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의사 묘 (三義士 墓)
이곳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삼의사는 1946년 김구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봉한 안장되었다. 산의사의 묘 왼편에는 1910년3월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安重根1879~1932)의사의 유해를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
이봉창(李奉昌 1901~1932) 의사는 서울 용산 출신으로 용산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 1932년 1월8일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인에게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덕산 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농촌 계몽운동에 힘썼다.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 1932년 4월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이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전승 축하 기년식에 참석한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 침략군관 수뇌들을 폭살, 증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되어 12월19일 일본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백정기(白貞基 1896~1934) 의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3.1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자 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을 이끌었고, 일본 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 사살, 친일파숙청 등을 목표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상하이 호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 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이듬해 6월5일 순국하였다.
이봉창(李奉昌 1901~1932) 의사는 서울 용산 출신으로 용산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 1932년 1월8일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인에게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덕산 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농촌 계몽운동에 힘썼다.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 1932년 4월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이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전승 축하 기년식에 참석한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 침략군관 수뇌들을 폭살, 증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되어 12월19일 일본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백정기(白貞基 1896~1934) 의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3.1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자 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을 이끌었고, 일본 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 사살, 친일파숙청 등을 목표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상하이 호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 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이듬해 6월5일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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