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정신의학은 지금도 로젠한의 덫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에 잠입한
데이비드 로젠한과 가짜 환자들
그들을 둘러싼 진실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과 함께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 잠입을 시도한다. 정신의학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이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고,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실험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사이언스〉에 발표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수많은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고, 정신의학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논쟁에 불을 붙였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로젠한은 왜 실험을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지금껏 알려진 이야기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신의학의 얼굴을 파헤치며, 아직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에 드리운 거대한 그늘을 보여준다.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길 수 있는가?’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누구나 한 번쯤은 정신질환을 염려하는 시대에 이 책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은 지금 우리가 논하는 정신이란 것이 무엇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에 대한 길을 찾는 단서를 제공한다.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에 잠입한
데이비드 로젠한과 가짜 환자들
그들을 둘러싼 진실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과 함께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 잠입을 시도한다. 정신의학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이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고,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실험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사이언스〉에 발표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수많은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고, 정신의학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논쟁에 불을 붙였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로젠한은 왜 실험을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지금껏 알려진 이야기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신의학의 얼굴을 파헤치며, 아직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에 드리운 거대한 그늘을 보여준다.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길 수 있는가?’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누구나 한 번쯤은 정신질환을 염려하는 시대에 이 책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은 지금 우리가 논하는 정신이란 것이 무엇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에 대한 길을 찾는 단서를 제공한다.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1부
1장 거울상
위대한 행세자 / '정신병원으로 이송' / 뇌의 병과 마음의 병 사이의 경계선
2장 넬리 블라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실성한 자들의 거처 / 블랙웰에서 보낸 열흘
3장 광기의 거처를 찾아서
정신의학의 태동 / 크레펠린과 프로이트의 등장
4장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실험 / 외면할 수 없는 부름
5장 불가사의 속에 신비로 싸인 수수께끼
안갯속으로 / 비밀을 풀어줄 로제타석
2부
6장 실험의 배경
로젠한의 본질 / 반정신의학 운동의 확산 속에서 / 광기에 대한 옹호
7장 호랑이 굴 속으로
회색의 음영 / 잠입 계획 / 척후병의 출발
8장 “정체가 발각되지 않을 수도 있어”
데이비드 루리의 탄생 / 하버포드 정신병원
9장 입원
접수면접 / 정신병동 입원의 의미
10장 정신병원에서 보낸 9일
첫째 날 / 둘째 날 / 셋째 날 / 넷째 날 / 다섯째 날 / 여섯째 날 / 일곱째 날 / 여덟째 날 / 아홉째 날 / 논문의 발판으로 삼다
11장 금맥을 캐다
이어지는 잠입 / 스탠퍼드에 입성하다
12장 그리고 오로지 정신이상자들만이 누가 멀쩡한 사람인지 알았다
논문에 쏟아진 열광적 찬사 / 인권 운동에 불을 지피다
3부
13장 첫 번째 단서
낯익은 이름 / 결정적 기회를 잡다
14장 빌 언더우드
빌이라는 남자 / 115733번 환자 / 두려운 변화
15장 11호 병동
에살렌 연구소 / 약물 처방에 대한 반발
16장 얼음 위의 영혼
병동 경험이 끼친 영향 / 도처에 도사린 위험 / 잊힌 기억
17장 로즈메리 케네디
케네디 가문의 숨겨진 일원 / 지역사회 정신보건법의 명암
4부
18장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
피어나는 의문 / 로버트 스피처
19장 오염된 자료
드러나는 날조 / 좋은 의사? 나쁜 의사? / 의도적 왜곡
20장 역설적 쓸모
스피처의 침묵 / 편람 제3판의 탄생 /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꾸다
21장 스키드 면담
정신의학의 본질적 한계 / 편람 개정의 연이은 실패 / 스키드 면담
5부
22장 각주
감춰진 아홉 번째 환자 / 무심코 말한 진심 / 논지에 어긋난 결과
23장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다”
무시된 기록 / 로젠한이 놓친 그림
24장 무너진 정신보건 시스템
응급상황에 빠진 정신병동 / 교도소로 내몰리는 환자들
25장 가짜 환자들의 행방
사라진 환자들 / 체스트넛 로지 / 유령들
26장 결정적 일격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 / 유행병처럼 번지는 학문적 사기 / 정신의학 내부의 목소리
27장 갈림길에 선 정신의학
한계를 인정할 때 / 장막을 걷으려는 노력 /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프롤로그
1부
1장 거울상
위대한 행세자 / '정신병원으로 이송' / 뇌의 병과 마음의 병 사이의 경계선
2장 넬리 블라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실성한 자들의 거처 / 블랙웰에서 보낸 열흘
3장 광기의 거처를 찾아서
정신의학의 태동 / 크레펠린과 프로이트의 등장
4장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실험 / 외면할 수 없는 부름
5장 불가사의 속에 신비로 싸인 수수께끼
안갯속으로 / 비밀을 풀어줄 로제타석
2부
6장 실험의 배경
로젠한의 본질 / 반정신의학 운동의 확산 속에서 / 광기에 대한 옹호
7장 호랑이 굴 속으로
회색의 음영 / 잠입 계획 / 척후병의 출발
8장 “정체가 발각되지 않을 수도 있어”
데이비드 루리의 탄생 / 하버포드 정신병원
9장 입원
접수면접 / 정신병동 입원의 의미
10장 정신병원에서 보낸 9일
첫째 날 / 둘째 날 / 셋째 날 / 넷째 날 / 다섯째 날 / 여섯째 날 / 일곱째 날 / 여덟째 날 / 아홉째 날 / 논문의 발판으로 삼다
11장 금맥을 캐다
이어지는 잠입 / 스탠퍼드에 입성하다
12장 그리고 오로지 정신이상자들만이 누가 멀쩡한 사람인지 알았다
논문에 쏟아진 열광적 찬사 / 인권 운동에 불을 지피다
3부
13장 첫 번째 단서
낯익은 이름 / 결정적 기회를 잡다
14장 빌 언더우드
빌이라는 남자 / 115733번 환자 / 두려운 변화
15장 11호 병동
에살렌 연구소 / 약물 처방에 대한 반발
16장 얼음 위의 영혼
병동 경험이 끼친 영향 / 도처에 도사린 위험 / 잊힌 기억
17장 로즈메리 케네디
케네디 가문의 숨겨진 일원 / 지역사회 정신보건법의 명암
4부
18장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
피어나는 의문 / 로버트 스피처
19장 오염된 자료
드러나는 날조 / 좋은 의사? 나쁜 의사? / 의도적 왜곡
20장 역설적 쓸모
스피처의 침묵 / 편람 제3판의 탄생 /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꾸다
21장 스키드 면담
정신의학의 본질적 한계 / 편람 개정의 연이은 실패 / 스키드 면담
5부
22장 각주
감춰진 아홉 번째 환자 / 무심코 말한 진심 / 논지에 어긋난 결과
23장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다”
무시된 기록 / 로젠한이 놓친 그림
24장 무너진 정신보건 시스템
응급상황에 빠진 정신병동 / 교도소로 내몰리는 환자들
25장 가짜 환자들의 행방
사라진 환자들 / 체스트넛 로지 / 유령들
26장 결정적 일격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 / 유행병처럼 번지는 학문적 사기 / 정신의학 내부의 목소리
27장 갈림길에 선 정신의학
한계를 인정할 때 / 장막을 걷으려는 노력 /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책 속으로
불확실함이라는 공통점을 제하면 정신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와 결정적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어떤 분야도 강제로 치료하거나 억지로 사람을 감금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분야도 질병인식불능증 같은 상황에 정기적으로 맞닥뜨려 골머리를 앓지 않는다. 질병인식불능증은 병에 걸린 사람이 그 사실을 몰라서 의사가 어떻게 언제 개입해야 할지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정신의학은 사람들에 대해, 그러니까 우리의 성격, 우리의 믿음, 우리의 도덕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그것이 실행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의사 한 명이 여러분의 진료기록에 적은 하나의 꼬리표로 인해 여러분은 한순간 이제까지 치료를 받던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병동으로 넘겨질 수 있다.
--- p.29, 「1장 거울상」 중에서
로젠한의 논문은 정신질환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 정신의학 내부의 목소리로 마련된, 보다 이론적인 비판과 궤를 같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추錘가 또 한 차례, 이번에는 제3의 입장으로 기울었다. 정신질환은 암과 마찬가지로 확인 가능한 병이며 뇌에 있다는 생각에서, 그것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해결되지 않은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을 거쳐, 이제 ‘병’은 오로지 관찰자의 눈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확신으로 바뀐 것이다. 로젠한은 건강한 자원자들이 정신이상자 판정을 받은 것은 정신의학이 어떤 객관적이고 외적인 진실로 인해 그런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호수용소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궁극적으로 이런 입장에 서 있다. 로젠한은 반정신의학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했다. 바로 그런 확신의 증거였다.
--- p.72, 「4장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중에서
1969년에 정신질환(광기, 일탈)의 개념은 미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을 정도로 대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의학적 논쟁이라기보다 철학적 논쟁에 가까웠다. ‘정신질환’은 그저 차이를 추려내는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 많은 사람의 주장이었다. 광기는 더는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의 시인, 예술가, 사상가를 위한 것이었다. (...)
대중은 광기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계속 가졌다. 이것은 본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든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보이겠지만, 동성의 사람에게 끌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꼬리표가 붙던 시절에는 논쟁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반권위주의 운동이 일면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많은 생각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광기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으며, 애초부터 정신병원 시설은 감금을 지배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증거라며 프랑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인용했다. (...)
1967년에 랭은 “광기라고 해서 꼭 고장일 필요는 없다. 돌파구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가장 대중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의 책인 『분열된 자기』와 『경험의 정치학』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모서리가 접힌 그 책들은 사회적 판단을 마음에 강요하는 것을 비꼬는 동시에 그들이 자아, 온전한 정신, 사회에 대한 더 높은 인식을 갖고 있음을 선언하는 명예훈장이었다. (...)
그리고 이런 기류 속에서 데이비드 로젠한의 이상심리학 세미나를 듣는 학생들을 대표하여 몇 명이 1969년 봄 학기가 시작할 무렵 스워스모어의 마틴 홀 지하실에 있는 연기 자욱한 그의 실험실로 찾아갔다. 이 모임으로 인해 세상을 바꾸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 p.95-105, 「6장 실험의 배경」 중에서
그들은 “공허해, 비었어, 쿵”이라는 환청을 생각해냈다. 사실상 권태롭다고 외치는 말, 실존의 위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신병원에 빨간 불이 켜졌어야 했다. 로젠한이 알기로는 문헌에 실존적 정신증이 보고된 사례가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쩌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 논문을 써야 할 거네!”라며 농담을 했다. 스워스모어 사람들만 알아듣는 농담이지만, 키르케고르를 읽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풋내기 정신 의학자를 조롱하는 선택임이 명백했다. 원고를 보면 이때만 해도 로젠한은 논문을 직접 내거나 진지한 자료를 수집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위험 부담을 최소로 하면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써서 학생들을 병원에 들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 p.117, 「7장 호랑이 굴 속으로」 중에서
바틀릿 의사는 이름과 나이 같은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다. 바틀릿은 환자가 느릿하게 대답했다고 적었다. 명백히 불편해 보였고 신경과민으로도 보였지만, 그래도 정신은 또렷했다.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루리가 말했다. 바틀릿은 루리가 얼굴을 찡그리고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환청은 넉 달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나.”
접수면접은 30분가량 이어졌다. 루리는 자신이 유능한 학생이었음에도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틀릿 의사는 이렇게 적었다. “그는 비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공상에 빠지는 경향을 보이며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합리화하는 데 지적 능력을 소모하는 것 같다.” 루리는 직업과 관련한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장모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는데 “난처한” 일이었다고 했다.
두 쪽에 걸쳐 상세하게 손으로 적은 메모는 이런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대단히 똑똑한 이 남성은 오랫동안 자신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거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다. (…) 그는 대단히 겁먹은 상태이고 의기소침해 있다.”
바틀릿 의사는 조현정동장애 유형의 조현병 진단을 내렸다. “조현병 증상과 확연한 의기양양이나 의기소침이 결합된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해당하는 범주”이다.
바틀릿 의사는 로젠한을 입원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외래환자를 위한 훌륭한 건물이 있었으므로 그곳을 추천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틀릿 의사가 본 ‘데이비드 루리’는 심각한 도움이 필요한 무척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서 몰리가 남편을 시설에 맡겨서 그의 많은 시민권을 사실상 넘겨주고 30일 동안 병원에서 그를 잡아두도록 허락하기를 원했다. 로젠한이 떠나기를 원한다면 병원에 신청서를 내야 했다.
--- p.134-135, 「9장 입원」 중에서
로젠한은 가족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사정했지만, 간호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전화 혜택을 누릴 처지가 아니었다. 혜택은 단계별로 조금씩 허락되었다. 먼저 전화 통화, 이어 마당 산책, 그런 다음 낮 외출, 마지막으로 밤 외출 혜택이 주어졌다. 퇴원은 그다음 일이었다. 로젠한은 자신이 전화를 분별력 있게 사용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때 나는 발로 문을 차고 부숴버릴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컴컴한 새장 속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내가 진짜 환자라고 생각하나 보지! 그렇지 않아. 난 멀쩡해. 연구를 위해 병원에 위장하고 들어온 거야. 사실 나는 데이비드 루리가 아니야.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이야!”
그러나 끝은 항상 똑같았다. 블라이가 자신의 온전함을 의사들에게 확신시키려고 헛된 힘을 썼듯이 간호사들이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났다. “자신이 ‘데이비드 로젠한’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 p.158, 「10장 정신병원에서 보낸 9일」 중에서
“로젠한의 연구가 행해졌을 때는 벌거숭이 황제의 실체가 드러날 무렵이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의 정신의학자이자 『정신과 상담의』의 저자 제프리 리버만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젠한은 우리의 기반 지식과 정신의학 진단을 내리는 방법론에 있는 확연한 약점들을 극적이고 대단히 효율적으로 지적하여 그것이 틀릴 수 있음을 폭로했습니다.”
의학 저널리스트 로버트 휘태커는 『매드 인 아메리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젠한의 연구는 미국 정신의학계가 벌거숭이임을 폭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 정신의학계가 제멋대로 경솔하게 조현병 진단을 남발해왔다는 증거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4판의 총괄자 앨런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던진 획기적 연구였습니다. 확신의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광기는 문명이다』의 저자 마이클 스토브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으로 (…) 정신의학이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신화임을 보여주었다. (…) 거트루드 스타인이라면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증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 p.190, 「12장 그리고 오로지 정신이상자들만이 누가 멀쩡한 사람인지 알았다」 중에서
거기에 빌이 있었다. 머리를 팔에 파묻은 채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울고 있거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가가서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앞에 있다는 것을 아예 몰랐다. 매리언은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다. “너어어무 조오오올려!” 그의 말이 마치 위스키를 몇 잔 마신 것처럼 뭉개진 채로 나왔다. 문을 할퀴고 피를 흘리는 광경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 진짜 공포였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그렇게 해서 매리언은 남편이 변했다고 느낀 것이다. “내가 언젠가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병약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 p.220-221, 「14장 빌 언더우드」 중에서
나는 로젠한이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하지도 않았으면서 매리언에게 작성해놓았다고 한 말에 신경이 쓰였다. 로젠한이 태연하게 빌을 병원에 들이고 사전 준비를 거의 시키지 않아 결과적으로 빌이 소라진을 다량 복용하게 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로젠한은 빌보다 먼저 준비시켰던 여섯 명의 다른 가짜 환자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까? 또 하나 신경 쓰인 것이 있었다. 로젠한이 애그뉴스 병원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 어수선한 과정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들여보내 실험을 하기에는 위험하고 부적절한 때였다. 당시 애그뉴스에서 벌어졌던 그곳만의 특별한 정황은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연구에 치명적이었다.
--- p.259, 「18장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 중에서
“우리가 진단기준을 집필할 때면 로젠한의 연구가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피처의 부인이자 역시 『정신질환 편람』 제3판 작업에 참여했던 재닛 윌리엄스는 말했다. “진단기준 정하기라고 부르는 작업이었는데, 종이에 기준을 적고는 이렇게도 질문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 이런 일을 할 때면 어김없이 로젠한이 떠올랐습니다.”
스피처는 로젠한과 일곱 명의 가짜 환자가 일으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악몽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타냐 마리 루어만은 말했다. “로젠한의 가짜 환자들은 면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가 제3판을 사용했다면 절대로 조현병 진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 p.291, 「20장 역설적 쓸모」 중에서
나는 로젠한이 ‘월터 에이브럼스’(해리를 나타내는 가명)에 대해 쓴 기록을 해리에게 건네며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했다. 해리는 큰소리로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봅시다. ‘그는 병원에 들어갔고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틀렸어요. 만성 미분화형 조현병이었어요. ‘그는 26일을 있다가 퇴원했다’ 이것도 틀렸군요. 19일입니다.”
온화한 성품의 그가 냉정을 잃었다.
“흥미롭네요.” 해리는 집게손가락을 턱에 대고 기록을 읽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부정확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는 할 것도 없죠. 그럴 이유가 없어요.” 해리는 의료진의 조언을 무시하고 퇴원한 것이 아니라 조언에 따라 퇴원했다. 해리는 “완화를 보여” 병원을 나오지 않았다. 해리는 “사흘 동안” 방치되지 않았고, 그가 들어간 병동은 환자로 “꽉 들어차지” 않았다. 이번에도 로젠한은 멋대로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날조로 빈칸을 채워 넣었다.
--- p.335, 「23장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다”」 중에서
“병원이 거의 모두 없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앨리사 로스는 2018년에 나온 책 『제정신이 아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 즉 잔인함, 불결함, 형편없는 음식, 폭압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 p.351, 「24장 무너진 정신보건 시스템」 중에서
심리학자가 내 말을 끊었다. “당신이 이 연구에 왜 집착하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토록 반정신의학적인 일을 하는 거죠?”
연구에 대해 갈수록 의심이 든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한층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테이블을 쓸었고 이제 사람들이 거의 떠나고 없는 식당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럼없이 연구가 “반정신의학”이라며 무시했던 바로 그 사람은 연구가 정직하지 않았다는 증거에 곧바로 화를 냈다. 이 연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정신의학 분야 안팎의 많은 사람에게 먹혔던 서사에 좋을까? 우리는 나쁜 과거를 뒤에 묻고 꾸준히 진전할 수 있을까?
--- p.29, 「1장 거울상」 중에서
로젠한의 논문은 정신질환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 정신의학 내부의 목소리로 마련된, 보다 이론적인 비판과 궤를 같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추錘가 또 한 차례, 이번에는 제3의 입장으로 기울었다. 정신질환은 암과 마찬가지로 확인 가능한 병이며 뇌에 있다는 생각에서, 그것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해결되지 않은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을 거쳐, 이제 ‘병’은 오로지 관찰자의 눈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확신으로 바뀐 것이다. 로젠한은 건강한 자원자들이 정신이상자 판정을 받은 것은 정신의학이 어떤 객관적이고 외적인 진실로 인해 그런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호수용소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궁극적으로 이런 입장에 서 있다. 로젠한은 반정신의학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했다. 바로 그런 확신의 증거였다.
--- p.72, 「4장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중에서
1969년에 정신질환(광기, 일탈)의 개념은 미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을 정도로 대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의학적 논쟁이라기보다 철학적 논쟁에 가까웠다. ‘정신질환’은 그저 차이를 추려내는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 많은 사람의 주장이었다. 광기는 더는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의 시인, 예술가, 사상가를 위한 것이었다. (...)
대중은 광기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계속 가졌다. 이것은 본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든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보이겠지만, 동성의 사람에게 끌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꼬리표가 붙던 시절에는 논쟁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반권위주의 운동이 일면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많은 생각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광기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으며, 애초부터 정신병원 시설은 감금을 지배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증거라며 프랑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인용했다. (...)
1967년에 랭은 “광기라고 해서 꼭 고장일 필요는 없다. 돌파구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가장 대중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의 책인 『분열된 자기』와 『경험의 정치학』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모서리가 접힌 그 책들은 사회적 판단을 마음에 강요하는 것을 비꼬는 동시에 그들이 자아, 온전한 정신, 사회에 대한 더 높은 인식을 갖고 있음을 선언하는 명예훈장이었다. (...)
그리고 이런 기류 속에서 데이비드 로젠한의 이상심리학 세미나를 듣는 학생들을 대표하여 몇 명이 1969년 봄 학기가 시작할 무렵 스워스모어의 마틴 홀 지하실에 있는 연기 자욱한 그의 실험실로 찾아갔다. 이 모임으로 인해 세상을 바꾸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 p.95-105, 「6장 실험의 배경」 중에서
그들은 “공허해, 비었어, 쿵”이라는 환청을 생각해냈다. 사실상 권태롭다고 외치는 말, 실존의 위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신병원에 빨간 불이 켜졌어야 했다. 로젠한이 알기로는 문헌에 실존적 정신증이 보고된 사례가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쩌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 논문을 써야 할 거네!”라며 농담을 했다. 스워스모어 사람들만 알아듣는 농담이지만, 키르케고르를 읽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풋내기 정신 의학자를 조롱하는 선택임이 명백했다. 원고를 보면 이때만 해도 로젠한은 논문을 직접 내거나 진지한 자료를 수집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위험 부담을 최소로 하면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써서 학생들을 병원에 들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 p.117, 「7장 호랑이 굴 속으로」 중에서
바틀릿 의사는 이름과 나이 같은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다. 바틀릿은 환자가 느릿하게 대답했다고 적었다. 명백히 불편해 보였고 신경과민으로도 보였지만, 그래도 정신은 또렷했다.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루리가 말했다. 바틀릿은 루리가 얼굴을 찡그리고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환청은 넉 달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나.”
접수면접은 30분가량 이어졌다. 루리는 자신이 유능한 학생이었음에도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틀릿 의사는 이렇게 적었다. “그는 비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공상에 빠지는 경향을 보이며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합리화하는 데 지적 능력을 소모하는 것 같다.” 루리는 직업과 관련한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장모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는데 “난처한” 일이었다고 했다.
두 쪽에 걸쳐 상세하게 손으로 적은 메모는 이런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대단히 똑똑한 이 남성은 오랫동안 자신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거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다. (…) 그는 대단히 겁먹은 상태이고 의기소침해 있다.”
바틀릿 의사는 조현정동장애 유형의 조현병 진단을 내렸다. “조현병 증상과 확연한 의기양양이나 의기소침이 결합된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해당하는 범주”이다.
바틀릿 의사는 로젠한을 입원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외래환자를 위한 훌륭한 건물이 있었으므로 그곳을 추천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틀릿 의사가 본 ‘데이비드 루리’는 심각한 도움이 필요한 무척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서 몰리가 남편을 시설에 맡겨서 그의 많은 시민권을 사실상 넘겨주고 30일 동안 병원에서 그를 잡아두도록 허락하기를 원했다. 로젠한이 떠나기를 원한다면 병원에 신청서를 내야 했다.
--- p.134-135, 「9장 입원」 중에서
로젠한은 가족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사정했지만, 간호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전화 혜택을 누릴 처지가 아니었다. 혜택은 단계별로 조금씩 허락되었다. 먼저 전화 통화, 이어 마당 산책, 그런 다음 낮 외출, 마지막으로 밤 외출 혜택이 주어졌다. 퇴원은 그다음 일이었다. 로젠한은 자신이 전화를 분별력 있게 사용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때 나는 발로 문을 차고 부숴버릴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컴컴한 새장 속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내가 진짜 환자라고 생각하나 보지! 그렇지 않아. 난 멀쩡해. 연구를 위해 병원에 위장하고 들어온 거야. 사실 나는 데이비드 루리가 아니야.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이야!”
그러나 끝은 항상 똑같았다. 블라이가 자신의 온전함을 의사들에게 확신시키려고 헛된 힘을 썼듯이 간호사들이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났다. “자신이 ‘데이비드 로젠한’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 p.158, 「10장 정신병원에서 보낸 9일」 중에서
“로젠한의 연구가 행해졌을 때는 벌거숭이 황제의 실체가 드러날 무렵이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의 정신의학자이자 『정신과 상담의』의 저자 제프리 리버만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젠한은 우리의 기반 지식과 정신의학 진단을 내리는 방법론에 있는 확연한 약점들을 극적이고 대단히 효율적으로 지적하여 그것이 틀릴 수 있음을 폭로했습니다.”
의학 저널리스트 로버트 휘태커는 『매드 인 아메리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젠한의 연구는 미국 정신의학계가 벌거숭이임을 폭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 정신의학계가 제멋대로 경솔하게 조현병 진단을 남발해왔다는 증거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4판의 총괄자 앨런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던진 획기적 연구였습니다. 확신의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광기는 문명이다』의 저자 마이클 스토브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으로 (…) 정신의학이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신화임을 보여주었다. (…) 거트루드 스타인이라면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증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 p.190, 「12장 그리고 오로지 정신이상자들만이 누가 멀쩡한 사람인지 알았다」 중에서
거기에 빌이 있었다. 머리를 팔에 파묻은 채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울고 있거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가가서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앞에 있다는 것을 아예 몰랐다. 매리언은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다. “너어어무 조오오올려!” 그의 말이 마치 위스키를 몇 잔 마신 것처럼 뭉개진 채로 나왔다. 문을 할퀴고 피를 흘리는 광경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 진짜 공포였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그렇게 해서 매리언은 남편이 변했다고 느낀 것이다. “내가 언젠가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병약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 p.220-221, 「14장 빌 언더우드」 중에서
나는 로젠한이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하지도 않았으면서 매리언에게 작성해놓았다고 한 말에 신경이 쓰였다. 로젠한이 태연하게 빌을 병원에 들이고 사전 준비를 거의 시키지 않아 결과적으로 빌이 소라진을 다량 복용하게 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로젠한은 빌보다 먼저 준비시켰던 여섯 명의 다른 가짜 환자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까? 또 하나 신경 쓰인 것이 있었다. 로젠한이 애그뉴스 병원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 어수선한 과정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들여보내 실험을 하기에는 위험하고 부적절한 때였다. 당시 애그뉴스에서 벌어졌던 그곳만의 특별한 정황은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연구에 치명적이었다.
--- p.259, 「18장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 중에서
“우리가 진단기준을 집필할 때면 로젠한의 연구가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피처의 부인이자 역시 『정신질환 편람』 제3판 작업에 참여했던 재닛 윌리엄스는 말했다. “진단기준 정하기라고 부르는 작업이었는데, 종이에 기준을 적고는 이렇게도 질문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 이런 일을 할 때면 어김없이 로젠한이 떠올랐습니다.”
스피처는 로젠한과 일곱 명의 가짜 환자가 일으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악몽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타냐 마리 루어만은 말했다. “로젠한의 가짜 환자들은 면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가 제3판을 사용했다면 절대로 조현병 진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 p.291, 「20장 역설적 쓸모」 중에서
나는 로젠한이 ‘월터 에이브럼스’(해리를 나타내는 가명)에 대해 쓴 기록을 해리에게 건네며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했다. 해리는 큰소리로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봅시다. ‘그는 병원에 들어갔고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틀렸어요. 만성 미분화형 조현병이었어요. ‘그는 26일을 있다가 퇴원했다’ 이것도 틀렸군요. 19일입니다.”
온화한 성품의 그가 냉정을 잃었다.
“흥미롭네요.” 해리는 집게손가락을 턱에 대고 기록을 읽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부정확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는 할 것도 없죠. 그럴 이유가 없어요.” 해리는 의료진의 조언을 무시하고 퇴원한 것이 아니라 조언에 따라 퇴원했다. 해리는 “완화를 보여” 병원을 나오지 않았다. 해리는 “사흘 동안” 방치되지 않았고, 그가 들어간 병동은 환자로 “꽉 들어차지” 않았다. 이번에도 로젠한은 멋대로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날조로 빈칸을 채워 넣었다.
--- p.335, 「23장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다”」 중에서
“병원이 거의 모두 없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앨리사 로스는 2018년에 나온 책 『제정신이 아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 즉 잔인함, 불결함, 형편없는 음식, 폭압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 p.351, 「24장 무너진 정신보건 시스템」 중에서
심리학자가 내 말을 끊었다. “당신이 이 연구에 왜 집착하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토록 반정신의학적인 일을 하는 거죠?”
연구에 대해 갈수록 의심이 든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한층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테이블을 쓸었고 이제 사람들이 거의 떠나고 없는 식당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럼없이 연구가 “반정신의학”이라며 무시했던 바로 그 사람은 연구가 정직하지 않았다는 증거에 곧바로 화를 냈다. 이 연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정신의학 분야 안팎의 많은 사람에게 먹혔던 서사에 좋을까? 우리는 나쁜 과거를 뒤에 묻고 꾸준히 진전할 수 있을까?
--- p.402, 「26장 결정적 일격」 중에서
출판사 리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작가 신작★
★전홍진, 뇌부자들 강력 추천★
★가디언, 텔레그래프 올해의 책★
“이 스릴 있는 이야기 속에 정신의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
로젠한 실험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1969년 2월, 한 남자가 정신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 이름이 뭡니까?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은 누구죠? 그는 네 가지 질문 모두에 옳게 답했다. 데이비드 루리, 하버포드 주립병원, 1969년 2월 6일, 리처드 닉슨.
이제 의사는 그가 듣는 목소리에 대해 물었다. 환자는 목소리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의사에게 전했다.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 나.” 의사가 물었다. “목소리들을 알아듣겠어요?” “아니오.” “남자 목소린가요? 여자 목소린가요?” “항상 남자예요.” “지금도 들리나요?” “아니오.” “그들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전혀요. 나는 진짜가 아니라고 확신해요.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의사는 진단이 끝난 후, 그에게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내리고 정신병동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데이비드 루리는 환청을 듣지 않는다. 그의 성은 루리가 아니다. 사실, 데이비드 루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데이비드 로젠한이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자, 악명 높은 로젠한 실험의 첫 번째 가짜 환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실험을 계획했다. 자신을 포함해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을 미국 각지의 정신병원으로 보내 의사들이 가짜 환자들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고,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 시켰다. 가짜 환자들은 병동 내부의 비윤리적인 행태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었고,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했다.
로젠한은 실험을 바탕으로 논문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를 발표했고,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리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정신의학계의 진단체계와 치료법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나면서, 수십 개의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정신의학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이 모든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데이비드 로젠한은 이 실험을 왜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다. 〈뉴욕 포스트〉의 베테랑 기자이자, 100만 베스트셀러 작가인 수재나 캐헐런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특유의 조사력과 문장력을 바탕으로 마치 범인을 쫓는 형사처럼 작은 실마리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답을 추리해 나간다. 실험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은 물론, 수소문해서 찾은 로젠한의 동료 교수로부터 건네받은 로젠한의 유품에서 시작해서, 생존한 인물들과 남아 있는 소수의 자료를 통해 로젠한이 실험을 계획한 동기와 실험에 참가했던 가짜 환자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지금껏 알려진 이야기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신의학의 얼굴을 드러내며, 아직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에 드리운 거대한 그늘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로젠한은 왜 이 실험을 계획했는가?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충격적인 실험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정신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며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며 시작한다. 인류는 오랜 시간 광기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광기를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주장했던 초기 종교와 물질적인 신체와 완전히 별개로서 합리적 이성이 무너진 부산물이라고 주장한 계몽주의 사상을 거쳐, 19세기에 들어서야 광기는 의학의 대상이 되었고 ‘정신의학’은 탄생했다. 이후 카를 베르니케, 크레펠린 등의 정신의학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를 비롯한 생물학적 원인에서 찾으려 했고, 프로이트는 유명한 무의식 이론을 주장하며 마음을 분석하여 원인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광기, 즉 정신이상의 원인을 찾는 여정이 악령과 이성의 문제에서, 뇌와 육체를 거쳐, 보이지 않는 무의식에 이를 때까지 정신의학은 어떠한 과학적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오직 정신의학자들이 주장하고 합의하는 것, 그것이 ‘정신’을 개념화했다. 이 과정에서 회전의자, 뇌엽절리술, 허술한 약물 처방과 같은 끔찍한 치료를 시행했고, 우생학과 단종법, 정신분석과 극단적 진단 허무주의 사이를 크게 오가며 진단에서도 치료에서도 어떠한 답을 밝히지 못했다. 정신의학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정상에서 추방당할 수 있었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는 악순환이 역사 내내 계속되었다. 정신의학은 과학적 언어가 없다는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을 판단하고 좌우하는 너무나 크고 중요한 힘을 가졌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로젠한의 실험은 이런 사회적 의구심과 함께 계획되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로젠한의 이 질문은 정신이상은 어떤 객관적이고 외적인 진실로 인해 진단되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자의 눈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사이언스〉라는 명망 높은 학술지가 과학적 엄정함을 뒷받침했고, 1960~70년대 당시 거세게 불었던 반정신의학 운동과 광기에 대한 대중들의 옹호는 로젠한 실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일조했다. 그렇게 로젠한은 실험의 여러 ‘치명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있었고, 그에 따른 권위를 얻었다. 저자는 로젠한 실험의 역사적 배경을 꼼꼼히 살피며, 실험이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그리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정신의학 안팎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로젠한 실험의 구체적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로젠한과 관련된 자료와 인물들을 탐색하며, 논문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날조된 로젠한이 숨기려 한 가짜 환자들의 실태를 찾아 나선다. 빌 언더우드라는 이름의 가짜 환자는 로젠한에게 제대로 된 준비를 받지 않은 채 정신병동에 수감되었다. 과도한 약물치료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전기충격요법을 받을 뻔했다. 또한 로젠한은 빌과 그의 아내에게 그를 언제든지 퇴원시킬 수 있는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빌은 정신병원에 도사린 온갖 위험에서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다. 빌의 아내는 남편과 면회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젠가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병약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정신병원 수감 경험은 한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로젠한은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모조리 삭제했다.
또 다른 가짜 환자 해리 랜도의 경우 그는 아예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그가 실험 취지에 어긋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해리는 정신병원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의료진 및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현실에서 느낀 불안감과 소외감이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해소된 것이다. 동료들과 진심으로 고민을 나눴고 때로는 리더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해리는 정신병원 생활에 만족했고 이를 보고했지만, 정신의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게 목표였던 로젠한은 그의 기록을 누락했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 가져와 다른 환자의 기록에 덧붙였다.
저자가 밝히는 가짜 환자들의 이야기는 정신병원 내부의 모습, 그리고 정신의학의 한계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로젠한과 가짜 환자들이 의사를 상대로 쓴 속임수, 과장된 진술을 조목조목 살펴보며, 로젠한 실험에 점철된 날조와 왜곡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로젠한 실험은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정신의학계 안에서 실험의 방법론적 결함을 지적하며 가짜 연구임을 고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내가 혈액 한 통을 마시고는 무슨 짓을 했는지 감추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피를 토한다면, 그곳 직원이 어떻게 행동할지 빤히 예측된다. 그들이 출혈성 궤양이라고 진단하고 치료하면, 의학이 병을 진단할 줄 모른다고 내가 설득력 있게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 같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스피처는 로젠한 실험의 맹점을 누구보다 확실히 파악했다. 그는 “먹을 때는 맛있지만 나쁜 뒷맛을 남기는 음식이 있다. 로젠한의 연구가 그렇다. 논문이 게재된 〈사이언스〉의 명성과 넓은 독자층에 힘입어 과학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라고 말하며, “과학 행세를 하는 유사과학”으로 취급했다. 그는 실험의 방법부터 용어 사용까지 모든 측면을 격파했다. 그런데 왜 스피처는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도 정신의학의 본질적 한계가 연관되어 있다.
로버트 스피처는 정신의학에서 헌법과도 같은 위상을 가진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3판의 담당자였다. 그는 이 3판 개정으로 정신의학을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 변화를 시도한다. 인간 행동 이면의 동기를 탐구한다는 프로이트주의를 몰아내고, 기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엄정한 진단기준을 마련하여 진단에 공통적인 증상들을 하나로 묶으려 시도했다. 정신의학을 더욱 의학 분야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심장병, 위암, 당뇨병 등을 치료하듯 의사들이 정확히 환자의 병을 판별하고 공략할 수 있는 진단기준을 마련하려 했다.
그런 그에게 로젠한 실험은 천운의 기회였다. 지금까지의 정신의학은 모두 틀렸고 싹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도발적이고 힘 있게 설득한 것이다. 스피처는 로젠한 실험의 여러 문제점은 차지하고 그가 하나는 제대로 했는데 바로 “정신질환 진단의 신뢰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한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험이 일으킨 파장을 동력으로 삼아 이 문제를 본인이 해결하려 한 것이다. 사회학자 앤드루 스컬은 이렇게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스피처에게 로젠한의 연구와 세상의 이례적인 관심은 하늘이 내려준 만나였다. 얼마 전부터 그가 하려고 준비해온 일, 즉 정신의학이 진단을 내리는 방식을 개편하는 일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다시 말해 로젠한의 연구는 스피처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신의학 분야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철저한 정비를 그가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토록 쓸모가 많은 것에 어째서 치명타를 입힌다는 말인가?
정신의학이 과학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로젠한 실험의 문제를 알면서도 드러내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의학이 힘이 없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로젠한 실험이라는 주사를 맞은 정신의학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진단 기준과 치료법을 얻었을까?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제5판까지 개정되며 수정에 수정을 더했지만 아직도 정신의학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릴 과학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정신의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며 로젠한 실험이 여전히 드리우고 있는 그늘과 정신의학이 나아가는 길을 살펴본다.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길 수 있는가?”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정신질환 만연의 시대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정신의학은 점점 우리의 삶과 밀접해지고 있다. 정신과의 문턱은 갈수록 낮아지는 한편, 뉴스에서는 연일 조현병 관련 범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정신의학을 알지 못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사회의 뇌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지금 우리는 정신의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렵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로젠한 실험, 가짜 환자 미스터리』는 독자들에게 로젠한 실험이라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정신의학의 역사와 핵심 개념을 재미있고 부담 없이 접해보기를 제안한다.
로젠한의 실험은 비록 여러 문제가 있지만, 정신의학에 올바른 문제를 제기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이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신의학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그저 맡기기만 해도 될까? 정신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와 결정적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어떤 분야도 강제로 치료하거나 억지로 사람을 감금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분야도 질병인식불능증(병에 걸린 사람이 그 사실을 몰라서 의사가 어떻게 언제 개입해야 할지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정기적으로 맞닥뜨려 골머리를 앓지 않는다. 정신의학은 ‘사람’에 대해, 우리의 ‘성격’, 우리의 ‘믿음’, 우리의 ‘도덕’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정신의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법관인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의학의 이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때로는 돕고 때로는 의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신의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상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도와줄 것이다.
★전홍진, 뇌부자들 강력 추천★
★가디언, 텔레그래프 올해의 책★
“이 스릴 있는 이야기 속에 정신의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
로젠한 실험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1969년 2월, 한 남자가 정신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 이름이 뭡니까?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은 누구죠? 그는 네 가지 질문 모두에 옳게 답했다. 데이비드 루리, 하버포드 주립병원, 1969년 2월 6일, 리처드 닉슨.
이제 의사는 그가 듣는 목소리에 대해 물었다. 환자는 목소리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의사에게 전했다.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 나.” 의사가 물었다. “목소리들을 알아듣겠어요?” “아니오.” “남자 목소린가요? 여자 목소린가요?” “항상 남자예요.” “지금도 들리나요?” “아니오.” “그들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전혀요. 나는 진짜가 아니라고 확신해요.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의사는 진단이 끝난 후, 그에게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내리고 정신병동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데이비드 루리는 환청을 듣지 않는다. 그의 성은 루리가 아니다. 사실, 데이비드 루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데이비드 로젠한이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자, 악명 높은 로젠한 실험의 첫 번째 가짜 환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실험을 계획했다. 자신을 포함해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을 미국 각지의 정신병원으로 보내 의사들이 가짜 환자들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고,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 시켰다. 가짜 환자들은 병동 내부의 비윤리적인 행태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었고,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했다.
로젠한은 실험을 바탕으로 논문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를 발표했고,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리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정신의학계의 진단체계와 치료법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나면서, 수십 개의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정신의학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이 모든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데이비드 로젠한은 이 실험을 왜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다. 〈뉴욕 포스트〉의 베테랑 기자이자, 100만 베스트셀러 작가인 수재나 캐헐런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특유의 조사력과 문장력을 바탕으로 마치 범인을 쫓는 형사처럼 작은 실마리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답을 추리해 나간다. 실험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은 물론, 수소문해서 찾은 로젠한의 동료 교수로부터 건네받은 로젠한의 유품에서 시작해서, 생존한 인물들과 남아 있는 소수의 자료를 통해 로젠한이 실험을 계획한 동기와 실험에 참가했던 가짜 환자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지금껏 알려진 이야기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신의학의 얼굴을 드러내며, 아직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에 드리운 거대한 그늘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로젠한은 왜 이 실험을 계획했는가?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충격적인 실험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정신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며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며 시작한다. 인류는 오랜 시간 광기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광기를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주장했던 초기 종교와 물질적인 신체와 완전히 별개로서 합리적 이성이 무너진 부산물이라고 주장한 계몽주의 사상을 거쳐, 19세기에 들어서야 광기는 의학의 대상이 되었고 ‘정신의학’은 탄생했다. 이후 카를 베르니케, 크레펠린 등의 정신의학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를 비롯한 생물학적 원인에서 찾으려 했고, 프로이트는 유명한 무의식 이론을 주장하며 마음을 분석하여 원인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광기, 즉 정신이상의 원인을 찾는 여정이 악령과 이성의 문제에서, 뇌와 육체를 거쳐, 보이지 않는 무의식에 이를 때까지 정신의학은 어떠한 과학적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오직 정신의학자들이 주장하고 합의하는 것, 그것이 ‘정신’을 개념화했다. 이 과정에서 회전의자, 뇌엽절리술, 허술한 약물 처방과 같은 끔찍한 치료를 시행했고, 우생학과 단종법, 정신분석과 극단적 진단 허무주의 사이를 크게 오가며 진단에서도 치료에서도 어떠한 답을 밝히지 못했다. 정신의학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정상에서 추방당할 수 있었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는 악순환이 역사 내내 계속되었다. 정신의학은 과학적 언어가 없다는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을 판단하고 좌우하는 너무나 크고 중요한 힘을 가졌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로젠한의 실험은 이런 사회적 의구심과 함께 계획되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로젠한의 이 질문은 정신이상은 어떤 객관적이고 외적인 진실로 인해 진단되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자의 눈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사이언스〉라는 명망 높은 학술지가 과학적 엄정함을 뒷받침했고, 1960~70년대 당시 거세게 불었던 반정신의학 운동과 광기에 대한 대중들의 옹호는 로젠한 실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일조했다. 그렇게 로젠한은 실험의 여러 ‘치명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있었고, 그에 따른 권위를 얻었다. 저자는 로젠한 실험의 역사적 배경을 꼼꼼히 살피며, 실험이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그리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정신의학 안팎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로젠한 실험의 구체적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로젠한과 관련된 자료와 인물들을 탐색하며, 논문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날조된 로젠한이 숨기려 한 가짜 환자들의 실태를 찾아 나선다. 빌 언더우드라는 이름의 가짜 환자는 로젠한에게 제대로 된 준비를 받지 않은 채 정신병동에 수감되었다. 과도한 약물치료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전기충격요법을 받을 뻔했다. 또한 로젠한은 빌과 그의 아내에게 그를 언제든지 퇴원시킬 수 있는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빌은 정신병원에 도사린 온갖 위험에서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다. 빌의 아내는 남편과 면회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젠가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병약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정신병원 수감 경험은 한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로젠한은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모조리 삭제했다.
또 다른 가짜 환자 해리 랜도의 경우 그는 아예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그가 실험 취지에 어긋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해리는 정신병원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의료진 및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현실에서 느낀 불안감과 소외감이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해소된 것이다. 동료들과 진심으로 고민을 나눴고 때로는 리더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해리는 정신병원 생활에 만족했고 이를 보고했지만, 정신의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게 목표였던 로젠한은 그의 기록을 누락했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 가져와 다른 환자의 기록에 덧붙였다.
저자가 밝히는 가짜 환자들의 이야기는 정신병원 내부의 모습, 그리고 정신의학의 한계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로젠한과 가짜 환자들이 의사를 상대로 쓴 속임수, 과장된 진술을 조목조목 살펴보며, 로젠한 실험에 점철된 날조와 왜곡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로젠한 실험은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정신의학계 안에서 실험의 방법론적 결함을 지적하며 가짜 연구임을 고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내가 혈액 한 통을 마시고는 무슨 짓을 했는지 감추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피를 토한다면, 그곳 직원이 어떻게 행동할지 빤히 예측된다. 그들이 출혈성 궤양이라고 진단하고 치료하면, 의학이 병을 진단할 줄 모른다고 내가 설득력 있게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 같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스피처는 로젠한 실험의 맹점을 누구보다 확실히 파악했다. 그는 “먹을 때는 맛있지만 나쁜 뒷맛을 남기는 음식이 있다. 로젠한의 연구가 그렇다. 논문이 게재된 〈사이언스〉의 명성과 넓은 독자층에 힘입어 과학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라고 말하며, “과학 행세를 하는 유사과학”으로 취급했다. 그는 실험의 방법부터 용어 사용까지 모든 측면을 격파했다. 그런데 왜 스피처는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도 정신의학의 본질적 한계가 연관되어 있다.
로버트 스피처는 정신의학에서 헌법과도 같은 위상을 가진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3판의 담당자였다. 그는 이 3판 개정으로 정신의학을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 변화를 시도한다. 인간 행동 이면의 동기를 탐구한다는 프로이트주의를 몰아내고, 기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엄정한 진단기준을 마련하여 진단에 공통적인 증상들을 하나로 묶으려 시도했다. 정신의학을 더욱 의학 분야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심장병, 위암, 당뇨병 등을 치료하듯 의사들이 정확히 환자의 병을 판별하고 공략할 수 있는 진단기준을 마련하려 했다.
그런 그에게 로젠한 실험은 천운의 기회였다. 지금까지의 정신의학은 모두 틀렸고 싹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도발적이고 힘 있게 설득한 것이다. 스피처는 로젠한 실험의 여러 문제점은 차지하고 그가 하나는 제대로 했는데 바로 “정신질환 진단의 신뢰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한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험이 일으킨 파장을 동력으로 삼아 이 문제를 본인이 해결하려 한 것이다. 사회학자 앤드루 스컬은 이렇게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스피처에게 로젠한의 연구와 세상의 이례적인 관심은 하늘이 내려준 만나였다. 얼마 전부터 그가 하려고 준비해온 일, 즉 정신의학이 진단을 내리는 방식을 개편하는 일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다시 말해 로젠한의 연구는 스피처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신의학 분야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철저한 정비를 그가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토록 쓸모가 많은 것에 어째서 치명타를 입힌다는 말인가?
정신의학이 과학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로젠한 실험의 문제를 알면서도 드러내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의학이 힘이 없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로젠한 실험이라는 주사를 맞은 정신의학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진단 기준과 치료법을 얻었을까?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제5판까지 개정되며 수정에 수정을 더했지만 아직도 정신의학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릴 과학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정신의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며 로젠한 실험이 여전히 드리우고 있는 그늘과 정신의학이 나아가는 길을 살펴본다.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길 수 있는가?”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정신질환 만연의 시대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정신의학은 점점 우리의 삶과 밀접해지고 있다. 정신과의 문턱은 갈수록 낮아지는 한편, 뉴스에서는 연일 조현병 관련 범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정신의학을 알지 못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사회의 뇌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지금 우리는 정신의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렵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로젠한 실험, 가짜 환자 미스터리』는 독자들에게 로젠한 실험이라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정신의학의 역사와 핵심 개념을 재미있고 부담 없이 접해보기를 제안한다.
로젠한의 실험은 비록 여러 문제가 있지만, 정신의학에 올바른 문제를 제기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이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신의학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그저 맡기기만 해도 될까? 정신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와 결정적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어떤 분야도 강제로 치료하거나 억지로 사람을 감금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분야도 질병인식불능증(병에 걸린 사람이 그 사실을 몰라서 의사가 어떻게 언제 개입해야 할지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정기적으로 맞닥뜨려 골머리를 앓지 않는다. 정신의학은 ‘사람’에 대해, 우리의 ‘성격’, 우리의 ‘믿음’, 우리의 ‘도덕’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정신의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법관인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의학의 이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때로는 돕고 때로는 의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신의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상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도와줄 것이다.
추천평
로젠한 실험은 정신의학의 진단과 입원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의학의 다른 분야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이나 감염 질환은 자세히 현미경으로 보면 병변이 보이기 때문에 의사가 내린 진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병변이 눈에 보이지 않고 더욱이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진단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로젠한의 연구가 제시하는 것은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데에는 더욱 심도 있는 인터뷰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지 환자가 이야기하는 몇 마디 말로 환청이나 망상을 진단할 수는 없다. 그의 연구가 보이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제 제기는 현재에도 중요한 쟁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성찰해야 할 점과 한계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저자)
-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저자)
나는 종종 치료에 실패한다. 정신의학의 부족함과 한계를 매일같이 느낀다. 언제까지 투약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때가 꽤 잦다. 저도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고. 그렇기에 이 책을 피하고 싶었다.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았던 로젠한 실험이 그저 불편했다. 게다가 뇌염을 조현병으로 오진 받았던 저자라니, 괜히 나의 무능함이 까발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저자의 믿음에 용기를 얻는다. 로젠한에게 속은 의사는 나쁜 결정을 내리지도, 실수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정보로 최선의 결정을 내린 좋은 의사였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앞으로 계속 진보할 정신의학이 언젠가 마음의 수수께끼를 밝혀낼 그 순간을 믿으면서.
-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정신과의사 뇌부자들’)
-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정신과의사 뇌부자들’)
'32.심리학 연구 (독서>책소개) > 1.심리학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심리 공부 (2024) -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 지식 365 [이론] (0) | 2024.01.10 |
---|---|
진화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 (2012) (0) | 2023.12.25 |
알프레드 아들러 사회적 관심 [이론] (2022) (0) | 2023.12.22 |
심리학과 종교 [이론] (2023) (0) | 2023.12.22 |
심리학과 연금술 [이론] (2023) (0) | 202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