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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그리고 불혼한 시대의 철학 (박치우) : 변혁의 철학을 꿈꾼 1세대 철학자

동방박사님 2021. 12. 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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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철학이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자란, 사상가란 기왕의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상가는 필연적으로 “불온”한 인물이 되며, 또한 때때로 좌절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그가 질곡 많은 시대를 살았다면 그의 개인적인 삶은 시대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 분단정국, 그 이후의 냉전 시기라는 유달리 비극적이고 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거쳐 온 우리에게, 과연 진정 시대를 고민하며 그와 불화했던 철학자/사상가는 누가 있었는가. 이상하리만큼 우리의 사상계는 평온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반문하게 된다. 그러한 사상가가 정말로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있었으나 이제는 잊혀버린 것인가.

우리에게도 그러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박치우(朴致祐, 1909~49)이다. 박치우는 1909년에 태어나,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33년 본과의 철학과를 졸업한, 서양철학 수용 1세대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 경성제대를 나온 인물들로는 신남철, 박종홍, 안호상, 김태준, 유진오, 배상하, 고형곤 등이 있다. 초기 한국 철학계에서 박종홍, 안호상 등이 관념론적 경향을 대표했다면 박치우는 유물론적 경향을 대표한 철학자였다. 이 두 경향은 당대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철학의 두 주요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철학계에 이르러서는 박치우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적 철학은 그 연구 활동이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서양철학 1세대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박종홍에 대한 연구에만 집중되었다. 박치우의 글들이 박종홍의 글들과 너무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또한 너무도 뚜렷하게 대비됨에도 불구하고, 즉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철학계에서 거의 완벽히 잊힌 반면 다른 한 명은 영예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박종홍은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영예(?)까지 누린다.) 이런 점에서 박치우의 철학적 활동을 되살피는 것은 한국 서양철학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목차

머리말

제I부 서론을 대신하여: 박치우 연구의 잠정적인 계기들

제II부 경성제국대학

I 경성제대 법문학부의 문학부 철학과
1 경성제대의 의미
2 경성제대 철학과 교수진
3 경성제대 철학과 입학생 및 졸업생들
4 경성제대 폐교와 흩어진 철학자들

II 『신흥』과 철학사상
1 『신흥』 출간의 철학사상적 배경
2 『신흥』과 철학사상적 논문들
1) 『신흥』 창간호
2) 『신흥』 제2호
3) 『신흥』 제3호
4) 『신흥』 제4호
5) 『신흥』 제5호
6) 『신흥』 제6호
7) 『신흥』 제7호
8) 『신흥』 제8호
9) 『신흥』 제9호
3 『신흥』의 철학사상적 의의

III 철학연구회와 『철학』
1 철학연구회와 『철학』 발간의 배경 및 그 이후
2 『철학』에 실린 논문들의 내용 및 그 분석
2-1 이재훈
1)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것」
2) 철학의 ‘입장’과 존재의 물음
3) 민족의식과 계급의식
4) 해방공간과 그 이후의 저술 활동
2-2 박종홍
1) 전체주의와 철학사상적 ‘지성’
2) ‘철학하는 것’의 의문과 실천
2-3 안호상
1) 헤겔 논리학 연구
2) 바우흐의 이론철학 및 이론(지)과 실천(행)의 통일
2-4 신남철
1) 번역,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
2) 실존철학 비판
2-5 박치우
2-6 전원배
2-7 권세원
2-8 이종우
3 철학연구회 및 『철학』 발간의 의의
1) 『철학』의 의미와 철학사상적 시대 상황
2) 『철학』의 연구 경향과 그 규정적 의미
3) 『철학』과 개념적 언어의 전환

제III부박치우의 삶, 또는 생애의 기록

I 들어가는 말

II 집안 내력과 경성제국대학 이전의 시절
1 박치우는 누구인가?
2 집안 내력
III 경성제대 시절
1 경성제대 예과 입학과 그 시절의 모습
2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입학과 그 시절의 활동

IV 경성제대 철학과 졸업, 그리고 1945년 8·15해방 이전의 시절
1 경성제대 조수와 평양 숭의실업전문학교 교수 시절
2 『조선일보』의 기자 생활과 경성제대 대학원 입학

V 해방공간과 분단체제, 그리고 한국전쟁 이전의 시절
1 박치우의 귀국
2 조선학술원 참여
3 평양 방문
4 조선문학자대회 및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의 결성과 박치우
5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에서의 활동
6 『현대일보』의 창간과 문필 활동
7 해방공간에서의 『조선일보』와 박치우
8 해주제일인쇄소 및 강동정치학원과 빨치산 활동

VI 박치우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 상처

제IV부박치우의 철학사상 I

I 서론: 박치우의 글 및 그 연구 경향
1 글들의 목록과 저서
2 박치우의 철학사상에 대한 기존의 연구
1) 박치우의 철학사상에 대한 연구 경향
2) 조희영의 서양철학 제1세대 연구
3) 조희영의 박치우 연구
4) 문학비평에 있어서의 박치우 연구와 평가
II 사회·역사적인 위기와 「‘위기’의 철학」
1 「‘위기’의 철학」의 객관적인 의미
2 「‘위기’의 철학」의 내용과 비판적 의의

III 전체주의 철학사상의 인간철학 비판
1 박치우의 인간철학, 그리고 실존철학 비판 I: 「나의 인생관: 인간철학 서상(序想)」 및

「불안의 정신과 인테리의 장래」
2 박치우의 인간철학, 그리고 실존철학 비판 II: 「현대철학과 ‘인간’문제-특히 ‘루넷산스’와의 관련에서」와 「불안의 철학자 ‘하이덱겔’-그 현대적 의의와 한계」

제V부박치우의 철학사상 II

I 『사상과 현실』
1 『사상과 현실』에 이르는 철학사상적인 여정
2 『사상과 현실』의 출간과 그 구성체계

II 이론적인 철학사상
1 철학의 당파성과 변증법적 실천 개념
2 ‘운명’의 변증법, 또는 변증법적인 ‘사명’

III 사회·정치철학 비판
1 사회·정치철학 비판의 서론
2 전체주의 및 파시즘 비판
3 ‘부르주아(시민)’ 민주주의 비판

IV 역사철학 비판
1 세대사관 비판
2 3·1운동의 해석과 역사관의 문제

V 문화철학 비판
1 파시즘적 문화운동 비판
2 국수주의적 문화 비판과 아메리카의 문화
3 학생 풍기(風紀)의 비판과 ‘불온사상의 감염’

VI 기타, 비판적 단상과 단편들
1 박치우의 ‘저널리즘’의 의미와 비판
2 종교 상업주의 비판
3 일제 잔재의 청산, 그리고 ‘조선에 반미론자가 없는 이유’
4 교육 현실 비판
5 문학론 단편

제VI부 결어: 박치우의 생애와 철학사상을 되돌아보며

박치우(1909~1949)의 연보 및 주요 사건 일지
 

저자 소개

저자 : 위상복
1948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철학과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했고, 원광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헤겔 철학, 특히 그의 논리학과, 아울러 한국의 서양철학 수용사를 연구하고 있다. 현대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 책으로는 헤겔의 『김나지움 논리학입문』(용의 숲, 2008) 등이 있으며, 기타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의 연구와 헤겔...
 

출판사 리뷰

왜곡되고 은폐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철학자 박치우
학자로, 저널리스트로, 빨치산으로
신념만을 위해 살다 희생되었던 시대의 지성을
오늘에 비로소 되살린다


우리들은 이갓치 위기에 잇으며 위기에 살며 위기와 싸워야 할 불가피한 운명에 던저진 존재이다. 그리면 도대체 여하히 하면 이 싸홈에 잇어서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무엇으로써일까? 위기 일반에 대한 기만적인 판단중지(epoche)에 의햐야써일까? 또는 종교적인 도피로써일까? 아니다. 우리의 주장은 이러하다.--위기의 극복은 다못 실천에 의하여서만 가능하다고. (……) 실천은 주체적인 파악 양식 중에서도 행동보다 더 한층 극(極)에 설 것이다. 참으로 신명을 던저서 적을 극복하려는 사람은 마치 전장에 임한 현장(賢將)과 갓치 적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주도한 관찰을 가지지 않어서는 안 될 터이기 때문이다. 가장 철저적으로 적을 극복하려면 충동적인 행동만으로는 불가능하겟기 때문이다. 충동적인 행동에는 ‘발악’(發惡)은 잇어도 가장 철저한 파악법인 ‘극복’은 없기 때문이다. 주체적 파악은 그럼으로 본래 파토스적인 것이다, 그의 극인 실천에 이르자, 벌서 한 거름 ‘로고스’적인 것의 영역에 드러가고 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리라. 여기에 ‘로고스’와 ‘파토스’의 변증법이 잇다. ●박치우, 「‘위기’의 철학」 중에서(1934년)

“철학이란 무엇이냐를 물을 겨를이 있거든
먼저 ‘철학은 오늘, 이 땅, 우리에게 있어서 마땅히 무엇이여야만 될 것인가’ -‘마땅히 우리의 이 현실에 대하야
어떠한 책임을 분담해야만 될 것인가’라는 문제를 뭇는 편이 백배나 더 중하고도 긴급한 일이다.“ (박치우)


철학이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자란, 사상가란 기왕의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상가는 필연적으로 “불온”한 인물이 되며, 또한 때때로 좌절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그가 질곡 많은 시대를 살았다면 그의 개인적인 삶은 시대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 분단정국, 그 이후의 냉전 시기라는 유달리 비극적이고 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거쳐 온 우리에게, 과연 진정 시대를 고민하며 그와 불화했던 철학자/사상가는 누가 있었는가. 이상하리만큼 우리의 사상계는 평온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반문하게 된다. 그러한 사상가가 정말로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있었으나 이제는 잊혀버린 것인가.
기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박치우(朴致祐, 1909~49)이다. 박치우는 1909년에 태어나,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33년 본과의 철학과를 졸업한, 서양철학 수용 1세대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 경성제대를 나온 인물들로는 신남철, 박종홍, 안호상, 김태준, 유진오, 배상하, 고형곤 등이 있다. 초기 한국 철학계에서 박종홍, 안호상 등이 관념론적 경향을 대표했다면 박치우는 유물론적 경향을 대표한 철학자였다. 이 두 경향은 당대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철학의 두 주요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철학계에 이르러서는 박치우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적 철학은 그 연구 활동이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서양철학 1세대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박종홍에 대한 연구에만 집중되었다. 박치우의 글들이 박종홍의 글들과 너무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또한 너무도 뚜렷하게 대비됨에도 불구하고, 즉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철학계에서 거의 완벽히 잊힌 반면 다른 한 명은 영예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박종홍은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영예(?)까지 누린다.) 이런 점에서 박치우의 철학적 활동을 되살피는 것은 한국 서양철학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시대와 불화한 철학자로서 박치우는 철학사상적인 글만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글들을 열성적으로 써냈다. 그 초점은 비합리주의적인 파시즘 비판에 있었으며, 이는 이후에도 줄곧 유지된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남로당과 노선을 같이하면서 파시즘과 국수주의 및 자본주의 비판,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옹호의 전면에 나선다. 더불어 일간지 『현대일보』를 창간하여 당대의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 당대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다 『현대일보』 폐간 등의 사건 이후 1946년 월북하여 해주제일인쇄소와 강동정치학원에서 활동하다가 빨치산으로 남하, 1949년 태백산에서 최후를 맞는다. 철학이란 마땅히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실천하지 못했던 신념을 박치우는 자신의 삶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한국 철학사에서도, 현대사에서도 망각되는 운명을 맞았다.(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 그를 조명한 최초의 작업은 1968년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1980년대 대학가에서 박치우가 남긴 유일한 저서인 『사상과 현실』의 복사본이 읽히고 있었다. 전 사회적으로 저항 운동의 기운이 활발하던 시기에 학생들이 몰래 돌려 읽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상은 반세기가 넘은 이후에도 적실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이는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의 사상이 어떠한 깊은 통찰과 예리한 분석을 갖추고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철학은 설명하는 데 그쳐서는 아니 된다.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명구(名句)는 이미 유명해저서 누구나 지꺼리는 말이다. 그러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카데미시앙이 쩌너리즘과 가두(街頭)에 진출하여 현실과 싸우며 새것을 위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박치우 씨가 처음인 것이다.
신생하려는 조선을 아직도 나치스 철학으로 설명하려 드는 라만챠의 봉건 신사도 없지 않은 우리 철학계(哲學界)다. 활짝 벗어붓치고 항쟁하는 인민과 함께 세계를 변혁하려는 철학자가 그다지 손쉽게 나타날 리 없지만, 박치우 씨는 이런 의미에서도 그 놀라운 ‘센스’와 ‘가두적(街頭的)인 술어(術語)’와 만만(滿滿)한 투지와 계몽적인 노력과 함께 희귀한 단 하나의 존재다. 현대일보 주필로 있을 때 사무실이 같아서 나는 테로를 맞는 박(朴) 씨를 먼 발로 보았다. 그 불굴한 신념과 초탈한 면모가 가위 현대의 쏘크라테스였다. ●김남천, 박치우의 책 『사상과 현실』에 부친 서평 중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수수께끼로 남은
한국 현대사의 잔해를 다시 모아 온전히 세우려는 시도

이 책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은 도서출판 길이 국내 저자의 연구 성과물만을 엄선해 펴내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본격 학술서 시리즈 ‘인문정신의 탐구’의 열두 번째 책이다. 이번 책의 지은이는 전북대 철학과 위상복 교수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대와 불화했던 철학자이자 현실 속으로 깊이 발을 딛고자 했던 저널리스트, 그리고 삶 전체를 던져 세계를 변혁하고자 했던 빨치산 박치우의 생애와 사상을 객관적인 자료에 토대하여 복원해낸다.
그러나 주관적인 이해나 해석을 피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자료 수집에 중점을 두었던 집필 준비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어디에서도 그의 생애에 대한 온전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출생지나 형제관계마저 확인하기 어려웠다. 1942년 혹은 1943년경의 중국행도 정확한 시기를 확정할 수 없고, 중국에서의 행적도 또 귀국 시기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의 곳곳에서 만나는 구절이 “알려져 있지 않다”이다. 그만큼 “사실(事實) 또는 사실(史實)의 복원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기록마저도 정직하지 못했고, 용기 있는 필자마저 드물었다. 어찌 그것이 역사학에만 해당되는 반문이며 고백일 것인가”라고 지은이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 어려움은 우리 현대사의 기록과 기억이라는 것이 여전히 절름발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었다. 박치우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엄혹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그것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이후 세대들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질곡을 남겨주었다. 여전히 왜곡되고 은폐된 수수께끼로 남아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과제들을 남기고 있는 현대사를 햇볕 아래 온전히 불러내고자 했던 것이 이 책의 지은이가 품은 소망이었다.
지은이는 자신이 이 책을 쓴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자유 속에서는 불온이란 말조차 살아남을 길이 없다. 살아남을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자유 속에서 조화와 불화는 비로소 쌍생아가 될 수 있다. 불화가 만일 조화를 넘어 자유마저 깨뜨린다면 그것은 파멸이며 전쟁일 것이다. 파멸과 전쟁 속에서는 조화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태에는 조화와 불화가 함께한다. 우리의 자유와 통일 속에도 조화와 불화가 함께한다. 물론 자유를 깨뜨리는 불화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자유를 깨뜨리는 조화도 상상할 수 없다.
박치우 역시 조화의 변증법을, 그의 말을 빌리면 ‘화협(和協)’의 변증법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화와의 모순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싸움, 곧 투쟁의 변증법이다. 그가 전쟁의 전운 속으로 사라진지 약 반년 후 전쟁은 현실화되었으며, 조화도 불화도 여지없이 전화(戰禍)의 잿더미 속으로 한꺼번에 파멸해버렸다. 그리하여 남한에 남은 것이라곤 반공주의에 기생하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철학사상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이 그러하고 실용주의 철학이 그러했다. 물론 이들 철학사상은 그 자체로서는 있을 수 있는 철학사상일 테지만, 그러나 그것이 반공주의를 위한 한 방편의 철학사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반공주의에 의한 자유의 압살은 경성제대를 나온 일석(一石) 이희승의 말처럼 “심간(心肝)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자유란 단 한번도 맛본 일이 없”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도록 우리를 지배하였다.
이 책의 주요 목적은 철학자 박치우와 관련된 여러 사태들이나 글들을 있는 그대로 자료들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있을 뿐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이해나 해석을 가능한 한 자제하면서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한 시대를 살다 간 철학자로서 이제는 거의 잊혀버린 박치우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서양철학이 수용되면서 겪어야 했던 과거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위상복

이렇게 묻히고 주목받지 못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지은이는 경성제대의 설치와 의미, 그리고 그 학교를 거쳐 간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상당한 분량에 걸쳐 짚어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당대의 학술지였던 『신흥』과 『철학』의 내용 또한 면밀히 분석한다. 이는 박치우 개인의 생애와 사상을 알기 위한 기초 작업인 동시에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작업일 것이다.

1930~40년대 현실의 모순에 주목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박치우

박치우가 남긴 글로 대표적인 것은 1934년 『철학』의 권두논문으로 발표한 「‘위기’의 철학」과 그의 유일한 저서인 『사상과 현실』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위기’의 철학」은 박치우의 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며, 1930년대 일제의 전체주의적 파시즘이라는 지배적인 현실이 반영된 글이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그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그 자신의 신념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당대의 현실을 위기로 파악하고, 이 위기를 실천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학사상적인 구명을 목표로 한다. 위기란 ‘객체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는 시기이며, ’주체적‘으로는 이 모순이 모순으로 파악되는 시기이다. 위기 속에서 주관적인 기분으로서 다가오는 불안이란 위기의 극복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또한 박치우에게 행동과 실천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모든 실천은 행동이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행동이 실천인 것은 아니다.” 행동이 로고스에 따를 때만이, 즉 이성을 따라 이루어질 때만이 실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치우에게 ’실천‘은 ’이론과 행동의 변증법적 통일‘이다. 다시 말해 “파토스(또는 행동)는 실천의 동력이고, 로고스(또는 이론)는 실천의 지침”이며, 파토스와 로고스의 변증법적인 통일로서 실천에 의하여 참다운 위기의 극복이 가능하게 된다. 일제에 의해 만주사변이 일어나고(1931),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취임하는가 하면, 일본과 독일이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면서 볼셰비즘과 파시즘이 격렬한 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시기에 박치우는 그것을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며, 위기의 극복을 위한 참된 실천은 볼셰비즘에 있다고 암시한다.

“혜성과도 같이 빛나는 문장으로 시대에 경종을 울”린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 박치우

박치우의 유일한 저서인 『사상과 현실』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쓰인 책이 아니라 기왕에 발표한 글들 29편을 선택적으로 재수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총 3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해방 이전 일제시기의 글들이고, 제2부는 해방 이후 이곳저곳에 발표한 글들, 그리고 제3부는 대부분이 『현대일보』에 발표했던 글들이다. 1부의 글들은 철학에 대한 규정의 문제, 철학적 인간학의 문제, 사회·정치철학의 문제, 역사철학의 문제, 문화철학적인 문제, 종교 현상에 대한 시사적인 문제, 개인적인 학문과 직업 선택의 문제 등을 다룬 글을 한 편씩 골라 엮었다. 2부의 글들은 1부에 비해 ‘아카데미즘’보다는 ‘저널리즘’으로 좀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으며, 현실참여에 비중을 둔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민족과 문화, 국수주의의 파시즘화, 아메리카 문화 등을 다룬 실천철학적인 글들이다. 마지막 3부는 ‘새 나라 건설을 위하야’라는 표제 아래 토지 문제, 자유 문제, 민주주의, 학생 문제, 일제 잔재 청산 문제, 반미 문제, 여성 해방 등에 대한 글을 묶었다.
박치우가 『현대일보』를 창간, 그 주필까지 맡아 많은 수의 사설들을 썼던 것까지 고려하면 그가 남긴 글은 더 많을 터이다. 그러나 이 책 『사상과 현실』에 실린 글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투철한 현실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박치우가 여전히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그의 전반적인 철학사상의 한편에는 ‘철학, ’테오리아, ‘이론’, ‘아카데미즘’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사상’, ‘이즘’, ‘실천’, ‘저널리즘’이 있으며, 그는 이들 두 측면의 변증법적인 지양과 통일을 추구했다.

지금까지의 조선의 현상은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대로 ‘쩌나리즘’은 ‘쩌나리즘’대로, 마치 두 사람의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너무나 몰교섭적(沒交涉的)인 버러진 두 길을 거러왔던 것만 같다. 하지만은 이래서 옳을가? 이래서도 좋을가? 두 개의 호(弧)는 기회를 다투어 서로가 되도록은 덥처야 하며 덥치는 가운데서 서로가 실상은 보담 풍성해지는 것이며 보담 미덤직한 성과가 기약될 것이 아닐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저서에서 되도록은 이 양자의 괴리(乖離)에서 오는 결함과 미흡(未洽)의 보충에 도움이 되고저 노력해본 것이다. ●박치우, 「사상과 현실」 서문 중에서(1946년)

『사상과 현실』에 실린 글들뿐 아니라 그가 발표한 모든 글들은 사회의 전 영역을 비판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부르주아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분석, 세대사관에 대한 비판, 파시즘과 국수주의 비판, 상품으로 전락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분석, 미신과 사교를 만연케 하는 종교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예측, 도시문화와 농촌문화의 불균형에 대한 인식, 사법계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촉구,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 등등 그가 비판의 촉수를 뻗치지 않은 영역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별반 나아진 것이 없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의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온 몸으로 철학함을 실천했던
철학자, 저널리스트, 투쟁가 박치우

박치우에게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빨치산 이력이나 비극적인 최후가 아니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가 옳지 않았는가는 우리가 따질 계제가 못 된다. 그의 삶이 유의미한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는, 그가 사상가로서 자신의 신념을 따라, 즉 이성에 따른 실천을 위해 살았다는 점에 있다. 그가 비운의 철학자라면, 그것은 그가 생존했던 당대의 역사가 아니라, 그 이후 지금까지의 험난한 현대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현실과 주저 없이 대면하고 ‘온 몸으로 철학하는 삶’을 살다 간 그가 침묵과 망각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 시작은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그 하나의 단추를 이 책이 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