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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은 2006년 6월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의 주최로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던 경상남도 통영에서 ‘임진왜란: 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란 주제로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의 결과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은 익히 한국과 일본의 전쟁이라고 알려진 임진왜란을 전근대 역사에서 한·중·일 삼국이 개입한 거의 유일한 대규모의 전쟁, '동아시아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시켜 온 과거의 연구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파헤쳐 보이며, 또한 이 전쟁을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전쟁이라는 관점으로 재구성해 보고 있다. 저자들은 전쟁에 대해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모두 자신들의 국가사에서 (전쟁의 참상은 덮어두고) 오로지 그 국가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 서술로 일관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좌절되고 더불어 그의 정권이 단명으로 끝나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중국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정복되었으며, 조선왕조는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상처는 왕조의 끝 무렵까지 깊은 영향을 남겼다. 전쟁은 7년에 걸쳐 참혹하게 진행되었지만, ‘패자가 없다’는 역사 서술에 대한 의심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또 다른 전쟁의 시작과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시켜 온 과거의 연구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파헤쳐 보이며, 또한 이 전쟁을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전쟁이라는 관점으로 재구성해 보고 있다. 저자들은 전쟁에 대해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모두 자신들의 국가사에서 (전쟁의 참상은 덮어두고) 오로지 그 국가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 서술로 일관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좌절되고 더불어 그의 정권이 단명으로 끝나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중국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정복되었으며, 조선왕조는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상처는 왕조의 끝 무렵까지 깊은 영향을 남겼다. 전쟁은 7년에 걸쳐 참혹하게 진행되었지만, ‘패자가 없다’는 역사 서술에 대한 의심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또 다른 전쟁의 시작과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책이다.
목차
1. 정두희(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경순(서강대 사학과)
▶ 16세기 최대 전쟁, 임진왜란
2. 김자현(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
▶ 우리는 왜 임진왜란을 연구합니까?
3. 정지영(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 ― 한국전쟁 이후의 ‘논개’에 대한 상상과 전유
4. 요네타니 히토시(일본 근세사 연구자)
▶ 사로잡힌 조선인들 ― 전후 조선인 포로 송환에 대하여
5.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
▶ 화왕산성의 기억-신화가 된 의병사의 재조명
6. 존 B. 던컨(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기억과 민족 의식 형성 ― 《임진록》 등 민간전승에 나타난 민중의 민족의식
7. 다카기 히로시(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 근대 일본의 히데요시 영웅 만들기 ― 공신에서 조선 침략의 상징으로
8. 정두희(서강대 사학과 교수)
▶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역사와 역사화 ― 4백 년간 이어진 이순신 담론의 계보학
9. W. J. 보트(네덜란드 라이덴대 일본·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속의 임진왜란 ― 전후 한 일본 유학자의 시선으로 본 히데요시
10. 김한규(서강대 사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국제적 환경 ― 중국적 세계질서의 붕괴
11. 케네스 M. 스워프(미국 볼 스테이트대 사학과 교수)
▶ 순망치한(脣亡齒寒) ― 명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12. 계승범(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
13. 케네스 R. 로빈슨(일본 국제기독교대 사회과학과 역사 담당 교수)
▶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 ― 조선 지식인이 전유한 일본의 이미지
▶ 16세기 최대 전쟁, 임진왜란
2. 김자현(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
▶ 우리는 왜 임진왜란을 연구합니까?
3. 정지영(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 ― 한국전쟁 이후의 ‘논개’에 대한 상상과 전유
4. 요네타니 히토시(일본 근세사 연구자)
▶ 사로잡힌 조선인들 ― 전후 조선인 포로 송환에 대하여
5.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
▶ 화왕산성의 기억-신화가 된 의병사의 재조명
6. 존 B. 던컨(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기억과 민족 의식 형성 ― 《임진록》 등 민간전승에 나타난 민중의 민족의식
7. 다카기 히로시(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 근대 일본의 히데요시 영웅 만들기 ― 공신에서 조선 침략의 상징으로
8. 정두희(서강대 사학과 교수)
▶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역사와 역사화 ― 4백 년간 이어진 이순신 담론의 계보학
9. W. J. 보트(네덜란드 라이덴대 일본·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속의 임진왜란 ― 전후 한 일본 유학자의 시선으로 본 히데요시
10. 김한규(서강대 사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국제적 환경 ― 중국적 세계질서의 붕괴
11. 케네스 M. 스워프(미국 볼 스테이트대 사학과 교수)
▶ 순망치한(脣亡齒寒) ― 명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12. 계승범(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
13. 케네스 R. 로빈슨(일본 국제기독교대 사회과학과 역사 담당 교수)
▶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 ― 조선 지식인이 전유한 일본의 이미지
우리는 왜 임진왜란을 연구합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이때 제국주의적 팽창론자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제국은 임진왜란을 대륙 침략의 선구적 성전(聖戰)으로 미화하였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동아시아 삼국 모두의 과제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임진왜란을 국가사의 범위를 넘어 동아시아사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의 발간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단숨에 조선을 정복하고 중국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헛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20세기와 더불어 시작된 제국주의 일본의 팽창정책도 결국 뼈저린 패배를 맞이하였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동아시아의 두 강국인 중국과 일본은 그 누가 상대방을 정복하려 시도해도 결코 성공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한반도는 임진왜란 때처럼 반드시 그 주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때문에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와 번영을 영속시키기 위해서 한국이 맡아야 할 독특한 역사적 역할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 최대의 피해국이랄 수 있는 조선왕조를 이은 한국에서 이 역사를 동아시아의 역사 무대에서 새롭게 조명하자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관심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일종의 복고적이며 매우 위험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에 사로잡혀 있다는 징후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현명하고도 단호하게 맞서기 위해서도 과거의 역사를 대국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이유’를 이야기한 컬럼비아대 김자현 교수의 글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역사란 항상 재해석되는 것이지만, 역사학자가 현실적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할 때에 비로소 그 해석은 인간의 삶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다.
임진왜란의 기억과 국민 만들기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해석된 체계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임진왜란을 매우 특이한 형태로 해석했다. 일본의 근대국가 성립은 제국주의적 국가관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들어선 메이지 유신체제 하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중국을 점령하려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역사상으로 재해석된다. 그 과정에서 이 참혹했던 전쟁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성스런 전쟁으로 윤색되면서, 히데요시는 일본 역사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에서는 이 전쟁 기간 중 일본에 저항하였던 역사를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기저로 해석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패의 상승장군이었던 이순신에 대한 기억은 항일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 모든 것에 앞서 강조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의병투쟁의 역사는 일본에 대항해야 하는 민족적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소재가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임진왜란 시기 일본의 침략에 무력했던 실상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의 참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근대국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데올로기적 역사 해석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역사적 진실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논개에 대한 역사상이 국민적 희생과 동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정지영(이화여대)의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 ― 한국전쟁 이후의 ‘논개’에 대한 상상과 전유〉는 우리에게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두희(서강대)는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역사와 역사화 ― 4백 년간 이어진 이순신 담론의 계보학〉에서 이순신에 대한 기억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혹은 정치적·이념적 성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한국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또 그런 인식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관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폈다.
다카기 히로시(교토대)는 〈근대 일본의 히데요시 영웅 만들기 ― 공신에서 조선 침략의 상징으로〉에서 메이지 시대와 한국병합 과정에서 히데요시를 평가하는 내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한국병합과 히데요시의 현창(顯彰)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사적의 정비작업 등 현창의 시각적 창출의 의미를 흥미롭게 살피고 있다.
기억과 망각 속의 임진왜란
임진왜란이 끝나고 긴 세월이 지나면서 이 전쟁은 한편에서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갔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억의 형태로 만들어져 갔다. 수많은 고통을 겪었던 조선 민중 사이에서 이 전쟁은 마치 신기루처럼 먼 기억으로 변하기 시작하였지만, 조선후기에도 사회적 지배력을 강화해야 했던 양반 지배층에서는 부끄러운 과거를 영광스런 과거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 때로는 환상적 세계로의 도피를 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의병장 곽재우의 활약과 업적을 철저한 사료 비판을 통해 재구성한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의 〈화왕산성의 기억 ― 신화가 된 의병사의 재조명〉은 현재의 우리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곽재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창녕을 지켜낸 업적을 남긴 의병장이지만, 현재 전해지는 역사는 그보다 훨씬 부풀려진 업적으로 과대포장된 것임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그 실상을 알아내려는 W. J. 보트(라이덴대)의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속의 임진왜란 ― 전후 한 일본 유학자의 시선으로 본 히데요시〉도 새로운 논쟁을 제기한다. 나아가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이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한 존 B. 던컨(UCLA)의 〈임진왜란의 기억과 민족 의식 형성 ― 《임진록》 등 민간전승에 나타난 민중의 민족의식〉은, 실상은 망각에 묻혔지만 현대 한국과 일본인의 필요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이 만들어진 기억을 넘어 임진왜란의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직시하고자 할 때, 우리 모두가 이미 길들여진 기억 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 해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한편, 요네타니 히토시의 〈사로잡힌 조선인들-전후 조선인 포로 송환에 대하여〉는 조선 포로의 본국 송환의 경위와 방법, 그리고 본국 귀환 후의 포로 대우에 대해 살핀다. 조선통신사와 조선정부가 포로 송환에 대해서는 열의를 보이면서도 귀환 후에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밝히고, 포로 송환 문제가 어디까지나 국가의 체면에 관계된 문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평화, 중심과 주변
임진왜란은 7년이나 지속된 전쟁으로, 이 기간 동안 조선에서의 통치행위는 어떠했을까? 명나라가 이 전쟁에 개입한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이순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의 업적은 어떻게 평가되는 것이 마땅한가? 이런 문제들은 사실 심각하게 탐구되어야 할 연구 주제이다.
케네스 M. 스워프(볼 스테이트대)의 〈순망치한(脣亡齒寒) ― 명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나라의 참전 배경과 이유를 자국의 이해와 명의 당시 정치적 상황, 만력제의 성향, 전통적 조공-책봉 체제에서 중국의 역할 등으로 다각도로 살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라 일컫던 명과 조선의 관계가 전쟁에서 어떻게 실체화되었는지를 밝혔다.
임진왜란이란 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중국이라는 하나의 대국 중심의 세계가 해체되고, 일본이라는 강대국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 못지않게 일본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그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수백 년 동안 무시되어 왔던 만주의 여진족이 왜란 직후 급속하게 세력을 확대하여 조선왕조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전의 세계질서는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주와 요동사의 입장에서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성찰해온 김한규(서강대)의 〈임진왜란의 국제적 환경 ― 중국적 세계질서의 붕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와 미래를 성찰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케네스 R. 로빈슨(일본 국제기독교대)은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 ― 조선 지식인이 전유한 일본의 이미지〉에서 조선의 고지도에 투영된 일본의 위치가 달라지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 안에서,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 일본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계승범(UCLA)은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에서 임진왜란 동안에 누루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의 동태와 통일작업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임진왜란 동안 명·조선·일본은 7년의 싸움 끝에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만주의 여진족은 이 전쟁 이전부터 서서히 명나라와 조선의 간섭에서 벗어나 통일의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이란 전쟁은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중심의 탄생을 예고하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이런 틀 속에서 이 전쟁사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이때 제국주의적 팽창론자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제국은 임진왜란을 대륙 침략의 선구적 성전(聖戰)으로 미화하였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동아시아 삼국 모두의 과제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임진왜란을 국가사의 범위를 넘어 동아시아사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의 발간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단숨에 조선을 정복하고 중국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헛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20세기와 더불어 시작된 제국주의 일본의 팽창정책도 결국 뼈저린 패배를 맞이하였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동아시아의 두 강국인 중국과 일본은 그 누가 상대방을 정복하려 시도해도 결코 성공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한반도는 임진왜란 때처럼 반드시 그 주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때문에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와 번영을 영속시키기 위해서 한국이 맡아야 할 독특한 역사적 역할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 최대의 피해국이랄 수 있는 조선왕조를 이은 한국에서 이 역사를 동아시아의 역사 무대에서 새롭게 조명하자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관심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일종의 복고적이며 매우 위험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에 사로잡혀 있다는 징후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현명하고도 단호하게 맞서기 위해서도 과거의 역사를 대국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이유’를 이야기한 컬럼비아대 김자현 교수의 글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역사란 항상 재해석되는 것이지만, 역사학자가 현실적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할 때에 비로소 그 해석은 인간의 삶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다.
임진왜란의 기억과 국민 만들기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해석된 체계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임진왜란을 매우 특이한 형태로 해석했다. 일본의 근대국가 성립은 제국주의적 국가관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들어선 메이지 유신체제 하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중국을 점령하려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역사상으로 재해석된다. 그 과정에서 이 참혹했던 전쟁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성스런 전쟁으로 윤색되면서, 히데요시는 일본 역사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에서는 이 전쟁 기간 중 일본에 저항하였던 역사를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기저로 해석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패의 상승장군이었던 이순신에 대한 기억은 항일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 모든 것에 앞서 강조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의병투쟁의 역사는 일본에 대항해야 하는 민족적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소재가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임진왜란 시기 일본의 침략에 무력했던 실상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의 참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근대국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데올로기적 역사 해석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역사적 진실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논개에 대한 역사상이 국민적 희생과 동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정지영(이화여대)의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 ― 한국전쟁 이후의 ‘논개’에 대한 상상과 전유〉는 우리에게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두희(서강대)는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역사와 역사화 ― 4백 년간 이어진 이순신 담론의 계보학〉에서 이순신에 대한 기억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혹은 정치적·이념적 성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한국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또 그런 인식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관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폈다.
다카기 히로시(교토대)는 〈근대 일본의 히데요시 영웅 만들기 ― 공신에서 조선 침략의 상징으로〉에서 메이지 시대와 한국병합 과정에서 히데요시를 평가하는 내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한국병합과 히데요시의 현창(顯彰)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사적의 정비작업 등 현창의 시각적 창출의 의미를 흥미롭게 살피고 있다.
기억과 망각 속의 임진왜란
임진왜란이 끝나고 긴 세월이 지나면서 이 전쟁은 한편에서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갔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억의 형태로 만들어져 갔다. 수많은 고통을 겪었던 조선 민중 사이에서 이 전쟁은 마치 신기루처럼 먼 기억으로 변하기 시작하였지만, 조선후기에도 사회적 지배력을 강화해야 했던 양반 지배층에서는 부끄러운 과거를 영광스런 과거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 때로는 환상적 세계로의 도피를 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의병장 곽재우의 활약과 업적을 철저한 사료 비판을 통해 재구성한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의 〈화왕산성의 기억 ― 신화가 된 의병사의 재조명〉은 현재의 우리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곽재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창녕을 지켜낸 업적을 남긴 의병장이지만, 현재 전해지는 역사는 그보다 훨씬 부풀려진 업적으로 과대포장된 것임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그 실상을 알아내려는 W. J. 보트(라이덴대)의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속의 임진왜란 ― 전후 한 일본 유학자의 시선으로 본 히데요시〉도 새로운 논쟁을 제기한다. 나아가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이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한 존 B. 던컨(UCLA)의 〈임진왜란의 기억과 민족 의식 형성 ― 《임진록》 등 민간전승에 나타난 민중의 민족의식〉은, 실상은 망각에 묻혔지만 현대 한국과 일본인의 필요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이 만들어진 기억을 넘어 임진왜란의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직시하고자 할 때, 우리 모두가 이미 길들여진 기억 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 해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한편, 요네타니 히토시의 〈사로잡힌 조선인들-전후 조선인 포로 송환에 대하여〉는 조선 포로의 본국 송환의 경위와 방법, 그리고 본국 귀환 후의 포로 대우에 대해 살핀다. 조선통신사와 조선정부가 포로 송환에 대해서는 열의를 보이면서도 귀환 후에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밝히고, 포로 송환 문제가 어디까지나 국가의 체면에 관계된 문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평화, 중심과 주변
임진왜란은 7년이나 지속된 전쟁으로, 이 기간 동안 조선에서의 통치행위는 어떠했을까? 명나라가 이 전쟁에 개입한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이순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의 업적은 어떻게 평가되는 것이 마땅한가? 이런 문제들은 사실 심각하게 탐구되어야 할 연구 주제이다.
케네스 M. 스워프(볼 스테이트대)의 〈순망치한(脣亡齒寒) ― 명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나라의 참전 배경과 이유를 자국의 이해와 명의 당시 정치적 상황, 만력제의 성향, 전통적 조공-책봉 체제에서 중국의 역할 등으로 다각도로 살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라 일컫던 명과 조선의 관계가 전쟁에서 어떻게 실체화되었는지를 밝혔다.
임진왜란이란 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중국이라는 하나의 대국 중심의 세계가 해체되고, 일본이라는 강대국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 못지않게 일본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그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수백 년 동안 무시되어 왔던 만주의 여진족이 왜란 직후 급속하게 세력을 확대하여 조선왕조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전의 세계질서는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주와 요동사의 입장에서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성찰해온 김한규(서강대)의 〈임진왜란의 국제적 환경 ― 중국적 세계질서의 붕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와 미래를 성찰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케네스 R. 로빈슨(일본 국제기독교대)은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 ― 조선 지식인이 전유한 일본의 이미지〉에서 조선의 고지도에 투영된 일본의 위치가 달라지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 안에서,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 일본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계승범(UCLA)은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에서 임진왜란 동안에 누루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의 동태와 통일작업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임진왜란 동안 명·조선·일본은 7년의 싸움 끝에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만주의 여진족은 이 전쟁 이전부터 서서히 명나라와 조선의 간섭에서 벗어나 통일의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이란 전쟁은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중심의 탄생을 예고하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이런 틀 속에서 이 전쟁사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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