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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2024) - 의사, 환자, 가족이 병을 만드는 사회

동방박사님 2024. 2. 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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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환자가 의사를 만든다”
30년 경력의 의사가 말하는 의사들의 두려움
걱정 많은 예민한 가족이 만들어내는 병
병원쇼핑에서 벗어나는 법

30년차 의사의 의료계 진단, ‘의사도 두렵다’


병을 앓는 사람은 단절을 겪는다. 바깥 공기가 아닌 병원 공기를 마시고, 정상에서 갑자기 비정상으로 나락을 경험한다. 안온했던 일상은 불안의 온상이 된다. 물론 고혈압약을 먹기 위해 일상처럼 병원을 오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자주 가느냐라는 증상의 중증도와 빈도수만 다를 뿐, 병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환자들은 병원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불안을 일으키는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다는 것이다. 환자는 의학 지식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자기 병의 치료와 관련해 의사에게 뭔가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 두려움,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성

제1장 병원을 떠나는 의사, 환자와 같이 늙는 의사

모든 의사가 휴머니스트일까? | 인턴 두 명은 왜 근무 첫날 그만두었을까? | 소아청소년 크론병 환자는 성인이 되면 내과로 가야 할까?

제2장 소음에만 반응하는 환자, 현상에만 반응하는 의사

정보는 신호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토피 피부염에는 비타민 D가 좋다? | 복통으로 응급실에 가면 변비로 진단되는 이유 | 가이드라인만 따르는 의사 | 난치성 희귀 질환 크론병은 완치될 수 있을까?

제3장 질병이 아니었는데 잦은 복통으로 고생했다면 왜 그랬을까?

의도하지 않은 의사의 실수 | 휴머니즘 관점에서 과민성 복통의 원인 분류하기 | 두려움에서 파생된 수많은 증상

제4장 새로운 의원병

의원병 | 우아한 세계,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 | 가족원병, 내 가족이 만드는 병 | 가스라이팅 그리고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의도적인 가족원병 | 의가족원병, 모두의 책임 | 선물이 되는 사회 | 의원병의 새 분류

제5장 환자는 두 번째다

권한 부여하기: 피그말리온 효과는 공룡도 춤추게 한다 | 환자는 두 번째다

제6장 휴머니즘 의료

의사 입장에서 쓰는 약, 환자 입장에서 쓰는 약 | 어느 병원 인턴의 하룻밤: 개인적 능력 | 수술장에서 머리 땋기: 팀의 능력 | 의사가 어려워하는 두 가지 | 환자다움과 의사다움

에필로그 : 우리는 AI 병원이 아니라 사람의 병원을 원한다
감사의글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최연호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에서 소아소화기영양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소아청소년의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치료에서 약물농도모니터링 및 톱다운 전략으로 새로운 치료 기틀을 마련하여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고, 복통이나 구토, 설사 같은 소아의 기능성 장 질환에 휴머니즘 진료를 도입하여 약을 주지 ...

책 속으로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내 고객은 다른 과 의사들의 두 배 이상이다. 나는 아이를 보지만 사실 부모를 본다.
--- p.5

큰 병도 아니고 증상도 심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병들이 있었다. 대부분 안타깝게도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이 만들어내거나 다른 의사가 잘못 판단한 병들이었다. 그중에는 검사와 치료 약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 p.5

만성 환자에게도 진료 이행 틀이 마련됨으로써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 10대에 진단 내리고 돌보던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을 20대가 된 후에도 성인 내과로 보내지 않는다. 하물며 30세가 되어도 그들을 계속 진료하고 있다. (…) 그러면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지켜야 할 성인 환자로의 이행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불량 의사인가?
--- p.46

흥미로운 점은, 의사들은 자신들이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가이드라인은 환자가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진단과 치료 방침의 변화는 환자의 상태를 기준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기술의 위력을 알고 사용할 줄 아는 의사가 주도하긴 한다. 하지만 휴머니즘의 자각에 따라 벌어지는 변화는 정말이지 환자가 주도한다. 과거의 치료가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일방적으로 의사의 결정에 맡기지 않는 일들이 하나둘 나타나면 환자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기존 치료에 저항하게 된다. 그 상황을 일찍 눈치챈 의료진은 위기감을 갖게 되고 환자에게 아무 탈 없이 호전되는 방향으로 연구의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우리 팀이 아자치오프린을 비롯한 생물학 제제의 치료 약물 모니터링을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 미리 시작한 것은 의료 기술의 발전을 접목한 부분에 더해 약물 부작용을 걱정하는 환자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사실 환자의 요청이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의료진이 그냥 시작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의사를 그렇게 하도록 이끈 것이다.
--- p.87~88

강력한 약제가 초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서 그것을 보완하는 부작용 예측 시스템, 즉 치료 약물 농도 모니터링을 병원 실험실에 준비하고 환자들에게 무료로 검사를 시행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증상뿐만 아니라 점막에서 궤양을 아예 사라지게 하고 조직 검사 결과까지 정상으로 만들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회복 상태에서 약만 투여받는 상황이 수십 명에게서 나타났다. 그리고 환자의 입장을 다시 떠올려봤다. 내가 환자라면 나는 언젠가 약을 끊고 싶을 것 같았다. 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었다. 약을 끊었다가 혹시 재발하더라도 다시 약을 투여하면 처음처럼 호전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약물 방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정 기간 약을 끊어봐 환자가 약물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하도록 도우면서 약물 없이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고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려는 것이다. 나는 환자도 자기 몸 상태에 충분히 만족하면 약물 방학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의견에 동의한 환자부터 약물을 끊기 시작했다. 1년, 2년, 시간이 흘러가고 데이터가 축적됐다. 2018년 우리의 첫 데이터가 세계적인 크론병 관련 의학 저널에 실렸다. 크론병 치료 약을 모두 끊은 환자 63명을 대상으로 7년 이상 추적해본 결과, 끊은 지 평균 4년 만에 약 절반이 재발을 보였다. 물론 재발한 환자들에게는 다시 주사제가 투여됐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자. 4년째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완치 상태로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실로서 톱다운 전략으로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얻은 큰 성과였다.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적용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 p.92~93

의사에게 그동안 치료해오던 방침을 하루아침에 바꾸자고 하면 대부분 거절할 확률이 높다. 내가 해온 치료가 법칙과도 같은데 갑자기 다른 법칙을 따르라고 하면 받아들이는 데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그동안의 치료 방법도 맞고 새로 나온 치료도 옳다. (…)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한은 소멸되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은 개발자가 아니라 사용자다.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생각도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치료 방법에 있어서 생각의 전환도 필요하지만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유연한 사고가 필수다.
--- p.93~94

의사의 오진을 질병의 진단에 국한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있는 병을 놓치는 것이다. 사실 의사 개인의 역량 차이도 있겠지만 아마 검사를 할 수 없었거나 주변 여건의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병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럴 때는 의사가 크게 비난받지 않는다. 두 번째는 질병의 유사함으로 인해 다른 병으로 오인하는 경우다. 실제 현장에서 충분히 벌어지는 일로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의료 시스템 안에서 결국 오류가 걸러진다. 세 번째, 실제로는 병이 없는데 어떤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다. 병원에서 병이라고 하니 환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진단과 관련된 오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병을 못 찾거나 다른 병으로 오인하는 것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 p.99~100

나는 외래에서 아무 약도 쓰지 않는다. 치료로서 첫 번째는 그동안 겪었던 상황에 대한 자각을 시킨 뒤, 두 번째로는 회피하지 말고 부딪혀보라고 한다. 결국 병이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테고 두려움 때문에 미리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고 단단히 이른다. 처음에는 여전히 무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한 이후에는 여러 번의 시도와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환자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증상이 호전된다.
--- p.112~113

환자의 증상 앞에서 의사도 두렵다.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대로 혹은 자신의 진료 경험대로 환자가 아프면 진단이 쉽지만 원인을 잘 모르는 상황에 부딪히면 의사도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환자에게 덜렁 모른다고 할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진단을 붙이는 것이 대부분의 의사가 선택하는 방법이다. 의사의 도움을 믿고 온 환자에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의사 입장에서 손실이다. 이 명분적인 손해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려 하는 것은 의사로서도 인지상정이다. 물론 이때 환자의 진실이 바뀔 수 있어 문제이긴 하다. 이렇게 두려움에 관한 의사의 관점에 따라 과민성 복통의 원인이 잘못 이해될 수 있듯이 가족의 잘못된 관점에 의해서도 병이 없는 아이가 환자처럼 오인될 수 있다.
--- p.120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해서 정상인 것은 아니다.
--- p.124

이 사례의 중간부터는 의원병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유발한 근본 원인은 가족에게 있다. 그래서 췌장염까지 가게 된 이 경우를 의원병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의과대학에서 아이의 심리를 배워본 적도 없는 의사에게 부모가 전해준 정보는 분명 질환에 의한 증상으로 해석된다. 그래도 경험 많은 의사라면 빈뇨증의 원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 알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된 빈뇨증은 의원병도 맞지만 가족원병의 범주에 넣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 p.163

그런데 정말 훌륭한 의사는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서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비록 정상으로 나왔어도 환자의 증상이 어떻게 유발되고 진행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의사가 진정한 의사다. 그러러면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 환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과의 면담도 필요하다. 왜 정상인지 환자에게만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설명해야 한다. 환자와 가족이 증상의 원인을 납득해야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기껏해야 5분이 허용되는 우리나라 진료 현실에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휴머니즘 의료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p.231

출판사 리뷰

의사, 환자, 가족의 ‘발병發病’ 트라이앵글

삼성서울병원에서 25년간 진료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의사-환자-가족의 트라이앵글이 어떻게 없던 병까지도 만들어내는지를 밝힌다.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 매우 걱정이 많은 환자,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을 피하려고 환자를 컨트롤하는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악순환은 종류별로 다양하다. 또한 저자는 과잉된 병원쇼핑의 세태와 ‘발병發病하는 사회’의 실상을 의료 현장에서 짚어낸다. 물론 이 책은 병원과 의료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좋은 의사 감별법도 알려준다. 또한 환자 입장에서 고려한 ‘약물 방학’이란 개념도 있어 약물 중단을 시도하고 성공했던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병원’, 즉 휴머니즘 의료다. 저자는 “의료의 본질은 두려움”이며, 환자가 두려워하는 만큼 의사도 자기 진단이 틀렸을까봐, 치료가 적절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의사들에게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것을 따르면 일단 오진과 잘못된 치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이드라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데, 이 사실은 이전의 치료 방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그 변화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갈등과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의원병’이라는 말이 있다. 의사의 과잉 치료나 의료 사고, 또는 치료의 합병증으로 생기는 질병과 장애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많은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저자는 이런 의사들의 불안을 짚고, 그들의 손실 회피 심리를 파고들며, 현재의 병원 시스템에서 의학 지식으로만 무장한 의사들이 어떻게 없는 병도 만들어내는지를 밝힌다.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 의사나 병원은 치료과정에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자신들의 손실을 먼저 계산하고 회피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진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한편 환자들은 쇼핑하듯 가볍게, 또 너무 자주 병원을 오간다. 환자의 가족 역시 병의 근본 원인이 될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진들은 ‘그레이 페이션츠Gray Patients’라고 부르는 환자 목록을 갖고 있다. 자기 손익 계산에만 급급한 환자, 진료 행위를 도구로 삼는 환자, 의료를 비용 대비 효율로만 보는 환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책이 내놓는 진단 및 휴머니즘 의료에 대한 강조는 저자가 병원에서 직접 문제의식을 갖고 실천해온 것이다. 오랫동안 외래에서 약을 처방하지 않으려고 시도한 점, 검사를 최소화한 점, 18세 성인이 되어도 기존 환자들은 소아청소년과에서 계속 진료한 점, 본인의 연구팀과 함께 크론병에 톱다운 치료법을 적용한 점, 이로써 세계 어느 센터보다 앞서 치료 약물 모니터링을 시작한 점, ‘약물 방학’을 도입해 특정 환자들에게 약물을 끊게 한 점 등이 저자의 논지가 신뢰감을 갖도록 해준다.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면 꽤 많이 오진하게 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저자는 늘 아이의 보호자까지 함께 만나기에 상대하는 사람의 수는 다른 과의 두 배 이상이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다 온 환자들을 주로 본다. 부모는 아이의 검사 기록과 투약 목록이라며 두툼한 서류를 내미는데, 그가 보기에는 없어도 됐을 검사나 약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예민한’ 부류에 속한다고 한다. 병원을 자주 찾는 이들은 예민한 부모와 그들을 똑 닮은 예민한 자녀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에 아팠거나 안 좋았던 기억을 잘 지우지 못하고, 그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예전에 구토하고 체했던 기억 탓에 특정 음식을 기피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입이 짧은 아이라면 이런 기억 때문에 복통 같은 소화기 증상을 호소하고, 유치원 등에서 변을 보다가 창피를 당한 기억이 있다면 학교나 유치원에 가기 전 아침에 변을 해결하려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다. 이건 병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아이에게 흔히 관장을 시행하거나 소화제, 지사제, 유산균을 처방한다. 과다 처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어른인 부모는 자기 걱정을 덜려고, 의사는 보호자가 센 약을 요구하니까, 나아가 어쩌면 의료진이 책임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 손실을 미리 피하기 위해 검사와 처방을 쉽게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짊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대상은 의사다. 저자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이전에 다른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에 따라 의대생 교육의 문제점과 병원 시스템의 구멍, 오류로 귀착되는 의사 개개인의 행동이 함께 읽힌다. 이에 저자는 ‘의원병’을 만들어내는 의사들을 우선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저자는 ‘휴머니즘’이 빠진 의료는 병을 키운다고 말한다. 환자 개인의 환경과 배경을 듣지 않고서는 병의 근본 원인을 찾기 어렵고, 그 탓에 종종 과잉 검사와 처방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목숨을 다루는 의료 행위는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자꾸 여기에 어긋나는 통계들을 보여준다. 팬데믹이 지속되던 어느 해,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저자의 병원 소속 인턴 7명이 한꺼번에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중에는 하루 만에 사직서를 낸 인턴도 있어 그들이 병원에 뭔가 불만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요구돼온 점인데, 의사는 휴머니즘 없이는 그 직업을 감당할 수 없다. 이 일 자체가 타인의 생과 사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압축해서 경험케 하므로 죽음의 스펙터클은 이들에게 소명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입사하자마자 퇴직한 인턴들에게 소명의식은 없었다. 이들 때문에 정작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할 환자들과 동료이고, 나아가 병원 전체적으로도 손실을 입는다.

없던 아이의 병도 만드는 부모
좋은 의사 감별법


저자는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는 꽤 많이 오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검사 결과나 의학 지식이 질병의 근본 원인을 꿰뚫을 순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약 없이 치료하고 검사도 거의 안 하는 저자는 상식과는 다른 조언을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환자를 위하는 의사라면 때로 위내시경을 참아야 한다.” “의사가 옳은 말을 하더라도 환자는 피해를 볼 수 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비판한 선구자로는 오스트리아 의사 이반 일리치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저자는 국내 의료 시스템에서 의사들이 병을 만들어내는 사례, 나아가 보호자가 환자의 병을 키우는 사례까지 짚는다. 후자를 ‘가족원병’이라 부를 수 있고, 따라서 저자가 두 번째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상은 환자의 가족이다.

책에 나오는 아홉 살짜리 성호의 엄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가 만나는 많은 소아 환자는 입이 짧은데, 가만 보면 이 아이들의 부모가 대체로 예민하고,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한다. 성호는 키가 또래의 평균쯤 됐지만 몸무게는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저자가 봤을 때 성호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고 과민성 복통을 앓는 정도였다. 입 짧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이다. 하지만 엄마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말을 쉬지 않고 했다. “병원을 세 군데나 다니면서 검사를 많이 했어요.” “한 의사는 장염이니까 죽만 먹이라고 했는데 그 바람에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줄었어요.” “또 다른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더니 변이 차 있다면서 관장을 시켰습니다.” 저자가 보니 성호의 문제는 아이를 밀어붙이는 엄마에게 있었다. 성호는 착한 아이여서 밥 많이 먹으라는 엄마 말을 거역 못 했는데,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억지로 먹은 게 구역, 구토를 일으켰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자아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 뜻대로 컨트롤한 결과 그 손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뒤집어썼다.

이렇듯 부모가 아이의 병을 만든다. 가족의 두려움은 환자의 두려움으로 나타나, 둘은 쌍둥이처럼 붙어다닌다. 특히 가족 안에서 가스라이팅 행위가 있을 때는 자녀에게 신체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의사라면 진료실에서 가족을 함께 관찰하며 병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들이 의사의 오진과 실수를 비판하며 의료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의사의 실수로 인한 의원병보다 그렇지 않은 의원병이 더 많다. 그것이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병원’이다. 수술할 때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 혹시나 생길지 모를 의사의 책임 때문에 훨씬 더 적은 수치인 실패 가능성부터 강조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좋은 의사 감별법도 알려준다. 만약 독자가 의료계 종사자라면 그들은 환자의 목숨을 좌우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지닌 채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고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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