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생각의 힘 (독서>책소개)/2.한국사회비평

한국의 발견

동방박사님 2022. 1.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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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인의 정체성과 그 세계에 관한
탐색과 고찰의 기록!


오랫동안 한국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중국의 세계에, 일본의 세계에, 그다음에는 소련과 미국의 세계에 말이다. 이제 한국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탁월한 외교관이자 행정가, 정치학자인 라종일 교수와 에세이스트 김현진, 현종희 작가가 함께 엮은 이 책 『한국의 발견』은 격변하는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탐색하고 고찰한다.

목차

들어가는 말
책을 펴내며

1부 발견된 한국, 발견한 세계
다시 만난 세계
그라운드 제로: 모든 것을 파괴한 전쟁
나라를 찾았는데 왜 기쁘지 않나: 실패의 기록
한강에 이런 기적이: 근대를 향한 노력
쓰레기통에도 장미는 피는가: 민주화의 모범 국가
당신의 가정은 얼마나 민주적입니까: 사회의 민주화
문화예술과 교육
가깝지만 먼
완성되는 근대
한국의 발견

2부 현실과 이상,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때는 외로우셨을까요, 아니면 표표히 자유로우셨을까요?
제겐 한국이 훨씬 강렬한 현실이었습니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현실의 어설픈 반영이었을까요?
우리가 쳐다보던 세상에도 문제는 가득했습니다
저 말고도 정신이 아픈 여성이 한국에 아주 많았을 거예요
사람은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저의 계급 차이일까요?
정말 독한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한국 발견하기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우리를 ‘동지’로 여겼는지 묻고 싶습니다
귀한 아이, 천한 아이가 따로 있을까요?
저의 천박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대로더군요
반드시 즐거움을 나눌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오늘, 자신을 발견하는 항해를 시작할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 : 라종일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미국의 스탠퍼드대, 미시간대, 남가주대, 프랑스의 소르본대, 그리스의 아테네대 등에서 연구교수와 교환교수를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펠로우를 역임했다. 1995년 현실 정치에 참여하며 대통령직인수위...

저 : 김현진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줄곧 글 쓰는 삶을 살아왔고 계속 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
 
저 : 현종희
 
합리적인 세계에서 인간이 벌이는 비합리적인 양상에 관심이 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멀쩡하게만 보이던 이들이 광기에 빠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현실에서는 길을 잃은 근대주의자로 찾을 수 없는 길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오늘을 발견하려는 책 『한국의 발견』을 라종일, 김현진 두 선생님을 모시고 작업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퀴어성을 그리고 근대소설로서의 가치를 조명한 『바람과 함께 사...
책 속으로
코로나 사태의 좋은 면이 하나 있어요. 한국인들이 선진국 콤플렉스를 벗었어요. 실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쌓여왔던 문제입니다. 소위 선진국들이 과연 인류 차원에서 보는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해왔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있었지요. 특히 트럼프 당선 이후 그런 생각들이 특히 많아졌어요. 살펴보면 그들도 별것 없잖아요. 미국도 유럽도 별 볼 일 없고, 중국도 옛날의 중화와는 거리가 멀고요. 선진국을 연구하고 좇아가면 저절로 잘 되리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걸 한국인들은 알아차렸지요. 이제 모델이 없어졌어요.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정의마저 때로는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든지 다 잘하는 그런 나라가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나라가 하는 것들을 따라해야 한다고 여겼죠.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 잘못된 것은 아니었어요. 한시적 의미도 있었지요. 단지 제도만을 도입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문화적 토양이 따라가지 못했던 면이 있었습니다.
--- p.19-20, 「다시 만난 세계」 중에서

따지자면 이승만에게 공산화를 막은 그리고 나라를 지킨 공적은 있었어요. 나중에 긴 안목으로 보면 공산주의를 실행했던 나라보다 안 한 나라가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공산주의를 경험한 나라는 나중에 자유시장경제 쪽으로 바꾼다 해도 별로 신통치가 않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체제를 바꾸면 금세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정치적으로 열린 사회로 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렇기는 한데, 이승만에게 그런 공적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전쟁 이후의 행태를 보면 좋게 평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 p.44-45, 「나라를 찾았는데 왜 기쁘지 않나: 실패의 기록」 중에서

전 세계 자유주의국가 중에서 베트남전이 인기 있었던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을 거예요. 어찌 보면 한국 정부의 선전이 잘 먹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선전보다 한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여러모로 나쁜 전쟁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종군 목사들까지도 하나님이 용서하실 거라면서 전투에 가담하고 그랬대요. 1970년대 초반 상황은 특수했지요. 제가 2003년 청와대에 재직하던 중 2차 이라크전 파병 문제가 논의될 때 이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시대는 갔다고 평한 일이 있어요. 이미 세상이 바뀌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차원에서 보면 베트남전은 이득이 많았어요. 원시적 자본축적이라고 경제사에도 나오잖아요. 영국의 공인된 해적들이 스페인 배를 습격해서 남미에서 가져오는 재물을 약탈했잖아요? 해적질이나 식민지 약탈 같은 것이 초기 경제 성장에 실제로 도움이 되었어요.
--- p.77, 「한강에 이런 기적이: 근대를 향한 노력」 중에서

DJ 집권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합헌적 절차에 따라 여당에서 야당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었잖아요. 이렇게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권력이 상대에게 이동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상 개국 이래 반세기가 지나서야 처음 일어난 사건이었죠. 당 일각에서는 득표 차가 매우 적어 혹시 이변이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선거 당일 자정이 가까워 승패 전망이 확실해지자 이회창 측에서 큰 축하 화환을 보내왔더라고요. 그 순간이 제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자신이 누리던 권력을 상대에게 빼았기는데도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때는 이제 우리나라가 큰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p.106-107, 「쓰레기통에도 장미는 피는가: 민주화의 모범 국가」 중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보면 사회를 국가가 편리하게 관리하는 방식일 뿐이지, 민주주의의 기본 이상 같은 건 없지 않나, 또는 사회와 국가가 적당히 합의해 운영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어요. 그러나 한국은 아닙니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싸우고, 어떨 때는 국회에서까지 주먹다짐을 할 정도지요. 그 정도까지 격렬한 논쟁이 있고 투쟁이 있었어요. 저는 그것들도 한국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의 역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의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고요.
--- p.126, 「당신의 가정은 얼마나 민주적입니까: 사회의 민주화」 중에서

창조경제라는 게 결과는 엉터리였지만, 콘셉트 자체는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기존 산업구조에서 수용 능력을 높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창의적인 일들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겠죠. 그래서 고전 교육이 중요합니다. 고전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교양을 키워주니까요. 성서도 그렇죠. 그 책들이 오래 살아남는 건 그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때 고전 교육이 되어서, 서양 고전이든 동양 고전이든 학생들이 어느 정도 맛을 들여야 해요.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제일 모자라는 부분이 그것이에요. 1980년대 교육부가 국민윤리학과라는 것을 각 대학에 만들 때 저는 그 대신 고전학과를 만들자고 했어요. 고전 말고도 기초 교육도 그렇고 대학원도 그렇고, 아직은 우리가 많이 부족하죠. 일본의 지방 어느 대학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름도 모르는 대학이라 별 생각 없이 갔죠. 그런데 그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둘이나 배출했더라고요. 하나는 물리학상, 하나는 화학상.
--- p.145-146, 「문화예술과 교육」 중에서

한일협정의 상징적 일화가 있어요. 한일 양국이 1951년 처음 만났는데, 당시 한국 측 대표였던 양유찬 씨가 모두발언을 미국 속담 “Let’s Bury the Hatchet!”으로 시작했어요. 우리 이제 도끼는 파묻자, 곧 원한은 잊어버리자는 영어 표현이죠. 그랬더니 일본 측 대표가 이렇게 말하더래요. “What Hatchet?” 무슨 원한이 있느냐고 반응한 거예요.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서로 이해가 달랐습니다. 한일협정에서 우리 쪽에게는 과거사가 가장 큰 문제였죠. 일본이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 한일병합조약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다음이 청구권이었죠. 곧 일본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보상받는가였어요. 안보 문제는 그보다 우선순위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위 일화에서 보듯 과거사 정리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 한일협정에서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 자본의 한국 진출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한국을 일본의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려 했죠. 그래서 자금은 제공하되 배상권 형식이 아닌 경제협력 형식으로 한국에 주려고 했어요. 안보도 일본의 중요 관심사였죠. 한반도가 만약 공산화되면 일본에게는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 p.154-155, 「가깝지만 먼」 중에서

북한과 우리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요? 제한적으로 경제 교류나 관광 같은 걸 같이 한다면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그렇지만 한계가 있겠지요. 저는 북한의 실패가 경제가 아니라 정치 때문이라고 봐요. 정치권력을 잡고, 또 권력을 물려주는 방법이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룰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데 북한은 그것에 실패했어요. 그러니까 김일성은 자기 파트너가 될 만한,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을 모조리 숙청해버렸지요. 제도적인 절차에 따라 경쟁하는 과정이 전혀 없이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었고요. 백성들에게 이 과정을 설득시키려면 지도자를 전설적인 인물로 포장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이게 참 위험한 일입니다. 영웅다운 모습을 유지하려면 늘 외부의 무서운 적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하니, 평화가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적일 수 있어요. 북한에서는 정권 하나를 지키려고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셈이 되었죠. 지난 세기 가장 심한 전체주의 국가들도 지금의 북한보다는 형편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 p.179-180, 「완성되는 근대」 중에서

오래전 이야기인데, 1980년대에 학교 휴게실이나 식당에서 농성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 여학생들이 있었어요. 나중에서야 자신이 당한 일을 하소연해요. 불미스러운 일로 이야기가 커지면 운동에 흠이 될까 그러지도 못하고요. 어떤 여학생 이야기인데, 함께 운동하는 동지가 경찰한테 쫓겨서 재워달라고 하숙방에 찾아왔대요. 그런데 그 남자 동지가 막 애걸복걸을 하더래요. 지금 어려운 처지고 너무 힘들다고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결국 몸을 좀 제공해달라는 거였대요. 하도 어려워 보여서 그 청을 들어줬는데,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모두가 간밤의 일을 알고 있더래요. 그 사람이 간밤의 일을 자기가 여자를 꼬여서 이렇게 성공했다면서 막 떠들고 다녔더라는 거예요. 이상주의적인 일을 하면서 이상한 특권의식이 생긴 거죠. 나는 훌륭한 일을 하니까, 자기희생적이니까, 경찰한테 어려운 일을 당하니까 여자는 자기에게 봉사해줘도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한 거죠. 오거돈이나 안희정도 그랬을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진보적인 일을 하니까, 자신이 어려운 권력투쟁을 하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이죠.
--- p.205-206, 「한국의 발견」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은 오늘 자신을 발견하는
항해를 시작하고 있는가?

탁월한 외교관이자 행정가, 정치학자인 라종일 교수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산 증인이다. 5년여 전 에세이스트 김현진 작가와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는 서신집을 펴냈던 라종일 교수는 그 인연을 이어 한국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 『한국의 발견』을 두 젊은 작가와 함께 엮어냈다.

‘한국 발견하기’란 무엇이며, 왜 주목받는가!

‘한국 발견하기’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점점 주목받는 주제다. 근래 이어령, 최정운, 탁석산, 함재봉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이 주제에 관해 의미 있는 저작을 내놓으면서 논의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발견하기’란 무엇이며, 왜 주목받는 걸까? 이 책 『한국의 발견』은 ‘오늘 한국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라종일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이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에 가라앉아 있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세계에, 일본의 세계에, 그다음에는 소련과 미국의 세계에 말이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80년대 중반 ‘한강의 기적’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다. 한국인들은 자유세계, 공산세계 같은 타자의 세계로부터 ‘나’와 ‘넓은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 안에서 자기 위상과 역할을 찾으려 했다. ‘자기 세계’를 발견하고 구축한다는 것은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주체적으로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들어가는 말’에서 김현진 작가가 말했듯 “국적이라는 그물로 결코 엮을 수 없는 표표한 자유인”이자 “어느 나라에 있다 한들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천연스러운 이방인”의 시각을 가진 라종일 교수는 정치, 사회, 문화 면에서 그동안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놓치고 있었던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 그리고 시대에 따른 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스스로 근대화할 기회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강대국들의 ‘제한전’이 되었던 한국전쟁, 이른바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이한 군부독재, 그 과정에서 시대의 어젠다를 정의했던 운동권의 투쟁, ‘에피고니(Epigone)’의 시대를 연 신군부의 통치,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김대중의 도전과 기적과도 같았던 노무현의 당선, 성평등을 둘러싼 이 시대의 여러 진통, 문화 강국으로서 면모를 보이는 2020년대 한국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주제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또다른 관점에서는 하나의 큰 줄기 안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라종일 교수는 강의 형식으로, 서신 형식으로 그 줄기로 연결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보여주며, 내일의 한국을 상상한다. 그러면서 다시 묻는다. 지금 한국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한국의 발견’은 곧 ‘세계의 발견’이다

코로나사태는 ‘한국 발견하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선진국 콤플렉스’는 ‘선진국들이 과연 인류 차원의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해왔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라는 의심 속에서 차츰 무너져내리고 있다. 따라가야 할 기준점이 사라진, 우리가 바라보던 곳이 더이상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많은 이가 알게 되면서 한국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갈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선진국인가? 최근 코로나19 방역에 어느 정도 선방하면서 이런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답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몫입니다. 단지 최근 사태에서 한 가지 긍정적인 발전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처럼 끈질기게 마음에 지니고 있던 집념, ‘선진국이 무엇이며 선진국은 어떻게 되는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 새로운 장 앞에 선 한국에게는 선진국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라종일 교수는 선진국, 곧 시대를 주도하는 어느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인간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나라가 곧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나라,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한 시대를 선도하는 나라 혹은 문명을 선도하는 선진국이란, 근본적으로 사람에 관한 새로운 이해 혹은 인류 차원에서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인간의 상(像)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실현하는 나라라고 저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세 초 유럽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은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모험의 항해를 하고 있을까? 이 책 『한국의 발견』은 ‘우리만의 세계’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기회를 준다.

“‘한국의 발견’은 무릇 ‘세계의 발견’이어야 합니다. … 세계의 발견은 근세 초 구라파인들의 모험적인 탐색 항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모험적 항해로 한동안 지구 곳곳이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개념과 범주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발견’ 역시 완전히 새로운 모험의 항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