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계사 이해 (독서>책소개)/3.문화인류학

오리엔트 문명과 예수 신화 (2024) - 신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여 죽음에서 해방되는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4. 5. 1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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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산 자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캠벨은 구약에서 여호와신의 천지창조, 인간창조, 노아의 홍수, 바벨탑까지를 신화의 시대라고 보았다. 런던대학 종교학교수를 역임한 후크는 신약에서 예수의 탄생,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신화라고 보았다. 신화(神話)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 존재인 신과 관련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 따르면 부활과 천국을 꿈꾸는 기독교인은 지금도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불이 꺼지듯이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면서 인간을 살육하고 있다. 이 전쟁의 근저에는 인간을 속박하고 군림하려는 정치적 야심과 종교적 독선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의 자유를 향상시키고, 사제들은 권력보다 인간을 섬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오리엔트,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의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목차

차례
머리말

1부 바빌로니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통합 17

1장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적 변동 19
2장 바빌로니아 문명과 함무라비 법전 35
3장 영웅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54
4장 죽음에 도전한 길가메시 75
5장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 89
6장 신의 탄생과 사제들의 권력투쟁 106

2부 아시리아, 지구라트와 성스러운 결혼 125

1장 포로의 껍질을 벗긴 군국주의 127
2장 아시리아의 충성맹세와 종주조약 140
3장 2500년간 묻혀 있던 아시리아의 도시들 159
4장 사랑과 전쟁, 두 얼굴을 가진 여신 179
5장 왕과 여신의 신성결혼 195
6장 두무지왕의 변신과 예수 그리스도 215

3부 칼데아, 점성술과 비인격적인 신 235

1장 아시리아의 멸망과 칼데아의 발흥 237
2장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몰락 249
3장 대사제가 왕의 뺨을 때린 신년축제 261
4장 마르두크 신권에 도전한 나보니두스왕 273
5장 칼데아의 천문학과 추상적인 신 289
6장 칼데아의 점성술과 유럽의 별점 307

4부 오리엔트와 그리스, 종교적 교류 329

1장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 전쟁과 종교적 관용주의 331
2장 페르시아의 영적인 조로아스터교 345
3장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주의와 종교의 혼합 358
4장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 381
5장 그리스의 사제 오르페우스 403
6장 피타고라스의 종교개혁과 인간신 엠페도클레스 423
7장 오시리스 신비종교 445

5부 로마 제국과 유대, 신비종교와 예수 신화 463

1장 신인들의 탄생과 천체의 징조, 동정녀 수태 465
2장 예수와 신인들의 기적 480
3장 예수와 신인들의 수난, 죽음, 부활 502
4장 경이로운 기독교 영지주의 문헌 525
5장 영지주의와 문자주의의 갈등 548
6장 기독교 영지주의와 예수의 부활 571
7장 이집트와 티베트의 죽음의 기술 594

저자 소개 

저 : 이원구
 
전북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뒤 30여 년 동안 중 ·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일하면서 주로 문예창작 방법을 실험해왔다. 전국국어교사모임 창립 회장으로도 활동하며 민족문학 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현재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서울 휘경여자중학교를 퇴임하고 대안학교와 중동 지방의 신화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대안교육을 모색하며 음악, 미술, 문학이 어우러진 감성교육을 위주로 하는 〈푸른 느낌학교...

책 속으로

기원전 1570년 히타이트를 내쫒고 바빌론을 400여 년 동안 지배한 종족은 비인도-아리안족인 카시트(Kassite)였다. 그러나 수메르 민족의 영토를 거의 정복한 이 카시트족은 기원전 1155년 엘람족의 침공으로 무너졌다. 그 후 엘람족은 신흥세력인 아시리아(Assyria)와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아시리아의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엘람족을 내쫒고 수도인 수사까지 진격하여 100년간 바빌론을 다스렸던 것이다

아카드어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은 대부분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기원전 2000년대 중반에 히타이트 제국에서도 아카드어 개정본이 유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작품의 일부분이 튀르키예 남부의 술탄테베, 시리아 해안의 우가리트에서 발견되었고, 아카드 번역본이 팔레스타인의 므깃도에서 발견되었다. 이를 보면 성경의 편찬자들도 길가메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따라서 중동지역 전체에서 이 작품이 연구되고, 번역되고, 모방되었음이 확실하다.

단적으로 바빌로니아인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강물이 흐르면서 만들어 내는 침적토를 관찰하면서 세계의 기원을 상상하고 자연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오랜 동안 충적된 땅에서 이루어졌고, 수메르 문명도 강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페르시아만의 뭉게구름을 상상하면서 이 서사시가 창작되었을 것이다. 결국 바빌로니아인은 히브리의 여호와신의 창조론에 반하여 스스로 만들어졌다는 자연적인 창조론으로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년축제 5일이 되면 마르두크신이 왕권을 다시 승인하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 진행된다. 먼저 사제들이 향과 횃불, 강물로 신전을 정화한 뒤에 수컷 희생양의 목을 베어 강물에 던지면서 지난 해의 잘못을 씻는다. 다음에 신전에서 손을 씻은 왕이 왕권의 상징인 왕홀과 반지, 왕관, 무기 등을 대사제에 넘겨 마르두크의 신상 안치소에 보관한다. 이어서 놀랍게도 대사제가 왕의 뺨을 때리고 귀를 잡고 끌고 마르두크 신상 앞에서 땅에 엎드리게 하여 잘못을 고백하라고 명령한다.

파라오의 부활의식은 이집트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오시리스 축제였다. 이집트는 큰개자리의 일등성 시리우스가 정남쪽에서 해 뜨기 전 새벽에 빛날 때 나일강이 범람했다. 그리고 나일강의 강물이 물러가는 11월에 곡식을 파종하고 이듬해 봄 3월에서 5월에 수확했다. 그때 첫 수확한 이삭을 이시스 여신에게 바치면서 슬픔을 호소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 이유는 곡식이 바로 오시리스를 상징하고 그의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헤로도토스는 오시리스의 수난을 기념하는 종교의식이 매년 벌어졌는데, 이 날은 밤중에 오시리스를 애도하면서 모든 죽은 자를 위해서 등불을 밝혔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정치성과 사제들의 권력을 비판한 인물은 18세기 영국의 역사철학자 기번이다. 기번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 행정가들의 순결성은 점차 타락해 갔다. 초기 기독교에서 주교는 신도들과 동등했으며 심부름꾼에 불과하여 각 교회는 독립적 공화국과 같았다. 그러나 2세기 말경 세력이 커진 주교들은 신도들의 권리를 침해했고, 3세기가 되자 신도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했다. 또 사제들에게 자격을 주는 특권을 독점하고, 신도들이 선거권을 빼앗기면서 기독교는 귀족정치로 변했다. 그리고 소위 성직자들은 포상과 파문을 이용했는데, 포상은 주로 십일조라는 헌금이었고, 처벌은 영적 세속적 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파문이었다.

‘그렇다면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반문하면서 케이건은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먼저 서양 철학적 관점, 즉 삶은 좋은 것이고 그것의 상실은 나쁜 것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다. 다음에 동양 철학적 관점, 즉 삶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것이 아니고 따라서 상실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다. 이를테면,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삶은 고통이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고 실재하지 않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종교의 왜곡과 삶의 왜곡의 연속성을 단절하기

고대 이집트와 서남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아울러 일컫는 오리엔트 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역사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매우 발달한 인류의 문명으로 손꼽힌다. 많은 인류학자는 다른 종들의 군집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수가 한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인류는 그 한계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류의 핵심적인 특징으로서 종교를 가진다는 특성을 꼽는다. 즉, 종교가 생물학적 군집의 최대 수용량의 한계를 돌파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신이 그 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 안에서 동질감을 통한 안정감을 부여할 뿐 아니라 그 신을 섬기는 종교 안에서 신을 섬기기 위한 율법과 규례가 그 자체로 한 공동체 내에서의 도덕과 법규들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형성된 군집은 공동체의 규범과 문화를 만들고, 그렇게 탄생한 문화는 다시 종교를 심화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인류 초기의 문명을 살피는 일 또한 필연적으로 종교에 대한 숙고가 뒤따른다.

저자는 특별히 종교에 대해 “인간의 자유를 향상시키고 사제들은 권력보다 인간을 섬겨야 한다”라고 말한다. 즉, 인간이 신 혹은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증은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종교를 살필 때 그 다각적인 의미와 면모를 지닌다. 가령 희생과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지극히 종교화되고 정치화되어 권위를 드높여 갔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대중들 위에 군림하는 수단이 되었다. 눈을 돌려 이슬람의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사랑을 실천하라는 꾸란의 전체적인 가르침보다는 일부의 구절을 들어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종교의 세속화와 권위화로 인한 왜곡은 개신교, 로마 가톨릭, 이슬람, 불교, 힌두교를 막론하고 역사의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종교의 본질이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역으로 인간을 억압한 역사적 사례들이 더 자주 눈에 띄게 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지 ‘현상적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인류의 최초의 문명과 그 종교로부터의 원인을 물어 가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초기 문명의 종교인 수메르 신화로부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영향을 받은 결과일 따름이다. 또한 기독교의 복음이 퇴락해 갈수록 인류의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신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는 메시지로 현세보다는 내세에 집중하게 한다는 부작용을 함께 지닌다. 그렇기에 종교가 인간의 삶을 더욱 가치롭고 풍요롭게 만들기보다는 종교와 함께 퇴락의 길을 걷게 한다고 분석한다. 저자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분석하고 포착하는 것에 있다. 또한 한 번뿐인 삶을 죽음에 대한 존재적인 불안과 근심에서 벗어나 가치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