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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00년 영국에서 최초로 건설된 노동자 정당인 노동당은 인간다운 삶을 원한 대중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노동당의 노동운동 탄압과 민영화 실행, 빈부격차 심화 등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영국 노동당의 창당, 성장, 쇠퇴의 100년을 정리한 이 책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단지 영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계기만은 아니다. 노동당 탄생 100년 뒤인 2000년 한국에서도 최초로 진보적 노동자 정당이 탄생했다.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은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진보 정당 운동이 싹튼 지 10년도 채 안 되었고, 진보정당의 진로에 대해 무수히 많은 논의가 피어 오르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와 개혁주의 정치의 고전적 사례인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단지 영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계기만은 아니다. 노동당 탄생 100년 뒤인 2000년 한국에서도 최초로 진보적 노동자 정당이 탄생했다.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은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진보 정당 운동이 싹튼 지 10년도 채 안 되었고, 진보정당의 진로에 대해 무수히 많은 논의가 피어 오르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와 개혁주의 정치의 고전적 사례인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감사의 말
연표
영국의 정치 제도
한국어판에 부치는 서문
머리말
1장 개혁주의의 탄생
2장 ‘노총이 배출한’ 노동당
3장 전쟁과 재건 : 노동당이 사회주의를 채택하다
4장 전후의 난국을 돌파하기
5장 ‘수권 정당’임을 입증하기 : 1924년의 연립정부
6장 혁명이냐 개혁이냐 : 1920년대의 좌파
7장 총파업과 그 여파
8장 개혁주의자들과 경기 불황 : 제2차 노동당 정부
9장 사회주의 독재에서 국민 통합으로 : 1930년대의 노동당
10장 제2차세계대전 동안의 노동당
11장 애틀리 정부 : 개혁주의의 절정
12장 ‘잃어버린 13년’
13장 1964~1969년의 윌슨 정부
14장 히스 정부와 노동당
15장 1974~1979년의 노동당 정부
16장 대처 집권기의 노동당
17장 신노동당
18장 결론
후주
영국 총선 결과
영국 노동당 역대 당수
주요 인물과 정당 설명
찾아보기
연표
영국의 정치 제도
한국어판에 부치는 서문
머리말
1장 개혁주의의 탄생
2장 ‘노총이 배출한’ 노동당
3장 전쟁과 재건 : 노동당이 사회주의를 채택하다
4장 전후의 난국을 돌파하기
5장 ‘수권 정당’임을 입증하기 : 1924년의 연립정부
6장 혁명이냐 개혁이냐 : 1920년대의 좌파
7장 총파업과 그 여파
8장 개혁주의자들과 경기 불황 : 제2차 노동당 정부
9장 사회주의 독재에서 국민 통합으로 : 1930년대의 노동당
10장 제2차세계대전 동안의 노동당
11장 애틀리 정부 : 개혁주의의 절정
12장 ‘잃어버린 13년’
13장 1964~1969년의 윌슨 정부
14장 히스 정부와 노동당
15장 1974~1979년의 노동당 정부
16장 대처 집권기의 노동당
17장 신노동당
18장 결론
후주
영국 총선 결과
영국 노동당 역대 당수
주요 인물과 정당 설명
찾아보기
책 속으로
개혁주의의 논리가 아주 천천히 전개됐기 때문에, 노동당의 황금기라는 신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노동당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신화다. 나중에 의회적 길 ― 노동자들의 이익과 선거의 이익을 맞바꾸는 길 ― 을 걸어 내려온 사람들은 제일 처음 꼭대기에서 시작한 사람들을 되돌아봤다. 당연히 이 개척자들은 뭔가 고상한 이상에 의해 더 고양되고 고무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과거 노동당 지지자였다가 환멸을 느낀 사람이 이미 1921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열렬한 신념과 영웅적 자기희생이 충만했던 초창기, 키어 하디가 천 모자[노동계급의 상징]를 쓰고 하원에 앉아 있던 초창기와, 정치꾼들이 선거 득표와 자리다툼에만 골몰하는 요즘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한 차이는 환상이었다. 노동당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옛 노동당과 새 노동당의 차이는 그런 개혁주의가 작동하는 외부 조건에 달려 있다. 노동당에는 되찾을 만한 순수한 노동자 전통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정당은 태어날 때부터 썩어 있었고, 어떤 정당은 점차 썩어 갔고, 어떤 정당은 외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썩었다. 각각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있다. 러시아 공산당은 독일 혁명의 패배, 국제적 고립, 16개 나라 군대의 침략과 내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썩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오랜 시기 동안, 그리고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들인 많은 노력 때문에 점차 기회주의에 물들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처음부터 순전한 개혁주의 정당이었다. --- pp.36~37
1895년에는 노동자 정당에 대한 희망이 모두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5년 뒤 노총은 노동자 정당을 건설했다. 이런 극적인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그 답은 지배계급의 공격이었다. 1889년에는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현장 조합원들이 이제 관료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독립노동당은 선진적인 좌파 운동의 산물이었다. 노동당은 노총 관료들의 책략의 산물이었고 계급투쟁이 후퇴한 결과였다.
사용자들은 1894년에 7만 명의 스코틀랜드 광원노조를 굴복시킨 것을 시작으로 노동조합들을 하나씩 분쇄했다. ……
사용자들의 반격이 낳은 한 가지 효과는 노조 관료들이 조정 제도들을 통해 사용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부분적 통합이 이뤄진 것이었다. ……
또 다른 효과는 노조 관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이었다. 노조 관료들은 조합원도 보호할 수 없고 노동조합 기금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아마 후자가 더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반대로 그들은 순수한 경제적 행동에서 정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조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렇게 했다. 1895년에 노동당 건설 구상을 철저하게 거부했던 노총이 이제는 그 구상을 환영하고 나섰다. --- pp.53~56
당시[1931년 노동당 붕괴 당시] 노동당이 실업 급여 삭감에 맞서 싸웠다는 신화가 1931년 이후 꾸준히 유포됐다. 노동당이 실업 급여를 삭감하느니 차라리 정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노동당이 맥도널드를 축출한 것이 아니라, 내각의 다수가 실업 급여 삭감을 받아들였는데도 맥도널드가 내각에서 노동당 인사들을 축출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내각 사퇴를 결정한 사람이 바로 맥도널드였다. ……
둘째, 많은 사람들은 맥도널드가 하려고만 했다면 노동당을 이끌고 실업 급여를 삭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커크우드의 평가에 동의한다. --- pp.248~249
1945~1951년의 정부를 되돌아볼 때 생각나는 긍정적인 정책이 두 가지 있다. 국유화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1919년에 광원들의 국유화 요구는 영국을 20세기 최고의 혁명적 상황으로 몰아갔다. 1947년에도 똑같은 요구가 있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왜 그랬는가?
두 가지 변화가 자본주의 노동자 정당인 노동당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지배계급의 태도였고, 둘째는 개혁주의 논리의 발전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씀이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단지 ‘법률 관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토대는 법률적 소유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소유의 형태는 아주 다양했다. 소규모 개인 기업부터 주식회사를 거쳐 거대 다국적기업까지, 미국의 거의 100퍼센트 사적 소유부터 스탈린주의 체제의 100퍼센트 국가 소유까지 매우 다양했다.
따라서 국가 소유는 결코 사회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경제적·사회적 해방을 뜻한다. 그래서 부의 창출을 인간의 필요 충족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소비에트, 즉 노동자 평의회 같은 기구들을 통해 스스로 정치권력을 장악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국유화에 대한 노동당의 태도는 1945년 선거 정책·공약 자료집 『미래를 직시합시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자료집은 국가가 영국은행, 석탄 광산, 전력과 가스, 철도, 철강 등 특정 산업들을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유화가 노동과 자본의 세력 균형을 바꾸는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옳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경우에 국유화 주장은 경험적 근거를 통해 정당화됐다. 예컨대, “가스와 전력 산업의 공공 소유가 실현되면 요금이 인하되고, 경쟁이 심한 중복·과잉 투자를 방지할 수 있고, 연구와 개발을 조정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라는 식이었다. 노동당은 점진적인 국유화를 주장하면서 혼합경제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시에 대충 합의된 사항들의 변형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선거 결과를 보고 사용자들이 노동당의 혼합경제 강령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당연했다. ……
둘째, 현대 자본주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교통과 전력 등 잘 발달된 사회 기반 시설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사회간접자본’에는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고, 그 혜택은 개별 기업보다는 산업 전체에 돌아갔다. 그래서 대다수 나라에서 사회 기반 시설은 정부가 개발하고 통제했다. 1945년에 영국 자본가들은 과거의 전통을 버릴 태세가 돼 있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별로 없는 산업들을 재건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묶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애틀리 정부의 국유화 강령을 우려하지 않았다. ……
그래서 보수당의 주요 인사들도 광산 국유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배계급의 비타협적 전사였던 처칠조차 반발하지 않았다. 처칠은 영국은행 국유화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케인스주의 계획경제 시대에 필연적인 조처였기 때문이다. --- pp.326~329
상시 군비 경제는 이윤율 저하 속도를 늦췄지만 이윤율 저하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더욱이, 군비 지출의 부담이 불균등했기 때문에 영국만의 독특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류 자본주의 경제가 일류 제국주의 구실을 해야 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임금과 실업은 분명히 반비례 관계였다. 임금이 높아도 실업률은 낮았다. 그러나 1965년 이후 임금과 실업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비용으로 촉진된 물가 오름세가 국제 자본주의 전체로 번져 갔다. 그래서 영국의 국제수지 위기가 재발했고, 영국 정부는 우선 과제로 올려놨던 실업 감축을 다시 뒤로 미루고 임금 삭감 공세를 앞당겼다.
계급과 국민의 조화를 추구한 노동당에 케인스주의는 딱 맞았다. 왜냐하면 케인스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것이 국민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국제수지 위기와 물가 오름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노동조합원들, 특히 직장위원 투사들이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고임금은 국익의 적으로 선포됐다.
노동당의 정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점진주의의 토대는 정부가 국가를 통제해서 개혁을 점진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윌슨 정부 시절의 현실은 그런 믿음과 달랐다.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명령에 순응했다. 애틀리 정부 시절 획득한 개혁들은 미래의 진보를 위한 발판이 아니었다. 그런 개혁은 예외적인 상황 덕분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그나마도 사라졌다.
예컨대, 국유화를 보라. 사람들은 국유화가 하나하나씩 누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익성 없는 산업을 국유화한 애틀리 정부의 조처는 윌슨 정부가 국유화를 확대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 그러자 언론은 재빨리 국유화 자체를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국유화된 기업체들은 정부가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없게 됐다. 1960년대에는 국유화를 확대하기 위해 민간 부문에서 돈을 뽑아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매우 어려워졌다. 애틀리 정부는 전체 산업의 약 20퍼센트를 국유화했다. 보수당이 민영화했다가 윌슨 정부가 다시 국유화한 철강 산업을 제외하면, 영국 산업의 기본 소유 형태는 1951~1970년에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애틀리 정부가 1951년 총선 패배로 물러났을 때만 해도 노동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낙관적 분위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1970년에 노동당이 정권을 잃었을 때 노동당 지지자들은 윌슨 정부를 되돌아보며 씁쓸함과 분노와 환멸만 느꼈다. --- pp.443~444
우리는 이 책의 맨 앞에서 레닌의 지적을 인용했다. 즉, 노동자들은 노동당을 지지하지만 노동당 “지도자들은 반동적 세력, 그것도 최악의 반동적 세력”이고 “그들은 전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이런 노동당 지도자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블레어의 경력은 역대 노동당 지도자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보수당 지방의원의 아들로 태어나 에든버러 최고의 사립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왔고, 밀리턴트 마녀사냥에 대한 법률 조언을 하면서 노동당 최고위층과 관계를 트기 시작했고, 클로즈드숍 조항을 폐기한 뒤 ‘당수 후보’로 떠올랐고, 아이들을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당수가 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당헌 4조 폐지였다.……
사실, 신노동당은 아주 오래된, 1918년 이전의 노동당이다. 그러나 당헌 4조 폐지는 노동당이 단지 과거로 회귀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1918년 이전의 노동당은 확신에 찬 개혁주의자들이 이끌었다. 그들이 당헌에 사회주의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유당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그 반대다. 당 지도부는 개혁주의를 포기했고, 개혁주의에 집착하는 노동계급의 염원을 억누르려 한다. 과거에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 지금처럼 우파적 실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때 노동당은 사실상 지배계급의 포로였다. 그러나 블레어의 노동당은 다르다. 지금 노동당은 야당인데도 급격하게 우경화했다. 더욱이 과거의 노동당 총리들은 특별한 상황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배신을 정당화했다(1931년에는 ‘은행가들의 위협’, 1960년대에는 ‘취리히의 금융업자들’, 1970년대에는 IMF 등). 반면에, 블레어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따라서 당헌 4조 폐지는 당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별하려는 노력이었다. 1994년 블레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대처의 목표가 「선데이 타임스」에 폭로됐다. “대처의 궁극적 야심은 사회주의적 노동당을 파괴하고 영국식 민주당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영국에는 자본주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정당이 둘이 될 것이다. 하나는 미국 공화당처럼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보수당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당에 반대하고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지만 좌파의 교조에서 자유로운 노동당이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아서 스카길의 지적은 아주 정확했다. “당헌 4조는 노동당과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들을 구분해 주는 지표다. 당헌 4조가 없다면 노동당을 자유민주당이나 보수당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열렬한 신념과 영웅적 자기희생이 충만했던 초창기, 키어 하디가 천 모자[노동계급의 상징]를 쓰고 하원에 앉아 있던 초창기와, 정치꾼들이 선거 득표와 자리다툼에만 골몰하는 요즘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한 차이는 환상이었다. 노동당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옛 노동당과 새 노동당의 차이는 그런 개혁주의가 작동하는 외부 조건에 달려 있다. 노동당에는 되찾을 만한 순수한 노동자 전통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정당은 태어날 때부터 썩어 있었고, 어떤 정당은 점차 썩어 갔고, 어떤 정당은 외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썩었다. 각각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있다. 러시아 공산당은 독일 혁명의 패배, 국제적 고립, 16개 나라 군대의 침략과 내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썩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오랜 시기 동안, 그리고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들인 많은 노력 때문에 점차 기회주의에 물들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처음부터 순전한 개혁주의 정당이었다. --- pp.36~37
1895년에는 노동자 정당에 대한 희망이 모두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5년 뒤 노총은 노동자 정당을 건설했다. 이런 극적인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그 답은 지배계급의 공격이었다. 1889년에는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현장 조합원들이 이제 관료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독립노동당은 선진적인 좌파 운동의 산물이었다. 노동당은 노총 관료들의 책략의 산물이었고 계급투쟁이 후퇴한 결과였다.
사용자들은 1894년에 7만 명의 스코틀랜드 광원노조를 굴복시킨 것을 시작으로 노동조합들을 하나씩 분쇄했다. ……
사용자들의 반격이 낳은 한 가지 효과는 노조 관료들이 조정 제도들을 통해 사용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부분적 통합이 이뤄진 것이었다. ……
또 다른 효과는 노조 관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이었다. 노조 관료들은 조합원도 보호할 수 없고 노동조합 기금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아마 후자가 더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반대로 그들은 순수한 경제적 행동에서 정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조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렇게 했다. 1895년에 노동당 건설 구상을 철저하게 거부했던 노총이 이제는 그 구상을 환영하고 나섰다. --- pp.53~56
당시[1931년 노동당 붕괴 당시] 노동당이 실업 급여 삭감에 맞서 싸웠다는 신화가 1931년 이후 꾸준히 유포됐다. 노동당이 실업 급여를 삭감하느니 차라리 정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노동당이 맥도널드를 축출한 것이 아니라, 내각의 다수가 실업 급여 삭감을 받아들였는데도 맥도널드가 내각에서 노동당 인사들을 축출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내각 사퇴를 결정한 사람이 바로 맥도널드였다. ……
둘째, 많은 사람들은 맥도널드가 하려고만 했다면 노동당을 이끌고 실업 급여를 삭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커크우드의 평가에 동의한다. --- pp.248~249
1945~1951년의 정부를 되돌아볼 때 생각나는 긍정적인 정책이 두 가지 있다. 국유화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1919년에 광원들의 국유화 요구는 영국을 20세기 최고의 혁명적 상황으로 몰아갔다. 1947년에도 똑같은 요구가 있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왜 그랬는가?
두 가지 변화가 자본주의 노동자 정당인 노동당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지배계급의 태도였고, 둘째는 개혁주의 논리의 발전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씀이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단지 ‘법률 관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토대는 법률적 소유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소유의 형태는 아주 다양했다. 소규모 개인 기업부터 주식회사를 거쳐 거대 다국적기업까지, 미국의 거의 100퍼센트 사적 소유부터 스탈린주의 체제의 100퍼센트 국가 소유까지 매우 다양했다.
따라서 국가 소유는 결코 사회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경제적·사회적 해방을 뜻한다. 그래서 부의 창출을 인간의 필요 충족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소비에트, 즉 노동자 평의회 같은 기구들을 통해 스스로 정치권력을 장악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국유화에 대한 노동당의 태도는 1945년 선거 정책·공약 자료집 『미래를 직시합시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자료집은 국가가 영국은행, 석탄 광산, 전력과 가스, 철도, 철강 등 특정 산업들을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유화가 노동과 자본의 세력 균형을 바꾸는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옳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경우에 국유화 주장은 경험적 근거를 통해 정당화됐다. 예컨대, “가스와 전력 산업의 공공 소유가 실현되면 요금이 인하되고, 경쟁이 심한 중복·과잉 투자를 방지할 수 있고, 연구와 개발을 조정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라는 식이었다. 노동당은 점진적인 국유화를 주장하면서 혼합경제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시에 대충 합의된 사항들의 변형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선거 결과를 보고 사용자들이 노동당의 혼합경제 강령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당연했다. ……
둘째, 현대 자본주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교통과 전력 등 잘 발달된 사회 기반 시설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사회간접자본’에는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고, 그 혜택은 개별 기업보다는 산업 전체에 돌아갔다. 그래서 대다수 나라에서 사회 기반 시설은 정부가 개발하고 통제했다. 1945년에 영국 자본가들은 과거의 전통을 버릴 태세가 돼 있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별로 없는 산업들을 재건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묶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애틀리 정부의 국유화 강령을 우려하지 않았다. ……
그래서 보수당의 주요 인사들도 광산 국유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배계급의 비타협적 전사였던 처칠조차 반발하지 않았다. 처칠은 영국은행 국유화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케인스주의 계획경제 시대에 필연적인 조처였기 때문이다. --- pp.326~329
상시 군비 경제는 이윤율 저하 속도를 늦췄지만 이윤율 저하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더욱이, 군비 지출의 부담이 불균등했기 때문에 영국만의 독특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류 자본주의 경제가 일류 제국주의 구실을 해야 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임금과 실업은 분명히 반비례 관계였다. 임금이 높아도 실업률은 낮았다. 그러나 1965년 이후 임금과 실업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비용으로 촉진된 물가 오름세가 국제 자본주의 전체로 번져 갔다. 그래서 영국의 국제수지 위기가 재발했고, 영국 정부는 우선 과제로 올려놨던 실업 감축을 다시 뒤로 미루고 임금 삭감 공세를 앞당겼다.
계급과 국민의 조화를 추구한 노동당에 케인스주의는 딱 맞았다. 왜냐하면 케인스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것이 국민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국제수지 위기와 물가 오름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노동조합원들, 특히 직장위원 투사들이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고임금은 국익의 적으로 선포됐다.
노동당의 정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점진주의의 토대는 정부가 국가를 통제해서 개혁을 점진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윌슨 정부 시절의 현실은 그런 믿음과 달랐다.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명령에 순응했다. 애틀리 정부 시절 획득한 개혁들은 미래의 진보를 위한 발판이 아니었다. 그런 개혁은 예외적인 상황 덕분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그나마도 사라졌다.
예컨대, 국유화를 보라. 사람들은 국유화가 하나하나씩 누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익성 없는 산업을 국유화한 애틀리 정부의 조처는 윌슨 정부가 국유화를 확대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 그러자 언론은 재빨리 국유화 자체를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국유화된 기업체들은 정부가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없게 됐다. 1960년대에는 국유화를 확대하기 위해 민간 부문에서 돈을 뽑아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매우 어려워졌다. 애틀리 정부는 전체 산업의 약 20퍼센트를 국유화했다. 보수당이 민영화했다가 윌슨 정부가 다시 국유화한 철강 산업을 제외하면, 영국 산업의 기본 소유 형태는 1951~1970년에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애틀리 정부가 1951년 총선 패배로 물러났을 때만 해도 노동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낙관적 분위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1970년에 노동당이 정권을 잃었을 때 노동당 지지자들은 윌슨 정부를 되돌아보며 씁쓸함과 분노와 환멸만 느꼈다. --- pp.443~444
우리는 이 책의 맨 앞에서 레닌의 지적을 인용했다. 즉, 노동자들은 노동당을 지지하지만 노동당 “지도자들은 반동적 세력, 그것도 최악의 반동적 세력”이고 “그들은 전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이런 노동당 지도자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블레어의 경력은 역대 노동당 지도자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보수당 지방의원의 아들로 태어나 에든버러 최고의 사립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왔고, 밀리턴트 마녀사냥에 대한 법률 조언을 하면서 노동당 최고위층과 관계를 트기 시작했고, 클로즈드숍 조항을 폐기한 뒤 ‘당수 후보’로 떠올랐고, 아이들을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당수가 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당헌 4조 폐지였다.……
사실, 신노동당은 아주 오래된, 1918년 이전의 노동당이다. 그러나 당헌 4조 폐지는 노동당이 단지 과거로 회귀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1918년 이전의 노동당은 확신에 찬 개혁주의자들이 이끌었다. 그들이 당헌에 사회주의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유당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그 반대다. 당 지도부는 개혁주의를 포기했고, 개혁주의에 집착하는 노동계급의 염원을 억누르려 한다. 과거에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 지금처럼 우파적 실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때 노동당은 사실상 지배계급의 포로였다. 그러나 블레어의 노동당은 다르다. 지금 노동당은 야당인데도 급격하게 우경화했다. 더욱이 과거의 노동당 총리들은 특별한 상황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배신을 정당화했다(1931년에는 ‘은행가들의 위협’, 1960년대에는 ‘취리히의 금융업자들’, 1970년대에는 IMF 등). 반면에, 블레어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따라서 당헌 4조 폐지는 당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별하려는 노력이었다. 1994년 블레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대처의 목표가 「선데이 타임스」에 폭로됐다. “대처의 궁극적 야심은 사회주의적 노동당을 파괴하고 영국식 민주당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영국에는 자본주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정당이 둘이 될 것이다. 하나는 미국 공화당처럼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보수당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당에 반대하고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지만 좌파의 교조에서 자유로운 노동당이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아서 스카길의 지적은 아주 정확했다. “당헌 4조는 노동당과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들을 구분해 주는 지표다. 당헌 4조가 없다면 노동당을 자유민주당이나 보수당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 pp.596~601
출판사 리뷰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은 최근 곳곳에서 퇴임 압력을 받고 있다. 브라운의 지지율은 15퍼센트에 불과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노동당 집권 11년 동안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는데, 이 기간의 빈부격차는 지난 50년을 통틀어 가장 큰 격차다. 지난해 상위 1천위 권 안에 드는 부유층의 자산은 15퍼센트 증가한 반면,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은 더 추락했다. 지난 5년 동안 수업료는 평균 40퍼센트가 올랐다. 그러나 한 언론사의 지적처럼,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극화 해법’은 서로 닮은꼴이 돼 가고 있다.” 최근 노동당은 실업수당 요건을 더 까다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모기지 은행 노던록의 파산 위기, 고유가, 물가 상승, 주택 경기 침체 등 경제 위기에 직면해 노동당은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노동당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노동당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신노동당은 문제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초창기 노동당은 다르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들은 노동당 100년의 역사를 통해 노동당의 근본적 한계 때문에 노동당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은 변질된 것이 아니라, 그 당 자체가 개혁주의라는 본질적 한계가 있음을 얘기한다.
1900년 영국에서는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이 최초로 건설된다. 그리고 노동당은 대중의 지지를 받아 국회에 입성하고 집권에도 성공한다. 노동자들은 노동당의 집권으로 사회가 바뀌고 진정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노동당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규정한 당헌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당 내에서는 좌파들의 급진적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100여 년의 역사 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선거로 의회를 포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포로가 돼 자본주의에 이롭게 체제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더 심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노동당이 집권할 때마다 노동계급은 거의 언제나 노동당에 환멸을 느꼈지만, 근본적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 개혁주의는 여전히 노동당의 영속적인 본질로 남아 있다.
노동당 탄생 100년 뒤, 2000년 한국에서도 최초로 진보적 노동자 대중 정당이 탄생했다. ‘자유·평등·해방의 새 세상’을 건설하겠다며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국회 진출과 당원 증가, 당세 확장 등의 기쁨에 이어 2008년에는 분당의 아픔도 겪었다.
이제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0년 만에 집권한 우파 정부 아래서 진보 정당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고 나아가 집권에 이르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당의 이념은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당과 진보적 사회운동들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구체적 쟁점들에 대한 전략과 전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 이런 물음들에 이론적·실천적으로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고, 나아가 한국의 역사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들도 던진다. 노동당은 운동의 침체기에 성공하는가, 아니면 고양기에 성공하는가?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당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의 정책과 대중의 지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노동당 좌파는 당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 노동자들의 충성심은 노동당의 집권 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가?
영국 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의 대표 격인데도, 한국에서는 의외로 영국 노동당에 관한 책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당 내 좌파의 시각에서 본 책들이 대부분인 반면, 이 책은 개혁주의 정치의 고전적 사례인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진보 정당 운동이 싹튼 지 10년도 채 안 된 한국에서 영국 노동당의 창당, 성장, 쇠퇴의 100년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에 대한 설명과 연표, 역대 총선 결과 등이 정리돼 있어 영국 정치사에 대한 자료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과연 노동당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노동당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신노동당은 문제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초창기 노동당은 다르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들은 노동당 100년의 역사를 통해 노동당의 근본적 한계 때문에 노동당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은 변질된 것이 아니라, 그 당 자체가 개혁주의라는 본질적 한계가 있음을 얘기한다.
1900년 영국에서는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이 최초로 건설된다. 그리고 노동당은 대중의 지지를 받아 국회에 입성하고 집권에도 성공한다. 노동자들은 노동당의 집권으로 사회가 바뀌고 진정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노동당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규정한 당헌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당 내에서는 좌파들의 급진적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100여 년의 역사 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선거로 의회를 포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포로가 돼 자본주의에 이롭게 체제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더 심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노동당이 집권할 때마다 노동계급은 거의 언제나 노동당에 환멸을 느꼈지만, 근본적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 개혁주의는 여전히 노동당의 영속적인 본질로 남아 있다.
노동당 탄생 100년 뒤, 2000년 한국에서도 최초로 진보적 노동자 대중 정당이 탄생했다. ‘자유·평등·해방의 새 세상’을 건설하겠다며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국회 진출과 당원 증가, 당세 확장 등의 기쁨에 이어 2008년에는 분당의 아픔도 겪었다.
이제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0년 만에 집권한 우파 정부 아래서 진보 정당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고 나아가 집권에 이르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당의 이념은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당과 진보적 사회운동들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구체적 쟁점들에 대한 전략과 전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 이런 물음들에 이론적·실천적으로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고, 나아가 한국의 역사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들도 던진다. 노동당은 운동의 침체기에 성공하는가, 아니면 고양기에 성공하는가?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당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의 정책과 대중의 지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노동당 좌파는 당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 노동자들의 충성심은 노동당의 집권 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가?
영국 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의 대표 격인데도, 한국에서는 의외로 영국 노동당에 관한 책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당 내 좌파의 시각에서 본 책들이 대부분인 반면, 이 책은 개혁주의 정치의 고전적 사례인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진보 정당 운동이 싹튼 지 10년도 채 안 된 한국에서 영국 노동당의 창당, 성장, 쇠퇴의 100년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에 대한 설명과 연표, 역대 총선 결과 등이 정리돼 있어 영국 정치사에 대한 자료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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