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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巫敎) (2024)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동방박사님 2024. 6. 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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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한국 사회 기층에 자리 잡은 무교(巫敎)를 ‘한국인의 근본 신앙’으로 명명하며, 그 이유를 찾아나간다. 무교의 심성과 원리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한 이른바 ‘고등한’ 외래 종교, 즉 불교, 유교 등의 전통 종교는 물론 그리스도교(개신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 맥락에도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정치 사회 전반은 물론이고 오늘날 K-한류로 지칭되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의 저층에서도 강고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친근한 문체로 설파해 나간다. 이 책은 한국 무교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무교가 현대 한국인에게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명확히 밝히며, 이를 통해 더 깊은 문화적 자각을 촉구하는 데 기여한다.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Ⅰ.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巫敎)는 미신인가?

무교는 어떤 종교?
무교인가, 무속인가 / 한국 무교의 지형도 / 무교의 기본 구조 / 무당, 진정한 의미의 사제 / 무당이 되려면? / 후(post) 내림굿 이야기
굿은 어떻게 하나
굿이란 언제 그리고 왜 하는가 / 굿은 어떻게 하는가 / 굿의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근원 신앙인 무교
굿의 종류--오구굿을 중심으로 / 한국 무교의 신령 / 문화 영웅, 바리공주 이야기 / 무교의 신령은 잡령?

Ⅱ.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한국 무교 약사
무교는 한국인의 근본 종교 / 한국 무교 약사와 그 전개 양상 / 신라 금관과 무교 / 신라 이후의 무교 이야기
무교의 현재
무교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 / 근대의 무교 / 현대의 무교
한국인의 근본 종교는 무교!
무교를 대하는 태도의 이중성 / 비(非)질서의 세계를 지향 / 북한 인민도 무교 지향

Ⅲ.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 세계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장면 1. / 장면 2. / 불교와 그리스도교 신행의 기본 구조 / 그리스도교의 경우 / 불교의 경우 / 초월적인 존재와의 소통 / 맹신 혹은 유치한 신앙의 폐해
종교 신앙은 일반적으로 다 같다
고등 종교와 기층 종교의 차이란? / 그저 권력으로 판가름 날 뿐 / 권력과 결탁하지 못한 한국 무교
마치며

저자 소개

저 : 최준식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국내 죽음학 연구의 선구자이자 종교학자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 템플 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1992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폭넓은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만들어 김봉렬 교수, 고 오주석 선생 등의 동학들과 더불어 한국 문화를 다각도로 연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책 속으로

무당은 보통의 점쟁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주위에서 점쟁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일반인들은 점을 치면 다 무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당은 반드시 내림굿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도 신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점은 칠 수 있다. 내림굿을 받지 않았으면서 신점(神占)을 치는 사람들도 신을 모시기는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내림굿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신은 신령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그 신은 신령계에 환하지도 못하고 해당 점술사를 위해 영계에서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이런 점쟁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술사(術士)들이라 할 수 있다.
--- p.38

한국의 민속(민간)신앙을 보면 대체로 아무리 하찮은 잡귀라도 내치지 않고 포용한다. 서양 종교와는 달리 잡귀나 악귀는 영원한 징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민간신앙적인 사고는 선악 개념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교에서 신봉하는 신령도 그런 경우가 많다. 서양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신(善神)이면 선신이고 악신(惡神)이면 악신이어야 하는데, 무교의 신령들은 상황에 따라 그 성격이 백팔십도 변하니 그 선악 여부를 잘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신령에 대해 집중적으로 볼 때 다시 보기로 하는데 원래 민간신앙은 사고가 탄력적이라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 p.70

한국인들이 인정하건 하지 않건 간에 한국은 무교가 정신적인 바탕이 된 나라라는 것이 필자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논지이다. 한·중·일 동북아 세 나라를 놓고 보면 이들 3국은 불교나 유교 같은 상층의 종교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두 종교가 역사적으로 전개된 양상을 보면 삼국에서 다소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큰 틀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기층으로 내려가면서 살펴보면 이 삼국은 완전히 다른 종교 체계종교 체계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p.113

유네스코 무형유산에는 한국의 판소리도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판소리는 무교와 직결되어 있다. 판소리는 남도 굿판인 시나위 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악사들이나 무당들이 노래하던 것이 다른 많은 요소와 섞이면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전통예술이 무교와 매우 연관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한국의 사물놀이도 굿에서 파생한 것이다. 사물놀이는 농악에서 나온 것이고 농악은 마을굿을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니 모두 굿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 p.153

무교는 단군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대’ 한국의 주요 종교였다. 그러던 것이 대륙에서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면서 무교는 서서히 기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불교(혹은 유교)가 국교가 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자 무교는 더 이상 지배 계층과 결합된 종교의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되고, 대신 민중들과 가까운 종교가 된다. 그렇게 2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현재는 그리스도교(천주교, 개신교)가 한국 종교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기층의 무교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고 앞에서 본 것처럼 여전히 기층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p.164

이제 한국인은 자신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에 대해 외래적인 시각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으로 똑바로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내면적으로는 무교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정신분열증이라도 걸릴 판이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무교는 결코 그렇게 무시당해도 좋을 만한 저급한 종교가 아니다. 우리는 도교 사원(도관, 道觀)에 가서 관우 상 앞에서 비는 중국인들 보고 우상숭배자라고 하지 않고, 신사(神社)에 가서 박수를 치면서 기원을 하는 일본인들을 두고 저급한 신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 p.227

출판사 리뷰

한국인의 근본 종교, 무교: 미신이 아닌 문화적 근원으로서의 재해석

한국인의 무교에 대한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한편으로는 미신으로 취급하며 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시로 무교(무속, 점)에 의존한다. 때로는 ‘재미 삼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런 경우에도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은 거짓이 없다. 일반인의 이러한 태도는 특히 학계에서 더욱 두드러져서, 무교는 종교적 현상의 일부로 다뤄지거나 대체로는 민속학의 대상으로서만 진지하게 취급될 뿐, 그것의 종교적 맥락과 구조를 천착하면서 일상 속에서 시민들의 삶과 더불어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무교에 대한 인식과 실제 생활의 괴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이른바 고등종교(高等宗敎)로서 불교와 유교가 도입된 고대(삼국시대)로부터 누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랜 탄압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무교가 사라지기는커녕 이른바 고등하다는 종교에 비하여 훨씬 더 다양하게 변주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은 무교를 둘러싼 이러한 이율배반, 그리고 불가사의함의 연원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근본신앙을 홀대하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무교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깊이 있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우선 ‘무교’라는 명칭부터가 논쟁적이다. 대체로 ‘무속’으로 호명되는 이 종교 현상을 정식 종교로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무교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이를 통해 무교가 한국의 사회문화나 예술 등이 형성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천자(天子)만이 천제(天祭)를 주관할 수 있었던 반면 고대 한국 사회의 제천(祭天)의례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였고, 특히 며칠 낮밤 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는 스토리와 함께 전해 온다. 이것은 오늘날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예컨대 노래방 문화와 현대 한국인의 세계적인 음주 문화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에게 무교적 속성을 제거하면 곧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무교는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교를 일상적인 생활 세계 수준에서 긍정적으로 다룬 최초의 단행본으로서, 한국 무교의 숨은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강한 내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무교가 단순히 무교인(巫敎人)의 샤머니즘적 실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 깊은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무교를 한국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로 제시한다. 또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우리는 무교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삼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교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무교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한국의 무교를 통해 본다면, 우리는 종교가 단지 신앙의 차원을 넘어 문화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무교적 인간’으로서의 한국인인 나의 이해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점’이나 ‘굿’ 등 피상적이고 무교의 일각에 불과한 내용을 소거하고 보면, 한국인은 누구나 무교(巫敎)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초판이 발행된 이후로부터 15년 만에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그사이 쇄를 거듭하며 이 책은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지난 15년 동안의 한국 사회의 변화는 상전벽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천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돌아가지 못할 문명적 심연을 건넜다고 평가되고,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출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오던 무교(무속)의 일부 흐름도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개정판)이 이러한 최근의 인류 사회 동향까지를 모두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무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한국 사회에서 무교가 여전히 근본 신앙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 무교에 대한 연구와 일반적인 접근 방식을 넘어서, 무교의 본질을 좀더 폭넓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강조하며, 무교가 한국인의 심성과 일상생활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무교의 기본 구조와 실천(굿), 무당의 역할과 굿의 의미, 무교와 한국인의 종교적 내면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 등을 다룬다. 특히, ‘한국인의 근본 신앙인 무교’와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같은 장에서는 무교가 어떻게 한국의 고유 종교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인의 종교적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탈(脫)종교화’ 현상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탈종교화는 무교(巫敎)적 시각에서 볼 때, 종교 자체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물들어 있던 외래 종교 혹은 교단(제도) 종교로부터 이탈하여, 좀더 근원적인 종교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종점에 무교 혹은 ‘무교적인 원형 종교’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