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6.일본정치

요시다 쇼인 : 일본 민족주의의 원형

동방박사님 2021. 12. 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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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베 신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근현대 우익 세력의 원조’의 실체
신격화된 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광기로 삶을 마감한 유학자
그의 성리학과 근대일본의 관계는 무엇인가

오늘날에도 요시다 쇼인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장벽 앞에 좌절하거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쇼인은 해안 방위를 비롯한 국토 보전을 책임지는 병학자이며, 유학사 차원에서 보면 양명학자가 아닌 성리학자다. 그런 쇼인이 오늘날 정한론이나 대동아공영론의 원조적 괴수로 추앙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쇼인의 일생을 살펴봄으로써 더 넓은 시야에서 그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밝혀본다.

목차

머리말·생탄지에서 확인한 광기의 유학자

제1장 광인을 신격화한 근현대일본, 쇼인신사와 쇼몬신사

제2장 요시다 쇼인의 주요 사상과 선행연구와의 괴리

제3장 광인의 탄생 배경: 주군 다카치카(敬親)

제4장 쇼인의 양명학적 가능성과 박은식의 국혼론

맺음말·쇼인 연구 ‘국가주의 틀’에서 벗어나야

저자 소개 

저 : 이희복
 
일본국립 지바대학교 사학과에서 근세일본문화사에 입문한 이후 일본국립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연구과에 진학하여 근세일본사상사 연구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주제는 ‘근세일본 주자학의 사회적 역할’이며, 이를 토대로 일본신도와 일본불교와 일본사회의 특징 등을 살펴보는 작업을 해왔다. 2002년 이래 강원대학교에 부임하여 근무하면서 해외파견 연구비를 지원받아 중국의 산둥대학교, 일본의 히토쓰바시대학교에서 연...
 
책 속으로
요시다 쇼인은 밀려드는 구미열강의 무력적인 서세동점 앞에서 일본의 독립 보전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습득한 학문과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세계상을 구상한 몽상가이며, 그 청사진을 번주를 비롯한 번정 중추에게 명확하게 제시한 젊은 병학자이며 유학자이며 실천적 사상가였다. --- pp.12~13

그런 쇼인이 한반도를 정벌한다는 정한론이나 동아시아 국가와 민족들이 뭉쳐 세계를 제패해야 된다는 대동아공영론의 원조적 괴수로 추앙받게 된 배경 또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 p.13

하기로 돌아온 쇼인은 생가에서 근신하면서 여행에서 얻은 과제인 일본역사와 해상방위, 그리고 유교에 관한 지식 탐구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쇼인(松陰)’이라는 아호를 사용했다. --- p.28

쇼인에게 재기의 첫걸음은 시모다 도해를 반성하면서 『회고록』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세계정세의 전개와 그에 대한 국책의 대요(大要), 출국을 시도한 거사의 근거, 금후 국정의 바람직한 형태,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나 구미제국들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과제를 추출해내면서 재기의 발걸음을 전개했다. --- p.31

하지만 쇼인은 여기에 기가 죽지 않고 특히 국체에 대해서 군신일체의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다”라는 명제는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았다. 쇼인은 부친에게서 배운 존왕정신에 대해 방황함은 없었다. 쇼인이 유교 중에서 성선설의 맹자를 특별히 거론한 것은 스기 가문에서의 인간형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35

쇼인이 염원한 대로 『유혼록』의 종자는 뿌려졌다. 실제로 그 종자는 문하생들의 정치활동에 의해 일본역사를 전환시킨 원동력으로 실체화되었다. --- p.56

쇼인이 제시한 핵심은 궁리하는 학문(窮理之學)이라는 공통성이다. 그것은 중국이든 일본이든 구미열강이든 학문에서 추구하는 바는 같다는 결론이다. 요시다 쇼인의 학문과 사상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 --- p.83

요컨대 요시다 쇼인의 사후 쇼카손주쿠 문하생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하기번주 모리 다카치카였던 것이다. 특히 이리에 구이치,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노무라 와사쿠, 요시다 도시마로와 같은 쇼카손주쿠 문하생들은 미천한 신분에서 입신출세한 전형적인 인물로 꼽히는데, 이들을 발탁해서 정치 일선에 투입한 정치가가 바로 다카치카였다. --- p.99

대한민국 지식사회에서 요시다 쇼인이 사상가로 등장한 것은 박은식(朴殷植)의 『왕양명실기』가 최초다. 경술국치의 전후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집필되어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에 게재된 『왕양명실기』는 경술국치로 기록된 역사적 좌절 앞에 도대체 왜 대한제국은 일한병합이라는 명목 아래 멸망해야만 했던가를 물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독립국가로서 존속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명나라 왕수인(王守仁)의 학문과 사상을 현창하면서 전통사상의 혁신을 제시하였다. --- p.116

최근 한국에선 일본수상인 아베 신조의 정책이나 정치사상과 결부시킨 요시다 쇼인의 관련 담론이 나름대로 성행하고 있다. 거기에선 2012년 취임한 이래 아베정권의 장기화가 진행되면서 우경화를 동반한 보수화를 우려하는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그 보수화의 원류로서 쇼인의 학문과 사상이 종종 거론되고 있지만 거의 언론매체를 통한 대중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 pp.118~119

일본에선 보수우익 계열의 민족주의 지식인들만이 요시다 쇼인을 연구하고 활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판적인 역사의식을 표방하는 진보계열의 선행연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은 아베 신조가 수반인 자민당 정권은 물론 근대일본의 천황제국가를 비판하는 학문적 이데올로기로 요시다 쇼인의 초상을 끊임없이 창출하였다. --- p.122쪽

이 단계에서 필자는 방법적 우회론을 제시하고 싶다. 그것은 1945년 패전 이후 새롭게 출발한 일본국의 지식사회와 역사학계에서 창출한 요시다 쇼인의 역사적 평가를 재조명해야 된다는 필연성이다. 나아가 근대일본 지식사회가 쌓아올린 학문적 업적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검증은 물론 그들이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대한민국의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싶다. --- p.125

요시다 쇼인은 유학자다. 유학은 동북아시아 한·중·일의 전통 학문이며 보편사상이다. 그 보편사상을 확장시키는 연속선상에 요시다 쇼인의 학문과 사상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의 일환으로 작성한 것이 이 책이다.
---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