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성서연구 (독학>책소개)/5.이스라엘유대사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2019)

동방박사님 2023. 12. 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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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특별한, 사실상 거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애정을 품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은 무조건적인 선이고, 반대로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국가들은 거의 절대적인 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이유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랍인들을 위시하여 아랍 세계 전체가 무슬림이라는 선입견에 기초한다. 좀 더 신학적으로 본다면, 현대 이스라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세기 12:1-3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을 물려받은 선민(언약 백성)이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구약시대에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그 땅을 일시적으로 빼앗긴 적이 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줄곧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스라엘이 그 땅을 다시 취할 것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구약 예언자들의 비전과 희망은 다름 아닌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되었을 때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더 나아가 이런 문자주의적 성경 이해에 따르면, 이제 남은 것은 그 거룩한 땅에 물리적인 성전이 회복되는 것과 함께 그곳에서 (동물의) 희생제사가 복원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세대주의적 성경 이해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리고 기괴하게도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세대주의적 성경 이해가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성경 해석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런 잘못된 성경의 이해가 교회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우 이런 식의 신앙관이 미국의 중동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 상당수가 창세기 12:3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을 편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그 반대의 경우는 저주를 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중동 문제에 있어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을 미국의 중요한 가치와 사명으로 여긴다. (우리나라 보수 교회가 정치 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뿐 아니라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이 책의 저자 개리 버지는 미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신약학자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신학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계열에 속한 학자다(그는 몇 해 전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신학교인 캘빈 신학대학원에 부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여느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현재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해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1장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딜레마

1부 문제의 배경

2장 그 땅에 대해 알기
3장 역사 알기

2부 구약과 그 땅

4장 아브라함이 받은 땅의 약속
5장 이스라엘 국가와 그 땅
6장 예언자들과 그 땅
7장 예루살렘
8장 그 땅에 세워진 현대 이스라엘

3부 신약과 그 땅

9장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들
10장 팔레스타인 교회
11장 그 땅에 거하는 산 돌들
12장 복음주의자들과 그 땅
13장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저자 소개

저 : 개리 버지 (Gary Burge)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리버사이드)에서 정치학과 종교학을 공부했고,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영국 아버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휘튼 대학에서 25년간 신약학 교수로 재직했고, 2017년부터는 캘빈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Jesus and the Land, 『NIV 적용주석 요한복음』(솔로몬) 등이 있고, 공동 편집한 책으로는 『베이커 성경주석 구약...

역 : 이선숙

 
세종대학교에서 국문학,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학사/석사)을 공부했다. 목사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며 기독교 분야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존 파이퍼 로마서 강해 3』, 『존 파이퍼 로마서 강해 6』(이상 좋은씨앗), 『성령세례란 무엇인가』(부흥과개혁사),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국제제자훈련원)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스라엘과 중동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자 복음주의 대학의 신약학 교수이고 목사인 내게 불가능한 문제로 다가온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스라엘에서 지금 심각한 불의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내가 어떻게 계속해서 성경을 근거로 유대교를 옹호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이 내 형제요 자매인 아랍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을 슬퍼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 탄생을 축하할 수 있을까? 또 이 갈등에서 모든 진영으로부터 심각한 오해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어떻게 사랑할까? 내가 이 글을 쓸 무렵(2002년 8월), 그 지역은 거의 24개월간 끔찍한 갈등을 목도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동 무기와 폭탄들로 돌멩이를 대체했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전쟁에 공격용 헬리콥터와 전투기, 탱크를 들여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비해 네 배나 많이 죽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동정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초판 서문 중에서

우리는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일까? 왜 유독 (그리고 때때로 합당하게)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제에 심취하는 것일까? 누군가 (미국의) 이스라엘 원조나 웨스트뱅크 정착이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에 대한 주제를 꺼내면 언제나 분노가 타오른다. 우리는 몹시 슬프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주제에 끌린다. 베들레헴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 소식은 국가적인 뉴스가 되지만 수단이나 파키스탄에서 몇백 명이 죽었다는 소식은 아예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문제에 극도로 관심을 쏟는 것은 이곳에 영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 1장 |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딜레마 중에서

독점 판매에서 이기려면 게임판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죽고 사는 게임을 이해하려면 수천 년 동안 중요하게 여겨졌던 정치적이고 지형학적인 주요 이슈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누가 요지를 차지할 것인가? 그들은 어디에 살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까? 이 땅을 두고 일어나는 싸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윤곽들은 초기부터 드러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2년에 그 땅을 정복했을 때, 그는 현명하게도 그 지역 행정 본부를 사마리아에 세웠다. 그는 그 이점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세운 건물들의 흔적을 오늘날에도 나블루스 서쪽에서 볼 수 있다. 테가르트 장군이 1937년 영국을 위해 그 땅을 조사했을 때 성경을 공부했는데 특히 여호수아서를 공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고 중동의 고문들을 고용해서 영국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점령하도록 계획했다. 고대의 원리가 아직도 작동한다.
--- 3장 | 역사 알기 중에서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고 할 때 오직 단 하나의 답만 맞는 것 같다.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시다. “물의 주인은 누군인가?”라고 물을 때도 단 하나의 답은 하나님이 물의 주인이시라는 것
이다. 확실히 이스라엘 국가는 땅을 영원한 선물로 받도록 약속받았지만 이 약속은 조건적이다. 이스라엘이 그 언약과 언약의 조건들에 충실한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 땅은 하나님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땅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이고 그분과 연합되어 있기에 거룩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 땅에 거주하라는 약속을 받았을지라도 불순종으로 인해 쫓겨날 수 있다.
--- 4장 | 아브라함이 받은 땅의 약속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개리 버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16에서 아브라함에게서 땅을 유업으로 물려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힌다.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그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 그러므로 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이라는 성경적 근거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대다수 복음주의자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법적 후손으로서 팔레스타인의 주인이라는 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리 버지는 자신의 주장을 잠시 뒤로 물리고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팔레스타인 땅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를 엄격히 따진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결국 팔레스타인 땅의 근원적 그리고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사실상 창조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땅을 이스라엘에 임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그 땅을 임대해 사용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구약 예언서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덕목과 원칙이 있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그 땅에 머무는 나그네와 외국인들을 환대하는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원칙을 잘 지키면 그들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팔레스타인에 계속해서 머물 수 있는 권리를 갱신받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땅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에서 볼 때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얼마나 환대하고 보호하고 있는가? 개리 버지가 보기에, 그 대답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오히려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잔인한 폭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그 땅에 있는 수많은 다른 나라 사람을 학대하고 있다. 이것은 예언자적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개리 버지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통상적으로 가진 대표적인 오해 하나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아랍인=무슬림일 것이라는 편견이다. 그 반대로 오늘날 아랍에는 대략 1,50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만 해도 약 2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스라엘이 자행한 무력과 살상 때문에 상당수가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외국으로 피신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은 까닭에 현재는 그 정도의 숫자만이 남아 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신앙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신약성경 시대까지 이른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들의 마을에 교회를 세웠으며, 이것이 아랍 그리스도인들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 그리스도인들,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2천 년 동안 중동의 정치적 맹주가 바뀔 때마다 종교 지형도 역시 요동을 칠 때, 그 모든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끈질기게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오늘날 전 세계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리고 이런 무지가 빚어내는, 곧 이스라엘이 아랍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마다 전 세계 교회가 이스라엘을 열렬히 옹호하는 슬픈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스라엘 편에서 중동 문제를 바라보는 데 일조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이른바 성지 순례란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성지 순례 생태계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여행을 철저하게 유대인의 입장과 이해관계 위주로 체험하도록 판을 짬으로써 기독교 교회가 이스라엘 편에서 모든 것을 사고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처절한 고통과 애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성지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고대의 유물과 건축물에 시선을 고정하는 여행 대신에,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오늘도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하며 산 성전(산 돌, Living Stone)으로 살아가는 그 땅의 수많은 아랍 그리스도인을 만나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스라엘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와 팔레스타인인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일차원적인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저자의 진정한 바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가 그 땅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비전을 따라 마치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공존하듯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까닭은, 저자가 서재에 혹은 도서관에 앉아 관련 데이터를 끄적거리며 이 책을 쓰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 그곳의 아랍인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과 칼에 맞서 저항을 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저자의 그런 행동하는 양심은 미국의 어떤 복음주의자들로부터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당신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악담과 저주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복음주의자의 양심을 깨우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까닭은, 미국교회 일각의 그릇된 신학의 영향을 받아 현대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현실을 교정하는 치료제가 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만큼이나 갈등과 미움으로 맞선 한반도의 분단 현실 속에서 과연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울림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추천평

우리는 이스라엘을 성경 역사의 맥락에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와 신학교 안팎에서는 제대로 듣지 못하는 현실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그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지금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읽고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지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교회의 이스라엘 읽기에 대한 실제적인 반성과 실천적인 대안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 김동문 (아랍 이슬람 연구자)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편에 속해야 할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함께 살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명쾌하고 분명한 성경신학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중적 견해들의 오류와 허점을 남김없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대안을 제시한다.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출 때까지”라는 문구(시 85:10)를 연상케 하는 탁월한 저술이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첫 장부터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저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오랜 경험과 성서학적 전문성을기반으로 우리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친절하고 담담하게 가르쳐준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이 책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이스라엘인과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내에 반시온주의 운동을 확산시킬 필요성을 인식시켜준다. 서문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 전체가 꼭 읽어봐야만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고,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준비할 경우에 참조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정보들까지 제공해준다.
- 안용성 (그루터기교회)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이나 종말의 예루살렘 회복에 관한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휘튼 대학과 캘빈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복음주의 신약학자인 개리 버지의 저서는 복음주의자들의 친유대적 성향을 치밀한 성경 주해와 역사 분석을 통해 낱낱이 해부한다. 우리나라 보수층 시위에서도 십자가, 태극기, 성조기와 더불어 때로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하는데, 본서를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시각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또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조망해보길 바란다.
- 장동민 (백석대학교)
이스라엘은 훌륭한 나라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럴까? 저자는 유대교와 영적인 운명을 공유한다고 느끼는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최창모 (건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