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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반 대중을 의식하고 쓴 개설서로, 이슬람권의 역사에 대한 개설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학계를 지배해 오고 있던 오스만 제국사의 국가와 엘리트 중심의 사관에서 '노동의 역사'를 통해 '밑으로부터의 역사'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는 '노동'에 대해 '변혁의 주체'라는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제반현상'들을 모두 중시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하려 한다는 뜻이다. 또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더불어 오스만 제국의 통치 방법과 오스만 사회와 민간문화, 집단 간의 협동과 갈등, 오스만 제국의 유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 자료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한 시대, 제국을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서술하고자 하였고 오스만 제국에 대해 보다 넓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아직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에게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한 시대, 제국을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서술하고자 하였고 오스만 제국에 대해 보다 넓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아직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에게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사진목록
지도목록
터키어 발음에 대한 안내와 지명에 대한 일러두기
옮긴이의 글
서문
1.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
2.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1683년까지
3.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오스만 제국
4. 19세기
5. 오스만인들과 그 주변 세계
6. 오스만 제국의 통치 방법
7. 오스만의 경제 : 인구ㆍ교통ㆍ무역ㆍ농업ㆍ제조업
8. 오스만 사회와 민간 문화
9. 집단 간의 협동과 갈등
10. 오스만 제국의 유산
오스만 왕조의 계보
오스만 제국사 연표, 1260~1923
참고문헌
찾아보기
지도목록
터키어 발음에 대한 안내와 지명에 대한 일러두기
옮긴이의 글
서문
1.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
2.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1683년까지
3.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오스만 제국
4. 19세기
5. 오스만인들과 그 주변 세계
6. 오스만 제국의 통치 방법
7. 오스만의 경제 : 인구ㆍ교통ㆍ무역ㆍ농업ㆍ제조업
8. 오스만 사회와 민간 문화
9. 집단 간의 협동과 갈등
10. 오스만 제국의 유산
오스만 왕조의 계보
오스만 제국사 연표, 1260~1923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왜 오스만 제국사를 읽어야 하는가?
중세에서 근대까지 중동과 발칸반도, 아프리카의 일부를 통치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존재했던 제국! 오스만 제국의 유산은 유럽과 중동 지역, 더 나아가 유럽계 인구가 살고 있는 신대륙 사회의 문화와 역사 의식 속에 남아 있고, 서유럽 제국주의 절정기를 힘겹게 버텨낸 말기의 오스만 제국은 이미 식민화 되어 있었던 외국의 여러 무슬림 집단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중요성 외에도 그 역사 내내 보여준 타종교와 타민족들에 대한 관용적인 통치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비록 마지막 19~20세기에 여러 민족문제가 불거지지만, 오스만 제국은 무슬림 외에 기독교인, 유대인, 정교회 신자 등과 튀르크인 외에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아랍인 등 여러 집단들의 엄청난 다양성이 공존, 교류하면서 지탱해온 사회였다. 오늘날 발칸과 중동의 민족문제는 오히려 오스만 시대에 다양한 집단이 조화롭게 섞여 사는 사회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혼효된 인구 구성에서 균질적인 국민국가로 변모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게 진행되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화려했던 역사와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경제ㆍ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통해, 한때 오스만 제국이 통치했던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서 여전히 불안정한 지역들의 분쟁과 공존은 물론 역사적인 근원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을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다룬 개설서
『오스만 제국사』는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종말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주로 오스만 세력이 유럽에서 물러난 18세기 초부터 서구 열강들이 아랍 지역을 강제 분할했던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기를 국가 위주의 정치사뿐만 아니라 오스만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국의 마지막 시기 동안 있었던 가장 중요한 트렌드들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는 소수민족 문제, 여성 문제 같은 지금까지 치열한 논란이 있는 주제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사 학계의 석학인 도널드 쿼터트는 오스만 제국사를 오래 연구한 권위가 살아있으면서도 발랄하고 읽기 쉬운 문장을 구사했다. 또한 책 속에 지도와 일러스트, 19세기 자료 사진들, 각 장마다 해당하는 추천 문헌목록과 오스만 제국 연대표 등을 실어 오스만 제국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관심 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도움이 되도록 했다.
【주요 내용】
오스만 제국 경제사 분야 석학인 도널드 쿼터트의 신작!
도널드 쿼터트는 주로 오스만 세계 근대사에 초점을 맞춰 책과 논문들을 집필해왔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산업혁명 시기의 오스만 제조업Ottoman Manufacturing in the Ag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1993)과 할릴 이날즉과 공동집필한 『오스만 제국의 경제?사회사, 1300-1914 An Empire and Social History of the Ottoman Empire, 1300-1914』(1994)가 있다. 후자는 오스만 제국의 경제사 분야 최고의 저술로 꼽힌다. 그의 신작 『오스만 제국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유럽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시리즈에 속한다.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의 개설서이긴 하나, 오스만 제국 후반부 1700-1922년 사이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주요했던 트렌드들에 대한 쿼터트의 엄밀한 조사와 연구가 녹아 있다.
1장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 입문자나 일반 독자, 전공학생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면서 시작된다. 남동부 유럽의 학생들은 대학에서 오스만 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공부한다. 그것은 그 지역의 역사가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서구의 학생들은 어떤가? (물론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 국가의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오스만의 역사는 이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쿼터트는 유럽 역사와 중동 지역,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제국의 생생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기술했다. (p.30)
2장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1683년까지
이 장에서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오스만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을 설명한다. 저자는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시기를 “아주 작아서 잘 눈에 띄지도 않았던 소공국 오스만 국가가 거대한 영토를 지닌 제국으로 엄청나게 확장한 시기”(p.40)라고 한다. 또한 단지 팽창의 시기였을 뿐 아니라, 오스만 국가가 통합되던 시기였다. 쿼터트는 이 시기에 오스만 제국이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을 설명하면서, 적들의 문제보다는 오스만 자체의 노력에 더 방점을 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는 오스만 제국의 점진적인 정복 방법들, 화약무기의 중요성 부각, 데브시르메 제도 같은 것들을 주로 다룬다.
3장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오스만 제국
정치적, 군사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시대는 합스부르크와 러시아에게 영토를 빼앗기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쿼터트는 그 쇠퇴가 1683년 비엔나 포위가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많은 오스만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부패가 16세기 후반부에 시작된 군사적,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다는 입장에 동의해왔다. 제국의 중심부에 있던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쇠약해지는 데 대한 방안을 찾았지만 결국 성공하진 못했다.
4장 19세기
경제적, 군사적 몰락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국내의 반란과 발칸, 아나톨리아, 아랍 지역에서 영토를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학자들이 ‘근대화’라고 말하는 이 과정에서 오스만 사회는 변모를 계속했다. 이 시기에 오스만 국가의 관료 조직은 전체적으로 팽창했고, 유럽의 자본들은 상업이나 유통, 도시 기반시설들에 투자하면서 오스만의 경제를 통제할 힘을 갖게 되었다.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오스만 국가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신민들 간의 관계에서 계속되는 변화”(p.113)는 19세기 오스만 정책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5장 오스만인들과 주변 세계
이 장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다른 국가들, 제국과 민족 사이의 관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외교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1700년에서 1922년 사이의 국제 질서 속에서 오스만 제국이 일류에서 이류로 내려앉는 지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저자는 오스만 외교가 간헐적 외교 방법에서 상시적 외교 방법으로 전환되는 점을 고찰한다. 칼리프라는 지위 또한 외교적 도구였으며, 오스만 국가는 이 종교적 수단을 세속적인 국가의 목적을 위해 18세기부터 점점 더 많이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과 유럽, 이란, 인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개관한다.
6, 7, 8장에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이 새로운 시대에 역행할 수 없는 변화와 재구성(탄지마트)을 위해 노력했던 시기의 국가, 사회, 경제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6장 ‘오스만의 통치 방법’에서 저자는 오스만 왕조의 계승 원칙과 오스만 행정 조직(여기서 데브시르메 제도에 대해 한번 더 강조한다 p.164), 중앙-지방 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7장 오스만 경제는 오스만의 인구, 운송, 교역, 농업, 제조업에 관해 다루는데, 통계보다는 제국 내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갔는지, 그 양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 “인구 규모, 인구 이동, 거주 구역에 대한 인구학적 정보들을 주요 경제 부문에서의 변화들과 연관시키는 복합적인 회로망을 강조”한다. 8장에서는 사회 조직, 민간 문화, 사교의 형태들을 살펴보기 위해 여러 특수한 문헌들을 이용했다. 복합적인 오스만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 이동의 변화에 따른 국가의 복장 규제법, 사생활 공간, 공공장소, 커피점과 목욕탕 등 교제의 여러 형태와 장소들에 대해 자료사진과 함께 살펴본다.
9장 집단 간의 협동과 갈등
이 장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가변적인 견해들의 근원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를 탐구한다. 20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여러 나라들은 ‘국민적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각국의 국가적 손익 계산에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역사 대부분에서 여러 종족과 종교 집단을 결합시켜왔다. 오스만 제국에서의 다양한 집단 간의 관계 등을 살펴봄으로써 한때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던 영토들에서 문제가 된 여러 갈등(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쿠르드족 문제, 아르메니아 문제, 보스니아와 코소보 사태 등)의 근원을 짚어본다.
10장 오스만 제국의 유산
19~20세기의 주도적인 역사 서술은 민족주의 논리의 경향을 띠었던 탓에, 역사적 진화 속에서 오스만 제국이 지녔던 다종족, 다종교적 구조물의 자리를 없애버렸다. 저자는 오스만인들에 대해
끔찍한 적대감을 드러냈던 “발칸 전역-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세르비아 등-의 작가들, 정치가들과 지식인들”(p.300)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불가리아인, 루마니아인, 그리스인들 사이에는 오스만 세기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대감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실제 정책이라기보다는 오스만 제국 이후 위 국가들의 역사에서, 특히 그들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모든 계승국가들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의 과거에 대한 비난이 뒤따랐다. 각각의 국민들에게 오스만인들은 긴 오스만 세기 동안 그들의 ‘민족적’ 가치를 억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이유로 발칸, 아랍, 아나톨리아의 계승국가들은 오스만 제국 이후 시대에 각각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수십 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완전히 거부했던 것이다.
때로는 지역들의 역사적 근원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의 갈등과 협동에 대해 좀더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이해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왜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정치인들이 감사해야 하고,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도널드 쿼터트의 이 책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유럽 세계에서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지역들의 역사적인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중동과 발칸반도, 아프리카의 일부를 통치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존재했던 제국! 오스만 제국의 유산은 유럽과 중동 지역, 더 나아가 유럽계 인구가 살고 있는 신대륙 사회의 문화와 역사 의식 속에 남아 있고, 서유럽 제국주의 절정기를 힘겹게 버텨낸 말기의 오스만 제국은 이미 식민화 되어 있었던 외국의 여러 무슬림 집단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중요성 외에도 그 역사 내내 보여준 타종교와 타민족들에 대한 관용적인 통치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비록 마지막 19~20세기에 여러 민족문제가 불거지지만, 오스만 제국은 무슬림 외에 기독교인, 유대인, 정교회 신자 등과 튀르크인 외에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아랍인 등 여러 집단들의 엄청난 다양성이 공존, 교류하면서 지탱해온 사회였다. 오늘날 발칸과 중동의 민족문제는 오히려 오스만 시대에 다양한 집단이 조화롭게 섞여 사는 사회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혼효된 인구 구성에서 균질적인 국민국가로 변모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게 진행되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화려했던 역사와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경제ㆍ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통해, 한때 오스만 제국이 통치했던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서 여전히 불안정한 지역들의 분쟁과 공존은 물론 역사적인 근원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을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다룬 개설서
『오스만 제국사』는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종말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주로 오스만 세력이 유럽에서 물러난 18세기 초부터 서구 열강들이 아랍 지역을 강제 분할했던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기를 국가 위주의 정치사뿐만 아니라 오스만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국의 마지막 시기 동안 있었던 가장 중요한 트렌드들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는 소수민족 문제, 여성 문제 같은 지금까지 치열한 논란이 있는 주제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사 학계의 석학인 도널드 쿼터트는 오스만 제국사를 오래 연구한 권위가 살아있으면서도 발랄하고 읽기 쉬운 문장을 구사했다. 또한 책 속에 지도와 일러스트, 19세기 자료 사진들, 각 장마다 해당하는 추천 문헌목록과 오스만 제국 연대표 등을 실어 오스만 제국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관심 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도움이 되도록 했다.
【주요 내용】
오스만 제국 경제사 분야 석학인 도널드 쿼터트의 신작!
도널드 쿼터트는 주로 오스만 세계 근대사에 초점을 맞춰 책과 논문들을 집필해왔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산업혁명 시기의 오스만 제조업Ottoman Manufacturing in the Ag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1993)과 할릴 이날즉과 공동집필한 『오스만 제국의 경제?사회사, 1300-1914 An Empire and Social History of the Ottoman Empire, 1300-1914』(1994)가 있다. 후자는 오스만 제국의 경제사 분야 최고의 저술로 꼽힌다. 그의 신작 『오스만 제국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유럽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시리즈에 속한다.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의 개설서이긴 하나, 오스만 제국 후반부 1700-1922년 사이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주요했던 트렌드들에 대한 쿼터트의 엄밀한 조사와 연구가 녹아 있다.
1장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 입문자나 일반 독자, 전공학생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면서 시작된다. 남동부 유럽의 학생들은 대학에서 오스만 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공부한다. 그것은 그 지역의 역사가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서구의 학생들은 어떤가? (물론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 국가의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오스만의 역사는 이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쿼터트는 유럽 역사와 중동 지역,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제국의 생생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기술했다. (p.30)
2장 오스만 제국의 기원에서 1683년까지
이 장에서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오스만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을 설명한다. 저자는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시기를 “아주 작아서 잘 눈에 띄지도 않았던 소공국 오스만 국가가 거대한 영토를 지닌 제국으로 엄청나게 확장한 시기”(p.40)라고 한다. 또한 단지 팽창의 시기였을 뿐 아니라, 오스만 국가가 통합되던 시기였다. 쿼터트는 이 시기에 오스만 제국이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을 설명하면서, 적들의 문제보다는 오스만 자체의 노력에 더 방점을 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는 오스만 제국의 점진적인 정복 방법들, 화약무기의 중요성 부각, 데브시르메 제도 같은 것들을 주로 다룬다.
3장 1683년에서 1789년까지의 오스만 제국
정치적, 군사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시대는 합스부르크와 러시아에게 영토를 빼앗기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쿼터트는 그 쇠퇴가 1683년 비엔나 포위가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많은 오스만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부패가 16세기 후반부에 시작된 군사적,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다는 입장에 동의해왔다. 제국의 중심부에 있던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쇠약해지는 데 대한 방안을 찾았지만 결국 성공하진 못했다.
4장 19세기
경제적, 군사적 몰락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국내의 반란과 발칸, 아나톨리아, 아랍 지역에서 영토를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학자들이 ‘근대화’라고 말하는 이 과정에서 오스만 사회는 변모를 계속했다. 이 시기에 오스만 국가의 관료 조직은 전체적으로 팽창했고, 유럽의 자본들은 상업이나 유통, 도시 기반시설들에 투자하면서 오스만의 경제를 통제할 힘을 갖게 되었다.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오스만 국가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신민들 간의 관계에서 계속되는 변화”(p.113)는 19세기 오스만 정책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5장 오스만인들과 주변 세계
이 장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다른 국가들, 제국과 민족 사이의 관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외교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1700년에서 1922년 사이의 국제 질서 속에서 오스만 제국이 일류에서 이류로 내려앉는 지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저자는 오스만 외교가 간헐적 외교 방법에서 상시적 외교 방법으로 전환되는 점을 고찰한다. 칼리프라는 지위 또한 외교적 도구였으며, 오스만 국가는 이 종교적 수단을 세속적인 국가의 목적을 위해 18세기부터 점점 더 많이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과 유럽, 이란, 인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개관한다.
6, 7, 8장에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이 새로운 시대에 역행할 수 없는 변화와 재구성(탄지마트)을 위해 노력했던 시기의 국가, 사회, 경제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6장 ‘오스만의 통치 방법’에서 저자는 오스만 왕조의 계승 원칙과 오스만 행정 조직(여기서 데브시르메 제도에 대해 한번 더 강조한다 p.164), 중앙-지방 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7장 오스만 경제는 오스만의 인구, 운송, 교역, 농업, 제조업에 관해 다루는데, 통계보다는 제국 내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갔는지, 그 양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 “인구 규모, 인구 이동, 거주 구역에 대한 인구학적 정보들을 주요 경제 부문에서의 변화들과 연관시키는 복합적인 회로망을 강조”한다. 8장에서는 사회 조직, 민간 문화, 사교의 형태들을 살펴보기 위해 여러 특수한 문헌들을 이용했다. 복합적인 오스만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 이동의 변화에 따른 국가의 복장 규제법, 사생활 공간, 공공장소, 커피점과 목욕탕 등 교제의 여러 형태와 장소들에 대해 자료사진과 함께 살펴본다.
9장 집단 간의 협동과 갈등
이 장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가변적인 견해들의 근원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를 탐구한다. 20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여러 나라들은 ‘국민적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각국의 국가적 손익 계산에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역사 대부분에서 여러 종족과 종교 집단을 결합시켜왔다. 오스만 제국에서의 다양한 집단 간의 관계 등을 살펴봄으로써 한때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던 영토들에서 문제가 된 여러 갈등(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쿠르드족 문제, 아르메니아 문제, 보스니아와 코소보 사태 등)의 근원을 짚어본다.
10장 오스만 제국의 유산
19~20세기의 주도적인 역사 서술은 민족주의 논리의 경향을 띠었던 탓에, 역사적 진화 속에서 오스만 제국이 지녔던 다종족, 다종교적 구조물의 자리를 없애버렸다. 저자는 오스만인들에 대해
끔찍한 적대감을 드러냈던 “발칸 전역-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세르비아 등-의 작가들, 정치가들과 지식인들”(p.300)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불가리아인, 루마니아인, 그리스인들 사이에는 오스만 세기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대감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실제 정책이라기보다는 오스만 제국 이후 위 국가들의 역사에서, 특히 그들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모든 계승국가들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의 과거에 대한 비난이 뒤따랐다. 각각의 국민들에게 오스만인들은 긴 오스만 세기 동안 그들의 ‘민족적’ 가치를 억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이유로 발칸, 아랍, 아나톨리아의 계승국가들은 오스만 제국 이후 시대에 각각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수십 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완전히 거부했던 것이다.
때로는 지역들의 역사적 근원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의 갈등과 협동에 대해 좀더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이해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왜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정치인들이 감사해야 하고,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도널드 쿼터트의 이 책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유럽 세계에서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지역들의 역사적인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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