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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철도원 삼대
작가의 말
작가의 말
- 만나고 싶었어요!
- 황석영 “세상은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나아진다”
- 2020년 06월 30일
- 황석영의 마터 2-10
- [마터 2-10] 최종화 : 그분들은 별이 되어
- 2020년 03월 18일
- 황석영의 마터 2-10
- [마터 2-10] 94화 : 이진오의 농성해지
- 2020년 03월 16일
- 황석영의 마터 2-10
책 속으로
농성 개시 전날 정과 막내 차가 함께 굴뚝으로 올라와 비닐 가리개와 천막 설치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맨 마지막에 난간을 가린 비닐 바깥쪽에 플래카드를 두르고 단단히 붙들어맸다. ‘!라하장보동노용고 지저각매할분’이라는 글씨는 농성의 이유를 밝히는 제목답게 크게, ‘!직복원전 계승조노’라는 글씨는 소제목처럼 그 아래 작게 썼다. 이진오는 그것을 올려다볼 사람들의 세상 반대쪽에서 거꾸로 보이는 글씨를 읽을 수밖에 없다.
--- p.12
“노동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 한두달 새 내려올 생각 아예 마라. 쩌어 예전부터 지금까정 죽은 사람이 숱하게 쌨다.”
그녀가 하는 말은 큰할아버지 이백만과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이 늘 입에 달고 쓰던 말이었다. 그 말은 이진오의 어머니 윤복례도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의했고 자신의 생각이기도 한 말이었다.
--- pp.110-111
이 모든 노력들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
--- pp.206-207
“너 굴뚝 위에 혼자 있는 거 같지?”
“할머니하구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그녀는 손자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저어기 하늘에 별들 좀 보아.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다들 살다가 떠났지만 너 하는 짓을 지켜보구 있느니.”
진오는 다시 어린것이 되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영등포시장 거리로 나아갔다. 언제나 꿈속처럼 보이던 버드나무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p.213
모녀는 저녁조차 먹지 못하고 고구마까지 빼앗겨 맥이 풀린 채 터덜터덜 집골목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문 앞에서 주저앉더니 꺼이꺼이 울면서 부르짖었다.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
이진오는 그녀가 말하려던 충분한 한마디가 바로 이 말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노동자가 높은 데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자기 처지와 입장을 알아달라고 농성하게 된 것만 해두 엄청난 사회적 변화라구. 우리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어.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고.”
--- p.410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 혹한의 겨울밤에도 저 굴뚝 아래 아파트와 건물 빌딩들의 빛나는 창문들과 강변도로 위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매끈하고 날렵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물결을 볼 때마다 세상은 언제나 그냥 무심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는 버려지거나 잊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로수보다도 못한 관심 밖의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 p.12
“노동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 한두달 새 내려올 생각 아예 마라. 쩌어 예전부터 지금까정 죽은 사람이 숱하게 쌨다.”
그녀가 하는 말은 큰할아버지 이백만과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이 늘 입에 달고 쓰던 말이었다. 그 말은 이진오의 어머니 윤복례도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의했고 자신의 생각이기도 한 말이었다.
--- pp.110-111
이 모든 노력들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
--- pp.206-207
“너 굴뚝 위에 혼자 있는 거 같지?”
“할머니하구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그녀는 손자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저어기 하늘에 별들 좀 보아.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다들 살다가 떠났지만 너 하는 짓을 지켜보구 있느니.”
진오는 다시 어린것이 되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영등포시장 거리로 나아갔다. 언제나 꿈속처럼 보이던 버드나무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p.213
모녀는 저녁조차 먹지 못하고 고구마까지 빼앗겨 맥이 풀린 채 터덜터덜 집골목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문 앞에서 주저앉더니 꺼이꺼이 울면서 부르짖었다.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
이진오는 그녀가 말하려던 충분한 한마디가 바로 이 말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노동자가 높은 데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자기 처지와 입장을 알아달라고 농성하게 된 것만 해두 엄청난 사회적 변화라구. 우리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어.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고.”
--- p.410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 혹한의 겨울밤에도 저 굴뚝 아래 아파트와 건물 빌딩들의 빛나는 창문들과 강변도로 위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매끈하고 날렵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물결을 볼 때마다 세상은 언제나 그냥 무심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는 버려지거나 잊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로수보다도 못한 관심 밖의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 p.412
출판사 리뷰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꿰뚫는 방대하고 강렬한 서사의 힘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이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로 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꿰뚫는다.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루고, 사료와 옛이야기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바야흐로 남과 북을 잇는 철도를 꿈꾸는 이 시대에 강렬한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황석영만의 독보적인 입담과 그가 그려내는 생생한 인물들은 우리 문학사의 자랑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철도원 삼대』는 원고지 2천매가 넘는 압도적인 분량임에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실감을 주는 캐릭터로 황석영의 저력과 장편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은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아파트 십육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이진오는 페트병 다섯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주고 그들에게 말을 걸며 굴뚝 위의 시간을 견딘다. 매섭게 춥고 긴긴 밤, 증조할머니 ‘주안댁’, 할머니 ‘신금이’, 어릴 적 동무 ‘깍새’, 금속노조 노동자 친구 ‘진기’, 크레인 농성을 버텨낸 노동자 ‘영숙’을 불러내는 동안 진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자신에게 전해진 삶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207면)
공장이 밀집된 영등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삼대의 서사 속 이일철 이이철 형제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고증하며 더 큰 울림을 준다. 기차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철도공작창 기술자 “이백만이 아들을 낳자 기차를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 한쇠였고 그다음 태어난 아들도 형의 이름을 따라서 두쇠로 지었다가 민적에 올리면서 일철이 이철이가 되었다.”(23∼24면) 형 일철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도종사원양성소를 거쳐 당시 드물었던 조선인 기관수가 되어 이백만의 자랑이 되었으나, 동생 이철은 철도공작창에 다니다 해고당한 뒤로 공장노동자를 전전하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이철과 함께 활동하던 것으로 그려지는 이재유 김형선 미야케 등 실존인물이나 아지트 부부였다가 아들 장산을 낳게 된 이철의 아내 한여옥,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최달영, 이철의 독립운동 연락책을 맡았던 박선옥 등의 인물은 형제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한편 황석영이 꿈처럼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여성 인물들의 활약이다. 한쇠 두쇠가 아직 어릴 때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이 세상을 뜨게 되자 백만의 누이동생 이막음이 형제를 돌보게 되고, 주안댁과 막음이 고모는 ‘혼’으로 소통하며 형제의 경조사를 챙긴다. “방직공장에 취직하러 왔다가 혼자된 둘째 오빠를 위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살”(88면)게 된 이막음은 센 입담으로 “한쇠와 죽이 맞아서 주안댁에 대한 여러가지 전설을 만들어”(94면)내곤 했는데, 과묵하고 생활력이 강했던 주안댁이 형제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여 고모와 한쇠 부부에게 자주 모습을 보인 터였다. 특히, “누구든지 처음 만나서 잠깐 바라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족집게처럼 맞혀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해 “별명이 ‘신통방통 신금이’였다”(24면)는 일철의 아내 신금이는 과거 시동생 이철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신여성으로서의 지성과 타고난 예지력으로 집안에 닥친 고난을 현명하게 이겨내며 가족을 위로하고 중심을 잡아준다.
여기 이 땅이 바로 우리의 현장이요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단편소설에 비해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지는 장편소설 부분과 그중에서도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이 묵직한 한권의 장편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한 고투의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다. 문학평론가 한기욱은 “염상섭의 『삼대』가 구한말에서 자본주의의 등장까지를 펼쳐 보였다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역사, 현재의 노동운동까지를 다룬바, 이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데서 한국문학의 근현대가 완성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1970년 단편소설 「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오십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사회의 변화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반세기 동안 현역으로서 쉼 없이 활동해온 거장은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며,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사십오 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위태롭게 삶을 버텨내고 있는 이진오가 화분에 씨앗부터 기르기 시작한 상추의 여린 잎들이 무성해지듯 작가가 오래 품어온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는 세상의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우리가 우리의 뿌리를 발견하고 우리의 저력을 발휘하는 데에 든든한 위로와 자부를 느끼게 해줄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작가의 말, 619면)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이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로 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꿰뚫는다.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루고, 사료와 옛이야기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바야흐로 남과 북을 잇는 철도를 꿈꾸는 이 시대에 강렬한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필생의 역작이기도 하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황석영만의 독보적인 입담과 그가 그려내는 생생한 인물들은 우리 문학사의 자랑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철도원 삼대』는 원고지 2천매가 넘는 압도적인 분량임에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실감을 주는 캐릭터로 황석영의 저력과 장편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은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아파트 십육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이진오는 페트병 다섯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주고 그들에게 말을 걸며 굴뚝 위의 시간을 견딘다. 매섭게 춥고 긴긴 밤, 증조할머니 ‘주안댁’, 할머니 ‘신금이’, 어릴 적 동무 ‘깍새’, 금속노조 노동자 친구 ‘진기’, 크레인 농성을 버텨낸 노동자 ‘영숙’을 불러내는 동안 진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자신에게 전해진 삶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207면)
공장이 밀집된 영등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삼대의 서사 속 이일철 이이철 형제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고증하며 더 큰 울림을 준다. 기차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철도공작창 기술자 “이백만이 아들을 낳자 기차를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 한쇠였고 그다음 태어난 아들도 형의 이름을 따라서 두쇠로 지었다가 민적에 올리면서 일철이 이철이가 되었다.”(23∼24면) 형 일철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도종사원양성소를 거쳐 당시 드물었던 조선인 기관수가 되어 이백만의 자랑이 되었으나, 동생 이철은 철도공작창에 다니다 해고당한 뒤로 공장노동자를 전전하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이철과 함께 활동하던 것으로 그려지는 이재유 김형선 미야케 등 실존인물이나 아지트 부부였다가 아들 장산을 낳게 된 이철의 아내 한여옥,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최달영, 이철의 독립운동 연락책을 맡았던 박선옥 등의 인물은 형제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한편 황석영이 꿈처럼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여성 인물들의 활약이다. 한쇠 두쇠가 아직 어릴 때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이 세상을 뜨게 되자 백만의 누이동생 이막음이 형제를 돌보게 되고, 주안댁과 막음이 고모는 ‘혼’으로 소통하며 형제의 경조사를 챙긴다. “방직공장에 취직하러 왔다가 혼자된 둘째 오빠를 위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살”(88면)게 된 이막음은 센 입담으로 “한쇠와 죽이 맞아서 주안댁에 대한 여러가지 전설을 만들어”(94면)내곤 했는데, 과묵하고 생활력이 강했던 주안댁이 형제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여 고모와 한쇠 부부에게 자주 모습을 보인 터였다. 특히, “누구든지 처음 만나서 잠깐 바라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족집게처럼 맞혀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해 “별명이 ‘신통방통 신금이’였다”(24면)는 일철의 아내 신금이는 과거 시동생 이철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신여성으로서의 지성과 타고난 예지력으로 집안에 닥친 고난을 현명하게 이겨내며 가족을 위로하고 중심을 잡아준다.
여기 이 땅이 바로 우리의 현장이요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단편소설에 비해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지는 장편소설 부분과 그중에서도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이 묵직한 한권의 장편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한 고투의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다. 문학평론가 한기욱은 “염상섭의 『삼대』가 구한말에서 자본주의의 등장까지를 펼쳐 보였다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역사, 현재의 노동운동까지를 다룬바, 이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데서 한국문학의 근현대가 완성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1970년 단편소설 「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오십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사회의 변화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반세기 동안 현역으로서 쉼 없이 활동해온 거장은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며,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사십오 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위태롭게 삶을 버텨내고 있는 이진오가 화분에 씨앗부터 기르기 시작한 상추의 여린 잎들이 무성해지듯 작가가 오래 품어온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는 세상의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우리가 우리의 뿌리를 발견하고 우리의 저력을 발휘하는 데에 든든한 위로와 자부를 느끼게 해줄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작가의 말, 6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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