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의 신작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의 모습들
『라틴어 수업』으로 100쇄를 돌파한 한동일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도 알려진 한동일 작가는 저자 스스로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가톨릭교회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사제직을 내려놓았고 이 사실을 자신의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알렸다.
이번 신작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저자가 일반인이자 평범한 신앙인으로 돌아와 다시 들여다본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 책이 “사제라는 이름으로 보낸 21년 동안할 수 없었던 강론을 글로 옮긴 것 같기도 하고, 친근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마음에 닿은 성경 구절과 성경 이야기, 그 구절에서 만난 자신의 지난 날과 오늘, 나아가 종교 공동체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화두를 담았다. 또한 성경을 잘 이해하고 아는 저자는 단순히 성경 구절을 통해 생각한 바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구절에 담긴 지식도 함께 전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의 모습들
『라틴어 수업』으로 100쇄를 돌파한 한동일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도 알려진 한동일 작가는 저자 스스로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가톨릭교회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사제직을 내려놓았고 이 사실을 자신의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알렸다.
이번 신작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저자가 일반인이자 평범한 신앙인으로 돌아와 다시 들여다본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 책이 “사제라는 이름으로 보낸 21년 동안할 수 없었던 강론을 글로 옮긴 것 같기도 하고, 친근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마음에 닿은 성경 구절과 성경 이야기, 그 구절에서 만난 자신의 지난 날과 오늘, 나아가 종교 공동체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화두를 담았다. 또한 성경을 잘 이해하고 아는 저자는 단순히 성경 구절을 통해 생각한 바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구절에 담긴 지식도 함께 전하고 있다.
목차
이야기를 시작하며
I. 고독과 아픔 속에서 앞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 /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 지금이 바로 그때다 /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 건강해지고 싶으냐? / 무엇을 찾느냐? /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두려워하지 마라 /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나는 아니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II.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 가자 /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 ‘에파타!’ 곧 ‘열려라!’
글을 마치면서
I. 고독과 아픔 속에서 앞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 /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 지금이 바로 그때다 /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 건강해지고 싶으냐? / 무엇을 찾느냐? /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두려워하지 마라 /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나는 아니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II.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를 위하여
일어나 가자 /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 ‘에파타!’ 곧 ‘열려라!’
글을 마치면서
책 속으로
어쩌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봉헌물은 ‘매일 매 순간 결심한 것들에 대한 반복된 실패’일 거라고요.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 19)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만을 신에게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저를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제 지극한 부끄러움과 인간적인 약점, 미성숙함만 내보일 수밖에 없는 제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다’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쓴 것입니다.
--- p.21
저는 그와 같은 예수의 모습에서, 그가 인간처럼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 하고 탄식하는 모습에서 예수가 인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는 사실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한낱 인간인 저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도 나처럼 번뇌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도 우리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약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저는 그가 좋습니다.
--- p.32
희망할 수 없는 현실이 막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막살지 않아야 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증명이 곧 내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생은 산 햇수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 p.50
살다 보면 ‘여기까지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용서 역시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약한 타인을, 약하고 못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참는 것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외치는 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할 수 있다고, 즉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 마음을 다하고 내 목숨을 다하고 내 정신을 다하여 다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55
인간은 무엇이 나의 의무이고 권리가 아닌지를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도리입니다. 무엇이 나의 의무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나의 권리가 아닌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Imperare sibi maximum imperium est, 임페라레 시비 막시뭄 임페리움 에스트).”
--- p.104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은 그 누구를 만나는 일보다도 더 그렇습니다.
--- p.119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조우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잔인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시간과 기억을 들추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과 마주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시간과 기억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깊은 데로 가지만, 이것은 다시 밖으로 나오기 위함입니다.
--- p.135
거룩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과거에 속하려는 나와 새로운 길을 가려는 나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몸부림을 겪기 마련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함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신성한 모습이 있습니다.
--- p.139
시몬 베드로를 통해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져 확장되고 커 나갔다는 것은 시몬 베드로를 통해 한 개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성장해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제 손톱 밑의 가시를 타인의 고통보다 훨씬 크게 느끼지만, 그러한 인간의 성향과 조건은 비판받을 것도, 비난의 대상도 아닙니다.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금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습니다. 함께 할 때 나의 실패와 너의 실패가 의미가 있고, 너와 나의 삶이 힘들지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 p.21
저는 그와 같은 예수의 모습에서, 그가 인간처럼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 하고 탄식하는 모습에서 예수가 인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는 사실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한낱 인간인 저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도 나처럼 번뇌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도 우리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약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저는 그가 좋습니다.
--- p.32
희망할 수 없는 현실이 막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막살지 않아야 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증명이 곧 내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생은 산 햇수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 p.50
살다 보면 ‘여기까지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용서 역시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약한 타인을, 약하고 못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참는 것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외치는 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할 수 있다고, 즉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 마음을 다하고 내 목숨을 다하고 내 정신을 다하여 다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55
인간은 무엇이 나의 의무이고 권리가 아닌지를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도리입니다. 무엇이 나의 의무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나의 권리가 아닌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Imperare sibi maximum imperium est, 임페라레 시비 막시뭄 임페리움 에스트).”
--- p.104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은 그 누구를 만나는 일보다도 더 그렇습니다.
--- p.119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조우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잔인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시간과 기억을 들추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과 마주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시간과 기억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깊은 데로 가지만, 이것은 다시 밖으로 나오기 위함입니다.
--- p.135
거룩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과거에 속하려는 나와 새로운 길을 가려는 나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몸부림을 겪기 마련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함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신성한 모습이 있습니다.
--- p.139
시몬 베드로를 통해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져 확장되고 커 나갔다는 것은 시몬 베드로를 통해 한 개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성장해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제 손톱 밑의 가시를 타인의 고통보다 훨씬 크게 느끼지만, 그러한 인간의 성향과 조건은 비판받을 것도, 비난의 대상도 아닙니다.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금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습니다. 함께 할 때 나의 실패와 너의 실패가 의미가 있고, 너와 나의 삶이 힘들지라도 의미가 있습니다.
--- p.262
출판사 리뷰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이 사제의 신분을 내려놓은 이후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의 모습들
스테디셀러 『라틴어 수업』 저자이자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 잘 알려진 한동일 작가는 과거 가톨릭교회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사제이기보다 학자로 지내왔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2021년, 저자는 긴 고민 끝에 21년간 유지해왔던 사제직을 내려놓았다. 이번 신작은 그가 일반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한번 성경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성경에 대해 “성경은 기원전 1천 년경으로부터 기원후 2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기록된 책이며, 특정 종교의 경전이기 이전에 인간과 공동체, 사회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문헌 자로서 성경 속 이야기는 특정 종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 인간 사회를 위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성경 속의 예수와 제자들, 여러 인물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라고 고백한다. 그가 마음에 담은 성경 구절과 그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저는 이제 일반인의 삶을 살면서 나 자신이 변할 의지가 없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 쉬는 것도 잊은 채 숨 가쁘게 뛰어왔던 제가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며 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것을 의식하며 저는 오늘도 느리고 더딘 걸음을 내딛습니다.” (202쪽)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오늘을 버티는 우리에게
성경 속 그가 전하는 위로와 격려
1장에 담긴 서른세 개의 성경 구절과 이야기는 한동일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지난날과 오늘을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다른 저서에서 밝혔듯이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고, 로마 유학길에 올라 합격률이 5~6%밖에 안 되는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2021년 천주교의 사제직을 내려놓을 때도, 그 이후 일반인으로서 다시 낯선 세상과 마주할 때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렇게 방황하던 순간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 26, 38),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라고 괴로워하던 예수에게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다. 성경 속 예수가 한낱 인간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방황하고 힘들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방황을 거듭하며 좌절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때 제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는 이 성경 구절은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죽도록(ad mortem)’ 괴롭고 아팠구나 하는 사실이, 이 문장이 수많은 시간 저를 위로해주었지요” (36쪽)
그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인 베드로를 바라보며 그가 시련과 실패, 잘못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성찰했던 인간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성경 속 예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본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화해하고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찾아 전한다.
“실패는 지나갔다고 해서 지나간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봅니다.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기지요. 그 흔적을 상처로 받아들일지 성장으로 받아들이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124쪽)
힘 있는 이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닿지 않는 세상에서
시대와 경계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2장에 담은 20개의 구절은 신앙 공동체와 교회,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문을 여는 첫번째 구절은 “일어나 가자”(마태 26, 46)인데, 그는 여기에서 2장의 근간이 되는 ‘연결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1999년 야곱의 우물을 방문했던 때, 관리자가 아픈 아들을 데리고 남성이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그 부자를 쫓아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저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성경에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박해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인간이 서로를 구분 짓고 경계하는 모습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한탄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물의 관리자가 종교보다 아들을 낫게 하고 싶은 한 아버지의 고통을 먼저 보았다면, 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연결 지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저자 한동일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 역시 제 외로움과 고통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외로움, 아픔을 보려는 그 순간부터 저의 외로움과 아픔의 방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이만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확인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듣고 이해하며 제 마음에 동질감과 공감이 일어나 그와 연결된 내 아픔이 서서히 함께 조금씩 치유되었던 겁니다.” (181쪽)
저자에 따르면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 12) 구절을 통해 예수가 하고자 했던 말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쉼이 필요한 이유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인 ‘하심(下心)’에 있다. 그는 요한복음 속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통해서는 수치심 가득한 한 인간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고도 짚는다.
여기에서 나아가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 14),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마르 9, 50) 구절을 통해서는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돌아봐야 함을 이야기한다.
힘 있는 자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사람들 마음에 가 닿지 않고, 작은 변화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때, 한동일 작가의 이번 신간은 미천한 출신의 청년 예수의 말이 왜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성경 속에서 마주한 그 자신과 우리의 모습들
스테디셀러 『라틴어 수업』 저자이자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로 잘 알려진 한동일 작가는 과거 가톨릭교회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사제이기보다 학자로 지내왔으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2021년, 저자는 긴 고민 끝에 21년간 유지해왔던 사제직을 내려놓았다. 이번 신작은 그가 일반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한번 성경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성경에 대해 “성경은 기원전 1천 년경으로부터 기원후 2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기록된 책이며, 특정 종교의 경전이기 이전에 인간과 공동체, 사회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문헌 자로서 성경 속 이야기는 특정 종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 인간 사회를 위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성경 속의 예수와 제자들, 여러 인물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라고 고백한다. 그가 마음에 담은 성경 구절과 그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저는 이제 일반인의 삶을 살면서 나 자신이 변할 의지가 없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 쉬는 것도 잊은 채 숨 가쁘게 뛰어왔던 제가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며 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것을 의식하며 저는 오늘도 느리고 더딘 걸음을 내딛습니다.” (202쪽)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오늘을 버티는 우리에게
성경 속 그가 전하는 위로와 격려
1장에 담긴 서른세 개의 성경 구절과 이야기는 한동일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지난날과 오늘을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다른 저서에서 밝혔듯이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고, 로마 유학길에 올라 합격률이 5~6%밖에 안 되는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2021년 천주교의 사제직을 내려놓을 때도, 그 이후 일반인으로서 다시 낯선 세상과 마주할 때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렇게 방황하던 순간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 26, 38),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라고 괴로워하던 예수에게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다. 성경 속 예수가 한낱 인간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방황하고 힘들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방황을 거듭하며 좌절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때 제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는 이 성경 구절은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죽도록(ad mortem)’ 괴롭고 아팠구나 하는 사실이, 이 문장이 수많은 시간 저를 위로해주었지요” (36쪽)
그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인 베드로를 바라보며 그가 시련과 실패, 잘못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성찰했던 인간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성경 속 예수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본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화해하고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찾아 전한다.
“실패는 지나갔다고 해서 지나간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봅니다.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기지요. 그 흔적을 상처로 받아들일지 성장으로 받아들이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124쪽)
힘 있는 이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닿지 않는 세상에서
시대와 경계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2장에 담은 20개의 구절은 신앙 공동체와 교회,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문을 여는 첫번째 구절은 “일어나 가자”(마태 26, 46)인데, 그는 여기에서 2장의 근간이 되는 ‘연결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1999년 야곱의 우물을 방문했던 때, 관리자가 아픈 아들을 데리고 남성이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그 부자를 쫓아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저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성경에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박해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인간이 서로를 구분 짓고 경계하는 모습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한탄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물의 관리자가 종교보다 아들을 낫게 하고 싶은 한 아버지의 고통을 먼저 보았다면, 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연결 지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저자 한동일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 역시 제 외로움과 고통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외로움, 아픔을 보려는 그 순간부터 저의 외로움과 아픔의 방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이만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확인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듣고 이해하며 제 마음에 동질감과 공감이 일어나 그와 연결된 내 아픔이 서서히 함께 조금씩 치유되었던 겁니다.” (181쪽)
저자에 따르면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 12) 구절을 통해 예수가 하고자 했던 말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쉼이 필요한 이유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인 ‘하심(下心)’에 있다. 그는 요한복음 속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통해서는 수치심 가득한 한 인간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고도 짚는다.
여기에서 나아가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 14),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마르 9, 50) 구절을 통해서는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돌아봐야 함을 이야기한다.
힘 있는 자들의 말이 넘쳐나지만 사람들 마음에 가 닿지 않고, 작은 변화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때, 한동일 작가의 이번 신간은 미천한 출신의 청년 예수의 말이 왜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48.로마카톨릭-천주교 (독서>책소개) > 1.천주교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적 (2021) - 과학으로 검증받은 경이로운 진실 (1) | 2024.04.01 |
---|---|
가톨릭에 관한 신앙사전 (2024) -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0) | 2024.03.29 |
미사, 이렇게 하니 좋네요 (2024) (0) | 2024.03.29 |
성체성사의 일곱 가지 비밀 (2023) (0) | 2024.03.24 |
고해성사의 일곱 가지 비밀 (2024) (0) | 202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