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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윤인가 복지인가”
“연금개혁 논쟁에 치열하게 참여해 온 여성 연금연구자 3인의 목소리”
“세대론이 아닌 국가책임을 말할 때이다”
대대적인 국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연금개혁이 21대 국회에서 첫발을 뗄 수 있을까? 22대 총선 이후 연금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민대표단 500인과의 공개토론이 공영방송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4차례에 걸친 이번 토론은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시민이 최초로 연금개혁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정안정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 과연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길고 지난한 연금개혁의 장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연금연구자 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는 이런 뜻깊은 공론화 과정에 전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3년 기준 10명 중 6명이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이라고 지목한 국민연금의 개혁은 특정 세대나 계층,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시민 공개토론회에서 다뤄질 주제들, 구체적으로 연금개혁 방안의 의미와 사회적 효과, 더 나아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진짜 ‘전국민연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개혁 방향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까지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오랜 세월 연금개혁 논쟁에 참여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고 연구해 온 세 여성학자의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날카롭다.
“연금개혁 논쟁에 치열하게 참여해 온 여성 연금연구자 3인의 목소리”
“세대론이 아닌 국가책임을 말할 때이다”
대대적인 국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연금개혁이 21대 국회에서 첫발을 뗄 수 있을까? 22대 총선 이후 연금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민대표단 500인과의 공개토론이 공영방송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4차례에 걸친 이번 토론은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시민이 최초로 연금개혁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정안정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 과연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길고 지난한 연금개혁의 장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연금연구자 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는 이런 뜻깊은 공론화 과정에 전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3년 기준 10명 중 6명이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이라고 지목한 국민연금의 개혁은 특정 세대나 계층,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시민 공개토론회에서 다뤄질 주제들, 구체적으로 연금개혁 방안의 의미와 사회적 효과, 더 나아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진짜 ‘전국민연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개혁 방향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까지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오랜 세월 연금개혁 논쟁에 참여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고 연구해 온 세 여성학자의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날카롭다.
목차
프롤로그: 함께 사는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 저항 연대!
1.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국민연금, 공적연금입니다만
2) 국민연금에 대한 누적된 오해
3) 국민연금만의 특기이자 필살기
2. 국민연금의 핵심과제, 노후소득보장
1) 한국의 노년과 노후준비
2)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 문제
3)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의 핵심, 소득대체율 인상
4)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사이
3.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
1) 국제적으로 진행된 연기금을 둘러싼 쟁투
(1) 세계 금융시장의 성장과 연기금의 필요
(2) 연기금 유치를 위한 공적연금개혁 요구
2) 국내에서 진행된 연기금을 둘러싼 쟁투
4.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
1) 일하는 모든 이의 국민연금이어야 하는 이유
2) 국민연금 사각지대 톺아보기
3) 불안정노동의 증가와 국민연금 대상 포괄의 한계
4)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노후소득보장제도
5.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과 연기금 투자
1) 시시포스의 몸짓을 거부하는 국민연금 재정 방안
2) 공동체를 위한 연기금 투자 방향
에필로그: 인생을 살아낸 노인에게 연대와 존경이 머무는 공동체가 되길
표 · 그림 출처
참고문헌
1.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국민연금, 공적연금입니다만
2) 국민연금에 대한 누적된 오해
3) 국민연금만의 특기이자 필살기
2. 국민연금의 핵심과제, 노후소득보장
1) 한국의 노년과 노후준비
2)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 문제
3)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의 핵심, 소득대체율 인상
4)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사이
3.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
1) 국제적으로 진행된 연기금을 둘러싼 쟁투
(1) 세계 금융시장의 성장과 연기금의 필요
(2) 연기금 유치를 위한 공적연금개혁 요구
2) 국내에서 진행된 연기금을 둘러싼 쟁투
4.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
1) 일하는 모든 이의 국민연금이어야 하는 이유
2) 국민연금 사각지대 톺아보기
3) 불안정노동의 증가와 국민연금 대상 포괄의 한계
4)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노후소득보장제도
5.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과 연기금 투자
1) 시시포스의 몸짓을 거부하는 국민연금 재정 방안
2) 공동체를 위한 연기금 투자 방향
에필로그: 인생을 살아낸 노인에게 연대와 존경이 머무는 공동체가 되길
표 · 그림 출처
참고문헌
책 속으로
국민연금 출생과 관련된 두 번의 입법은 모두 경제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에 미래에 나타날 노인인구의 소득보장에 대한 구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물론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을 입법화했던 독일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금법을 마련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후 독일과 한국에서 국가가 취했던 태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독일은 국가의 독점적 운영을 거부하면서 사회보험 가입자가 중심이 되어 제도의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반면 한국은 똑같은 사회보험 형태이지만, 가입자 중심이 아닌 국가의 목표와 통제로 제도가 운영되어 왔다. 국민연금의 출생부터 제대로 고려되지 못했던 ‘노후소득보장’은 현재까지도 충족되지 못한 채 국가는 여전히 ‘돈’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대다수 국가는 매달 연금보험료를 걷어서 노인에게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법, 즉 부과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용한다. 한국은 적립방식인 것처럼 얘기하고, 학자들마다 수정적립방식 혹은 수정부과방식이라고 하여 쓰는 용어도 다르다. 법에서도 수정적립방식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재정운용의 현실에 대한 해석 방향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수정’의 개념을 고치거나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보다는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설명한다. 즉 적립된 기금이 소진되고 나서 온전한 부과방식이 되고, 그러면 갑자기 보험료 부과가 늘어날 것이며, 그 보험료 ‘폭탄’을 떠맡게 되는 세대가 미래 세대라는 논리 전개가 가장 많이 통용된다. 그러나 이미 부과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으므로, 보험료 부과가 폭탄처럼 늘어날 일은 없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보험료 조정을 포함한 연금개혁 논의를 5년마다 하는 것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국민연금제도를 돈의 문제로만 논의한다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돈 이야기 이면에 담긴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까?’(소득대체율), ‘얼마나 더 모아야 하나?’(기금운용), ‘얼마나 더 내야 하나?’(보험료율)라는 문제는 사회구성원의 중요한 합의사항이다. 이 세 가지 조합으로 노년기의 나와 내 친구의, 이웃의, 시민의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 소득이 있을 때 많이 내고 노년기에 많이 받을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각기 다른 소득수준에 저마다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도를 통해 무엇을 목표해야 하는 걸까? 이는 아마도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최소한 적정한 수준의 노년기를 누리는 일일 것이다. 물론 충분하지도 않은데 적정 수준의 노후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조합은 간단히 맞춰지지 않는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겠지만, 미래는 급박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금씩 더 내고 적정 수준을 보장받을 방법을 돈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만 모색하면 그 답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공적연금이 지향하는 제도의 보편성, 연금급여의 적절성, 지속가능성은 그 자체가 제도의 지향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노후생활을 위해 보험자가 관리해야 하는 몫이다. 전 국민이 차별 없이 이 제도에 가입하고 40년 이상 보험료를 내면 노후에는 큰 걱정 없이 생활을 유지하고, 우리 부모 세대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에서도 존엄한 노후가 계속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공적연금의 최종 목표이다. 노동력의 값이 내려가도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유지시켜주는 품격 있는 사회를 그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누구나 사람 대접받는 사회, 사회구성원이 믿고 의지할 데가 있는 사회,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의존성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공적연금제도의 지향점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기초연금의 위상을 바로잡아야 국민연금 성숙기를 잘 맞이할 수 있다. 기초연금은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국가가 추가적인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안 논의로 기초연금을 전체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국민연금 급여를 기준으로 감액하는 추가적인 보충연금 방안도, 현 체계를 유지 보수하는 방안도 모두 가능하다. 1988년 이전에는 국민연금이 없어 준비를 못했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이 있어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보장 방편이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 기여이력으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연금가입자의 자격 유지를 돕는 방법을 강화할 수도 있다. 비전형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노동시장의 문제로만 간주하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빈곤정책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으로 빈곤을 함께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장. 국민연금의 핵심과제, 노후소득보장」중에서
연기금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지구적 금융시장이 팽창하는 동력이 되었고, 1990년대 이후 그 역할이 더욱 커졌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연기금에서 나온 돈은 OECD 국가의 주식시장 총자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몇몇 학자들은 연기금 자본주의pension fund capitalism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연기금이 금융시장에서 대량의 주식, 채권을 소유함으로써 금융자본화되어 금융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영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기업연금의 역할 비중이 큰데, 이 기금이 금융시장 성장의 주요 원천이 된 것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연기금은 가장 크고 단일한 금융자본의 원천이 되었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적으로 사연금은 물론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변화가 향한 지점은 바로 연기금 팽창과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이었다. 이에 따라 어떤 이들은 연금개혁을 노동자의 복지를 담보로 진행되는 사실상의 자본시장 개혁이라 일컫기도 한다. 연기금은 공적연금이라는 사회보장제도의 부산물이었으나 집합적 성격을 최소화한 채 금융시장 팽창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장기변화 속에서 지속적인 금융시장 팽창이 자본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 상황에서, 이제 많은 경우 연금개혁은 사연금은 물론 공적연금의 기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금융자본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연기금의 금융화’를 위한 일련의 연금개혁 속에서 애초 사회보장기금인 연기금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합적 노후소득보장제도인 공적연금에도 보장성과 안정성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떠안는 것은 공적연금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고 노후 안정성을 기대하는 보통의 시민이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세계은행의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 방안은 한국에 바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세계은행의 권고안은 공적연금 축소와 퇴직연금제도 도입 등으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을 뿐 완전한 형태로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연금개혁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다층노후소득보장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또 연기금 운용이나 연금재정 등에 대한 내용은 정치적인 함의를 갖기보다는 기술적인 차원의 것으로 이해되면서 충실히 수용되었다. … 특기할 것은, 한국의 연금개혁 담론과 지형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설파하는 대표적인 기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급여를 지급하기 이전부터 재정건전성 문제가 강하게 부각됐고,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가 연금개혁의 기본 담론을 형성한 가운데 퇴직연금제도 도입과 2007년 국민연금 축소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금개혁은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흐름이 정치적, 이론적 우위를 점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연기금은 인구학적 변화나 단기 유동성에 대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준비금의 성격을 갖는다. 미래에 발생할 연금급여를 모두 계산해서 적립하는 사연금의 적립금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는 사연금에서만 발생한다. 공적연금에서 연기금이 많이 적립되면, 기금이 소진될 시점을 미리 대비하여 제도 운영방식을 수정?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중심으로만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연기금이 사라지는 시점에 주목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미래의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연기금이 바닥나는 때는 올 수밖에 없는데, 그때를 늦추거나 미루는 것만이 연금제도의 안정적인 운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미뤄두고, 미래의 재정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하면서 시야를 좁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접근일까? 고갈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하면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여전히 ‘공적연금을 저축’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연기금이 적립되면서 초기에 모든 기금은 국내 채권과 공공 부분에만 투자되었지만, 1990년을 기점으로 국내 주식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투자 양상이 변화했다. IMF의 권고 이후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설치되었고, 국민연금기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개편되면서 금융투자가 본격화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연기금은 노후소득을 위한 자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시드머니로 출발해 큰 손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연기금은 현재 노후빈곤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에도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공적연금의 운영원리는 생산 세대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퇴직 세대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GDP의 분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GDP의 45% 이상에 해당하는 거대한 연기금을 두고도, 미래에 고갈될 것만을 우려하면서 현재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제1차부터 제5차 재정계산 추계 연도 기준으로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연도까지 남은 기간은 각각 44년(2003년 기준), 52년(2008년 기준), 47년(2013년 기준), 39년(2018년 기준), 32년(2023년 기준)이다. 제2차 제도개혁의 영향으로 제2차 재정계산 결과에서만 다소 긴 기간이 추계되었고, 제3차부터 차츰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연도가 단축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보장성 축소를 통한 소진 시기 연장이 아니라, 초저출생과 초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즉 급격하게 재정지출이 증가하고, 재정수입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앞두고 마치 기금 소진만 막으면 된다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술책에 불과하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국내적 쟁투」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임금노동자로 분류되지만, 고용불안정성 등의 이유로 말미암아 사업장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소득이 불안정해서 국민연금에 제대로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자는 국민연금 가입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쉽지 않아서, 충분한 국민연금 급여를 보장받기 힘들다. 또한 노동자이므로 분명 사업장가입자로 가입해야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고용주와 함께 내는 것이 아니라 홀로 부담하는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고 있다. 이는 가입 분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노후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데 국가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부과하고, 노후소득을 적절히 보장하는 제도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 형태는 다양할지라도 분명 임금노동자이다. 이들 중 상당수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에서 사용자 책임은 실종되었다. 특히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는 임금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서 사업장가입자가 되지 못한 채 지역가입자가 된다. 이 경우 보험료 부담이 사업장가입자의 두 배가 되므로 가입유지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장.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중에서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특수고용형태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사회권을 갖는 것, 즉 이들이 노동자로서 국민연금 가입 지위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자로 불리지 않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증가는 공적연금제도가 적응해야 하는 정책 조건의 변화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달리 보면 공적연금정책과 노동정책은 특수형태 노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함께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사회보험방식인 국민연금제도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노동자성에 걸맞은 사회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속성으로 일컬어지는 불안정성과 취약한 사회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함으로써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다. 즉 모호한 지위를 가진 새로운 노동자 범주로 등장하여 국민연금 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정체성과 그들의 증가 추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4장.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중에서
지금까지 국민연금 재정 방안 논의는 당장의 보험료 인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정안정은 보험료 인상뿐만 아니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재정 기반의 다양화, 국가책임 차원에서의 국고 지원 확대, 연기금 투자의 사회적 수익 실현 등 다양한 대응책을 단계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재정 확충을 위한 보험료 인상, 재정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자산소득 · 매출 등 다양한 소득에 대한 재정 책임 부과, 보험료 부과소득 상한선을 초과하는 소득분에 대한 부담금 부과, 국고 지원 등은 단계마다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다.
---「5장.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과 연기금 투자」중에서
국민연금은 사회가 지속가능해야 존재할 수 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여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기금을 고갈될 불안한 자원이나 금융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출생률이나 고용률 제고와 같은 사회적 수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사회와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생산연령인구 증가, 경제성장, 제도부양비 완화, 보험료 수입 증가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를 통해 연금재정은 안정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금융시장 전문가가 아니라 공적연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가입자를 대표하는 주체들이 사람과 사회에 연기금을 투자할 때, 비로소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대다수 국가는 매달 연금보험료를 걷어서 노인에게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법, 즉 부과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용한다. 한국은 적립방식인 것처럼 얘기하고, 학자들마다 수정적립방식 혹은 수정부과방식이라고 하여 쓰는 용어도 다르다. 법에서도 수정적립방식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재정운용의 현실에 대한 해석 방향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수정’의 개념을 고치거나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보다는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설명한다. 즉 적립된 기금이 소진되고 나서 온전한 부과방식이 되고, 그러면 갑자기 보험료 부과가 늘어날 것이며, 그 보험료 ‘폭탄’을 떠맡게 되는 세대가 미래 세대라는 논리 전개가 가장 많이 통용된다. 그러나 이미 부과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으므로, 보험료 부과가 폭탄처럼 늘어날 일은 없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보험료 조정을 포함한 연금개혁 논의를 5년마다 하는 것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국민연금제도를 돈의 문제로만 논의한다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돈 이야기 이면에 담긴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까?’(소득대체율), ‘얼마나 더 모아야 하나?’(기금운용), ‘얼마나 더 내야 하나?’(보험료율)라는 문제는 사회구성원의 중요한 합의사항이다. 이 세 가지 조합으로 노년기의 나와 내 친구의, 이웃의, 시민의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 소득이 있을 때 많이 내고 노년기에 많이 받을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각기 다른 소득수준에 저마다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도를 통해 무엇을 목표해야 하는 걸까? 이는 아마도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최소한 적정한 수준의 노년기를 누리는 일일 것이다. 물론 충분하지도 않은데 적정 수준의 노후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조합은 간단히 맞춰지지 않는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겠지만, 미래는 급박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금씩 더 내고 적정 수준을 보장받을 방법을 돈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만 모색하면 그 답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공적연금이 지향하는 제도의 보편성, 연금급여의 적절성, 지속가능성은 그 자체가 제도의 지향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노후생활을 위해 보험자가 관리해야 하는 몫이다. 전 국민이 차별 없이 이 제도에 가입하고 40년 이상 보험료를 내면 노후에는 큰 걱정 없이 생활을 유지하고, 우리 부모 세대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에서도 존엄한 노후가 계속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공적연금의 최종 목표이다. 노동력의 값이 내려가도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유지시켜주는 품격 있는 사회를 그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누구나 사람 대접받는 사회, 사회구성원이 믿고 의지할 데가 있는 사회,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의존성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공적연금제도의 지향점이다.
---「1장.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중에서
기초연금의 위상을 바로잡아야 국민연금 성숙기를 잘 맞이할 수 있다. 기초연금은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국가가 추가적인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안 논의로 기초연금을 전체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국민연금 급여를 기준으로 감액하는 추가적인 보충연금 방안도, 현 체계를 유지 보수하는 방안도 모두 가능하다. 1988년 이전에는 국민연금이 없어 준비를 못했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이 있어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보장 방편이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 기여이력으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연금가입자의 자격 유지를 돕는 방법을 강화할 수도 있다. 비전형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노동시장의 문제로만 간주하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빈곤정책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공적연금으로 빈곤을 함께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장. 국민연금의 핵심과제, 노후소득보장」중에서
연기금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지구적 금융시장이 팽창하는 동력이 되었고, 1990년대 이후 그 역할이 더욱 커졌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연기금에서 나온 돈은 OECD 국가의 주식시장 총자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몇몇 학자들은 연기금 자본주의pension fund capitalism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연기금이 금융시장에서 대량의 주식, 채권을 소유함으로써 금융자본화되어 금융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영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기업연금의 역할 비중이 큰데, 이 기금이 금융시장 성장의 주요 원천이 된 것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연기금은 가장 크고 단일한 금융자본의 원천이 되었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적으로 사연금은 물론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변화가 향한 지점은 바로 연기금 팽창과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이었다. 이에 따라 어떤 이들은 연금개혁을 노동자의 복지를 담보로 진행되는 사실상의 자본시장 개혁이라 일컫기도 한다. 연기금은 공적연금이라는 사회보장제도의 부산물이었으나 집합적 성격을 최소화한 채 금융시장 팽창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장기변화 속에서 지속적인 금융시장 팽창이 자본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 상황에서, 이제 많은 경우 연금개혁은 사연금은 물론 공적연금의 기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금융자본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연기금의 금융화’를 위한 일련의 연금개혁 속에서 애초 사회보장기금인 연기금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합적 노후소득보장제도인 공적연금에도 보장성과 안정성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떠안는 것은 공적연금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고 노후 안정성을 기대하는 보통의 시민이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세계은행의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 방안은 한국에 바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세계은행의 권고안은 공적연금 축소와 퇴직연금제도 도입 등으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을 뿐 완전한 형태로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연금개혁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다층노후소득보장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또 연기금 운용이나 연금재정 등에 대한 내용은 정치적인 함의를 갖기보다는 기술적인 차원의 것으로 이해되면서 충실히 수용되었다. … 특기할 것은, 한국의 연금개혁 담론과 지형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설파하는 대표적인 기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급여를 지급하기 이전부터 재정건전성 문제가 강하게 부각됐고,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가 연금개혁의 기본 담론을 형성한 가운데 퇴직연금제도 도입과 2007년 국민연금 축소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금개혁은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흐름이 정치적, 이론적 우위를 점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연기금은 인구학적 변화나 단기 유동성에 대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준비금의 성격을 갖는다. 미래에 발생할 연금급여를 모두 계산해서 적립하는 사연금의 적립금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는 사연금에서만 발생한다. 공적연금에서 연기금이 많이 적립되면, 기금이 소진될 시점을 미리 대비하여 제도 운영방식을 수정?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중심으로만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연기금이 사라지는 시점에 주목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미래의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연기금이 바닥나는 때는 올 수밖에 없는데, 그때를 늦추거나 미루는 것만이 연금제도의 안정적인 운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미뤄두고, 미래의 재정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하면서 시야를 좁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접근일까? 고갈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하면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여전히 ‘공적연금을 저축’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연기금이 적립되면서 초기에 모든 기금은 국내 채권과 공공 부분에만 투자되었지만, 1990년을 기점으로 국내 주식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투자 양상이 변화했다. IMF의 권고 이후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설치되었고, 국민연금기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개편되면서 금융투자가 본격화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연기금은 노후소득을 위한 자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시드머니로 출발해 큰 손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연기금은 현재 노후빈곤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에도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공적연금의 운영원리는 생산 세대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퇴직 세대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GDP의 분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GDP의 45% 이상에 해당하는 거대한 연기금을 두고도, 미래에 고갈될 것만을 우려하면서 현재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 · 국내적 쟁투」중에서
제1차부터 제5차 재정계산 추계 연도 기준으로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연도까지 남은 기간은 각각 44년(2003년 기준), 52년(2008년 기준), 47년(2013년 기준), 39년(2018년 기준), 32년(2023년 기준)이다. 제2차 제도개혁의 영향으로 제2차 재정계산 결과에서만 다소 긴 기간이 추계되었고, 제3차부터 차츰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연도가 단축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보장성 축소를 통한 소진 시기 연장이 아니라, 초저출생과 초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즉 급격하게 재정지출이 증가하고, 재정수입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앞두고 마치 기금 소진만 막으면 된다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술책에 불과하다.
---「3장. 연기금을 둘러싼 국제?국내적 쟁투」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임금노동자로 분류되지만, 고용불안정성 등의 이유로 말미암아 사업장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소득이 불안정해서 국민연금에 제대로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자는 국민연금 가입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쉽지 않아서, 충분한 국민연금 급여를 보장받기 힘들다. 또한 노동자이므로 분명 사업장가입자로 가입해야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고용주와 함께 내는 것이 아니라 홀로 부담하는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고 있다. 이는 가입 분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노후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데 국가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부과하고, 노후소득을 적절히 보장하는 제도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 형태는 다양할지라도 분명 임금노동자이다. 이들 중 상당수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에서 사용자 책임은 실종되었다. 특히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는 임금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서 사업장가입자가 되지 못한 채 지역가입자가 된다. 이 경우 보험료 부담이 사업장가입자의 두 배가 되므로 가입유지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장.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중에서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특수고용형태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사회권을 갖는 것, 즉 이들이 노동자로서 국민연금 가입 지위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자로 불리지 않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증가는 공적연금제도가 적응해야 하는 정책 조건의 변화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달리 보면 공적연금정책과 노동정책은 특수형태 노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함께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사회보험방식인 국민연금제도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노동자성에 걸맞은 사회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속성으로 일컬어지는 불안정성과 취약한 사회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함으로써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다. 즉 모호한 지위를 가진 새로운 노동자 범주로 등장하여 국민연금 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정체성과 그들의 증가 추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4장. 갈림길에 선 국민연금, 진짜 ‘전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중에서
지금까지 국민연금 재정 방안 논의는 당장의 보험료 인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정안정은 보험료 인상뿐만 아니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재정 기반의 다양화, 국가책임 차원에서의 국고 지원 확대, 연기금 투자의 사회적 수익 실현 등 다양한 대응책을 단계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재정 확충을 위한 보험료 인상, 재정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자산소득 · 매출 등 다양한 소득에 대한 재정 책임 부과, 보험료 부과소득 상한선을 초과하는 소득분에 대한 부담금 부과, 국고 지원 등은 단계마다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다.
---「5장.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과 연기금 투자」중에서
국민연금은 사회가 지속가능해야 존재할 수 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여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기금을 고갈될 불안한 자원이나 금융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출생률이나 고용률 제고와 같은 사회적 수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사회와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생산연령인구 증가, 경제성장, 제도부양비 완화, 보험료 수입 증가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를 통해 연금재정은 안정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금융시장 전문가가 아니라 공적연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가입자를 대표하는 주체들이 사람과 사회에 연기금을 투자할 때, 비로소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5장.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과 연기금 투자」중에서
출판사 리뷰
21대 국회의 남겨진 과제, 연금개혁
총선 이후 도출될 최초의 시민 참여 연금개혁안
길고 지난한 개혁 논쟁에 참여해 온 연금연구자 3인의 목소리
22대 국회를 꾸릴 채비가 한창이다. 국회 성원을 뽑는 치열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새 국회가 열리기 전 남겨진 과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금개혁이다. 21대 국회의 임기 절반을 넘긴 2022년 7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2023년 11월 연금개혁특위가 설치를 합의한 연금개혁공론화위원회가 올해 1월 출범했다. 위원들 사이에 좀체 좁혀지지 않는 의견의 간극을 민의를 통해 수렴해 나간다는 것이 산하 기구의 출범 취지다. 표심을 잡기 위한 열띤 선거 열풍 속에서 공론화를 위한 작업이 두 차례 이루어졌다. 여러 이해관계 집단의 대표자로 구성된 36명의 의제숙의단이 토론에 부칠 의제를 선정하여 공론화위원회의 검토를 마쳤고, 이 의제를 갖고 토론할 시민대표단 500명이 선정됐다. 4월 13일부터 21일까지 4차례에 걸쳐 공영방송에서 진행될 시민대표단과의 공개토론회는 시민이 참여하는 최초의 연금개혁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시민 500명이 숙의를 거듭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5년간 연금개혁의 장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연금연구자 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는 이런 뜻깊은 공론화 과정에 전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3년 기준 10명 중 6명이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이라고 지목한 국민연금의 개혁은 특정 세대나 계층, 성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시민 공개토론회에서 다뤄질 주제들, 구체적으로 연금개혁 방안의 의미와 사회적 효과, 더 나아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진짜 ‘전국민연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개혁 방향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까지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길고 지난한 연금개혁 논쟁에 참여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고 연구해 온 세 여성학자의 날카롭고 진지한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2054년 연기금 고갈론’이 불러온 사회 분열
많이 내고 적게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낳은 불신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프레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 책에 담긴 논지는 간명하다. 국민연금개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인 재정중심론을 비판하고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연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세대의 노후소득으로 연기금을 다 써 버리고 나면 미래 세대의 노후소득보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저자들은 우선 한국의 연기금 적립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21년 OECD 연금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처럼 일정 수준의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부과방식을 취하는 국가들(스웨덴 31.8%, 일본 33.0%, 캐나다 25.6%, 미국13.4%)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GDP 대비 연기금 규모는 45.1%로 압도적으로 높고, 기금의 규모 차원에서 봤을 때 세계 연기금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에 더해 저자들은 사연금과 다른 공적연금의 재정운용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을 계약한 제한된 가입자로만 재정을 운용하는 폐쇄적인 사연금과 달리 공적연금으로서의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를 늘리고, 보험료 외에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 운영할 수 있다. 즉 사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의 재정 수단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양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연기금 고갈론을 앞세워 재정의 규모를 늘리려는 재정중심론은 공적연금이 활용할 수 있는 이런 다양한 수단들을 배제한 채 오로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규모만을 근거로 제도에 대한 불신과 세대 간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 초저출생·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국민연금개혁을 둘러싼 대표적인 논의 지형이 제도와 사회를 각각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성찰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프레임 전환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거대한 연기금과 모순되는 사회지표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사회구조 변화에 걸맞지 않는 국가의 책임이다
이보다 모순되는 지표가 또 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기금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무려 세 배나 높은 40.4%이다. 미래의 연기금 고갈을 우려하면서 현재의 노인빈곤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여성 한 명이 가임기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2명으로 하락했다. 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이례적인 초저출산 현상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는 왜 이렇게 가난한 노후를 보내고, 정력적인 경제활동으로 활력이 넘쳐야 할 청년 세대의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한 것일까? 이제 막 연금을 받기 시작한 노인 수급자는 눈치가 보여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이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연금에 가입할 청년들은 많이 내고 적게 받거나 혹은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에 제도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태에 대해 누군가가 무엇을 숨기고 속이는 문제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연기금의 고갈이나 미래 세대가 짊어질 과중한 재정 부담 같은 것이 아니다. 세대 간 계약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적연금에서 기금 소진은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을 논의해 오고 있다. 곧 있을 시민대표단과의 공개토론회도 바로 이런 논의의 일환이다. 그런데 후세대가 부담하게 될 가중한 보험료를 내세우면서 현세대에게 더 많은 기여와 더 적은 연금급여를 감당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임시변통적인 대안에 불과하다.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구조는 급격하게 변하는데 국가의 역할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일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구조에 걸맞는 국가의 책임이 필요하다.
1000조 원을 넘긴 연기금
안정된 미래를 위해 ‘지금’ 써야 할 사회적 재원
재정이 아닌 제도의 안정을 위한 사회구성원의 연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삶의 무게를 덜어줘야 한다. 가정 내 노인의 소득보장을 사회가 부담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인과 가정이 그 부담을 져야 하고 이런 순환으로는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저자들은 이를 신화 속 인물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험료 인상 일변도의 접근은 연금재정 문제에서는 굴러내리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수고와도 같다. 연금재정의 불안정성 이면에 있는 저출생, 고용, 성장, 분배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삶의 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고통은 지속되고 바위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질 뿐이다. … 연금재정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시시포스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이다. 사회구성원이 힘을 합친다면 언덕의 경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준선을 만들어가는 길 위에 모두가 서 있다. 10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을 천장의 고등어가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써야 할 사회적 재원으로 인식할 때 시시포스의 부질없는 몸짓을 멈출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진심은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몫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굴러내리는 바위의 무게는 더욱 커지고 시시포스는 허약해진다. 언덕의 경사 자체를 바꾸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대안일 것이다.
총선 이후 도출될 최초의 시민 참여 연금개혁안
길고 지난한 개혁 논쟁에 참여해 온 연금연구자 3인의 목소리
22대 국회를 꾸릴 채비가 한창이다. 국회 성원을 뽑는 치열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새 국회가 열리기 전 남겨진 과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금개혁이다. 21대 국회의 임기 절반을 넘긴 2022년 7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2023년 11월 연금개혁특위가 설치를 합의한 연금개혁공론화위원회가 올해 1월 출범했다. 위원들 사이에 좀체 좁혀지지 않는 의견의 간극을 민의를 통해 수렴해 나간다는 것이 산하 기구의 출범 취지다. 표심을 잡기 위한 열띤 선거 열풍 속에서 공론화를 위한 작업이 두 차례 이루어졌다. 여러 이해관계 집단의 대표자로 구성된 36명의 의제숙의단이 토론에 부칠 의제를 선정하여 공론화위원회의 검토를 마쳤고, 이 의제를 갖고 토론할 시민대표단 500명이 선정됐다. 4월 13일부터 21일까지 4차례에 걸쳐 공영방송에서 진행될 시민대표단과의 공개토론회는 시민이 참여하는 최초의 연금개혁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시민 500명이 숙의를 거듭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5년간 연금개혁의 장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연금연구자 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는 이런 뜻깊은 공론화 과정에 전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3년 기준 10명 중 6명이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이라고 지목한 국민연금의 개혁은 특정 세대나 계층, 성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시민 공개토론회에서 다뤄질 주제들, 구체적으로 연금개혁 방안의 의미와 사회적 효과, 더 나아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진짜 ‘전국민연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개혁 방향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까지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길고 지난한 연금개혁 논쟁에 참여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고 연구해 온 세 여성학자의 날카롭고 진지한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2054년 연기금 고갈론’이 불러온 사회 분열
많이 내고 적게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낳은 불신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프레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 책에 담긴 논지는 간명하다. 국민연금개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인 재정중심론을 비판하고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연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세대의 노후소득으로 연기금을 다 써 버리고 나면 미래 세대의 노후소득보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저자들은 우선 한국의 연기금 적립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21년 OECD 연금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처럼 일정 수준의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부과방식을 취하는 국가들(스웨덴 31.8%, 일본 33.0%, 캐나다 25.6%, 미국13.4%)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GDP 대비 연기금 규모는 45.1%로 압도적으로 높고, 기금의 규모 차원에서 봤을 때 세계 연기금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에 더해 저자들은 사연금과 다른 공적연금의 재정운용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을 계약한 제한된 가입자로만 재정을 운용하는 폐쇄적인 사연금과 달리 공적연금으로서의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를 늘리고, 보험료 외에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 운영할 수 있다. 즉 사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의 재정 수단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양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연기금 고갈론을 앞세워 재정의 규모를 늘리려는 재정중심론은 공적연금이 활용할 수 있는 이런 다양한 수단들을 배제한 채 오로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규모만을 근거로 제도에 대한 불신과 세대 간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 초저출생·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국민연금개혁을 둘러싼 대표적인 논의 지형이 제도와 사회를 각각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성찰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프레임 전환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거대한 연기금과 모순되는 사회지표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사회구조 변화에 걸맞지 않는 국가의 책임이다
이보다 모순되는 지표가 또 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기금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무려 세 배나 높은 40.4%이다. 미래의 연기금 고갈을 우려하면서 현재의 노인빈곤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여성 한 명이 가임기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2명으로 하락했다. 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이례적인 초저출산 현상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는 왜 이렇게 가난한 노후를 보내고, 정력적인 경제활동으로 활력이 넘쳐야 할 청년 세대의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한 것일까? 이제 막 연금을 받기 시작한 노인 수급자는 눈치가 보여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이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연금에 가입할 청년들은 많이 내고 적게 받거나 혹은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에 제도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태에 대해 누군가가 무엇을 숨기고 속이는 문제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연기금의 고갈이나 미래 세대가 짊어질 과중한 재정 부담 같은 것이 아니다. 세대 간 계약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적연금에서 기금 소진은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을 논의해 오고 있다. 곧 있을 시민대표단과의 공개토론회도 바로 이런 논의의 일환이다. 그런데 후세대가 부담하게 될 가중한 보험료를 내세우면서 현세대에게 더 많은 기여와 더 적은 연금급여를 감당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임시변통적인 대안에 불과하다. 연금개혁을 말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구조는 급격하게 변하는데 국가의 역할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일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구조에 걸맞는 국가의 책임이 필요하다.
1000조 원을 넘긴 연기금
안정된 미래를 위해 ‘지금’ 써야 할 사회적 재원
재정이 아닌 제도의 안정을 위한 사회구성원의 연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삶의 무게를 덜어줘야 한다. 가정 내 노인의 소득보장을 사회가 부담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인과 가정이 그 부담을 져야 하고 이런 순환으로는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저자들은 이를 신화 속 인물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험료 인상 일변도의 접근은 연금재정 문제에서는 굴러내리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수고와도 같다. 연금재정의 불안정성 이면에 있는 저출생, 고용, 성장, 분배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삶의 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고통은 지속되고 바위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질 뿐이다. … 연금재정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시시포스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이다. 사회구성원이 힘을 합친다면 언덕의 경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준선을 만들어가는 길 위에 모두가 서 있다. 10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을 천장의 고등어가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써야 할 사회적 재원으로 인식할 때 시시포스의 부질없는 몸짓을 멈출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진심은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몫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굴러내리는 바위의 무게는 더욱 커지고 시시포스는 허약해진다. 언덕의 경사 자체를 바꾸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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