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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오래 보기 (2024) - 진정한 관점을 찾기 위한 기나긴 응시

동방박사님 2024. 5. 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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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결국 모든 것은 관점이라는 지배적인 문제로 돌아갔다”
에세이, 회고록, 비평의 독보적인 작가 비비언 고닉
그의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비평 에세이


비비언 고닉은 논픽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자기 서사의 거장’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그는 또한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되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이기도 하다. 고닉은 1969년 대안 매체인 『빌리지 보이스』에 수전 손택에 관한 비평 에세이를 기고한 것을 계기로 이 신문의 상주 기자가 되었고, 당시 문학과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시의적절하고도 날카로운 진단을 통해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멀리 오래 보기』는 비평가 비비언 고닉의 세부를 살펴볼 수 있는 비평 총서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 인생 50년 동안 문학, 문화, 페미니즘 등 사회 전반을 냉철한 시선으로 살피며 힘겹게 얻은 그의 경험적 통찰이 이 한 권에 담겼다. 여성해방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은 페미니즘 에세이에서 앨프리드 케이진, 메리 매카시, 다이애나 트릴링 등 매혹적인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탐구한 문학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고닉의 비평적 역량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운 자기 이해의 과정을 통해 관점을 다져온 작가의 치열한 문학적 열망을 만날 수 있다.

“약 50년에 걸쳐 쓴 원고를 모아놓은 이 책이 자신의 비평 역량을 다듬어온 어느 작가의 수습 시절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바란다.”―비비언 고닉

책을 다 읽고 나면, 『빌리지 보이스』의 전설적인 기자로서 “역사의 다음 위대한 순간은 우리의 것”이라고 페미니스트들을 추동하고 북돋웠을 젊은 날의 고닉을, 그 뜨겁고도 냉정한 투쟁의 시절을 지나 내면의 혼돈을 들여다보며 어느 날 문득 『사나운 애착』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갔을 중년의 고닉을, 그리고 여전히 뉴욕의 어느 거리를 걸으며 자신의 고독을 타인의 것과 포개고 있을 고닉을 현재진행형의 모습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닉의 깊이 있는 사유와 관점을 이주혜 소설가의 세심한 번역으로 만난다는 점도 특별하다. 그의 역자 후기는 고닉의 비평적 시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없이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진정한 관점

1부 책과 그 책의 진실한 독자 사이

함께 행간 읽기
진술하는 자아는 어떻게 분투하는가-앨프리드 케이진
시와 유혹-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진실을 통렬하게 느낄 때까지-허먼 멜빌
타고난 정서적 불만-다이애나 트릴링
경이로운 풍자-메리 매카시
목소리가 곧 이야기다-캐슬린 콜린스
이민자 경험이 완성되다-로어 시걸
그는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제임스 설터

2부 무엇이 인간의 조건을 힘들게 하는가

왜곡된 나르시시즘
실천과 이론 사이의 틈
자기 삶의 타자성-시몬 드 보부아르
외로움을 위한 치료-에리히 프롬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프리모 레비
주어진 것에 대한 견해-한나 아렌트
경이의 감각-레이철 카슨
정치와 문학과 혁명-해리엇 비처 스토

3부 싸워서 지켜야 하는 내면의 삶

의식 고양 모임
남자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되다
여성운동의 위기
이 남자들은 왜 여성을 미워할까
여성적 감수성의 의미를 향하여

4부 뉴욕 이야기

버스에서
바비의 살롱

옮긴이의 말: 페르소나와 페르소나의 절도 있는 일인칭 춤
 

저자 소개

저 : 비비언 고닉 (Vivian Gornick)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회고록 작가. 특유의 명확한 인식과 관점, 생생한 산문으로 문학, 문화, 페미니즘 그리고 개인의 경험을 탐구했다. 1970년대 『빌리지 보이스』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을 취재하며 저널리스트로서 명성을 쌓았고, 이후 『뉴욕 타임스』 『네이션』 『애틀랜틱』과 같은 저널로 저변을 넓혀 개인적 경험을 통과한 비평 쓰기, 이른바 ‘개인 비평’을 시도했다. 1980년대에는 자전적 글쓰기에 몰두...

역 : 이주혜 (李柱惠)

번역가이자 소설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치우침 없이 공정한 번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아동서 및 자녀교육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왜요, 엄마?』, 『레이븐 블랙』, 『지금 행복하라』, 『거인나라의 콩나무』, 『고대 이집...

책 속으로

언젠가 랜덜 저렐이 했던, 우리는 읽기가 공기와 빛과 물처럼 기본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그런 분위기에 살기를 소망한다는 말. 독서 모임 중에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내가 책과 그 책의 진실한 독자 사이에서 거의 매번 발생하는 이 생생한 현상에 감동할 때, 그리고 그 생생함이 우리 사이에 일으키는 특별한 결과에 마음이 움직일 때 저렐의 말은 얼마나 사실적이고 심장에 가까웠던가. 바로 그 순간 나는 인류가 문학을 만드는 행위에 그토록 몰두했던 것은 그것이 읽는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임을 강력하게 이해하게 된다.
--- p.23, 「함께 행간 읽기」 중에서

훌륭한 회고록 작가라면 누구나 이해해야 하는 것, 즉 작가 자신의 평범하고 헝클어지고 일상적인 자아는 진술하는 자아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
--- p.33, 「진술하는 자아는 어떻게 분투하는가」 중에서

대다수 작가가 단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말은 확실히 사실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처럼 오직 하나만을 생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처음 말했을 때보다 세 번째, 네 번째 말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작가의 책무인 것도 사실이다.
--- p.117-118, 「그는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중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선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포와 환상과 방어심으로 똘똘 뭉쳐서 황금률의 정의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 필요한 고결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내 기질을 제어할 수 없었다. 관계를 맺을 때마다 가중된 불안함 때문에 정확히 황금률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 대로 행동했다. 냉소하고 모욕했으며, 맞서고 대적하고, 무시하고 경멸했다. 나쁘게 행동할 때마다 괴로웠지만 그런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위반의 원천은 상처받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있었다. 그것이 내게 명령했다. 나는 추상적으로는 많은 이를 사랑했지만 그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을 주지는 않았다. 바로 칸트가 ‘존중’이라고 말한 것, 비하라는 치명적인 감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인식이었다. 간단히 말해 내면의 혼돈 때문에 이론적으로나마 내가 자신을 대하듯이 진실로 타인을 대하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 p.138-139, 「실천과 이론 사이의 틈」 중에서

의식 고양 모임에서 자신의 역사와 경험을 들여다보는 일은 만화경을 흔들어서 똑같은 조각들이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재배열되는 것을 보는 것, 각 조각이 지닌 색깔과 모양이 갑자기 깜짝 놀랄 만큼 새롭고 생생하게 보이고 뜻밖의 의미가 가득 차는 것과 같다.
--- p.214, 「의식 고양 모임」 중에서

작가가 개인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무능은 현대 역사에 있어서 20세기 후반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 자아에 대한 인식은 이전 시대보다 더 첨예하게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 활성화된 삶을 향한 우리 모두의 희망은 오직 자기 인식의 토대에 깃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알지 못하면 마침내 공허가 일어나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다.
--- p.286, 「이 남자들은 왜 여성을 미워할까」 중에서

오늘날 페미니즘의 과업은 여성의 경험 자아를 다시 창조하는 일이다. 오래된 반응, 오래된 습관, 오래된 감정적 확신을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의식의 관점으로 다시 검토하는 광범위한 내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내부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이 필요하다. 이는 내부 갈등의 조건이 재정의되는 여정,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의 여정, 동지도 없이 혼자서 똑같은 감정적 좌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겪어야 하지만 건너편에 냉정함과 함께 자유가 기다리고 있는 그런 여정이다.
--- p.290, 「여성적 감수성의 의미를 향하여」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무엇을 나의 관점으로 삼을 것인가?
페르소나의 관점에 대하여


고닉의 글쓰기는 관점을 찾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1970년대에 고닉은 페미니즘과 사회 비평을 하면서 개인 저널리즘이라는 글쓰기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취했고, 1980년대에는 기자라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에세이와 회고록이라는 개인 서사 쓰기에 몰두했다. 그는 개인 저널리즘이든 개인 서사이든 결국 관점이라는 문제가 글쓰기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관점을 무엇으로 삼을지에 대한 지난한 탐구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했다고 말한다.

“《빌리지 보이스》를 떠나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에서 물러나면서부터 다른 곳에서 내 관점을 찾아야 했다. 나는 에세이와 회고록,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눈앞의 소재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귀중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준비가 된 비(非)대리자 페르소나의 관점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되었다,”
―‘들어가며: 진정한 관점’에서, 9쪽

페르소나는 고닉의 글쓰기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고닉이 말하는 페르소나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내 안에서 끌어낸 진술의 목소리”로, 페르소나는 “원고의 구조와 언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고닉은 자전적 에세이를 포함한 효과적인 논픽션을 쓰려면, 고백이나 적나라한 자기 몰두에 빠지지 않도록 작가와 별개로 글을 이끌어가는 페르소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페르소나는 에세이와 회고록은 물론이고 비평에 이르기까지 고닉의 모든 글쓰기를 하나로 잇는 중요한 도구이자 관점이랄 수 있다.

멀리 오래 보기를 통한 문학적 탐구
비비언 고닉의 쓰기와 읽기


“페르소나의 발견은 고닉의 쓰기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 고닉은 자신의 비판적 페르소나를 통해 타인의 글을 이끌어가는 페르소나를 찾아내고 두 진술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인칭 개인 비평’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을 성취해낸다.”
―‘옮긴이의 말’에서, 352쪽

고닉 특유의 자전적 글쓰기는 문학비평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는 일인칭 스타일의 ‘개인 비평(personal criticism)’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버지니아 울프 같은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의 전통적 문학비평을 따르는 동시에 개인 증언에 대한 현대적인 갈망을 반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비평집의 ‘나’는 회고록과 자전적 에세이의 ‘나’와 연속성을 가지고, 그가 쓴 기사나 칼럼, 전기의 ‘나’와도 연결된다. 어떤 주제든 어떤 장르든 고닉의 글은 직접적이고 생생한 경험에 의존한다.

앨프리드 케이진,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허먼 멜빌, 메리 매카시, 다이애나 트릴링, 로어 시걸, 캐슬린 콜린스, 제임스 설터, 시몬 드 보부아르, 에리히 프롬, 프리모 레비, 한나 아렌트, 해리엇 비처 스토…… 고닉의 비평 에세이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이름들이다. 고닉은 이들의 삶과 작품에 내재된 무수한 행간을 오가며 “진술하는 자아”의 치열한 분투를 읽어내고, 이 작가들의 페르소나와 자신의 비평적 페르소나를 겹쳐 보면서 “진정한 관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스스로 “탐색하는 자아”가 되어 가능한 한 멀리 오래 들여다보며 쓰기와 읽기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의 기나긴 성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1970년대 당시 고닉이 쓴 페미니즘 에세이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뜻깊다. 의식 고양 운동, 페미사이드, 여성운동의 위기, 그리고 문학계에 만연했던 남성 작가들의 여성혐오에 대한 고닉의 예리한 비평적 시선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빌리지 보이스》의 전설적인 기자로서 페미니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고닉의 글이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추천평

비비언 고닉은 계속해서 더 멀리 가고, 더 오래 보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 클레어 로던 (《타임스》)
비비언 고닉은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쓰는 것이 자기 자신이든 페미니즘이든 고립이든 정치든 집요하고 날카로우며 생생하다.
- 시네이드 글리슨 (작가)
‘표현성’을 느끼는 것, 즉 자신이 누구인지 ‘대략적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는 느낌을 경험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질문에 몰두한다는 면에서 고닉의 작품은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다.
- 데이나 토르토리치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고닉은 단순한 논쟁의 공격을 가하기보다 스스로 힘겹게 얻은 경험과 (결점이 큰) 위대한 작가들의 솔직한 양면성을 발굴해 우리 공동체의 삶과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조명한다.
- 멜리사 벤 (《뉴 스테이츠먼》)
비비언 고닉은 엄청난 지성 그 이상의 존재이며 감성 그 자체다. 이 책에 담긴 에세이는 그가 수많은 세월 동안 작가, 사상가, 사회적 사실과 이론을 다루며 어떻게 정신을 형성했고 그 자신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 마르코 로스 (잡지 《n+1》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