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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2023)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동방박사님 2024. 4. 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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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나 아렌트가 쓴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편의 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아렌트 개념어 사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아렌트 사상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자 그의 사상의 발전을 예견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나아가 서구철학의 이분법에 대한 아렌트의 해체주의적 연구 방법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저작이기도 하다. 왜 책 제목이 ‘과거와 미래 사이’인가. 인간은 자신을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틈입시키면서 자신의 현재를 창조하고 확장해간다. 이 과정이 사유이며, 인간실존의 조건이다. 이러한 인간의 틈입으로 현재가 시작되는 순간, 즉 탄생(태어남)의 순간은 곧 한 인간실존의 시작이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이 새로운 시작(선택)의 능력, 즉 행위 능력 또한 바로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다. 모든 행위는 새로운 시작을 내포하므로 무수한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사유는 무수한 변수들 ‘사이’를 또다시 부유하고 횡단한다. 이곳에 ‘절대적 진실’이 없음은 당연하다. 넘쳐나는 ‘상대적 진실들’ 사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바로 ‘기억과 전승’에 있다. 아렌트가 여덟 편의 에세이에서 말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전승할 것인가. 세계의 창조자인 동시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호모 데우스’(Homo Deus), 그는 바로 공론장의 ‘시민’이다.

목차

과거와 미래 사이: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한나 아렌트 ‘메탁시’ 정치철학의 향연│서유경
제롬 콘의 서론

서문: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

제1부 과거와의 단절

1장_전통과 현대
2장_역사 개념: 고대와 현대

제2부 권위와 자유의 기원

3장_권위란 무엇인가?
4장_자유란 무엇인가?

제3부 현대 사회의 위기와 해법

5장_교육의 위기
6장_문화의 위기: 그것의 사회적·정치적 의미
7장_진실과 정치
8장_우주 정복과 인간의 위상

21세기의 한나 아렌트와 ‘호모 데우스’│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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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

역 :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부 인문·고전전공 교수이며 현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집중해온 골수 ‘아렌티안Arendtian’으로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아렌트 읽기』,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렌트 ‘정치 행위’ 개념 분석」과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비춰 본 1987년 이후 ...

책 속으로

행위가 수행된 이후에 사유함을 통한 완성 과정이 없다면, 즉 기억의 도움을 받아 달성된 표현의 정교화가 아니라면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p.82

인간 행위는 엄격히 정치적인 모든 현상들처럼 인간 다수성(多數性, plurality)과 함께 묶여 있다. 그 인간 다수성이 인간의 탄생성(natality)에서 기인하는 한, 그것은 인간 삶의 근본 조건 가운데 하나다.
--- p.162

가령 우리가 자연적 과정들을 개시함으로써 자연을 상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면, 우리가 이전에 엄격한 법칙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던 그 [자연의] 영역에 예측 불가능성을 명시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나 다름없다.
--- p.162

인간들은 서로를 단번에 연결하고 구분시켜줄 공동세계가 [그들 사이에] 부재하다면 [스스로] 극심하게 외로운 분리 상태로 살아가거나 어떤 대중의 형태가 되도록 강제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사회라는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서로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한때 그들에게 공통으로 존재했던 세계가 없어진 틈새에 자동적으로 들어서는 조직화된 삶의 형태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 p.204

아니, 그보다도 인간은 기억하는 일을 통하지 않으면 깊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211

육아와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권위’에 대한 필요가 더욱 그럴듯해 보이고 분명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렇듯 극히 제한적이고 정치적 적실성도 없는 형태의 권위마저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특색인 셈이다.
--- p.248

사람은 미래로 성장해간다는 우리의 성장 개념과 대조적으로 로마인들은 사람이 과거를 향해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 p.256

정치의 존재 이유는 자유이며, 그것이 경험되는 장은 행위다.
--- p.287

자유는 단순한 해방 말고도 동일한 지위에 있는 타인들의 동석(同席)을 필요로 했고, 또한 그들을 만날 공통의 공적영역을 필요로 했다.
--- p.291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을 우리의 세계로부터 축출해 그들 자신의 고안 장치들과 함께 놔두지 않을 만큼 사랑할 것인지를, 그리고 그들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일, 무언가 우리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을 할 기회를 빼앗지 않는 대신, 그들이 모종의 공통 세계를 경신하는 임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킬 만큼 그들을 사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지점이다.
--- p.358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정신을 잘 닦은 사람이란 과거는 물론 현재의 사람들 가운데서, 사물들 가운데서, 사상들 가운데서 자신의 동행을 선택하는 방법을 아는 자다.
--- p.401

이와 대조적으로 현대의 정치적 거짓말들은 결코 비밀이 아닌 것들, 사실상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룬다. 이 점은 [동시대에 사는] 목격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현대사를 재기술하는 경우에 명백하지만, 각종 이미지-메이킹 과정에서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이미지-메이킹 과정에서는 제아무리 잘 알려진 기성사실이라도 이미지에 해가 될 것으로 보이면 거부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는 구식 초상화의 경우처럼 실물보다 근사하게 그려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물의 완전한 대체물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체물은 현대적 기술과 대중매체 덕분에 원형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의 눈앞에 제시된다.
--- p.442

이런 견지에서 기술 전체는 사실상 더 이상 “인간의 물질적 능력들을 신장하기 위한 인간의 의식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거대한 규모를 가진 생물학적 과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 p.482

출판사 리뷰

『과거와 미래 사이』는 역사·전통·권위·자유 등의 전통적인 정치 개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사유가 담긴 여덟 편의 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한나 아렌트 탄생 100주년 펭귄 기념판으로 약 20년 만에 복간되면서 아렌트 제자 제롬 콘의 서문과 2023년에 발맞춘 옮긴이의 해제와 후기가 추가되었다. 이 책은 ‘전체주의’ ‘사유’ ‘행위’ ‘상투어’ ‘탄생성’ ‘다수성’ 등 아렌트 정치사상의 핵심 용어를 상세하고도 집약적으로 설명한다. ‘아렌트 개념어 사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아렌트 사상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자 그의 사상의 발전을 예견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나아가 서구철학의 이분법에 대한 아렌트의 해체주의적 연구 방법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저작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이 책에서 플라톤에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는 이분법적 서구철학 전체에 대한 통렬한 해체주의적 비판을 통해 세계를 독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지워진 개념들을 발굴해 새로운 현재의 용도를 발명해낸다.

“자멸(自滅), 이것이 19세기에 일어난 전통에 대한 세 가지 반란의 결과 가운데 키르케고르·마르크스·니체가 공유하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피상적인 특징일 것이다”(124쪽).

인간다움을 재정의하다

역사와 전통, 권위와 자유 등 전통적인 정치 개념에 대한 논의 속에서 아렌트는 인간실존의 존재론적 이분법을 문제 삼는다. 즉, 그동안 분리되어온 다수 인간의 ‘정치적 삶’과 단독자 인간의 ‘철학적 삶’의 불가분의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아렌트에게 인간실존은 ‘철학적 삶’이 나타내는 사유와 ‘정치적 삶’이 나타내는 다수성의 복합체였다. 아렌트가 단독자로서의 인간만을 다루는 철학자로 불리길 스스로 거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 그것은 ‘각자’의 정신 안에서 ‘서로’를 전제하고 ‘행위’하는 삶이다.

“심지어 성자들의 삶조차도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Socialis est vita sanctorum, 182쪽).

“누군가가 사유 활동을 개시하는 순간 세계를 직면해야 한다”(34쪽)는 아렌트의 주장에서처럼, “인간은 고독한 사유함에서조차 결코 혼자일 수 없다”(36쪽). 아렌트에게 사유란 인간이 세계와 타인을 상대로 행위하는 것과 똑같은 구조가 다만 인간 정신 내부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 책에 포함된 여덟 편의 에세이는 아렌트가 말한 바로 이러한 바로서의 “사유하는 방법상의 경험을 얻는 것을 목적”(94쪽)으로 한다. 아렌트는 섣부르게 사유의 대상을 규정하거나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운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94쪽).

‘시간’ 개념과 인간실존

왜 책 제목이 ‘과거와 미래 사이’인가. 스스로 정치사상가임을 자처한 아렌트이기에 ‘과거’와 ‘미래’라는 형이상학적 시간 개념은 언뜻 어색한 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제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사이’다. 과거와 미래의 사이, 즉 ‘현재’에 대한 이야기 속에 이 책의 핵심이 들어 있다. 인간은 ‘현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다. 플로티누스는 “과거는 지금 끝나는 시간이고, 미래는 지금 시작하는 시간”(18쪽)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으로서 ‘지금’을 말했다. 즉 통일체 또는 연속체로 인식될 수 있는 시간에 하나의 지점, 즉 ‘공간’을 만들어내며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하나의 공간으로서 ‘현재’는 이제 물리적으로 점유하거나 인식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이로써 인간은 현재를 인식해 세계에 자신의 ‘좌표’를 찍는다. 좌표 찍기는 그 사람이 태어날 때 시작되고, 죽을 때 종결된다. 이 ‘역사적 과정’은 철저하게 개인화된 여정으로 교환가치로 평가받을 수 없는 “독특한 비매품”(490쪽)이다. 인간은 자신을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틈입시키면서 자신의 현재를 창조하고 확장해간다. 이 과정이 사유이며, 인간실존의 조건이다. 즉,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발생은 동시다발적인 사건이다.

“오직 사람만이 시간 속 틈입이 허용되기 때문에,
오직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 서 있는 한에서만 무심한 시간의 흐름이
[과거·현재·미래의] 시제로 나뉜다”(88-89쪽).

한나 아렌트의 ‘호모 데우스’(Homo Deus)

이러한 인간의 틈입으로 현재가 시작되는 순간, 즉 탄생(태어남)의 순간은 곧 한 인간실존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수히 태어나는 다수의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자신만의 좌표 찍기를 ‘시작’하게 된다. 일차적인 생물학적 탄생 이후에도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이차적 탄생, 즉 ‘정치적 탄생성’(political natality)을 갖는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이 새로운 시작(선택)의 능력, 즉 행위 능력 또한 바로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다. 아렌트의 실존에 사유와 행위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개별 인간은 아렌트의 이러한 인간실존적 조건들, 즉 최초의 탄생에서 비롯된 행위와 사유의 능력을 갖는다. 모든 행위는 새로운 시작을 내포하므로 무수한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사유는 무수한 변수들 ‘사이’를 또다시 부유하고 횡단한다. 각자의 좌표를 찍어가는 이곳에 ‘절대적 진실’이 없음은 당연하다. 아렌트에게 인간사의 영역은 다양한 ‘상대적 진실들’로 넘쳐나는 공간이며 이 영역의 본질은 ‘증명’이 아닌 ‘설득’에 있다.

“그리스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법?서로를 개별적인 사람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계를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 즉 동일한 것을 아주 다르게,
그리고 대개는 상반된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149-150쪽).

넘쳐나는 ‘상대적 진실들’ 사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바로 ‘기억과 전승’에 있다. 아렌트가 여덟 편의 에세이에서 말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전승할 것인가. 인간의 사명이란 바로 끊임없이 탄생하는 개별 인간에게 회자되고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공통의 세계, 공통의 기억을 ‘창조’하는 것이다. 서로를 전제한 우리 각자가 모여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 공통의 좌표를 찍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창조자인 동시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호모 데우스’(Homo Deus), 그는 바로 공론장의 ‘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