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계사 이해 (독서>책소개)/2.세계문화

세상에서 가장 재미 있는 사랑과 욕망의 세계사

동방박사님 2022. 1. 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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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사랑’과 ‘욕망’이다. 이 책에는 ‘사랑’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자기 인생과 세계사의 물줄기를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돌려놓은 2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차

서문_ 세계사를 움직이는 두 개의 톱니바퀴, 사랑과 욕망

제1장 역사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 ‘사랑’과 ‘욕망’

episode 1. 앙투아네트 왕비를 향한 페르센 백작의 은밀하고 독한 사랑

앙투아네트에게 반해 전 재산에 목숨까지 걸며 도피를 도운 스웨덴 출신 페르센 백작 │ 절체절명의 순간에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앙투아네트의 어리석은 선택 │ 결정적 순간, 루이 16세가 페르센 백작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 간발의 차이로 추격대에게 붙잡힌 비운의 주인공 루이 16세 국왕과 앙투아네트 왕비 │ 그날 밤, 튀일리 궁전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6월 21일’에 똑같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두 사람, 페르센과 앙투아네트

episode 2. 영웅 나폴레옹을 절망하게 한 황후 마리 루이즈의 배신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의 운명을 결정지은 어느 공작부인의 은밀한 속삭임 │ 나폴레옹의 숙적 나이페르크 백작과 ‘육체관계를 맺는’ 사이로 발전한 마리 루이즈 │ 죽은 지 20년이 지난 뒤에도 나폴레옹 시신이 썩지 않고 잠자는 듯한 모습을 유지한 까닭은?

episode 3. 르네상스 시대를 뒤흔든 체사레와 루크레치아 남매의 금지된 사랑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악녀’로 불리는 이유 │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체사레와 루크레치아는 순도 백퍼센트 악인이었을까? │ 끝도 없이 이어지는 루크레치아 주변 남자들의 연쇄 의문사 │ 체사레 보르자는 왜 자신의 심복 부하를 처형한 뒤 시신을 광장에 버렸을까? │ 오빠 체사레의 ‘완전한 도구’가 되는 것을 오히려 즐긴 루크레치아 │ 수많은 정적을 죽인 보르자 집안의 독약 ‘칸타렐라’에 역으로 당한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레

episode 4.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음란한 왕비’로 악명을 떨친 마고

마고에게 ‘음란한 본성’이 처음 싹튼 때는 언제였을까? │ 몸에서 견디기 힘든 악취가 나는 남자와의 사랑 없는 결혼 │ 끔찍한 학살 현장으로 변해버린 마고와 앙리 드 나바르의 결혼식장 │ 마고가 참수된 연인 라 몰의 입에 키스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 남편이 왕위에 오르고 자신도 왕비가 되었으나 ‘바르지 못한 행실’이 문제되어 위송성에 유폐된 마고

episode 5. 성욕의 포로가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은 명나라 황제 가정제

명나라 황제 가정제는 왜 독약에 가까운 ‘미약’에 탐닉했을까? │ 열서너 살 미소녀 300~400명을 강제로 연행하여 ‘생리혈 목장’을 만든 엽기적 행각 │ 홍연환의 놀라운 효능과 끔찍한 부작용 │ 미수로 끝난 후궁 왕 씨와 궁녀 열다섯 명의 가정제 암살 시도

제2장 예술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예술을 낳고

episode 6. ‘여자’와 ‘성욕’을 연료 삼아 예술혼을 불태운 뒤틀린 천재 화가 피카소

투자가들이 피카소 그림에 열광한 이유 │ 피카소는 왜 자신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아내 올가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을까? │ “피카소는 여자와 몸을 섞어야만 비로소 그림을 그린다” │ ‘파카소를 버린 유일한 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프랑수아즈 질로 │ 첫 번째 아내 올가가 죽기를 기다리며 마흔여섯 살 연하의 젊은 연인 자클린 로크와 또다시 사랑에 빠진 희대의 바람둥이 피카소 │ 피카소가 죽은 후에도 피카소에게 지배당하는 여자들

episode 7. 스승 로댕을 향한 사랑도 예술 재능도 모두 파괴해버린 카미유 클로델의 광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왜 인생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살아야 했을까? │ 남녀로서도 예술적 동지로서도 완벽한 관계였던 로뎅과 클로델 │ 로뎅과 로뎅의 ‘사실상 아내’ 로즈, 그리고 클로델의 복잡한 삼각관계 │ 로댕은 왜 인생 말년인 일흔일곱 살의 나이에 ‘사실상 아내’ 로즈와 결혼을 선택했을까?

episode 8.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희대의 악처였을까?

아내 콘스탄체의 마음이 멀어지게 만든 모차르트의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여성관 │ 고액의 연금을 받은 모차르트는 왜 항상 경제적 문제로 쪼들리고 궁핍에 허덕였을까? │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정말로 악처였을까? │ 인류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가 맞은 쓸쓸한 죽음과 비참한 장례식 │ 3등급 공동묘지에 버려진 남편, 화려한 묘지에 잠든 아내

episode 9. 고흐의 ‘귀를 자른’ 진범은 누구일까?

생전과 사후의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바뀐 사례, 빈센트 반 고흐 │ 그 소녀는 왜 고흐의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었을까? ― “친절히 응대하기에 그는 너무도 불결했어요” │ 존경하는 화가 폴 고갱과의 불행하고 엽기적인 동거 생활 │ 고흐의 ‘귀 절단 사건’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권총 자살을 선택한 고흐, 그 순간에도 그는 살고 싶어 했다?

제3장.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존재감을 빛낸 여자 이야기

episode 10. ‘독립적인 여자’의 아이콘, 코코 샤넬의 감춰진 실체는?

‘오롯이 자기 힘으로 성공을 일군 당당하고 독립적인 샤넬’ vs. ‘평생 남자들에 기대어 성공한 의존적 샤넬’,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 부유한 영국인 아서 카펠에게 재정적 도움을 받아 샤넬사의 역사적 출발점이 되는 모자 가게 ‘샤넬 모드’를 오픈하다 │ ‘애인’으로는 받아들여져도 ‘아내’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연인에게는 반지 정도 무게의 부담감도 주지 않았다”고? 에이, 설마! │ 샤넬은 왜 나치스 독일 장교와의 염문설로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 │ “잘 봐…… 이렇게 사람은 죽는 거야!” ― 87년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디자인계의 큰 별이 지다

episode 11. 「춘희」의 모델이 된 슬픈 고급 매춘부 마리 뒤플레시

19세기 프랑스 파리 사회를 은밀히 주물렀던 독특하고 매혹적인 존재, 드미몽덴 │ 악독함이 아닌 청순함으로 유명해진 전설적인 드미몽덴, 마리 뒤플레시 │ 백작과 결혼하여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으나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빠진 뒤플레시 │ 죽기 직전 뒤플레시는 왜 ‘하얀색 동백꽃’을 품에 안고 팔레 루아얄 극장에 나타났을까?

episode 12. 나폴레옹 3세의 왕비 외제니는 왜 그토록 앙투아네트에게 심취했을까?

외제니가 결혼 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 │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남자 나폴레옹 3세와의 운명적이고도 불길한 만남 │ “나는 당신의 애첩 중 한 명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 남편에게 배신당한 뒤 쓸쓸함을 견디는 외제니의 마음에 스며든 앙투아네트의 환영 │ 앙투아네트처럼 ‘사악한 외국인 아내’로 몰려 남편 나폴레옹 3세의 실정과 전쟁 패배의 책임까지 뒤집어쓰고 목숨을 위협당하는 외제니 │ 여성 참정권 운동에 헌신하며 백팔십도 다른 인생 후반을 살다

episode 13. 19세기 유럽 사교계와 바이에른 왕가를 뒤집어놓은 스캔들 여왕 롤라 몬테즈

19세기를 뒤흔든 최대의 스캔들 여왕, 롤라 몬테즈 │ 천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와의 격정적인 사랑과 거친 결별 │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호색한 루트비히 국왕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다 │ 곤궁한 처지에 놓인 롤라 몬테즈,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신이 직접 고안한 비장의 무기 ‘타란툴라 댄스’로 재기를 노리다

episode 14. 어머니 제니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처칠을 영국 수상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내가 뭔가 위대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다” │ 아이를 가진 유부녀 제니가 영국 왕세자의 ‘애인’이 되었다고? │ ‘의리의 아버지’를 여럿 두어 자식의 미래를 보장받게 하다? │ 남편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최고의 연인 킨스키 백작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남편과의 긴 여행을 선택한 제니

제4장 불세출의 영웅과 천재도 뛰어넘지 못한 장애물은?

episode 15. ‘불로불사’에 집착해 수은이 다량 함유된 독약을 상용했던 시황제

중국 통일의 꿈을 이룬 뒤 ‘불로불사’에 목숨 걸다 49세에 목숨을 잃은 진시황제 │ 『사기』에 관한 의혹 1 ― 맹독성 수은을 주성분으로 만든 ‘단약’을 정기적으로 섭취한 시황제가 죽기 직전까지 건강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 『사기』에 관한 의혹 2 ― 수은을 다량 함유한 단약을 장복한 시황제의 시신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고? │ 2,000년 만에 발굴된 전한 시대의 유적 마왕퇴한묘의 귀족 부인의 시신이 조금도 썩지 않은 것도 ‘수은’ 때문이라는데? │ 시황제의 시신이 발굴된다면 그 역시 생생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을까?

episode 16. 18세기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묘한 여장 남자 스파이 보몽 이야기

러시아제국의 엘리자베타 여제는 보몽이 남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중용했을까? │ 영국에서 이번엔 ‘남자 행세’를 하던 보몽, 정체가 탄로 나다 │ 베르사유궁에서 여장을 한 보몽을 본 작가 볼테르는 왜 “저건 괴물이야!”라고 비명을 질렀을까? │ 보몽이 안정적인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위험천만한 영국에서 ‘여장한 남자 검투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까닭은?

episode 17. 19세기 유럽의 엄숙하고도 엽기적인 목욕 문화 ― ‘욕조에 몸을 담그면 타락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인의 위생 관념이 혁명적으로 발전한 까닭은? │ 19세기 영국 수도 런던 거리는 오물로 넘쳐났다는데? │ ‘욕조에 들어가면 페스트에 걸리기 쉽다’고 믿었던 19세기 영국인들 │ 필모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욕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 알려져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이유는?

episode 18. ‘진화론’의 주창자 다윈은 왜 20년간이나 은둔해야 했을까?

다윈은 왜 일생일대의 ‘비글호 탐험’ 이후 20년 동안이나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다시피 해야 했을까? │ 진화론과 함께 유전학도 깊이 연구한 다윈이 근친결혼으로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 했던 아이러니한 개인사 │ 다윈,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불후의 고전 『종의 기원』을 출간하여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다

episode 19. 죽은 뒤 200조각 난 천재 중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불쌍한 뇌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혀를 내민 사진’은 어떻게 찍히게 되었을까? │ 부검 담당 의사의 엉뚱한 호기심 탓에 황당한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아인슈타인의 뇌 │ 하비는 왜 아인슈타인의 뇌를 200조각 넘게 잘랐을까?

제5장 부와 권력을 향한 브레이크 없는 인간의 욕망

episode 20. 로스차일드가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만든 것은 ‘정보의 힘’이었다

마이어 암셸이 엄청난 부를 일굴 수 있었던 두 가지 비결, ‘다섯 명의 유능한 아들’과 ‘정보의 힘’ │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진다’에 자신과 가문의 운명을 건 네이선 │ 로스차일드호를 이용해 영국과 유럽 대륙을 날마다 오가며 최신 정보를 입수하는 네이선 │ 단 한 번의 ‘악마와도 같은 연극’으로 증권거래소의 상장주 60퍼센트 이상을 매점하고 단 하루 만에 자산을 2,500배 늘리다 │ 돈과 실리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뼛속까지 비즈니스맨 네이선의 일생

episode 21. 구근 한 뿌리가 집 한 채 가격에 팔릴 정도로 엄청난 거품을 일으킨 식물, 튤립 이야기

인류 역사상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은 동시에 미움받은 꽃, 튤립 │ 튤립 품종 개량에 몰두하던 신성로마제국의 궁정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가 갑자기 해고당한 까닭은? │ 진귀한 튤립 구근 하나와 유명 와이너리를 통째로 교환했다는데? │ 끝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튤립 구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한 몇 가지 결정적 이유 │ 갑작스럽게 찾아온 튤립 버블 붕괴 사태, 17세기 유럽의 그림 트렌드도 송두리째 바꿔놓다

episode 22. 유럽을 지배하는 합스부르크제국의 돈줄을 틀어쥔 ‘그림자 황제’ 푸거 가문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확장만 추구하며 몰락한 카를 5세 치하의 합스부르크제국 │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남독일 대부호 푸거가에 손을 벌려야 했던 카를 5세 │ 푸거가의 새로운 당주 안톤 푸거는 왜 카를 5세를 찾아가 차용증 다발을 시나몬을 착화제로 삼아 몽땅 불태웠을까? │ 고매한 이상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헤매며 국가를 파산 위기로 몰고 간 카를 5세, 마침내 퇴위 후 은둔 생활에 들어가다 │ 당대 유럽 최고의 두 가문, 합스부르크가와 푸거가를 몰락으로 이끈 펠리페 2세의 네덜란드 상인들에 대한 종교 탄압

episode 23. 영국 ? 프랑스 백년전쟁의 불씨가 된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 왕비 이야기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서 대관식을 치른 유일한 왕비, 알리에노르 다키텐 │ “국왕과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성직자였다” │ 십자군 원정 중 벌어진 ‘불륜 사건’이 빌미가 되어 루이 7세에게 이혼당하다 │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분쟁과 ‘백년전쟁’의 불씨가 된 다키텐과 헨리 2세의 결혼 │ 아버지 헨리 2세를 향한 왕자들의 연이은 반란의 배후에는 항상 다키텐의 그림자가?

24.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죽음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과 진실

가난한 구두공 집 출신의 성실한 신학생 스탈린은 어쩌다 열렬한 공산주의 신봉자가 되었나? │ 2년간 39만 명의 인민을 강제수용소에 보내고, 그중 2만 1,000명을 총살하는 정책이 ‘국가의 복지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러지다 │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풀리지 않는 의혹 │ 스탈린이 쓰러진 걸 알고도 12시간 가까이 방치한 인물은 누구일까?

제6장 최고 권력자도 대문호도 파멸로 이끈 광기와 충동

episode 25. 합스부르크가의 몰락을 앞당긴 루돌프 황태자와 메리의 동반 자살 사건

유일한 황위 계승권자인 루돌프 황태자는 왜 끝도 없이 빗나갔을까? │ “우리는 이제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었어!” ― 루돌프는 왜 하필 메리를 동반 자살 상대로 선택했을까? │ 루돌프가 동반 자살 디데이를 여동생 발레리의 약혼을 발표하는 궁정만찬회 날로 잡은 까닭은? │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는 저세상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
루돌프가 쏜 총에 관자놀이를 맞고 사망한 메리 │ 비참하게 죽은 메리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는 게 사실일까? │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 │ 영원할 것 같았던 합스부르크가의 몰락을 앞당긴 희대의 사건

episode 26. ‘남자다움’에 목숨 걸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대문호 헤밍웨이

‘남자다움’에 병적으로 집착하다 ‘남자다움’에 질식되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헤밍웨이 │ 헤밍웨이를 무너지게 한 결정적 도화선, 확률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연이은 두 번의 비행기 사고 │ 그가 최악의 상태에서도 끝내 정신과 진료를 거부한 이유 │ 대문호의 허무하고도 비참한 죽음

episode 27.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와 브라운의 36시간의 결혼생활과 비장한 최후

사진관에서 일하던 브라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의 마음을 사로잡다 │ 히틀러는 왜 애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만 했을까? │ “그는 뭔가 목적이 있을 때에만 나를 필요로 한다” │ “나는 깨끗한 시체가 되고 싶어” ― 절망적인 상황에서 에바 브라운만 유일하게 활기가 넘쳤다는데? │ 자살하기 직전 한밤중에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 히틀러 │ 두 사람이 부부로 지낸 시간은 고작 36시간이었다?

episode 28. ‘황후’라는 타이틀에 목숨 걸다 남편과 자신의 인생을 망친 샤를로트 이야기

상승 지향 성향이 강한 왕녀 샤를로트, 오스트리아제국 황제의 동생 막시밀리안과의 결혼을 택하다 │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로부터 멕시코 황제를 제안받은 막시밀리안 대공 │ 황후가 되고 싶은 욕심에 남편을 종용하여 합스부르크가의 계승권마저 포기하고 멕시코 황제 자리를 받아들이게 한 샤를로트 │ 멕시코 민중과 프랑스 황제 모두에게 버림받고 딜레마에 빠진 황제 부부 │ 샤를로트, 나폴레옹 3세를 만나 거세게 항의하다 │ 남편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땅에서 총살되고, 아내 샤를로트는 광기의 바다 속으로

참고문헌
 

저자 소개 

1977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제1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세계, 고대, 근대를 불문하고 역사의 재미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경쾌한 필치로 그려낸다. 면밀한 검증과 고찰, 현실감 넘치는 묘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지은 책에 『사실은 무서운 세계사 전략편』, 『위인은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다. 역사적 명언의 뜻밖의 이면』,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여자들 ? 감미로운 로코...

그림 : 이강훈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뒤 책과 잡지, 광고 등 여러 매체에 그림을 그렸다. 작품을 표현하는 개성과 기법이 다양하고 아이디어가 기발한 일러스트레이터다. 지금까지 그린 책으로『고령화 가족』 『한국 괴물 백과』『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등이 있으며, 어린이를 위해 그린 책으로는『미래가 온다, 바이러스』『재판을 신청합니다』『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등이 있다. 또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린 책...

 

역 : 김수경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에이전트로 근무하다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가 있고, 옮긴 책에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기획서는 한 줄』『청춘이란』『마두금 이야기』『조금 다를 뿐이야』『여자 나이 50』『듣기: 직원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소통의 기술』『준비된 습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페르센 백작은 스스로 마부가 되어 다른 마부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며 필사적으로 말을 몰았다. 그들의 목숨을 건 여정에는 악조건과 장애물이 많았다. 그리고 그 탓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앙투아네트가 고집을 부려 어쩔 수 없이 챙긴 온갖 물건 탓도 있었으나 당시의 형편없는 도로 상태도 한몫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에는 마차 바퀴를 보호하는 충격 흡수제가 발명되지 않았기에 더욱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높인 터라 마차는 심하게 덜컹거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왕 부부는 불평 한마디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극심한 어지러움과 함께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파리를 벗어난 뒤 국왕 부부 일행을 실은 마차는 첫 숙소가 있는 봉디에 도착했다. 루이 16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페르센 백작에게 마차에서 당장 내리라고 명령했다. 페르센은 목적지인 오스트리아에 다다를 때까지 자신에게 그 일을 맡겨달라고 간청했으나 국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인 루이 16세가 그토록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의 도피 여정이 그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당시 루이 16세의 결정과 언행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한데 그중 벨기에의 역사, 전기 작가 앙드레 카스텔로(Andre Castelot)의 주장이 흥미롭다. “자기 아내의 애인, 혹은 최소한 그와 비슷한 존재로 여겨왔던 인물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도피 여정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남자는 없지 않을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이유보다는 페르센이 주도한 엄청난 속도의 불편한 여행을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에 길든 뚱뚱한 루이 16세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 듯하다.
---「episode 1. 앙투아네트 왕비를 향한 페르센 백작의 은밀하고 독한 사랑」중에서

피카소는 계단을 오르는 소녀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마드모아젤, 당신의 얼굴이 아주 흥미롭군요!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저는 피카소라고 합니다.” 마리 테레즈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소녀로 피카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피카소에게 왠지 끌렸다. 프랑스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인 열여덟 살 생일날 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연인이 되었다.

“사랑은 언어가 아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된다.” 피카소가 남긴 명언이다. 이 말을 실행에 옮기기라도 하듯 건강한 육체를 가진 마리 테레즈와의 격정적 사랑은 그의 예술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그 당시에도 그 후에도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예술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훗날 “피카소는 여자와 몸을 섞어야만 비로소 그림을 그린다”라는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아이를 낳았다. 1935년 6월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때로부터 7년만의 일이었다. 피카소의 부인 올가는 마리 테레즈의 임신을 빌미로 이혼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어쩔 도리 없이 1955년 자신이 사망할 때까지 피카소의 아내 자리를 지켜야 했다.

마리 테레즈가 출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카소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었다. 피카소의 마음은 왜 변했을까? 아마도 출산 후 육아에 몰두하는 두 번째 마리 테레즈에게서 ‘어머니’로서의 얼굴밖에 발견할 수 없게 된 탓이 아니었을까. 이후 피카소는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라는 이름의 이지적이면서도 희로애락의 감정 변화가 뚜렷한 여자와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도라 마르를 만난 때는 1936년, 어느 카페에서였다. 당시 도라 마르는 스물아홉 살, 피카소는 쉰다섯 살이었다.
---「episode 6. ‘여자’와 ‘성욕’을 연료 삼아 예술혼을 불태운 뒤틀린 천재 화가 피카소」중에서

수많은 혼외정사와 연애에도 불구하고 제니의 남편 랜돌프와 아들 윈스턴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얼핏 자유분방하게 휘젓고 다니는 듯 보여도 그의 연애는 남편과 아들에게 든든한 후원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남편 랜돌프가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제니는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력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의리의 아버지’가 될 남자를 여럿 두어 자식의 미래를 보장받게 하고 싶어 했던 게 아닌가 여긴다.

제니는 훗날 영국 수상이라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아들윈스턴의 재능을 굳게 믿고 응원했다. 그러나 소년 시절의 윈스턴은 획일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탓에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 윈스턴은 군인이 되었는데 군대에서의 성적도 평범해서 아버지 랜돌프를 한숨짓게 하는 일이 많았다. 윈스턴은 ‘아버지와 소원해져서는 안 된다’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꾸준히 지속했다. 그 덕분에 일찍 작고한 아버지와의 추억이 남았고 그것이 윈스턴에게 어느 정도 행복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병세가 점점 더 악화하여 대면하기 어려워진 친아버지 랜돌프보다 젊은 시절의 윈스턴에게 훨씬 구체적인 조언과 격려, 실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엄마의 연인 킨스키 백작이었지만 말이다.
---「episode 14. 어머니 제니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처칠을 영국 수상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그렇게 뇌를 도둑맞은 채 유족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누구도 아인슈타인에게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했고 뉴저지주의 어딘가에 그 재를 뿌렸다.

하지만 하비는 위대한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하비는 프린스턴 병원에서 해고되었다. 그러나 하비는 다음 직장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 뇌의 소유자’라는 타이틀이 위력을 발휘한 것일까? 그의 다음 직장은 바로 펜실베이니아대학이었다. 하비는 자기 연구실에서 아인슈타인 뇌를 200조각 넘게 잘게 잘랐다. 뇌는 부위별로 담당하는 기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하비는 그 시점에 어떤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뇌는 자기 손에 있지만 그 뇌를 분석할 만한 기술이나 마땅한 수단이 없었으므로 연구를 진척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하비는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에게 아인슈타인의 뇌조각을 보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뇌의 어떤 부분을 넘겼는지 등을 담은 일목요연한 목록 같은 것은 작성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기가 막히게도 아인슈타인의 뇌 절반 정도가 오늘날까지 행방불명이 되어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혹은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구자 중에는 아인슈타인의 뇌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자신은 애초 그런 물건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주장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최근의 조사로 밝혀졌다.
---「episode 19. 죽은 뒤 200조각 난 천재 중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불쌍한 뇌」중에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리에노르 다키텐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와 이혼했다. 기독교적 윤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이혼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용케도 두 사람은 교황 하드리아노 4세(Pope Hadrianus IV, 재위 1154~1159)에게 이혼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교황청은 ‘루이 7세와 알리에노르 다키텐의 결혼은 먼 혈연관계가 있는 근친혼이므로 애당초 성립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이혼을 승인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왕녀의 친권은 루이 7세에게 넘어갔으나 다키텐은 결혼 지참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에 따라 결혼식과 함께 프랑스 왕국에 합병되는 형태로 빼앗긴 셈이던 그의 영지도 모두 반환되었고 재혼할 수 있는 권리도 얻게 되었다.

1152년 알리에노르 다키텐은 열한 살 연하의 영국 왕세자(훗날의 국왕 헨리 2세)와 또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이는 그가 프랑스의 루이 7세 국왕과 이혼한 지 불과 2개월 후의 일이었다. 다키텐은 왜 이토록 서둘러 재혼했을까? 아마도 전 남편 루이 7세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심리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면 여러 정황상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영국 왕자 헨리와 혼인한 뒤 다키텐은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러 명의 왕자에게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광대한 영토를 상속했다.

흥미롭게도 훗날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무려 ‘1세기’라는 긴 세월에 걸쳐 영토를 둘러싼 ‘백년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발단이 모두 알리에노르 다키텐의 이혼 및 재혼과 관련된 영토 상속이 빌미가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알리에노르 다키텐은 그야말로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결혼과 이혼을 한 여자인 셈이다.
---「episode 23. 영국 - 프랑스 백년전쟁의 불씨가 된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 왕비 이야기」중에서

처음에 막시밀리안은 이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친족들도 강하게 반대했다. 샤를로트의 대숙모로 프랑스왕 루이 필리프의 왕비였으나 혁명으로 퇴위된 경험이 있는 아말리아 드 부르봉은 ‘살해당할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말로 경고하며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우려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무 직무도 없는, 한량에 가까운 남편을 황제의 자리에 밀어 올릴 수 있고 자신도 황후가 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집요한 설득 끝에 망설이는 막시밀리안의 동의를 얻어냈다.

부부가 머무르던 미라마레성에서 대관식이 열렸다. 1864년 4월 10일의 일이었다. 멕시코 대표단에게서 왕관을 받아 머리에 쓴 두 사람은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아노 1세, 멕시코 황후 카를로타로 즉위했다. 샤를로트에게는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황후의 대관이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불행한 예감이 자꾸 엄습해 괴로워했다. 멕시코 황제가 된다는 것은 합스부르크가의 숙적인 보나파르트가의 나폴레옹 3세의 비호 하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형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만약 멕시코 황제가 된다면 합스부르크가의 지위나 재산 등 모든 계승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럼에도 샤를로트는 남편을 재촉하여 그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게 했고, 4월 14일 그들은 유럽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두 사람은 이제 원래의 자리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episode 28 ‘황후’라는 타이틀에 목숨 걸다 남편과 자신의 인생을 망친 샤를로트」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랑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의도치 않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기상천외한 사람들 이야기


사랑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뜻밖에도 자기 인생은 물론이고 세계사의 물줄기마저 전혀 예기지 못한 방향으로 돌려놓은 28인의 기상천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흥미진진한 역사서가 사람과나무사이에서 출간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가 그것.

저자는 서문에서 “사랑과 욕망은 인생과 역사를 움직이는 톱니바퀴이며 축이다. 톱니바퀴가 정교한 기계를 작동시키고 바퀴 축이 자동차를 달리게 하듯 사랑과 욕망은 인생을 움직이고 역사를 추동(推動)한다”라고 말한다.
사랑과 욕망은 어떻게 인생을 움직이고 역사를 추동할까? 세계사의 수많은 장면 중 ‘페르센 백작과 앙투아네트 왕비’ 장면을 펼쳐 읽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첫 번째 장면 - 페르센 백작의 ‘사랑’과 루이 16세의 ‘식욕’과 ‘질투욕’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고?

스웨덴 출신 한스 악셀 폰 페르센(Hans Axel von Fersen) 백작을 움직인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그는 프랑스 왕국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를 깊이 사랑하고 흠모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전 재산 150만 리브르(오늘날 기준 200억 원이 넘는 거액)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프랑스대혁명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루이 16세 국왕과 앙투아네트 왕비를 국외로 망명시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그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국경을 벗어나기 직전 국왕과 왕비 일행은 혁명 추격대에 붙잡혔고 얼마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앙투아네트 왕비를 향한 페르센의 사랑은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운명은 물론이고 프랑스대혁명의 물줄기와 프랑스 역사의 방향마저 송두리째 바꿔놓을 뻔했다. 만일 그때 국왕 일행이 망명에 성공했다면 프랑스대혁명의 흐름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고 혁명의 불길이 꺼진 뒤 복귀를 노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국왕과 왕비 일행의 망명은 왜 실패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루이 16세의 ‘두 가지 욕망’이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제할 수 없는 왕성한 ‘식욕’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아내인 앙투아네트를 사랑하는 페르센 백작을 향한) 불타는 ‘질투욕’이었다. 타고난 비만 체형의 엄청난 대식가인 루이 16세는 놀랍게도 목숨을 건 도주를 감행하기 직전 평상시와 다름없이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고 한다.

폭식으로 인한 위장 장애는 형편없는 도로 상태·바퀴를 보호하는 충격 흡수제가 없는 마차 등 18세기 당시의 열악한 교통 여건과 맞물리며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여기에 페르센을 향한 분노와 ‘질투’가 더해지면서 루이 16세는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할 결정을 하고 만다. 그것은 바로 전 재산을 털어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위장한 마부가 되어 다른 마부들을 통솔하고 지휘하며 자신을 도와온 페르센을 해고하고 내쫓은 일이었다. 만일 그때 루이 16세가 ‘식욕’과 ‘질투욕’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운명은 물론이고 프랑스 역사마저 달라지지 않았을까.

두 번째 장면 - ‘여자와 사랑을 나누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뒤틀린 천재 화가 피카소가 세계 미술사를 혁명적으로 바꾸다

‘여자’와 ‘성욕’을 연료 삼아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가 있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바로 그다. 그의 두 번째 연인이자 아내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Marie-Therese Walter)는 훗날 “피카소는 여자와 몸을 섞어야만 비로소 그림을 그린다”라는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이렇듯 피카소는 ‘사랑’과 ‘성욕’을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으며, 자신이 사랑한 여자들을 그림을 그리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감’을 샘솟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다.

어쨌든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뒤틀린 욕망과 사랑이 영감의 원천이 되고, 나아가 세계 미술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장면 - 영국·프랑스 두 나라에서 모두 왕비가 되어 백년전쟁의 불씨가 된 인물 알리에노르 다키텐 이야기

영국 ? 프랑스 간 100년 넘게 지속된 백년전쟁이 12세기를 살았던 한 여인의 결코 시들지 않는 ‘욕망(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유럽사와 세계사가 한층 흥미로워지고 풍성해진다. 그 놀라운 여인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서 모두 대관식을 치른 역사상 유일무이한 왕비이자 ‘12세기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알리에노르 다키텐으로, 자신의 손자·손녀들이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나 왕비가 되었으므로 ‘유럽의 할머니’로도 불린다.

알리에노르 다키텐은 남자 형제가 없었기에 막강한 권력과 영토를 가진 아버지 아키텐 공작에게서 프랑스 전체 면적의 4분의 1이나 되는 광대한 영토를 물려받았다. 강력한 재력과 영향력을 밑거름으로 열다섯 살의 나이에 그는 두 살 연하의 프랑스 왕세자와 결혼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왕세자 루이가 프랑스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1152년 이혼한다.

다키텐은 이혼한 지 불과 8주 만에 영국 왕자 헨리와 재혼한 뒤 여러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들에게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광대한 영토를 상속했다. 훗날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무려 1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영토를 둘러싼 ‘백년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발단이 모두 알리에노르 다키텐의 이혼 및 재혼과 관련된 영토 상속이 빌미가 된 것이었다.

영국의 왕비가 된 다키텐의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매우 권위적인 남편 헨리 2세는 아내 다키텐을 항상 감시하며 괴롭혔고 노골적으로 젊은 애인에게 애정 공세를 퍼붓고 특별 대우하는 등 모멸감을 주었다. 이에 다키텐은 영국을 떠나 친정이자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가 자신의 영지인 아키텐 공작령에서 별거 생활에 들어갔다.

알리에노르 다키텐은 결코 만만히 볼 여자가 아니었다. 사실 ‘우아한 별거 생활’은 아키텐의 진짜 야망을 숨기려는 행위이자 오랜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의 결단은 놀랍게도 어머니인 자신과 훨씬 친밀한 왕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의 아버지 헨리 2세를 증오하게 만들고 연이어 모반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이로써 헨리 2세 재위 기간 내내 영국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했으며, 다키텐이 낳은 왕자들이 그에게 상속받은 프랑스 땅이 빌미가 되어 대를 이어 영국과 프랑스 양국 간에 불화가 빚어지고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 마침내 백년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막강한 권력과 재력, 그리고 분노로 무장한 한 여인의 ‘욕망’이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는 물론이고 이후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와 흐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셈이었다.

네 번째 장면 - 황후가 되고 싶은 욕심에 남편 막시밀리안을 종용하여 ‘멕시코 황제’ 제의를 받아들이게 했다가 인생을 망치고 유럽사와 아메리카사에도 영향을 미친 샤를로트

초대 벨기에 국왕의 딸 샤를로트(Charlotte von Belgien)는 상승 지향 성향이 매우 강한 여자였다. 그랬기에 샤를로트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막시밀리안(Ferdinand Maximilian)에게 ‘멕시코 황제’ 자리를 제안했을 때 망설이는 남편을 종용하여 합스부르크가와의 인연도 끊고 그 위험한 거래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나폴레옹 3세에게 배신당한 남편은 멕시코 민중의 반란으로 처형당했고 그 충격으로 샤를로트 자신도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황후가 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자신과 남편의 인생을 망쳤을 뿐 아니라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의 역사의 진행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몰락한 영웅 나폴레옹이 임종 직전 자신의 심장을 두 번째 아내 마리 루이즈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긴 까닭, 마키아벨리가 여동생 루크레치아와 근친상간을 일삼고 수많은 정적을 잔인하게 암살한 체사레를 자신의 저서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칭송한 이유, 고흐의 ‘귀를 자른’ 진범이 그가 존경했던 화가 고갱이었다는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어머니 제니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윈스턴 처칠을 영국 총리로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 천재 중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가 그의 간절한 바람과 정반대로 사후 200조각으로 잘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리돌림당한 기막힌 사연 등 잠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빼곡하다.

‘사랑’과 ‘욕망’이 파란만장한 삶을 산 28인의 인생과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앙투아네트에게 반해 200억 원이 넘는(오늘날 기준)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도피를 돕다가 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스웨덴 출신 페르센 백작 이야기
-몰락한 영웅 나폴레옹은 왜 임종 직전 자신의 심장을 두 번째 아내 마리 루이즈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여자와 사랑을 나누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엉뚱한 천재 화가 피카소
-고흐의 ‘귀를 자른’ 진범이 그가 존경했던 화가 고갱이었다는 의혹은 과연 사실일까?
-어머니 제니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처칠을 영국 총리로 만든 원동력이었다는데?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서 대관식을 치른 역사상 유일한 왕비이자 영국?프랑스 백년전쟁의 직접적인 불씨가 된 인물 알리에노르 다키텐 이야기
-18세기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묘한 여장 남자 스파이 보몽 이야기
-부검 담당 의사 토머스 하비는 왜 아인슈타인의 사후 그의 뇌를 200조각으로 잘랐을까?
-황후가 되고 싶은 욕심에 남편 막시밀리안을 종용하여 합스부르크가의 계승권마저 포기하고 멕시코 황제 제의를 받아들이게 했다가 인생을 망친 샤를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