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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약시대 - 과학으로 읽는 펜타닐의 탄생과 마약의 미래 (2023)

동방박사님 2024. 1. 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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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 우리는 대마약시대에 살고 있다!”
“다가오는 펜타닐의 위협과 마약의 미래”
“마약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교양서”

[tvN], [EBS], [연합뉴스경제tv]가 주목한 작가
백승만 교수가 알려주는 펜타닐의 모든 것과 대마약시대의 해법


대마약시대가 왔다. 연예인 및 유명인의 마약 복용 사건이 수개월마다 매스컴에 올라온다.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 중독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크웹과 SNS를 이용한 마약 거래가 늘어나면서 마약 사용자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2023년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 8,395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이라는 자부심은 이제 먼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아직 진정한 위협은 당도하지 않았다. 2022년 국내 한 방송사는 마약 중독자들로 가득 찬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의 충격적인 모습을 방영한다. 팔다리가 경직된 채로 좀비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먀약성 진통제 ‘펜타닐’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펜타닐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HS)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만 7만 601명이 합성 마약 남용으로 사망했다. 합성 마약의 대표적인 물질이 펜타닐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미군의 수는 5만 3,000명으로 미국은 현재 1차 세계대전보다 더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펜타닐이 비단 미국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펜타닐의 처방과 오남용이 늘어나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지 모른다.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가들』을 쓴 바 있는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학대 교수가 이번에는 ‘펜타닐’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거대 제약회사의 탐욕과 제도적 허점 등 현재 미국에서 펜타닐 사태가 발생한 맥락을 상세히 풀어냈다. 또한 펜타닐을 발명한 폴 얀센의 이야기에서부터 이 약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모르핀 등 아편유사제의 역사까지 함께 되짚고 있다. 기적의 진통제를 개발하려 했던 학자들, 마약을 상품으로 판매하려 했던 인물들, 마약과 싸우고 저항하려 했던 사람들이 뒤얽힌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펜타닐의 진실뿐만 아니라 마약과 대결해온 인류의 기나긴 싸움의 과정 또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 006

1장 마약을 드립니다 · 016
아편, 모르핀 그리고 장모님 레시피|헤로인, 대세가 되다|헤로인과싸우는 사람들|새로운 변수, 처방 마약|마약을 드립니다. 1995|더 강한 진통제를 찾아서|다른 마약들 메스암페타민, 전 세계가 사랑한 각성제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 072
‘파스’를 씹어 먹는 사람들|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펜타닐|궁극의진통제|흑화된 펜타닐|마약을 파는 자들|마약을 요리하다|펜타닐을 넘어서는 마약|지금 미국 대륙은?|지금 유럽 대륙은?|다른 마약들 코카인, 유럽을 뒤흔들다

3장 지금 우리나라는? · 128
이미 망가진 장벽|장벽을 넘어오는 위협|널리 퍼져버린 위협|병원 사례에서 법원 판례로|판례에서 미디어로|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독자들|다른 마약들 대마, 마약계의 시그니처

4장 마약을 줄이는 방법 · 172
마약이라는 늪|전환점을 만들다|엔도르핀|고통의 끝, 달콤한 보상|엔도르핀을 늘리자|도파민을 늘리자|사랑의 화학|다른 마약들 LSD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 224
사람을 살리는 마약|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마약|마약을 팝니다. 1965|중독은 질병이다|마약중독의 연결고리|물질 사용 장애|다른 마약들 트라마돌, 생태계의 위협

마치며 · 270
그림출처 · 280
참고문헌 · 286
 

저자 소개 

저 : 백승만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2007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천연물과 의약품의 효율적인 합성이며, 헌팅턴병 치료제의 합성법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

책 속으로

대마약시대가 왔다. 연예, 스포츠,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마약 관련 뉴스를 접할 수 있다. 검사를 시행한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마약이 검출됐고, 다크웹과 SNS를 이용한 마약 거래가 늘어나면서 마약 사용자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마약류 사범의 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항해시대도, 대해적시대도 아닌, 대마약시대가 도래했다.
--- p.6, 「들어가며」 중에서

펜타닐로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는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약으로 인해 죽는데, 대부분 펜타닐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이유는 여러 종류의 마약을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 당국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 펜타닐이 항상 들어간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일 100명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한 달이면 3,000명이다. 참고로 2001년 9·11 테러로 사망한 사람이 2,977명이다. 즉 지금 미국은 매달 9·11 테러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물론 9·11 테러는 사망자 규모 못지않게 건물에 비행기가 부딪치는 끔찍한 장면이 공개되면서 시각적인 충격도 엄청났던 사건이다. 전국 각지에서 조용히 호흡곤란으로 죽는 마약중독자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100명은 지난 6년여간의 평균치일 뿐이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매일 220명이 마약으로 죽는다. 한 달에 한 번이던 9·11 테러급 사태가 한 달에 두 번으로 늘었다.
--- p.8-9, 「들어가며」 중에서

옥시콘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첫 번째는 임종을 앞둔 환자나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처방되던 과거와 달리 옥시콘틴을 일반적인 통증 치료제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옥시콘틴을 만든 퍼듀파마가 이 변화를 주도했다. 퍼듀파마를 소유한 가문인 새클러(Sackler) 가족은 영업력으로 유명했다.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서 새클러(Arthur Sackler)는 1950년대에 의사를 대상으로 항생제나 신경안정제를 마케팅하는 전략을 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아서 새클러는 이 성공으로 돈을 벌어 제약회사를 인수했고 이 회사가 퍼듀파마가 됐다. 그는 1987년 사망했지만 그의 영업 신화는 조카인 리처드 새클러(Richard Sackler)와 가족으로 구성된 이사진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의사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는데, 과거처럼 전단지나 영업사원을 보내는 형태가 아니라 의사를 한곳에 모아서 세미나를 여는 형태였다. 지금은 비교적 익숙한 형태의 마케팅으로 볼 수 있지만 역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옥시콘틴의 우수함을 피력했다.
--- p.43, 「1장 마약을 드립니다 「마약을 드립니다. 1995」」 중에서

이 사태의 중심에는 결국 제약회사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제도를 악용하고 허점을 공략해 모니크와 같은 사람을 포함해 북미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던 유럽에서는 옥시콘틴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있다. 유럽인은 여전히 헤로인으로 만족하고 있다. 물론 헤로인도 답이 없는 마약이라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자신들이 행한 일로 생긴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 p.51, 「1장 마약을 드립니다 「마약을 드립니다. 1995」」 중에서

이 사망자가 억지로 복용한 펜타닐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당시 그가 처방받은 펜타닐 패치에는 주성분인 펜타닐 8.4밀리그램이 함유되어 있었다. 이 양이 서서히 피부를 통해 흡수되어 낮은 농도로 사흘간 작용하게끔 설계한 진통제인데 굳이 억지로 한 번에 복용해서 사달이 난 것이다. 8.4밀리그램이 많은 양일까? 미국 마약단속국 자료에 의하면 펜타닐은 2밀리그램만 먹어도 죽을 수 있다. 그렇다면 2밀리그램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어린아이 눈꼽만 한 양이다. 연필심 위에 올라가는 양이기도 하다. 독극물의 대명사인 청산가리의 치사량은 복용자의 몸무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200밀리그램 내외다. 단순히 질량만 따져도 100배가량 위험한 물질이 펜타닐이다.
--- p.74,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파스’를 씹어 먹는 사람들」」 중에서

펜타닐이 마냥 나쁜 물질도 아니다. 약에 무슨 좋은 약, 나쁜 약이 있겠는가. 효과적으로 쓰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이 있을 텐데 펜타닐은 제대로 쓰기만 하면 이보다 더 좋은 진통제도 찾기 어렵다. 모르핀의 100배 정도 되는 진통 효과를 내는 데다 패치 형태여서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화학적으로 생산하기도 쉽다. 낮은 농도로 유지했을 때 수술로 인한 통증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의 삶의 질이 극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마법에 가깝다. 지금도 출산 시 무통 분만이나 제왕절개 수술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 약을 금지한다면 그 나름대로 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양날의 검이다. 극도로 위험한, 그래서 제대로 알고 써야 하는 기적의 진통제가 바로 펜타닐이다.
--- p.75,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파스’를 씹어 먹는 사람들」」 중에서

펜타닐이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핀 등의 아편 유래진통제가 항상 그러하듯이 호흡근 마비가 나타났다. 펜타닐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해서 일반적인 골격근의 경직도 초래했다. 중독의 우려도 여전했다. 진통 효과가 강력한 만큼 진정 효과나 행복감도 그만큼 컸고, 중독성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다분했다. 그래도 의료전문가들 위주로 알려진 이 약을 남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알약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기껏해야 피부에붙이는 패치 정도였다. 차라리 헤로인을 구하는 게 더 편했다. 그만큼 펜타닐로 인한 문제 또한 심하게 불거지지 않았다. 펜타닐 패치를 씹어 먹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p.84,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궁극의 진통제」」 중에서

조금 큰 틀에서 보려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가고 시장이 형성된다. 그 전까지 펜타닐을 찾던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패치제를 처방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펜타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펜타닐을 알약 형태로, 그것도 불법으로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펜타닐 중독자 입장에서도 패치보다 알약이 먹기에 더 편했을 것이다. 중독자들도 건강에 신경 쓴다. 패치 먹으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안다.
모르핀이나 헤로인은 아편에서 추출하거나 추가적인 한 단계의 화학 공정만으로 만들 수 있다. 아편은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의 무질서 속에 자라는 양귀비에서 뽑으면 됐다. 반면에 펜타닐은 여러 단계를 거쳐 순수하게 화학적으로 합성해야 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간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화학 기술이 있어야만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단계라고 했지만 일단 세팅을 마치면 넓은 벌판에 양귀비를 재배하고 아편을 제조하는 방식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때로는 공장이 농장보다 낫다.
--- p.92,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마약을 파는 자들」」 중에서

한동안 우리는 마약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마약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위로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우리나라는 소위 마약 청정국이라며 마음 놓고 살던 모습이 우리의 풍경이다.그러다 보니 ‘마약’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너무 관대했다. 중독성 강한 제품 앞에 ‘마약’이란 수식어를 붙이면서 강조하곤 했는데, 이런 현상을 웃어넘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마약은 절대로 가볍게 여길 단어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새 마약이 성큼성큼 다가와 은밀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 p.132, 「3장 지금 우리나라는? 「이미 망가진 장벽」」 중에서

어떻게 하면 엔도르핀 수치를 높일 수 있을까? 엔도르핀은 우리 몸이 고난을 극복할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몸을 너무 심한 고난에 빠뜨리면 그것도 나름 문제다. 무난히 힘들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엔도르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적당히 힘들고 아프면서 중독성 있는 것은 없을까?
우선 매운맛이 있다. 매운맛은 생리적으로 아픈 맛이다. 뜨거운 느낌과도 일맥상통한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캡사이신(capsaicin)이란 물질이다. 이 물질이 세포에 건드리는 감각은 통증이다. 우리가 매운 짬뽕을 먹으면 얼얼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후 통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엔도르핀이 방출된다. 그렇게 우리는 매운맛에 중독된다.
--- p.187-188, 「4장 마약을 줄이는 방법 「엔도르핀을 늘리자」」 중에서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 수치가 급격히 올라간다. 2015년 일본 연구진은 사랑과 도파민의 관계를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열 명의 지원자를 모아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 후 뇌 속 도파민 수용체의 양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본 것이다. 평균 연령 27.4세, 평균 연애 기간 17개월의 이 피험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파민 농도가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교를 위해 동성 친구나 지인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변화다. 사랑, 엄밀히 말해 사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약류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느낀다.
--- p.205, 「4장 마약을 줄이는 방법 「사랑의 화학」」 중에서

마약류 중독자들이 병원을 꺼리는 이유도 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마약류 사용을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 사용 그 자체가 불법이다. 따라서 병원에 가는 것보다 전과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다. 이미 관련법을 정비해서 비밀이 보장된 상태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244,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중독은 질병이다」」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예방 교육이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펜타닐이 문제아로 돌변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옥시콘틴으로 대표되는 마약류 진통제의 남용 때문에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시장이 커지니 수요가 생기고 그 틈을 타서 펜타닐이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즉 처음부터 마약류 시장이 작다면 펜타닐이 발붙일 여지가 없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펜타닐 사태의 처음 원인이었던 공급을 억제하면 더 좋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류 중독자를 줄여야 하고, 그래서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
--- p.255,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물질 사용 장애」」 중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기존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다. 이 사람들은 펜타닐도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가려서 마약을 쓰기보다는 그저 더 좋고 효과가 강한 것을 찾는 중독자가 많다. 약물학적 분류에 따라 진정제인지 각성제인지, 법적 분류에 따라 마약인지 향정신성의약품인지는 약물중독자에게 별 의미 없다. 적절한 치료와 재활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이 책에서는 ‘마약류 중독’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지만 최근에는 ‘물질 사용 장애(substance use disorder, SUD, 또는 물질 관련 장애)’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말만 바꾼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용어가 갖는 의미의 차이는 크다. 중독이라면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장애’라면 질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 p.256,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물질 사용 장애」」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미국 켄싱턴 거리를 ‘좀비 랜드’로 만든 마약,
펜타닐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대처법
대마약시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교양서


2022년 국내 한 방송사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 모여든 마약 중독자들의 충격적인 모습을 공개한다. 약에 취해 두 팔을 늘어뜨리고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찬 대로변 풍경은 그야말로 ‘좀비 랜드’를 방불케 했다.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이다. 마약 시장을 점령 중인 펜타닐의 폐해는 심각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매일 220명이 마약으로 죽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대부분이 펜타닐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달 두 번씩 9·11 테러를 겪는 것과 같은 수치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2020년 3명의 청년이 펜타닐을 흡입하고 그중 한 명을 살해한 ‘홍대 펜타닐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2021년에는 경남 지역 고등학생 42명이 단체로 이 약을 소지하고 흡입한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불법적 의료 쇼핑과 다크웹을 통해 약을 구하는 사례가 다수 밝혀지기도 했다.

펜타닐은 본래 말기 암 환자나 극심한 통증 질환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1960년 폴 얀센이 개발한 진통제다.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달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기적의 진통제로 불려왔다. 그런데 수십 년 전 개발된 의약품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게 된 걸까?

풍부한 전문지식과 역사, 인물, 과학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으로 서사적 즐거움이 가득한 교양과학서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가들』을 쓴 바 있는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학대 교수가 이번에는 ‘펜타닐’을 파헤친다. 펜타닐 탄생의 역사적 맥락과 배경은 물론 궁극의 위협이 되기까지 다양한 마약과 인간의 치열했던 싸움도 함께 살펴본다. 또한 국내에 침투하는 마약에 저항하기 위해 개개인이 시도할 수 있는 과학적 대처 방안과 사회제도적 해법 제시도 빠뜨리지 않았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적 태도를 통해 이 시대 거의 모든 마약의 역사와 배경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 책은 그래서 ‘대마약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최소한의 교양서라 할 수 있다.

마약 개발과 판매의 역사
그 길고 긴 욕망의 드라마


마약 사용의 역사 그리고 펜타닐의 확산은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욕망 그리고 사회적 사건들이 얽힌 한 편의 기나긴 드라마와 같다. 의약화학자로 신약 개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저자는 “펜타닐은 제대로 쓰기만 하면 이보다 더 좋은 진통제도 찾기 어렵다”며 좋은 약과 나쁜 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천연 추출물을 찾아나서고 화학 구조를 밝히며 이를 이용해 화합물을 개발하고 약품으로 만들어낸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모르핀, 테바인, 옥시코돈, 메페리딘 그리고 펜타닐 등 양귀비에서 유래한 아편유사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펜타닐의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 강력한 진정효과가 있는 이 약물들을 인류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추적한다. 그 시작은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이다. 1845년 미국의 예레미아 커티스라는 청년은 갓난아이를 달래기 위한 약이라며 모르핀을 탄 시럽을 판매해 수천 명의 아이들을 사망하게 했다. 모르핀을 개선해 기침약으로 출시한 헤로인은 역시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충분한 임상시험 없이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된 탓이다. 제약회사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으려 하고 사람들은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질환을 극복하고 행복감을 느끼려 한다. 성급한 욕망들이 교차했을 때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다. 그 극단이 펜타닐 사태이다.

제약회사 퍼듀파마의 탐욕,
펜타닐 지옥을 만들다


1984년 모르핀을 알약 진통제로 개발해 성공한 퍼듀파마는 1995년 아편유사제 옥시코돈을 이용해 옥시콘틴이라는 약을 출시한다. 기존 제품의 특허 소멸에 대비하기 위한 출시였다. 문제는 퍼듀파마가 이 약의 중독성과 위험성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통증 완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당시의 미국 의료계 분위기와 의사들에 대한 법적 기소 축소 등으로 인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코틴이 무분별하게 처방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통증에도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 것이다. 이후 허위·과대 광고가 밝혀져 퍼듀파마는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지만 20여 년간 최소 40만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퍼듀파마가 일으킨 마약성 진통제 사태는 더 끔찍한 문제로 이어졌다. 처방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보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처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서서히 효과를 내기 위해 패치 형태로 처방되는 펜타닐 제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패치에서 펜타닐을 추출해 주사로 투여하거나 ‘펜타닐 차’를 만들기도 했다. 급기야 패치를 씹어먹고 사망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독자들이 급속히 늘어나자 마약상들은 펜타닐을 알약으로 만들어 유통했다. 최근에는 헤로인과 펜타닐을 함께 섞어 혼합물로 만드는 ‘쿠킹’이 유행하며 위험도 유혹도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펜타닐 파동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은밀하게 밀수입되는 마약을 공권력으로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펜타닐은 의료용 약물이므로 합법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다. 처방 기준에 따라서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펜타닐의 위협
마약 수요를 줄이기 위해 해야할 일


2022년 식약처가 제출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펜타닐 처방 건수는 148만 건으로 2018년 89만여 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펜타닐뿐만 아니라 옥시코돈과 같은 다른 아편유사제 계열의 마약류 진통제 사용량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의료용 마약에 중독돼 오남용하는 사람의 수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펜타닐 파동이 옥시콘틴의 처방 완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알약형 펜타닐의 밀수입이 본격화된다면 더 큰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다가오는 펜타닐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약의 수요를 줄이는 방법이 최선이다. 개인의 책임에 기반한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 중독자들이 체계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마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소 후 이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약을 유통하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는 마약 중독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약 중독 대신 최근 사용하고 있는 ‘물질 사용 장애’라는 표현을 권장하는 이유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모두 함께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질환’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마약 사용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충동적으로 마약을 경험한 청소년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이탈되어야 한다면 우리 사회의 안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엔도르핀과 도파민,
마약을 대체할 수 있는 행복의 과학


대마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약의 유혹을 거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마약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매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양귀비가 만들어내는 모르핀은 아편 수용체와 결합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모르핀과 같은 효과를 내는 활동은 없을까? 우리 몸에서 모르핀의 역할을 하는 물질은 크게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들 수 있다. 엔도르핀은 우리 몸이 주로 통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방출된다. 예를 들어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때 우리 몸은 이를 고난으로 인식해 엔도르핀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캡사이신이 포함된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도 유사한 작용이 일어난다. 한편 도파민은 체내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이 산화되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파민을 늘리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활동은 유산소 운동, 음악, 함께 웃기, 숙면을 꼽을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약류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느낀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마약의 쾌감을 따라갈 수 있는 활동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약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 저자는 구태여 우리가 파멸이 예정된 쾌락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허황된 쾌락이 아니라도 우리는 당장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하고 강력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