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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다
김정섭 박사 7년 만의 신작
지정학적 중견국인 한국으로선 국제정치의 향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고자 한다. 손꼽히는 외교안보 엘리트이자 《외교 상상력》의 저자인 김정섭 박사의 7년 만의 신작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광대한 전장을 가로지르며 강대국의 행동 패턴을 읽어낸다.
저자는 20세기의 태평양전쟁, 21세기의 우크라이나전쟁, 가상의 대만전쟁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이 전쟁들은 모두 강대국의 세력권과 이익선에 따른 사고방식을 공통적으로 잘 드러낸다. 이는 지정학적 전통이 미약한 한국으로선 낯선 관점이지만, 국제정세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려면 숙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저자는 현대 전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민간인 폭격 및 원폭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논한다. 그것이 어떤 논리로 시작되었고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전쟁의 상수가 되어버리기까지의 상황을 추적한다.
김정섭 박사 7년 만의 신작
지정학적 중견국인 한국으로선 국제정치의 향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고자 한다. 손꼽히는 외교안보 엘리트이자 《외교 상상력》의 저자인 김정섭 박사의 7년 만의 신작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광대한 전장을 가로지르며 강대국의 행동 패턴을 읽어낸다.
저자는 20세기의 태평양전쟁, 21세기의 우크라이나전쟁, 가상의 대만전쟁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이 전쟁들은 모두 강대국의 세력권과 이익선에 따른 사고방식을 공통적으로 잘 드러낸다. 이는 지정학적 전통이 미약한 한국으로선 낯선 관점이지만, 국제정세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려면 숙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저자는 현대 전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민간인 폭격 및 원폭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논한다. 그것이 어떤 논리로 시작되었고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전쟁의 상수가 되어버리기까지의 상황을 추적한다.
목차
서론 전지적 강대국 시점
1부 태평양전쟁
1장 이길 수 없는 전쟁
2장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일들
3장 원폭의 비극과 전략폭격의 논리
4장 전후 질서와 현대 일본
2부 우크라이나전쟁
5장 제국적 열망, 초라한 현실
6장 그들 각자의 전쟁 독법
7장 국제정치의 폭력성에 대하여
8장 러시아와 유라시아 질서의 미래
3부 대만전쟁
9장 신흥 강국의 부상과 고전적 딜레마
10장 중국의 야망, 미국의 응전
11장 두 거인의 대만 전략
12장 전쟁 시나리오와 워게임
13장 과연 감당 가능한 전쟁인가
14장 지정학적 대타협의 가능성
결론 제국의 눈으로 본 국제정치
1부 태평양전쟁
1장 이길 수 없는 전쟁
2장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일들
3장 원폭의 비극과 전략폭격의 논리
4장 전후 질서와 현대 일본
2부 우크라이나전쟁
5장 제국적 열망, 초라한 현실
6장 그들 각자의 전쟁 독법
7장 국제정치의 폭력성에 대하여
8장 러시아와 유라시아 질서의 미래
3부 대만전쟁
9장 신흥 강국의 부상과 고전적 딜레마
10장 중국의 야망, 미국의 응전
11장 두 거인의 대만 전략
12장 전쟁 시나리오와 워게임
13장 과연 감당 가능한 전쟁인가
14장 지정학적 대타협의 가능성
결론 제국의 눈으로 본 국제정치
책 속으로
평시에는 국제정치의 야수적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제정치도 마치 국내정치 영역처럼 법과 규율이 존재하고 국가들은 이 질서 내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보 불안감이 임계점을 넘을 때, 또는 미래가 암울하다는 절망에 빠질 때 국가는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럴 때 강대국은 무자비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며, 그 과정에서 국제정치의 본질과 작동 원리가 거칠게 드러난다.
--- p.9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흥분되고 밝은 에너지가 국가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중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는 당시 태평양전쟁 발발 소식에 이렇게 반응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지나사변[중일전쟁] 앞에서 하나가 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의혹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 일본이 동아 건설의 미명에 숨어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지금껏 의심해왔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은 훌륭하게 지나사변을 완수했고, 그 의의를 세계에 부활시켰다.”
--- p.29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약 1년간 일본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이었고, 일본이 필연적으로 연루될 만큼 큰 국익이 걸려 있는 전쟁도 아니었다. 그러나 전황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일본 군부는 폴란드 침공, 프랑스 진격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전격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자 전쟁의 향배가 독일 쪽으로 기운다고 판단한 일본은 1차 대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승전국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 p.52
원자탄이 떨어질 곳은 충격을 극대화하고 극적으로 만들 지역이어야 했다. 가장 부합하는 도시는 히로시마였다. 순수 민간인 지역이 아니면서도 많은 군수공장 노동자들을 일거에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구 35만으로 일본에서 여덟째로 큰 도시로서 도쿄와 달리 미 공군의 전략폭격 피해를 입지 않았던 점도 고려되었다. 신무기의 효과를 시험하는 장소는 ‘깨끗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화에서 비껴 있던 행운이 이제는 비극의 무대로 뒤바뀐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교토는 그곳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스팀슨 전쟁성 장관의 반대로 제외되었다. 그는 교토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p.83
가장 가혹했던 것은 다시는 군사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도록 일본 경제의 기초를 파괴한다는 방침이었다. 일본의 생산 시설은 용도를 전환하거나, 다시 국가로 이전하거나, 아니면 고철로 만들어버렸다. 일본 경제에 필요한 최소한도 이외의 모든 것은 제거한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수준보다 높지 않아야 함을 의미했다. “일본인의 생활 수준이 조선인, 인도네시아인, 베트남인보다 더 좋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이 에드윈 폴리 배상위원장의 생각이었다.
--- p.106
러시아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안보 불안 심리다. 러시아의 집요한 영토 확장의 근저에는 러시아가 처해 있는 자연 환경과 그로 인한 안보 취약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은 자연적 경계가 거의 없는 대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위치에 있는 우랄산맥 정도가 평지에서 솟아 나온 지형인데, 평균 높이가 800~1,000미터 정도다. 서울의 북한산과 비슷하다. 이 우랄산맥부터 폴란드, 헝가리까지 쭉 평지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모두 이 대평원을 달려 러시아로 진군해 들어올 수 있었다.
--- p.124
미국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은 부담인 동시에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수세에 몰렸던 미국에게 전 지구적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시절 훼손된 미국의 대외 리더십과 대유럽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이자 구호였다. 또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중국과의 전략경쟁 프레임을 짜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을 연계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가 우크라이나전쟁 ‘한 방’으로 해결되고 있다. 구호와 논리, 설득과 압박만으로 되기 어려운 작업이 지정학적 충격 하나로 척척 진행되는 형국 인 것이다.
--- p.160
이라크 침공도 잊히지 않고 소환되는 미국의 치부다. 미국은 존재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한 전력이 있다. 유엔의 결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로 인해 이라크에서는 혼란과 무질서, 종파적 충돌이 이어졌고, 30만 명이 목숨을 잃고, 6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규범을 무시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기억이 있는데, 우크라이나전쟁을 “인류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이 남반구 국가들에 먹힐 리가 없다.
--- p.176
시간이 갈수록 현실적인 방안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반도 모델’이다. 1953년 종전 이래 한반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전쟁 지속 상태다. 영구적인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고, 단지 전투행위를 멈추는 데 합의했을 뿐이다. 당연히 국경선이 아니라 당시의 전투 경계선을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다. 우크라이나전쟁도 영구적 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이 어렵다면 한반도처럼 현재 상태에서 전쟁을 동결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게 한반도 모델의 아이디어다.
--- p.198
베이징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중국의 선의는 그 자체로는 거짓이 아닐 수 있다. 패권을 추구할 의도가 없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약속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의도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세대 중국의 리더들이 한 말을 후세대 베이징의 주인들이 지킨다는 보장이 있는가? 개인이 능력이 커지면 야망도 커지듯이, 국가도 힘을 갖게 되면 정체성과 목표가 달라질 수 있다. 도전국이 그 이전에 무어라 했든 일단 패권을 확립하고 나면 다른 국가들은 패권국의 선의에 의존해야 한다. 패권국이 이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며 존중과 자기절제로 주변국을 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던지는 고전적 딜레마다.
--- p.233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는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심리적·인식적 측면이다. 만약 미국이 대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 대만을 포기한 미국이 필리핀 이나 일본을 지켜준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또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에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중국이 대만을 장악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동아시아 우방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의심받을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더욱 중국의 영향력에 취약해질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세력균형이 베이징에 우호적인 방 향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p.251
대만을 둘러싼 미·중 전쟁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예방전쟁’의 압력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고 느낄 때, 다시 말해 미래가 암울하다는 비관적 전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국가는 절박해지고 위험한 선택도 불사하는 경향이 있다. 태평양전쟁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대만과의 통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초조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만인들의 정체성은 점점 대륙과 멀어지고 있으며, 민진당을 중심으로 한 대만 독립파가 중국의 주류가 되고 있다.
--- p.276~277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은 결국 ‘결의의 경쟁’ 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더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지가 전쟁의 향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확전의 부담을 누가 더 크게 느끼는지에 달려 있다. 상대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 확전으로 응수하기에 너무 비용이 크다고 생각하는 쪽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양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한다. 어떤 경로에 의해서든 일단 전쟁이 발생한다면 베이징이 패배를 감수하고 물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으로서도 물러서기 어려운 지정학적 가치가 있지만, 과연 워싱턴은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중국과 결의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을 정도로 대만은 미국에 사활적 이익인가?
--- p.289
피해 최소화와 대군사 타격을 중시하는 제한 핵전쟁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과 딜레마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과연 핵전쟁이 통제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다시 말해 ‘상대가 나의 조절된 대응에 호응하여 통제된 방식으로 핵교환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제한 핵전쟁론자들은 핵전쟁이 이른바 도발의 가격표에 따라 순차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합리적 파괴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연 적대적인 핵보유국 간에 합의된 눈금이 있는가? 미국 항공모함과 중국 비행장 간의 가치를 어떻게 비교할 것이며, 미국의 어느 도시와 중국의 어느 도시를 유사한 가치로 평가할 것인가? 지극히 불투명하다.
--- p.9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흥분되고 밝은 에너지가 국가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중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는 당시 태평양전쟁 발발 소식에 이렇게 반응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지나사변[중일전쟁] 앞에서 하나가 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의혹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 일본이 동아 건설의 미명에 숨어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지금껏 의심해왔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은 훌륭하게 지나사변을 완수했고, 그 의의를 세계에 부활시켰다.”
--- p.29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약 1년간 일본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이었고, 일본이 필연적으로 연루될 만큼 큰 국익이 걸려 있는 전쟁도 아니었다. 그러나 전황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일본 군부는 폴란드 침공, 프랑스 진격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전격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자 전쟁의 향배가 독일 쪽으로 기운다고 판단한 일본은 1차 대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승전국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 p.52
원자탄이 떨어질 곳은 충격을 극대화하고 극적으로 만들 지역이어야 했다. 가장 부합하는 도시는 히로시마였다. 순수 민간인 지역이 아니면서도 많은 군수공장 노동자들을 일거에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구 35만으로 일본에서 여덟째로 큰 도시로서 도쿄와 달리 미 공군의 전략폭격 피해를 입지 않았던 점도 고려되었다. 신무기의 효과를 시험하는 장소는 ‘깨끗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화에서 비껴 있던 행운이 이제는 비극의 무대로 뒤바뀐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교토는 그곳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스팀슨 전쟁성 장관의 반대로 제외되었다. 그는 교토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p.83
가장 가혹했던 것은 다시는 군사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도록 일본 경제의 기초를 파괴한다는 방침이었다. 일본의 생산 시설은 용도를 전환하거나, 다시 국가로 이전하거나, 아니면 고철로 만들어버렸다. 일본 경제에 필요한 최소한도 이외의 모든 것은 제거한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수준보다 높지 않아야 함을 의미했다. “일본인의 생활 수준이 조선인, 인도네시아인, 베트남인보다 더 좋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이 에드윈 폴리 배상위원장의 생각이었다.
--- p.106
러시아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안보 불안 심리다. 러시아의 집요한 영토 확장의 근저에는 러시아가 처해 있는 자연 환경과 그로 인한 안보 취약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은 자연적 경계가 거의 없는 대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위치에 있는 우랄산맥 정도가 평지에서 솟아 나온 지형인데, 평균 높이가 800~1,000미터 정도다. 서울의 북한산과 비슷하다. 이 우랄산맥부터 폴란드, 헝가리까지 쭉 평지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모두 이 대평원을 달려 러시아로 진군해 들어올 수 있었다.
--- p.124
미국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은 부담인 동시에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수세에 몰렸던 미국에게 전 지구적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시절 훼손된 미국의 대외 리더십과 대유럽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이자 구호였다. 또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중국과의 전략경쟁 프레임을 짜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을 연계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가 우크라이나전쟁 ‘한 방’으로 해결되고 있다. 구호와 논리, 설득과 압박만으로 되기 어려운 작업이 지정학적 충격 하나로 척척 진행되는 형국 인 것이다.
--- p.160
이라크 침공도 잊히지 않고 소환되는 미국의 치부다. 미국은 존재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한 전력이 있다. 유엔의 결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로 인해 이라크에서는 혼란과 무질서, 종파적 충돌이 이어졌고, 30만 명이 목숨을 잃고, 6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규범을 무시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기억이 있는데, 우크라이나전쟁을 “인류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이 남반구 국가들에 먹힐 리가 없다.
--- p.176
시간이 갈수록 현실적인 방안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반도 모델’이다. 1953년 종전 이래 한반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전쟁 지속 상태다. 영구적인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고, 단지 전투행위를 멈추는 데 합의했을 뿐이다. 당연히 국경선이 아니라 당시의 전투 경계선을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다. 우크라이나전쟁도 영구적 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이 어렵다면 한반도처럼 현재 상태에서 전쟁을 동결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게 한반도 모델의 아이디어다.
--- p.198
베이징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중국의 선의는 그 자체로는 거짓이 아닐 수 있다. 패권을 추구할 의도가 없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약속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의도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세대 중국의 리더들이 한 말을 후세대 베이징의 주인들이 지킨다는 보장이 있는가? 개인이 능력이 커지면 야망도 커지듯이, 국가도 힘을 갖게 되면 정체성과 목표가 달라질 수 있다. 도전국이 그 이전에 무어라 했든 일단 패권을 확립하고 나면 다른 국가들은 패권국의 선의에 의존해야 한다. 패권국이 이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며 존중과 자기절제로 주변국을 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던지는 고전적 딜레마다.
--- p.233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는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심리적·인식적 측면이다. 만약 미국이 대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 대만을 포기한 미국이 필리핀 이나 일본을 지켜준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또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에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중국이 대만을 장악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동아시아 우방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의심받을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더욱 중국의 영향력에 취약해질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세력균형이 베이징에 우호적인 방 향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p.251
대만을 둘러싼 미·중 전쟁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예방전쟁’의 압력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고 느낄 때, 다시 말해 미래가 암울하다는 비관적 전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국가는 절박해지고 위험한 선택도 불사하는 경향이 있다. 태평양전쟁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대만과의 통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초조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만인들의 정체성은 점점 대륙과 멀어지고 있으며, 민진당을 중심으로 한 대만 독립파가 중국의 주류가 되고 있다.
--- p.276~277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은 결국 ‘결의의 경쟁’ 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더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지가 전쟁의 향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확전의 부담을 누가 더 크게 느끼는지에 달려 있다. 상대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 확전으로 응수하기에 너무 비용이 크다고 생각하는 쪽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양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한다. 어떤 경로에 의해서든 일단 전쟁이 발생한다면 베이징이 패배를 감수하고 물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으로서도 물러서기 어려운 지정학적 가치가 있지만, 과연 워싱턴은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중국과 결의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을 정도로 대만은 미국에 사활적 이익인가?
--- p.289
피해 최소화와 대군사 타격을 중시하는 제한 핵전쟁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과 딜레마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과연 핵전쟁이 통제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다시 말해 ‘상대가 나의 조절된 대응에 호응하여 통제된 방식으로 핵교환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제한 핵전쟁론자들은 핵전쟁이 이른바 도발의 가격표에 따라 순차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합리적 파괴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연 적대적인 핵보유국 간에 합의된 눈금이 있는가? 미국 항공모함과 중국 비행장 간의 가치를 어떻게 비교할 것이며, 미국의 어느 도시와 중국의 어느 도시를 유사한 가치로 평가할 것인가? 지극히 불투명하다.
--- p.303
출판사 리뷰
전쟁이라는 렌즈로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다
지정학적 중견국인 한국으로선 국제정치의 향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 일제에 병합된 것도, 한국전쟁의 진창에 빠진 것도, 전후 개발과 부흥도, 모두 강대국 국제정치의 배경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역사는 한국에 말한다. 국제정세를 세밀히 읽고, 예측하고, 준비하라고. 이를 소홀히 할 때 한반도는 늘 근심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고.
이 책은 잠시 자기중심적 사고를 내려놓고 강대국의 눈으로 한번 세상을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강대국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한국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더욱 정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극히 한국을 위한 책이지만,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강대국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룬다. 요컨대, 강대국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특히 저자는 전쟁이라는 대사건에 주목한다. 모든 국제정치가 전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통해서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국제정치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평시에는 모호하거나 은밀히 감추어져 있었던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전쟁이라는 렌즈로 강대국 국제정치의 본질을 논하고자 한다.
강대국 정치의 기본,
세력권과 이익선
강대국의 국제정치는 무엇이 다를까? 저자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속한 전쟁들을 통해 이를 보여주려 한다. 과거, 현재, 심지어 미래의 전쟁까지 자세히 다룬다.
- 과거의 ‘태평양전쟁’
- 현재의 ‘우크라이나전쟁’
- 미래의 ‘대만전쟁’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전쟁들이다. 태평양전쟁은 20세기에 일본이 벌였고, 우크라이나전쟁은 21세기에 러시아가 감행했다. 그리고 대만전쟁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질 수도 있는 가상의 전쟁이다. 외견상 서로 긴밀한 연관성이 없는 전쟁들이다. 태평양전쟁이 원인이 되어 우크라이나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며, 우크라이나전쟁이 직접적으로 대만전쟁을 야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착안해 이들 세 전쟁을 한 권에 책에 묶었을까?
바로 세력권과 이익선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이다. 세 전쟁은 모두 자국의 세력권이 침범 받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벌어진 전쟁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그만큼이나 국제정치에서 기본적인 관점이다. 국익이 위협받으면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특히 강대국은 실제로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생각이 뜻밖에도 현실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국가들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한국으로선 그다지 착 달라붙는 사고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세력권 관점보다는 도덕적/정신적 관점이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광기라든가, 독재자의 야욕 혹은 오만함 등으로 전쟁의 원인이 일축되어버린다. 선과 악의 대결로서 외교를 단순화하고, 악의 세력으로 규정된 나라를 감정적으로 혐오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한국 외교의 리스크라고 보고, 강대국 정치의 기본이자 핵심을 이 책에서 실제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즉 세력권 관점을 취할 때 국제정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설명되는지, 얼마나 유용하게 예측되는지를 보여준다.
태평양전쟁,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대만전쟁
이 책은 총 3부의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각 부마다 하나의 개별 전쟁을 다룬다. 제1부는 태평양전쟁, 제2부는 우크라이나전쟁, 제3부는 대만전쟁이다. 전쟁과 전쟁을 비교하거나 연관성을 찾지 않고, 단지 개별적인 전쟁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둘러싼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진다.
각 부는 우선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흐름을 다룬 후에 국제정치학적인 분석을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고 나서 전망 내지 예측, 혹은 해법 등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울러 원폭과 민간인 폭격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도 각 부마다 한 챕터 정도를 할애해 세밀하게 살펴본다.
제1부 태평양전쟁 편에서는 진주만 공습부터 태평양전쟁, 그리고 일본의 패망과 전후 질서까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누가 봐도 열세인 전쟁을 왜 일본이 먼저 걸었는지, 그 치명적 결정의 원인을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또한 태평양전쟁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원폭 투하를 통해 현대 전쟁의 상수가 되어버린 전략폭격에 대해 다룬다.
제2부 우크라이나전쟁 편에서는 러시아 역사를 규정짓는 주요 장면을 살펴보고, 소련 해체의 과정을 서방과의 관계 속에서 자세히 따라간다. 저자는 그것에 바탕하여 우크라이나전쟁을 둘러싼 세계 각 진영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의지가 완강하고 뿌리 깊다는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의 전쟁을 어떻게 종식시킬지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본다.
제3부는 가상의 전쟁인 대만전쟁을 다룬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현재 세계적으로, 또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외교 전략의 측면에서 검토한다.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한지, 워게임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어떤지 제시한다. 핵전쟁의 여러 단계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흥미진진한 필력,
김정섭 박사 7년 만의 신작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필자의 전문성과 필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빛이 많이 바랬을 것이다. 저자 김정섭은 국내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에서 석사,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손꼽히는 외교안보 엘리트이다. 국방부와 청와대 NSC에서 실무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이러한 탄탄한 전문성에 더해, 그는 보기 드문 필력을 갖추었다. 전작 《외교 상상력》과 《낙엽이 지기 전에》를 본 독자들은 그의 명쾌하고 흥미진진한 필력을 거론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광대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면서도 스텝이 엉키지 않고 명쾌하고 간결하게 여러 맥락들을 잘 전달한다.
국제정치의 본질을 통찰하다
지정학적 중견국인 한국으로선 국제정치의 향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 일제에 병합된 것도, 한국전쟁의 진창에 빠진 것도, 전후 개발과 부흥도, 모두 강대국 국제정치의 배경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역사는 한국에 말한다. 국제정세를 세밀히 읽고, 예측하고, 준비하라고. 이를 소홀히 할 때 한반도는 늘 근심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고.
이 책은 잠시 자기중심적 사고를 내려놓고 강대국의 눈으로 한번 세상을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강대국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한국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더욱 정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극히 한국을 위한 책이지만,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강대국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룬다. 요컨대, 강대국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특히 저자는 전쟁이라는 대사건에 주목한다. 모든 국제정치가 전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통해서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국제정치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평시에는 모호하거나 은밀히 감추어져 있었던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전쟁이라는 렌즈로 강대국 국제정치의 본질을 논하고자 한다.
강대국 정치의 기본,
세력권과 이익선
강대국의 국제정치는 무엇이 다를까? 저자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속한 전쟁들을 통해 이를 보여주려 한다. 과거, 현재, 심지어 미래의 전쟁까지 자세히 다룬다.
- 과거의 ‘태평양전쟁’
- 현재의 ‘우크라이나전쟁’
- 미래의 ‘대만전쟁’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전쟁들이다. 태평양전쟁은 20세기에 일본이 벌였고, 우크라이나전쟁은 21세기에 러시아가 감행했다. 그리고 대만전쟁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질 수도 있는 가상의 전쟁이다. 외견상 서로 긴밀한 연관성이 없는 전쟁들이다. 태평양전쟁이 원인이 되어 우크라이나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며, 우크라이나전쟁이 직접적으로 대만전쟁을 야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착안해 이들 세 전쟁을 한 권에 책에 묶었을까?
바로 세력권과 이익선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이다. 세 전쟁은 모두 자국의 세력권이 침범 받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벌어진 전쟁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그만큼이나 국제정치에서 기본적인 관점이다. 국익이 위협받으면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특히 강대국은 실제로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생각이 뜻밖에도 현실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국가들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한국으로선 그다지 착 달라붙는 사고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세력권 관점보다는 도덕적/정신적 관점이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광기라든가, 독재자의 야욕 혹은 오만함 등으로 전쟁의 원인이 일축되어버린다. 선과 악의 대결로서 외교를 단순화하고, 악의 세력으로 규정된 나라를 감정적으로 혐오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한국 외교의 리스크라고 보고, 강대국 정치의 기본이자 핵심을 이 책에서 실제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즉 세력권 관점을 취할 때 국제정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설명되는지, 얼마나 유용하게 예측되는지를 보여준다.
태평양전쟁,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대만전쟁
이 책은 총 3부의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각 부마다 하나의 개별 전쟁을 다룬다. 제1부는 태평양전쟁, 제2부는 우크라이나전쟁, 제3부는 대만전쟁이다. 전쟁과 전쟁을 비교하거나 연관성을 찾지 않고, 단지 개별적인 전쟁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둘러싼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진다.
각 부는 우선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흐름을 다룬 후에 국제정치학적인 분석을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고 나서 전망 내지 예측, 혹은 해법 등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울러 원폭과 민간인 폭격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도 각 부마다 한 챕터 정도를 할애해 세밀하게 살펴본다.
제1부 태평양전쟁 편에서는 진주만 공습부터 태평양전쟁, 그리고 일본의 패망과 전후 질서까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누가 봐도 열세인 전쟁을 왜 일본이 먼저 걸었는지, 그 치명적 결정의 원인을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또한 태평양전쟁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원폭 투하를 통해 현대 전쟁의 상수가 되어버린 전략폭격에 대해 다룬다.
제2부 우크라이나전쟁 편에서는 러시아 역사를 규정짓는 주요 장면을 살펴보고, 소련 해체의 과정을 서방과의 관계 속에서 자세히 따라간다. 저자는 그것에 바탕하여 우크라이나전쟁을 둘러싼 세계 각 진영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의지가 완강하고 뿌리 깊다는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의 전쟁을 어떻게 종식시킬지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본다.
제3부는 가상의 전쟁인 대만전쟁을 다룬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현재 세계적으로, 또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외교 전략의 측면에서 검토한다.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한지, 워게임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어떤지 제시한다. 핵전쟁의 여러 단계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흥미진진한 필력,
김정섭 박사 7년 만의 신작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필자의 전문성과 필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빛이 많이 바랬을 것이다. 저자 김정섭은 국내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에서 석사,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손꼽히는 외교안보 엘리트이다. 국방부와 청와대 NSC에서 실무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이러한 탄탄한 전문성에 더해, 그는 보기 드문 필력을 갖추었다. 전작 《외교 상상력》과 《낙엽이 지기 전에》를 본 독자들은 그의 명쾌하고 흥미진진한 필력을 거론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광대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면서도 스텝이 엉키지 않고 명쾌하고 간결하게 여러 맥락들을 잘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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