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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로제타 홀 (2015) - 조선에 하나님의 빛을 들고 나타난 여성

동방박사님 2023. 5. 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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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치유하고, 가르치고, 전도하라!”
125년 전, 로제타가 이 땅에 뿌린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들의 가슴속에 피어난다


1890년 10월 13일, 큰 키에 푸른 눈을 가진 여성이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이름은 로제타 셔우드 홀.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펼쳤던 윌리엄 홀의 아내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의 어머니다. 뉴욕에서 조선까지 오는 데 두 달이나 걸렸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가벼웠다.

이 책은 스물 다섯 어린 나이에 조선을 찾아 43년 동안 의료 선교를 펼친 로제타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그녀가 평생을 믿고 따랐던 하나님의 길을 소개한다. 그녀는 동대문 볼드윈 진료소와 평양 기홀병원을 설립하는 등 수많은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학교를 세워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여성들을 교육했다. 그녀가 키운 근대 여성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인 박에스더, 진명여고를 세운 여메례, 우리나라 최초의 정식 간호원인 이그레이스 등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적잖은 희생이 따랐다. 자신을 따라 조선까지 건너온 남편을 질병으로 잃었으며, 몇 년 뒤에는 딸마저 하나님의 품으로 보냈다. 그때의 상황과 심정을 직접 기록한 그녀의 일기를 읽다 보면 누구나 그 숭고한 희생 정신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풍부한 사진 자료는 그 감동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로제타가 하나님의 빛을 들고 조선을 찾은 지 벌써 125년이 지났다. 이제 그녀가 이 땅에 뿌리고 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거두어야 할 때다.

목차

추천사 한국 여성사의 금광을 발견하다
머리말 조선 여성을 사랑한, 마더 로제타 홀

I 닥터 로제타 홀, 평양의 문을 열다
1. 평양에 나타난 기이한 손님들
2. 첫 번째 시련과 조선의 바울

II 닥터 로제타 홀, 하나님의 품에서 자라다
1. 믿음의 참다운 본보기, 아버지 로즈벨트
2. 믿음의 든든한 후원자, 어머니 피비
3. 지하철도를 타고 온 친구, 블랙 조
4. 질문이 너무 많은 소녀, 로제타
5. 열여섯 소녀, 꽃보다 아름다운 기억들
6. 스무 살 처녀, 의료 선교사의 꿈을 키우다

III 닥터 로제타 홀, 조선에서 자매들을 만나다
1. 지는 해를 향하여
2. 조선의 여성 감독, 메리 스크랜턴
3. 보호하고 구하는 여성들의 집에서
4. 아파서 더 아팠던 조선의 여인들
5. 이화 학당에 꽃피운 하나님의 지성
6. 여메례, 하나님의 소명을 듣다
7. 로제타의 분신, 박에스더

IV 닥터 로제타 홀, 그녀의 영원한 사랑
1. 하나님의 길 위에서 만나다
2. 빈민가의 천사들
3. 하나님의 뜻으로 사랑을 약속하다
4. 윌리엄 홀, 평양을 찾다
5. 거룩한 동행
6. 잔인한 이별, 그리고 귀향

V 닥터 로제타 홀, 다시 평양으로
1. 하나님의 뜻이 기다리는 조선으로
2. 이디스를 가슴에 묻다
3. 무너진 가슴을 추스르고
4. 그분의 뜻을 헤아리며

VI 닥터 로제타 홀, 치유하고 가르치고 전도하라!
1. 세상 누구보다 강한 어머니, 로제타
2. 한국 특수 교육의 어머니, 로제타
3. 에스더, 의사가 되어 돌아오다
4. 몸을 치유하고 영혼을 구하다
5. 최초의 여성 의료인들을 양성하다
6. 평생의 숙원, 여자의과대학 설립을 꿈꾸다
7. 조선에서 보낸 43년, 그리고 집으로

맺음말 오늘, 로제타 할머니를 만난다

부록 로제타 셔우드 홀의 생애

저자 소개

저자 : 박정희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코틀랜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억울하게 여겼던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여성 의식을 싹틔웠다. 서당 훈장의 딸이었던 외할머니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외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할머니를 문맹에서 벗어나게 한 일이 아직도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믿...
책 속으로
“어떤 이들은 복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진리라고 생각하오. 나는 말씀에 따라 살 것이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할 것이오.”
김창식이 이렇게 말하자 관리는 그에게 더 심한 요구를 했다. 예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라는 것이었다. 김창식은 그 요구도 거부했다. 관리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석방시키면서도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은밀히 돌팔매질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김창식은 집까지 오는 내내 돌을 맞았던 것이다. …(중략)…
“존경스러운 김창식! 그렇게 충직하게 예수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이를 보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오. 나는 그의 발 아래 꿇어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오.”
윌리엄 홀이 감격에 차서 말했다. 로제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숨 가빴던 지난 나흘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조금도 쉬지 못하고 환난을 당했으나 그만큼 은혜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평양의 문을 여는 데 자신의 몸을 내어놓은 김창식. 로제타는 조선의 바울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첫 번째 시련과 조선의 바울」중에서


◎ 로제타가 조선 소녀에게 자신의 피부를 떼어 주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며칠 후 한 남자가 와서 약을 부탁했다. 전날 로제타가 왕진을 나가 겸자(집게)를 사용해 간신히 분만에 성공했던 산모의 남편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로제타가 직접 왕진을 가야 할 위험한 상황이었다. 조금 기다리라 하고 우선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로제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다.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심초사하면서 보구여관의 문지기, 기수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기수는 관아에서 보구여관의 안전을 위해 보내준 병사였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 선생님은 우리 조선 소녀를 위해 자신의 피부까지 떼어낸 분이라오. 이까짓 비가 무슨 대수라고 못 가시겠소? 걱정 말고 가서 기다리시오.”
---「아파서 더 아팠던 조선의 여인들」중에서


◎ 결국 로제타는 남편의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제발 자기 곁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심정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윌리엄 홀은 로제타가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말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녀의 배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 물었다. 이번에도 로제타는 이 무렵까지도 자신이 임신 중임을 기록하지 않았다.
“아주 튼튼한 것 같아요. 셔우드보다 훨씬 더 세차게 움직여요.”
로제타가 대답하자 윌리엄 홀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셔우드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면서도 아이를 데려오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곧바로 데리고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전염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잔인한 이별, 그리고 귀향」중에서


◎ 1915년, 평양에서는 ‘홀 부 인 조선 온 지 25주년 기념’ 행 사가 열렸다. 평양의 지인들이 마련해준 이 잔치에서 로제타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신실하고 열정적인 봉사로 일관한 25년 동안, 수십만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질병의 고통과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부인의 고결 함과 이타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그들 중 수천 명은 예수님께로 인도 되었다. 수많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크나큰 존경과 사랑으로 부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몸을 치유하고 영혼을 구하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스물다섯 살, 나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진정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로제타 셔우드 홀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세대 선교사다. 125년 전, 조선을 찾은 그녀는 병원을 지어 사람들을 치료하고, 직접 학교를 지어 버림 받은 여성과 아이들을 교육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의료 선교사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부족할 게 없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태어난 로제타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이 바라던 대로 선생이 되었다. 로제타의 일생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온 건 1885년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교회에서 챈들러 부인의 연설을 들은 로제타는 가슴에 뜨거운 불씨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챈들러 부인은 인도에서 활발하게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치던 여성으로, 그녀가 보여준 의료 선교사로서의 숭고한 삶은 로제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로제타는 교육자로서의 삶을 접고 의료 선교사로서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고작 스무 살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로제타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배에 올랐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윌리엄 홀을 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기 위해 지구 반대편의 낯선 땅으로 향했다. 그녀는 그때의 심정을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집과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관계들에서 멀어져 머나먼 이방인들의 나라로 간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도움이 되는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감사한다.”

구한말 조선에 하나님의 빛을 들고 나타난 여성 선교사
로제타가 키운 최초의 양의사 박에스더와 교육자 여메례,
메마른 조선 땅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지식의 축복을 내리다!


조선에 도착한 로제타는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세운 보구여관에서 근무하며 여성과 아이 환자들을 진료했다. 동시에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여성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무진 노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인 박에스더(김점동)는 로제타가 직접 유학까지 보내며 키운 자랑스러운 근대 여성이다. 이 밖에도 로제타는 과부였던 여메례를 여성 교육가로,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여종 복업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간호사인 이그레이스로 만들었다.

조선에서의 선교가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로제타가 조선에 오고 1년 뒤, 연인 윌리엄 홀이 그녀를 따라 조선으로 왔다. 이미 오래 전에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곧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셔우드와 딸 이디스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펼치던 윌리엄 홀이 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몇 년 뒤에는 딸 이디스마저 아버지를 따라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이 책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는 로제타의 슬픔이 매우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을 조선으로 이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묻고 또 물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 쇠약이라는 병에 걸려 미국으로 요양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퍼뜨렸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영혼들의 영원한 어머니, 마더 로제타 홀
대한민국 사람 중 로제타가 베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로제타가 이 땅에 세운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녀가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동대문에 세운 볼드윈 진료소는 오늘날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발전했다. 남편 윌리엄 홀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기홀병원은 평양연합기독병원으로 확장되었으며, 여성 의료인을 배출하기 위해 세운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오늘날의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자리잡았다.

일찍이 사범 학교를 다니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로제타는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평양 여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세운 광혜여원 옆에 우리나라 최초의 맹아 학교를 설립한 그녀는 직접 점자책을 만들어 맹인 소녀들을 교육했다. 맹아 학교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농아 학교를 세워서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기반을 닦았다.

로제타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을 싹트게 한 사람은 바로 그녀의 아들 셔우드다. 그는 캐나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 결핵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해주 구세병원을 세워 결핵 근절에 앞장섰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실을 최초로 발행한 사람도 셔우드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조선을 찾았던 로제타는 43년 동안 의료 선교를 펼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5일, 평생 사랑했던 한국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까지 한국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선교사, 닥터 로제타 홀. 이제 우리가 그녀를 영원히 가슴속에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

추천사

한국 여성들과 개화기 서양 여성 선교사들의 만남은 우리 여성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일대기를 통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근대 여성 1세대의 이야기를 발견한 것은 한국 여성사의 금광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이제 우리는 구한말 개화기에 새로운 희망을 갈구하는 우리 여성들에게 달려왔던, 인류애의 열정에 가득 찬 서양 여성 선교사들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가 하나였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남북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 사회학자,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이이효재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인물이다. 기독교 교회사와 여성사, 교육사, 그리고 의학사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입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 역시 그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감리교 여성 선교사들의 정신이 곧 나의 정신적 뿌리였다.
-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여사

어린 시절 북간도에서 자란 나는 서양 선교사들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여성 선교사들을 통해 전파된 기독교가 한국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여성의 시각에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로제타는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신음하고 있던 조선의 여성들에게 연민을 느꼈고, 자매애로 하나가 되었다. 로제타가 여성들 가운데서도 밑바닥에 있었던 종, 과부, 소박데기, 장애인 여성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참 공동체를 이룬 모습은 가슴 떨리도록 아름답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삶의 방향을 찾고 있는 젊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한신대 명예교수 문동환 목사

한국인들에게 홀 일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의원 ‘누가’의 가족이며, 길에서 신음하던 우리를 들쳐 업고 주막으로 간 선한 사마리아 가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는 여성 의료 선교사 1세대로, 그녀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처음 서구식 병원과 의약품 그리고 의사의 출현이라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문자 그대로 어둠 속에 살던 이 땅의 시각 장애인들에게 빛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여권(女權)이 땅에 추락했던 이 땅에서 한 많은 여인들의 삶을 깨우는 자명종이요, 들에 핀 백합이었습니다.
- 지구촌교회 원로, 건양대 치유 선교학과 석좌교수 이동원 목사

여성 의료 선교사들의 생명을 다한 헌신은 한국의 선교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이들의 헌신과 업적을 기억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고증과 실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된 이 책은 다시 한 번 귀한 선교사들의 수고를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 선교 사역자들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문헌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 귀한 책을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가 읽고, 감사하고, 도전받기를 원하여 추천합니다.
- 온누리교회 이재훈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