문제는 저항이 아니다. ‘교육을 이끄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이 저항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 너머로 나아가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는가’. 이것이 교육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될 것이다.”
--- p.73

“만나자마자 페미니스트냐 메갈이냐 후려치는 의도는 뻔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들의 질문을 가장한 공격에 일일이 재질문을 찾아 대응하는 이유는, 한편으로 이런 고민도 들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특히 10대 남성들이 이런 대화를 평소 누구와 하고 있거나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으려면 소통할 기회를 더 가져야 하지 않을까?”
--- p.86~87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봐 공포에 질리는 것을 넘어,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성폭력 문제에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을 길러야 한다. 거절 의사 표현을 잘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우리는 평등한 관계의 위치에 서는 게 당연한 존재임을, 성폭력을 트라우마로 강조하기 전에 성폭력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회복되며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먼저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위치 짓는 것을 넘어, 이들이 스스로 힘을 키워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 p.135~136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을 비롯해 인권과 젠더, 철학과 윤리까지 아우르며 몸과 세계를 연결해 바라보아야 하는 인식 체계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성교육 매뉴얼’은 ‘부모 시험’을 통과하는 ‘만능 족보’가 될 수 없다. 양육자가 스스로 사유하지 않은 채 매뉴얼에만 의존해 성교육을 시도한다면, 아이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난감함은 반복될 것이다.”
--- p.141
 

출판사 리뷰

치밀하고 생생하게 기록한 젠더교육의 현장

이 책은 올해로 7년째 젠더교육(성교육) 활동을 해온 저자가 페미니스트 젠더교육 활동가로서 그간에 마주해온 젠더교육의 현장을 치밀하게 기록한 것으로, 저자의 생생한 경험 속에서 쌓여온 젠더교육 대한 고민과 질문을 담았다. 7년간 무수히 젠더교육을 해왔지만 저자는 단 한 번도 성교육의 현장이 쉬운 적이 없었고, 매번 수업이 끝난 후 희망보다는 좌절을 느낄 때가 많았고, 하면 할수록 해답보다는 의문과 고민이 더 많아진다고 말한다. 그가 겪어온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를 포함해 많은 젠더교육 강사들이 여성혐오와 반페미니즘 정서, 백래시가 흐르는 교실, 여성가족부 재정으로 집행되는 (젠더기반) 폭력예방교육 시간에 여성가족부 로고만 발표 자료에 나와도 야유가 흐르는 교실에서 성교육을 진행한다. 특정 기관이나 기업체에 의무교육을 나가면 방문 판매 사원으로 오인을 받기도 하고(의무교육 강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파견되어 금융 상품 등을 판매하는 경험을 많은 직장인들이 겪어봤을 것이다), 수업을 듣다가 바쁘다고 나가버리거나 강의 내용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자주 마주한다. 무관심하거나 공격적인 공기는 많은 성교육 현장의 기본값이다.

성교육 강사들은 노동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보호받지 못하기 일쑤다. 학생 대상 교육 현장에서 강사에게 ‘메갈’ ‘쿵쾅쿵쾅’이라고 발언한 학생들에게 그 표현이 왜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표현인지를 설명해주었더니 성교육 시간에 왜 페미니즘 수업을 하느냐는 교사의 항의가 이어지고, 남은 수업 시간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시킨다. 페미니즘 성교육을 하는지 ‘감시’하겠다는 목적으로 학교 교사가 몰래 수업을 촬영했다가 걸리는 일도 있다. 수업 시간에 공개하지 않은 개인 연락처로 공격적인 연락을 받기도 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이 모든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젠더교육 활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개인 강사들이 그 신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젠더교육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그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공감대도 충분치 않고, 제도적 장치도 충분치 않다(몇백 명을 모아둔 일회성 집합 교육이 다수인 의무교육 현장만 생각해도 이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성평등’ ‘섹슈얼리티’ ‘성소수자’라는 말을 삭제한 교육과정이 발표되고, 여성폭력 방지 관련 예산은 30퍼센트 가까이 줄었고, 여가부의 초·중·고교 청소년 대상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아예 폐지될 예정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젠더교육의 현장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저자가 기록한 젠더교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날것’의 역동과 목소리를 좇다 보면, 성, 인권, 민주주의와 관련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뼈저릴 정도로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10대 대상의 성교육 현장을 마주할 때는 그것이 기성세대가 만들어온 사회의 거울이라는 면에서, 그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라는 면에서 이 사회의 젠더의식과 시민의식의 위급함을 깊숙이 깨닫게 되며 그와 동시에 반성과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도 공기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어디선가 있을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저자는 농촌 지역에서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만난 10대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나 임신에 대한 고민을 여러 차례 접하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나아가 지금 10대의 경험이 그 이전 세대의 경험과 판박이 같다는 점에 참담함을 느끼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을 바꿀 수 있는 일”(24)이 있다면 손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젠더교육 강사의 길에 접어든다.

그럼에도, 냉대와 적대가 떠다니는 공기 속에서 1년에 한두 차례, 1시간 남짓의 교육을 한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노동권과 건강권 역시 보장받기 어렵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성교육 자체도 녹록하지 않고, 해도 해도 쉬워지거나 명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렵고 새로운 고민이 늘어난다. 하지만 저자는 그 괴로운 현장과 함께 호흡하며, ‘내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실천’으로서의 젠더교육을 이어왔다.

그 시간 속에서 단박에 누군가를 극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을 기대하는 데서 수강생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유를 자극하는 데로 자신이 변화했다. 하여 백래시라는 저항 역시 그 자체를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혼란과 불편함을 어떻게 함께 견디고 나아갈 것인지를 목표로 삼자고 제안한다. 성교육이 사람은 바꾸지 못해도 공기(분위기)는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토대로 성교육을 냉소하고 성차별의 존속을 믿는 이들의 기대를 부순다. 지난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일지라도 더 나은 길을 고민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교훈을 나눈다. 또한 “세상이 변할 때까지 목소리를 내달라”는 어느 10대 수강생의 쪽지를 기억하고, 구색 맞추기식 의무교육 현장에서 이 교육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렸을지 모를 한 사람을 기억하고, 같은 반의 여성인 급우들의 외모 품평을 하던 10대 남성들의 변화를 기억하며 그다음 한 발짝을 내디딘다.

우리 성교육, 어디를 향해야 할까?

이 책을 통해 마주하는 성교육의 현장을 우리는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성교육’의 필요와 그 시급성을 깨닫게 되며, 또한 젠더교육이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 성, 젠더를 다루는 교육에 대해 무심하거나 적대적인 현장의 공기에 대한 기록을 통해 실은 역설적으로 젠더교육이 아무리 역량 있는 강사가 많더라도, 이것이 개별 강사들만의 몫이 아니고 그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강사들은 일선에서 분투 중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한 사회의 정치, 제도, 문화 등 미시적 차원부터 거시적 차원의 변화와 노력 없이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는 젠더교육 강사 혹은 학교 교실 일선에 있는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함께 실천해야 한다. 성교육은 교실이나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모든 장소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성인들 또한 평생에 걸쳐 배우고 갱신하는 것으로 성을 접하고 대하고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

책은 제대로 된 성교육이 무엇인지, 이 길로 가면 된다고 자신 있게 단순하게 소리치기보다는 비틀거리고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면서도 그 길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뎌온 시간들을 기록한다. 젠더기반 폭력의 유의미한 예방은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주문을 외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예방을 넘어선 성교육을 말한다. 그러기에 “성폭력을 트라우마로 강조하기 전에 성폭력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회복되며 이어질 수 있음을 먼저 말”(136)하는 성교육, 청소년을 피해자, 보호의 대상으로만 위치 짓는 것을 넘어 성폭력에 함께 분노하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성교육, 나와 타인 모두가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임을 가르치는 성교육, 정상성에 도전하는 성교육을 말한다. 교실 밖에서 청소년과 교사를 대상으로 새로운 젠더교육을 실험해보기도 한다.

한계가 가득한 조건 속에서 맨몸으로 분투해온 젠더교육이라는 페미니즘적 실천을 솔직하고 단단하게 써넣은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성교육, 젠더교육, 인권교육,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젠더교육 일선에 있는 강사, 양육자 혹은 교사는 물론 페미니즘 실천을 고민하는 시민, 우리가 사는 이곳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책임을 느끼는 이들에게 이 기록이 더 나은 길을 향해 머리를 맞대는 하나의 물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