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계사 이해 (독서>책소개)/5.미국역사문화

새로 쓴 미국 종교사 (2024)

동방박사님 2024. 5. 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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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필그림 파더스’에서 ‘사신死神 신학’까지
우리가 몰랐던 ‘개신교 미국’의 민낯

더 이상의 미국 종교사를 만날 수 있을까


미국을 떼어놓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미국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로든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실체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간 미국을 알기 위한 혹은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런 차원에서 종교를 통해 미국의 실체를 살핀 이 책은 유의미하다. 나아가 폭넓고도 꼼꼼한 시선에 엄정하고도 평이한 서술, 성실한 학문적 태도가 어우러져, 감히 말하자면 우리 저자가 쓴 ‘미국 종교사’로 이 이상 가는 책은 당분간 나오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서문

제1장 원주민의 삶과 종교
유럽인 진출 이전 원주민 종교|우주, 자연, 그리고 인간

제2장 가톨릭 국가의 진출
에스파냐|프랑스

제3장 영국의 진출
성공회|청교도와 회중교회

제4장 여러 교파의 진출
개혁교, 루터교, 장로교, 그리고 침례교|개신교 소종파와 가톨릭

제5장 원주민, 아프리카 노예, 그리고 비기독교 유럽인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의 종교|비기독교 신앙

제6장 식민지 종교의 융성과 변화
기독교의 변화와 발전|대각성 |대 각성 이후

제7장 건국과 종교
독립전쟁|건국의 아버지들

제8장 미국적 종교지형의 탄생
시민종교와 다원주의|자원주의

제9장 부흥과 기회, 그리고 변화
새로운 부흥운동|부흥이 가져온 변화

제10장 유토피아 건설과 서부 정복
신흥 종파의 명멸|서부 정복과기 독교화

제11장 이민 증가와 종교지형 변화
이민과 가톨릭 교회|유럽대륙계열 개신교와 유대교

제12장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노예 문제와 종교계 분열 |남 북전쟁

제13장 아프리카계 주민의 삶과 종교
해방된 노예의 꿈과 현실|아프리카계 교회

제14장 종교다원주의의 시작
다양한 종파의 유입과 탄생|비 서구 종교

제15장 소외된 자들: 원주민과 여성
원주민의 고통과 종교|깨어나는 여성

제16장 산업화와 근대화
도시화와 노동 문제|근대성의 대두

제17장 ‘개신교 미국’의 종말
근본주의와 근대주의의 충돌|‘개신교 미국’의 종말

제18장 현대적 종교지형의 탄생
유대-기독교의 변화|아프리카계 및 비유대-기독교 종교

제19장 전쟁, 이데올로기, 자유
전쟁과 종교|국가와 종교

제20장 새로운 사회, 새로운 과제
인권과 소수자 운동|윤리적-신학적 전쟁

제21장 새로운 천 년 속에서
강화되는 다원주의|세속화의 거센 물결

저자 소개

저 : 류대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버지니아의 유니언신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밴더빌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서신학, 기독교역사, 미국사를 주로 공부했다. 서양사학적 방법론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에 중점을 두면서, 『미국 종교사』(2007),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2004), 『북한 종교의 새로운 이해』(공저, 2002),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2001) ...

책 속으로

유럽인 진출 이전, 현재의 미국 대륙을 이루는 지역 내에 최소한 500개의 독립된 원주민 문화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캘리포니아 지역에만 200개가 넘는 언어적-문화적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부족들은 각각 독특한 종교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 p.28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의 법률가로 1629년부터 여러 차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총독을 지낸 존 윈스롭의 설교에는 미국은 세상 어떤 나라와도 다른, 정의롭고 자비로운 나라라는 미국 예외주의, 그리고 미국은 세상을 구원하라는 특별한 섭리적 사명을 받았다는 ‘구원자 미국Redeemer America’에 대한 믿음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그 씨앗은 청교도나 기독교의 운명과 상관없이 이후 미국 정체성의 중심에 뿌리 내렸다
--- p.82

장로교는 16세기 영국 종교개혁의 와중에 존 녹스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칼뱅주의자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장로교는 …… 대의정치 원칙에 따라 교인들이 선출한 장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당회, 노회, 대회synod, 총회로 이어지는 계층적 교회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교파와 구별되었다
--- p.97

침례교는 영국 분리주의자들 가운데 네덜란드로 피난 갔다가 재세례파인 메노나이트에게 영향을 받아 생긴 교파였다. …… 그들은 교회가 정치의 힘을 빌려 종교를 강제하는 것을 비판하고 유아세례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청교도와 전혀 달랐다. …… 매사추세츠 청교도 지도자들은 …… 정치와 교회의 긴밀한 관계를 비판하는 침례교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침례교인들을 심하게 박해하여 추방하거나 공개 채찍질로 벌하기도 했다
--- p.100

모든 사람에게 ‘내면의 빛’이 있다는 퀘이커 신앙은 18세기 노예제도 폐지운동, 19세기 여성인권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존 울만은 당대의 대표적인 평화운동가로서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문제 삼은 거의 최초의 인물이었다
--- p.107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기독교와 전통 종교를 혼합한 독특한 신앙을 만들기도 했다. 루이지애나 부두라고 불린 혼합종교가 대표적이다
--- p.129

에드워즈가 자기 교회에서 비상한 부흥의 조짐을 감지한 것은 1734~35년경이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노스햄프턴 지역에서 행한 일련의 설교를 듣고 수백 명이 회심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에드워즈의 딸 에스더 버가 경험한 것처럼 부흥회는 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만나게 해주었고, 그것은 “천국을 미리 맛보는 것”과 같았다
--- p.147

조지 휫필드와 함께 기독교는 중생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이제 막 태동하던 소비자 시대에 종교 소비자를 찾아 나선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
--- p.156

건국의 아버지들은 ‘신’이나 ‘그리스도’라는 단어 사용을 극히 주저했다. …… 그들이 만든 연방헌법은 명백하게 “세속적 인문주의” 문서였다. 연방헌법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으며, 인간이 신의 개입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했다
--- p.182

제임스 매디슨은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명시한, 흔히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제1차 헌법수정안을 만들어 1789년 의회에 제출했다. 전체 10개 조항으로 된 이 헌법수정안은 “의회는 종교의 설립establishment에 관계되거나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어떤 법도 만들지 않는다”라는 역사적 조항으로 시작했다
--- p.184

건국의 아버지들 …… “내 마음이 내 교회”라는 식으로 종교를 내면화시켜 철저히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표상하는 국가 차원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를 만들었던 것이다. …… 시민종교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조지 워싱턴이었다. 워싱턴은 살아있을 때부터 기적을 행하는 초인, 성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사실과 전설이 섞이기 시작했다
--- p.194

1800년대 초부터 짧게는 약 30~40년 동안, 길게는 남북전쟁까지 지속된 폭발적인 종교현상으로 표출되었다. 흔히 제2차 대각성이라고 불리는 이 비상한 종교현상은 새로운 기독교(혹은 기독교적 성격의) 단체, 조직, 대학을 양산했고, 그런 기관들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대대적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또한 들불처럼 번진 부흥회의 열기 속에 교인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했고, 실험적이거나 독특하게 미국적인 신흥 종파들이 번성했다
--- p.202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가치관과 복음적evangelical 기독교를 잘 융합했던 피니는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헌신된 삶을 살면 누구나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설교하여 그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상업적 성향의 사람들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사회봉사를 하면 거룩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흥회는 종교적 헌신을 재확인하고, 신의 백성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애정을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224

1848년 ‘페미니즘의 기원’이라고 불리게 된 …… 세네카 폴스 회의에서 채택된 ‘소감선언Declaration of Sentiments’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형식을 빌 …… 참정권은 없으면서 법에 복종하고 세금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 이혼과 양육권 상의 불이익, 교육과 직업의 제한, 그리고 교회를 비롯한 각종 단체에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현실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여성의 불이익과 불만을 지적했다
--- p.229

최초의 침례교 전국 조직을 이끌었던 리처드 퍼만은 노예제도가 성서 속에 명백하게 확립되어 있는 제도라고 주장했고, 영향력 있는 장로교 목사 프레더릭 로스는 “하나님이 정한” 성스러운 제도인 노예제도는 성서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오히려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성서 밖에서 자신들의 근거를 찾는다고 하였다
--- p.296

감리교의 경우, 교단이 노예제를 확실하게 비난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진 뉴욕주의 교인 약 2만 5천 명이 1843년 떨어져 나가 웨슬리안 감리교Wesleyan Methodist Church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에는 결혼으로 노예를 소유하게 된 조지아의 주교에게 교단이 사임을 요구하자 남부의 교회들이 분리해 나가 남감리교를 만들고 말았다. 한편, 1814년에 전국적 교단이 조직된 침례교는 …… 북부의 교회들이 선교사의 노예 소유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자 1845년 남부지역 교회들은 남침례교를 만들고 북부와 인연을 끊었다
--- p.298

1901년 1월 1일, 20세기 오순절운동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한 사건이 베델 성서대학에서 발생했다. 12월 31일 저녁부터 학장과 학생들이 성령의 강림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여학생 아그네스 오즈만부터 시작하여 30여 명의 참가자 전원이 방언方言을 하게 된 것이다
--- p.322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새로운 종파는 미국에서 탄생했다. 장로교와 회중교 출신의 성공한 의류업자 찰스 러셀Charles T. Russell(1852~1916)은 …… 그를 따르는 ‘성서 학생’들과 함께 1881년 워치 타워 문서협회를 설립하고 자신의 신학을 활발하게 전파했다. 러셀과 성서 학생들은 신의 이름으로는 반드시 ‘여호와’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성서를 다시 번역했다
--- p.336

메리 베이커 에디는 1879년 매사추세츠 린에 첫 번째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를 설립했고, 매사추세츠 초현상대학을 통해 많은 신앙치료사를 배출하여 전국으로 ‘과학적’ 치유를 전파했다
--- p.339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의회는 전환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 시카고의 변호사이며 스베덴보리계 교회 신자인 찰스 보니가 주도한 세계종교의회는 …… 동서양의 전통적 종교뿐 아니라 바하이나 크리스천 사이언스 같은 신흥종교를 포함하여 세계의 많은 종교집단 대표자들이 세계종교의회에 모였다. ……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 종교 간 대화 무대였던 세계종교의회의 주제는 관용과 보편주의였다
--- p.356

성서를 비판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여성의 성서》를 1895년과 1898년 두 권으로 출간했다. …… 스탠턴은 창세기 …… 1장에서 완벽한 남녀평등이 기록된 것을 본 “어떤 교활한 저자”가 남성의 지배를 위해 여성의 복종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2장을 기록했으며, 거기에는 “악한 영”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p.375

1888년 미국, 영국, 캐나다 여성들이 모여 기독교 여성 세계선교위원회를 조직했는데,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국제적 초교파 선교단체였다
--- p.379

도시의 소비문화에 발맞추어 등장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물질의 풍요와 진보를 찬양하는 성공의 복음이었다.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성공의 복음 전도자는 유명한 광고업자 브루스 바턴이었다. …… 바턴의 예수는 성공을 위해 사람들을 동기유발 시켜 이끄는 선전가이며, 매력적인 인품을 지닌 뛰어난 지도자였다. 예수는 낙관주의, 물질적 성공, 개인의 향상 등 성공의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 p.388

개혁주의 목사 노만 필의 ‘긍정적 사고’는 20세기 중엽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1952년 처음 출간된 그의 《긍정적 사고의 힘》은 186주 동안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으며, 약 2천만 부가 판매되었다. 필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종교는 신에게 “채널을 맞추어” 그 능력을 누리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 p.389

192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대형 교회’와 ‘방송 전도’는 그런 풍요의 복음 확산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 1980년 캘리포니아 가든 그로브에 1천 8백만(2022년 가치로 6천 4백만) 달러짜리 ‘크리스탈 대성전’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능력의 시간Hour of Power’을 방송한 로버트 슐러는 아마도 당대 풍요의 복음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 p.390

1865년 감리교 신자 윌리엄과 캐서린 부스 부부가 시작한 구세군은 복음적 기독교를 빈민구제를 위한 사회사업과 결합시킨 군대식 조직이었다. …… 구세군이 미국에 진출한 것은 1880년대였는데, 20세기 초반 미국 구세군을 주도한 사람은 부스 부부의 딸 에반젤린이었다
--- p.391

사회복음의 초기 주창자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회중교회 목사 워싱턴 글래든이었다. 그는 직접 시의회에 들어가 무능하고 타락한 관리들과 싸우는 한편, 수도, 전기, 가스 같은 공적인 성격의 사업은 공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393

사회복음에 영향을 받은 북감리교는 1908년 개신교 교단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익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 ‘사회신조Social Creed’를 채택했다. 사회신조는 산업재해 방지, 어린이 노동 금지, 여성 노동조건 향상, 주 6일 근무, 그리고 기본 생계비에 해당하는 임금지급 등을 요구하면서, “황금률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법칙이라고 주장하였다
--- p.399

진화론에 대한 미국 신학자와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천주교의 기본스 추기경, 프린스턴신학교의 찰스 핫지, 탁월한 설교자 드윗 탈미지, 그리고 유명한 부흥사 빌리 선데이는 진화론을 그릇된 과학이나 무신론이라고 정죄했다. 그런가 하면 신부이며 노트르담대학 교수였던 존 잠, 프린스턴신학교의 벤자민 워필드, 당대 최고의 설교자라고 불렸던 헨리 비처, 그리고 영향력 있는 기독교 잡지 편집자 라이먼 애봇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비판하면서도 진화가 창조 질서의 일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 p.403

고대 문서에 대한 연구가 증진되면서, 성서도 신의 계시에 의해 단번에 기록되어 완성된 문서가 아니라 다른 고대 문서와 마찬가지로 저술, 편집, 전승, 결집 등의 복잡한 문서화, 경전화 과정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는 견해도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은 성서가 가지고 있던 신비로운 신적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고 그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요청했다
--- p.407

뉴욕 노회 내 보수파는 …… 위원회를 구성하여 …… ’1910년 교리적 평결Doctrinal Deliverance of 1910’이라는 이름 아래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5개 조항을 만들어 발표했다. …… 이 조항들은, 성서 무오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代贖적 죽음,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승천, 그리고 기적을 기독교의 “근본적 교리”로 꼽았다. 이 근본조항들은 장로교뿐 아니라 다른 교단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이 이단을 감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p.416

근본주의자라는 표현이 인쇄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 침례교 목사이며 잡지 편집자인 커티스 로스가 북침례교 내에서 “여전히 위대한 근본들을 견지하며” 그런 신앙을 위해 “사투를 벌일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면서부터였다
--- p.418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미국 사회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는가는 홀 린제이와캐럴 칼슨이 쓴 《대혹성 지구의 마지막》(1970)의 인기가 증명한다. 이 책은 1970년대 비소설 최고 베스 트셀러로서 3천 5백만 권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 출판되었다. 이스라엘과 중동 이슬람 국가 간의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1967) 직후 출간된 이 책은 세대주의적 시온주의 관점에서 러시아, 유럽, 이스라엘 등에 관한 종말적 예언을 하였다
--- p.420

오순절 운동과 전천년설을 결합한 맥퍼슨은 …… 여성 설교자가 거의 없던 시대에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그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돈 150만 달러를 들여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건립한 그녀의 앤젤러스 성전에는 매주 수천 명이 몰려들어 20세기 대형 교회의 시작을 알렸다. …… 그녀는 미국 최초의 종교 방송국을 설립하여 방언과 치유, 그리고 임박한 예수의 재림과 선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 p.421

1925년 테네시의 데이턴에서 열렸던 ‘스콥스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은 근본주의자들의 정체가 미국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25년 3월 테네시주가 버틀러 법을 제정하여 주의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을 포함한 모든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면서 시작되었다. …… 대로우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브라이언이 과학과 종교에 대해 얼마나 제한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내 주었다
--- p.425

1940년대에 근본주의 공동체에서 해롤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신복음주의’가 등장한 것도 …… 근본주의가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신복음주의자들은 …… 근본주의의 신학적 핵심은 견지하되 19세기 복음적 개신교의 “문화적으로 중도적인 전통”에 따라 사회적?지적으로 존중받는 “개혁적 근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 p.426

근대주의 진영에서는 제1차대전,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나치주의의 등장을 겪으면서 신학적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던 낙관주의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일었다. …… 라인홀드 니버는 …… 도덕적 이상주의와 자유주의적 낙관론을 모두 배격하고, 인간을 선과 악이 혼재하는 “역설”로 이해했다. 그는 인간의 문제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기독교 현실주의’를 주창했다
--- p.427

세속화가 종교인 수의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속화는 무엇보다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삶 속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던 전반적인 영향력의 감소를 뜻했다. 기독교는 더 이상 학문을 이끌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었으며, 이전에 종교가 담당했던 기능을 점점 시장이 대신하고 있었다
--- p.432

고등교육을 받은 감리교 목사들은 지적인 설교를 선호했으며 감리교 성장의 비결인 부흥회나 천막집회를 꺼렸다. 많은 감리교 천막집회 장소는 중산층을 위한 여름 휴양지로 급속히 변모되었다
--- p.440

엘리야 무함마드는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위해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으로 땅을 내줄 것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러 사업을 펼쳤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아프리카계 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한 이슬람 국가의 가르침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들렸다. 매사추세츠 주립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말콤 리틀(1925~65)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 1952년 출옥한 후 “노예 이름”을 버리기 위해 성을 엑스X로 바꾼 그는 탁월한 언변과 지도력을 통해 곧 이슬람 국가를 대표하는 전도자요 대변인이 되었다. 말콤 엑스는 …… 타락의 역사를 이끌어 온 백인들은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흑인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이끌게 될 때가 곧 올 것이라고 강변했다
--- p.449

통일교는 1970년대부터 가정의 순결과 긴밀한 공동체를 원하는 북동부 도시지역의 고학력 유럽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종자를 얻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러나 문선명을 메시아로 여기는 신학, 상업적?정치적 활동, 신자들의 지나친 종교생활 등이 지속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사이언톨로지는 과학소설가 론 허바드가 동양 및 고대 그리스 사상, 오컬트, 심리분석 등을 혼합하여 만든 종교로서 초월적 ‘치료’를 가르쳤다
--- p.457

1990년대가 지나면서 뉴에이지운동은 활력을 잃어갔다. 뉴에이지의 특정한 요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것을 종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21세기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으로 대표되는 시기였다. 2017년에도 미국인 33퍼센트가 윤회를 믿었고, 29퍼센트는 점성술을 믿었다
--- p.458

개신교계에서는 미국의 토마스 알티저, 프랑스의 가브리엘 바하뇽, 독일의 도로테 죌레를 선두로 ‘사신 신학Death of God Theology’이라고 불린 다양한 논의를 통해 전통적 신(에 대한 믿음)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 p.466

매카시즘의 광기 속에서, 근본주의 지도자들은 가공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에 적극 동참했다. 미국의 근본주의 조직체인 ACCC 회장 칼 맥킨타이어는 미국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신에게 선택된 나라라는 오래된 믿음을 반공주의 애국운동으로 연결시켰다
--- p.476

1954년연방의회는 “신 아래에서under God”라는 말을 ‘국기에 대한 맹세’에 새로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 그로부터 2년 후인 1956년, 매카시즘이 한창일 때 미국 의회는 1776년 독립전쟁 시작과 함께 채택된 국가 모토 “여럿으로부터 하나E Pluribus Unum”를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로 바꾸었다
--- p.478

여성 신학자들은 신을 남성으로 표현해 온 오랜 전통이 여성을 압제해 왔던 가부장적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보스턴 칼리지의 메리 데일리Mary Daly(1928~2010)는 《하느님 아버지를 넘어서》(1973)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죽음”을 말하며 가부장적 신 자체를 거부하여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 p.497

청교도들이 개척한 미국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나라였으며, 유럽 선진국과 달리 기독교가 쇠퇴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은 대표적인 ‘미국 예외주의’ 믿음 가운데 하나다. 앞서도 언급한 미국의 종교화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1776년 미국은 전체 인구의 17퍼센트만 교회나 회당에 다니던 매우 세속적 국가였다
--- p.530

2019년 밀레니엄 세대의 9퍼센트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졌으며, 무려 40퍼센트가 무종교인이었다. ……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통적인 제도교회가 제공해온 가치들이 필요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거나, 아니면 필요하더라도 교회 밖의 시장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p.534

유럽인들이 주도하게 된 21세기의 북아메리카대륙은 자본주의적 물질문화와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종교적 광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21세기 초 20여 년 동안 미국 종교시장에서 승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무종교였다
--- p.537

출판사 리뷰

맥을 짚다

국내외에서 성서신학, 기독교 역사, 미국사 등 다양하게 공부한 지은이는 600여 년에 걸친 시대를 다룬다. 에스파냐 선교사들이 1513년 플로리다에 진출하기 이전, 원주민들의 토템 신앙이 깃든 흙 구조물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미국사’를 넘어서는데 흐름이 맥을 놓치지 않고 짚어낸다. 18세기 이른바 ‘제1차 대각성’을 다루면서 “조지 휫필드란 설교자와 함께 기독교는 ‘중생’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이제 막 태동하던 소비자 시대에 종교 소비자를 찾아나선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156쪽)든가 유명한 광고업자 브루스 바턴, 자기계발의 거장 노만 필 등 물질적 풍요와 진보를 찬양하는 ‘성공의 복음’ 전도자들이 도시의 소비문화 등장에 맞춰 각광받았다(389쪽)는 지적 등이 그렇다.

촘촘하다

장구한 세월을 언급하니 성글 만도 하건만 지은이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유령춤 운동이나 페요테 종교(366쪽)처럼 19세기 말 집단거주지에 갇혀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던 원주민들의 신흥 종교운동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정부에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땅을 요구했던 엘리아 무함마드의 삶,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성서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여성의 성서》(1895)에 담긴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주장은 이 책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사실들이다.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혼합종교인 ‘루이지애나 부두’(129쪽), 1960년대 ‘신의 죽음’을 거론하던 급진적 개신교 진영에서 환영받은 ‘사신신학’, 통일교와 사이언톨로지(457쪽) 등 미국 종교의 속살에도 시선을 보냈다.

예리하다

지은이는 미국 종교사의 흐름과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 건국신화의 핵심인 메이플라워호의 필그림 파더스는 전체 승선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나머지는 상업적 이주민이었으며(76쪽), 미국 예외주의의 바탕인 ‘기독교가 쇠퇴하지 않는 나라’라는 믿음과 달리 1776년에는 미국 전체 인구의 17%만이 교회나 회당에 다니는 매우 세속적인 나라라는 사실을 들춰내는 것(530쪽)이 그렇다. 또한 진화론 등 과학의 발전에 따른 1930년대 근본주의와 근대주의의 갈등이 미국의 비공식 국교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복음적 개신교의 내전으로, ‘개신교 미국’을 최종적으로 붕괴시킨 대사건으로 파악하는 대목이나 21세기 초 20여 년 동안 미국 종교시장에서 승리한 것은 어떤 종교나 교파가 아니라 ‘무종교’라 갈파한 대목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흥미롭다

역사의 미덕 또는 가치는 우리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고, 어떻게 왔는지 알려주는 ‘좌표’를 제공해준다는 점이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역사를 읽는 재미라 할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심해 만든 ‘국가인장’ 뒷면에 새겨진 피라미드나 “그가 우리의 일을 인정했다”는 뜻의 라틴어 문구의 비밀을 알려주는 부분(196쪽)이 좋은 예다. 그런가하면 1920년대의 대표적 부흥사인 에이미 맥퍼슨이 진한 화장과 화려한 보석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로스앤젤레스에 150만 달러를 들여 ‘성전’을 짓고 미국 최초의 종교 방송국을 설립하는 등 대성공을 거둬 20세기 대형 교회의 시작을 알렸다(421쪽)는 이야기는 씁쓸하지만 흥미롭다.

엄정하다

그래도 지은이는 역사가의 엄정한 눈을 유지한다. 노예제도를 지지한 끝에 결국 분리한 남침례교?남감리교 사례(298쪽)를 짚고,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같은 유명 전도자들이 노예들의 개종에 성과를 보였지만 자신들은 노예를 소유했거나 노예제도 합법화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는 사실을 명기했다(166쪽). 또한 18세기 중엽 하와이로 진출했던 개신교 선교사들이 어떤 기여를 했으며 종내는 하와이 국왕의 정치 고문이나 관료로 일하면 캘리포니아 설탕 가공업자들과 손잡고 하와이 강제 병합에서 한 역할에도 비판적 기미가 읽힌다. 1930년대 감리교, 북침례교 등 개신교 인사들이 전쟁을 가장 악한 죄로 규정하며 다시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냈지만 조약과 교회 성명서가 인간의 호전성과 국가의 팽창주의를 막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462쪽).

성실하다

책은 2007년 냈던 《미국 종교사》를 고쳐 쓴 것이다. 한데 ‘새로 쓴’에 방점이 찍혔다. 많은 인용문과 각주를 보태고, 새로운 통계를 반영해 학문적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도 어쩌면 이렇게 학문적 성실함과 단단한 의지를 보일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러기에 저자 개인 차원을 뛰어넘는 학문적 성취와 함께 대중성을 갖춘 ‘완결판’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