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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의 초석이 된
여론조사의 대부, 1%의 승부사
한국갤럽 박무익 회장의 생애와 업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사회사 한국갤럽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박무익 평전』이 출간된다. 박무익 회장은 한국갤럽의 설립자다. 누구도 조사에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 군부독재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도 그는 오로지 공정하고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 생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1974년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를 설립하여 성장시킨 후 2017년 작고하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의 생애와 업적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박무익 회장은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적중하면서 한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1위와 2위 후보의 득표율 차이를 불과 1%포인트로 예측하는 강단을 보였고, 실제 선거 결과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해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거 예측조사와 정치지표 조사 등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이 땅에 여론조사의 꽃을 피우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던,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던 박무익 회장의 여정이 생생하게 담긴 이 책을 통해 여론조사에 대한 그의 철학과 열정을 알 수 있을뿐더러 그가 가진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여론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 여론조사는 여론의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이자 그 변화의 순간을 스냅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할 뿐이다. 매 시점 촬영한 스냅사진을 시간순으로 연속 배열하고 멀리서 보면 그 속의 움직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
민주주의도 없다.”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의 초석이 된
여론조사의 대부, 1%의 승부사
한국갤럽 박무익 회장의 생애와 업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사회사 한국갤럽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박무익 평전』이 출간된다. 박무익 회장은 한국갤럽의 설립자다. 누구도 조사에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 군부독재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도 그는 오로지 공정하고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 생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1974년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를 설립하여 성장시킨 후 2017년 작고하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의 생애와 업적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박무익 회장은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적중하면서 한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1위와 2위 후보의 득표율 차이를 불과 1%포인트로 예측하는 강단을 보였고, 실제 선거 결과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해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거 예측조사와 정치지표 조사 등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이 땅에 여론조사의 꽃을 피우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던,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던 박무익 회장의 여정이 생생하게 담긴 이 책을 통해 여론조사에 대한 그의 철학과 열정을 알 수 있을뿐더러 그가 가진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여론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 여론조사는 여론의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이자 그 변화의 순간을 스냅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할 뿐이다. 매 시점 촬영한 스냅사진을 시간순으로 연속 배열하고 멀리서 보면 그 속의 움직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
목차
프롤로그
Aqua 큰 바다로 흐르다
이런 예측이 있었는데 두고 봅시다
1943년 긴 여름
인산약방(仁山藥房)
조팝꽃 기억
구룡포에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청라언덕에서 마당 깊은 집까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인간의 조건
프라하의 봄, 한강의 봄
Ignis 불꽃이 튀다
안방의 태양
야인(野人) 생활
실크로드가 고속도로로 바뀌다
A lonely little big man
정릉 풍경
조사회사가 ‘벤처’이었던 시절
개성상인의 3대 원칙
친구보다 진리를
햇빛 도둑 바람 도둑
조지 갤럽 박사
인생을 바꾼 책
Gallup International의 20년 친구들
19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의
Terra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어
수레의 의견
한국에서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한가?
1980년 서울의 봄
봄날은 간다
사직동을 걷다
인류를 사랑한 세계인
여론전쟁의 서막
최초의 선거 예측 도전
광장정치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숫자
가리봉동 옥상의 비극
빅브라더의 그림자
AD-Score와 TV미터 개발
한 장의 사진
청와대에 불려 가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생긴 일
반항하는 인간
6시 정각 TV 깜짝쇼
쉬울 때만 예측하는 건 선거 예측이 아니다
1%의 승부사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MBC TV 박무익의 성공시대
나의 사직동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
누가 그들을 ‘밋치게’ 만들고 있는가?
‘NO’라고 말하는 용기
한국인의 생각을 보존합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인간, 사회, 국가를 위해
함춘원(含春苑)에서
Ventus 세상을 감싸다
세상 모든 사람을 친구로 · 나윤선, 재즈 뮤지션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묘한 성격 ·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기이한 선물을 하는 사람 ·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세상의 깊이, 원리를 직관하고 있는 인물 ·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가지 않은 길 · 나선미 전 동아일보 여론조사 전문위원
요즘 행복했던 세 가지 · 안기석 전 문체부 종무관, 전 동아일보 기자
그에게는 신(神)의 모습이 있다 · 양권식 서원동 성당 주임신부
광화문 일대를 주유했다 ·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철학과의 구세주 ·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
봄 사람 박무익 · 이철우 전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친정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
소탈한 친구, 칼날같이 엄정한 전문가 · 염홍철 전 대전시장
소탈이 지나쳐 많은 오해를 받았다 · 신창운 전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
한국갤럽의 일 년 반이 내게는 리즈 시절이었다 · 마동훈 고려대 신방과 교수
박무익이 아니라 백해무익이라고 놀렸다 ·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
박무익과 함께한 낭만의 시대 · 전종우 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Aqua 큰 바다로 흐르다
이런 예측이 있었는데 두고 봅시다
1943년 긴 여름
인산약방(仁山藥房)
조팝꽃 기억
구룡포에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청라언덕에서 마당 깊은 집까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인간의 조건
프라하의 봄, 한강의 봄
Ignis 불꽃이 튀다
안방의 태양
야인(野人) 생활
실크로드가 고속도로로 바뀌다
A lonely little big man
정릉 풍경
조사회사가 ‘벤처’이었던 시절
개성상인의 3대 원칙
친구보다 진리를
햇빛 도둑 바람 도둑
조지 갤럽 박사
인생을 바꾼 책
Gallup International의 20년 친구들
19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의
Terra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어
수레의 의견
한국에서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한가?
1980년 서울의 봄
봄날은 간다
사직동을 걷다
인류를 사랑한 세계인
여론전쟁의 서막
최초의 선거 예측 도전
광장정치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숫자
가리봉동 옥상의 비극
빅브라더의 그림자
AD-Score와 TV미터 개발
한 장의 사진
청와대에 불려 가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생긴 일
반항하는 인간
6시 정각 TV 깜짝쇼
쉬울 때만 예측하는 건 선거 예측이 아니다
1%의 승부사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MBC TV 박무익의 성공시대
나의 사직동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
누가 그들을 ‘밋치게’ 만들고 있는가?
‘NO’라고 말하는 용기
한국인의 생각을 보존합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인간, 사회, 국가를 위해
함춘원(含春苑)에서
Ventus 세상을 감싸다
세상 모든 사람을 친구로 · 나윤선, 재즈 뮤지션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묘한 성격 ·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기이한 선물을 하는 사람 ·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세상의 깊이, 원리를 직관하고 있는 인물 ·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가지 않은 길 · 나선미 전 동아일보 여론조사 전문위원
요즘 행복했던 세 가지 · 안기석 전 문체부 종무관, 전 동아일보 기자
그에게는 신(神)의 모습이 있다 · 양권식 서원동 성당 주임신부
광화문 일대를 주유했다 ·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철학과의 구세주 ·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
봄 사람 박무익 · 이철우 전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친정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
소탈한 친구, 칼날같이 엄정한 전문가 · 염홍철 전 대전시장
소탈이 지나쳐 많은 오해를 받았다 · 신창운 전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
한국갤럽의 일 년 반이 내게는 리즈 시절이었다 · 마동훈 고려대 신방과 교수
박무익이 아니라 백해무익이라고 놀렸다 ·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
박무익과 함께한 낭만의 시대 · 전종우 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책 속으로
아침저녁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 주요 일간지에 적외선 스토브 광고가 일제히 실렸다. ‘안방의 태양!’ 카피라이터 박무익의 존재를 알린 결정적인 카피다. ‘태양이 아쉬운 계절, 당신의 안방에 태양이 솟게 합시다’란 부연 설명과 함께 일간지 지면 3할을 차지하는 대형 광고였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광고가 제품 이름과 함께 기능상의 장점을 설명하고 자랑하는 내용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박무익의 ‘안방의 태양’은 짧은 문장 하나로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획기적인 카피였다. 이날 무교동 낙지 골목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사 10개월 차 박무익은 그 시대 가장 주목받는 카피라이터로 등장했다.
--- p.68
1974년 6월 17일 경영빌딩 8층 801호, 박무익은 조사회사 KSP(Korea Survey Polls)를 열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탄생이다. 당시 ASI라는 미국계 마케팅조사 연구소의 한국 지사는 있었으나 한국인이 독자적인 조사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박무익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물론 직장 동료, 선후배, 친구들까지 모두 만류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문을 연 회사다. 3주 전쯤 막내딸 지윤을 출산한 그의 아내는 개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장님 된 걸 축하한다”라며 배웅하는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고 박무익은 어제같이 그날을 기억한다.
--- p.84~85
박무익은 조지 갤럽의 책을 통해 비로소 여론조사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숨 막히는 억압의 시대를 살며 조사인(pollster)으로서의 길을 모색하던 그에게 갤럽 박사의 책은 조사인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사회적 임무를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불빛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여론조사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한 부분에서 박무익은 큰 호흡을 내쉬었다. 조사인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면 한국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30
“무익, 한국에서도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할까?” 1979년 시드니에서 박무익을 무척 당황하게 했던 질문이다. 질문을 던졌던 갤럽 박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박무익은 이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 답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8년이 걸렸다. 박무익은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예측조사를 통해 한국에서도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정치지표(Political Index) 조사다.
--- p.239
박무익은 이 선거를 통해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명제와 더불어 ‘여론조사 과정의 명확한 공개 없이는 여론조사와 민주주의 발전도 없다’라는 확신을 얻었다. 힘들게 얻은 자료를 공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시대의 기록이며 역사의 일부다. 박무익은 이 자료가 정치·사회학자들이 선거 결과를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역사학자들이 올바른 역사를 쓰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 p.262
1978년 펴낸 번역서 《갤럽의 여론조사》 이후 박무익이 한국갤럽의 이름으로 펴낸 책은 서른일곱 권에 이른다. 1980년부터 진행한 아동, 청소년, 주부, 노인 등에 대한 다국가 비교 조사, 18개국 인간 가치관 비교 조사, 장애인과 일반인 의식 조사 등을 모두 단행본으로 펴냈다. 1980년 《한국의 아동과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인의 여론(The Korean Index of Public Opinion) 시리즈’를 위해 1983년 1월에는 ‘한국 여론조사 연구소(Korea Institute of Public Opinion)’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조사방법론을 연구하고 각종 조사 결과의 발간 사업을 전담했다. 또 유용하다 싶은 조사 관련 외국 서적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선거 연구와 마케팅조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단행본도 펴냈다. 사업 초기 어렵게 회사를 꾸려나가던 시절에도, 경영 위기에 한 번씩 휘청일 때도 절대 놓지 않고 이어온 작업이다.
--- p.318
“조사인은 앞날을 내다보는 점쟁이가 아니다. 조사인의 임무는 지금까지 검증된 과학적 절차에 따라 여론을 측정해 보여주는 것임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섣부른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오해에는 제대로 맞서기 위해, 어제보다 오늘 한 걸음 더 한계에 다가서기 위해 조사인은 조사 실무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 p.334
2017년 4월 19일 새벽, 박무익의 삶이 끝났다. 1943년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부터 21세기 대한민국까지, 거친 날들을 닦아내고 빛나는 날들을 빚어내며 굴곡과 영광의 현대사를 오롯이 살아낸 삶이다. 그 도전이 조금 더 완만했다면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가쁜 호흡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파른 도전이 없었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고 꿈꾸었던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잿더미 속에서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한 세대의 치열한 기록이다.--- p.350
--- p.68
1974년 6월 17일 경영빌딩 8층 801호, 박무익은 조사회사 KSP(Korea Survey Polls)를 열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탄생이다. 당시 ASI라는 미국계 마케팅조사 연구소의 한국 지사는 있었으나 한국인이 독자적인 조사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박무익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물론 직장 동료, 선후배, 친구들까지 모두 만류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문을 연 회사다. 3주 전쯤 막내딸 지윤을 출산한 그의 아내는 개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장님 된 걸 축하한다”라며 배웅하는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고 박무익은 어제같이 그날을 기억한다.
--- p.84~85
박무익은 조지 갤럽의 책을 통해 비로소 여론조사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숨 막히는 억압의 시대를 살며 조사인(pollster)으로서의 길을 모색하던 그에게 갤럽 박사의 책은 조사인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사회적 임무를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불빛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여론조사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한 부분에서 박무익은 큰 호흡을 내쉬었다. 조사인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면 한국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30
“무익, 한국에서도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할까?” 1979년 시드니에서 박무익을 무척 당황하게 했던 질문이다. 질문을 던졌던 갤럽 박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박무익은 이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 답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8년이 걸렸다. 박무익은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예측조사를 통해 한국에서도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정치지표(Political Index) 조사다.
--- p.239
박무익은 이 선거를 통해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명제와 더불어 ‘여론조사 과정의 명확한 공개 없이는 여론조사와 민주주의 발전도 없다’라는 확신을 얻었다. 힘들게 얻은 자료를 공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시대의 기록이며 역사의 일부다. 박무익은 이 자료가 정치·사회학자들이 선거 결과를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역사학자들이 올바른 역사를 쓰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 p.262
1978년 펴낸 번역서 《갤럽의 여론조사》 이후 박무익이 한국갤럽의 이름으로 펴낸 책은 서른일곱 권에 이른다. 1980년부터 진행한 아동, 청소년, 주부, 노인 등에 대한 다국가 비교 조사, 18개국 인간 가치관 비교 조사, 장애인과 일반인 의식 조사 등을 모두 단행본으로 펴냈다. 1980년 《한국의 아동과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인의 여론(The Korean Index of Public Opinion) 시리즈’를 위해 1983년 1월에는 ‘한국 여론조사 연구소(Korea Institute of Public Opinion)’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조사방법론을 연구하고 각종 조사 결과의 발간 사업을 전담했다. 또 유용하다 싶은 조사 관련 외국 서적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선거 연구와 마케팅조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단행본도 펴냈다. 사업 초기 어렵게 회사를 꾸려나가던 시절에도, 경영 위기에 한 번씩 휘청일 때도 절대 놓지 않고 이어온 작업이다.
--- p.318
“조사인은 앞날을 내다보는 점쟁이가 아니다. 조사인의 임무는 지금까지 검증된 과학적 절차에 따라 여론을 측정해 보여주는 것임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섣부른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오해에는 제대로 맞서기 위해, 어제보다 오늘 한 걸음 더 한계에 다가서기 위해 조사인은 조사 실무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 p.334
2017년 4월 19일 새벽, 박무익의 삶이 끝났다. 1943년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부터 21세기 대한민국까지, 거친 날들을 닦아내고 빛나는 날들을 빚어내며 굴곡과 영광의 현대사를 오롯이 살아낸 삶이다. 그 도전이 조금 더 완만했다면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가쁜 호흡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파른 도전이 없었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고 꿈꾸었던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잿더미 속에서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한 세대의 치열한 기록이다.--- p.350
출판사 리뷰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
이 책은 물(Aqua), 불(Ignis), 흙(Terra), 바람(Ventus) 네 장으로 나뉜다. 물에서 태어나 불같이 타오르며 세상을 향해 맞섰고, 과학적인 여론조사야말로 민주주의 뿌리라며 여론조사의 주춧돌을 놓고 바람처럼 사라진 박무익의 생애를 물과 불, 흙, 바람으로 구성한 것이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문헌 연구의 성격을 띤다. 직접 현장을 찾아 보고 느낀 기록을 제외하면 한국갤럽의 발간물과 각종 관련 서적, 참고 자료, 언론 인터뷰 등을 입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4장은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 박무익을 탐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장 ‘Aqua 큰 바다로 흐르다’는 발품을 팔아 현장 중심으로 엮었다. 박무익 회장의 생가 탐방부터 출신 초중고, 대학까지 물리적인 공간을 망라했다. 1943년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경산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열 살 무렵 이주하여 중학교에 다녔던 포항 구룡포,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거주했던 대구를 직접 찾아갔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많은 연못이 둘러싸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포항의 동쪽 끝 마을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타며 꿈을 키웠고, 대구로 또 서울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 세상이라는 큰 바다에 닿은 것이다.
2장 ‘Ignis 불꽃이 튀다’는 한국갤럽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고의 고생 끝에 어엿한 대한민국 최고의 조사업체로 성장한 한국갤럽의 성장기를 담았다. 박무익 회장은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카피라이터로 인정받고 한동안 광고업계에 종사하다가 1974년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인 KSP(Korea Survey Polls)를 설립했다. 조지 갤럽 박사의 책을 직접 번역하면서 갤럽과 인연을 맺었고 18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원사가 되면서 사명을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칭했다.
3장 ‘Terra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어’는 한국갤럽이 내놓은 성과, 결과물에 초점을 뒀다. 한국인에게 한국갤럽과 여론조사의 위대함을 알린 크고 작은 조사 결과물, 언론과 한국 사회의 반응 등을 담았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예측에 도전하여 적중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정치 여론조사뿐 아니라 한국인의 사회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보는 국제 비교 조사를 해왔으며, 장애인과 일반인 의식 조사, 한국의 종교 실태 조사 등을 오랜 기간 수행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무익 회장이 한국갤럽에서 이룩한 무수히 많은 업적이 담겨 있다.
4장 ‘Ventus 세상을 감싸다’는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인간 박무익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엮었다. 이 과정에서는 평전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박무익 회장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만 골랐다. 라종일 주영·주일 대사, 마동훈 고려대 신방과 교수,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등 많은 분과 인터뷰를 통해 들은 박무익 회장에 대한 회고를 정리했다.
“박무익이야말로 평전이 필요한 삶을 살았다. 난 정치학자다. 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박무익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
이 땅에 여론조사의 꽃을 피우고 나아가 정치 민주화에 초석이 된 박무익 회장은 2017년 4월 지병이 악화하여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관행과 시류에 맞서야 하고 비난과 질시를 묵묵히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앞서 조사인으로서 걸어간 박무익의 회장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여론조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
이 책은 물(Aqua), 불(Ignis), 흙(Terra), 바람(Ventus) 네 장으로 나뉜다. 물에서 태어나 불같이 타오르며 세상을 향해 맞섰고, 과학적인 여론조사야말로 민주주의 뿌리라며 여론조사의 주춧돌을 놓고 바람처럼 사라진 박무익의 생애를 물과 불, 흙, 바람으로 구성한 것이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문헌 연구의 성격을 띤다. 직접 현장을 찾아 보고 느낀 기록을 제외하면 한국갤럽의 발간물과 각종 관련 서적, 참고 자료, 언론 인터뷰 등을 입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4장은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 박무익을 탐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장 ‘Aqua 큰 바다로 흐르다’는 발품을 팔아 현장 중심으로 엮었다. 박무익 회장의 생가 탐방부터 출신 초중고, 대학까지 물리적인 공간을 망라했다. 1943년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경산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열 살 무렵 이주하여 중학교에 다녔던 포항 구룡포,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거주했던 대구를 직접 찾아갔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많은 연못이 둘러싸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포항의 동쪽 끝 마을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타며 꿈을 키웠고, 대구로 또 서울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 세상이라는 큰 바다에 닿은 것이다.
2장 ‘Ignis 불꽃이 튀다’는 한국갤럽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고의 고생 끝에 어엿한 대한민국 최고의 조사업체로 성장한 한국갤럽의 성장기를 담았다. 박무익 회장은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카피라이터로 인정받고 한동안 광고업계에 종사하다가 1974년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인 KSP(Korea Survey Polls)를 설립했다. 조지 갤럽 박사의 책을 직접 번역하면서 갤럽과 인연을 맺었고 18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원사가 되면서 사명을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칭했다.
3장 ‘Terra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어’는 한국갤럽이 내놓은 성과, 결과물에 초점을 뒀다. 한국인에게 한국갤럽과 여론조사의 위대함을 알린 크고 작은 조사 결과물, 언론과 한국 사회의 반응 등을 담았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예측에 도전하여 적중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정치 여론조사뿐 아니라 한국인의 사회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보는 국제 비교 조사를 해왔으며, 장애인과 일반인 의식 조사, 한국의 종교 실태 조사 등을 오랜 기간 수행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무익 회장이 한국갤럽에서 이룩한 무수히 많은 업적이 담겨 있다.
4장 ‘Ventus 세상을 감싸다’는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인간 박무익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엮었다. 이 과정에서는 평전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박무익 회장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만 골랐다. 라종일 주영·주일 대사, 마동훈 고려대 신방과 교수,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등 많은 분과 인터뷰를 통해 들은 박무익 회장에 대한 회고를 정리했다.
“박무익이야말로 평전이 필요한 삶을 살았다. 난 정치학자다. 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박무익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
이 땅에 여론조사의 꽃을 피우고 나아가 정치 민주화에 초석이 된 박무익 회장은 2017년 4월 지병이 악화하여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관행과 시류에 맞서야 하고 비난과 질시를 묵묵히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앞서 조사인으로서 걸어간 박무익의 회장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여론조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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