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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미술 (2019) - 비주얼 속의 아시아태평양전쟁

동방박사님 2024. 7. 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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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전쟁과 미술: 비주얼 속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무대이자 치열한 심리전, 사상전, 정보전의 전장이기도 했던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미술이 떠맡고 미술에 부여된 새로운 역할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전쟁 미술을 대표하는 회화, 조각을 비롯해서 사진, 벽화, 만화, 포스터, 우표, 영화, 상품 디자인 등 시각문화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비주얼’의 개념에 입각하여 예술 활동에 투영된 전쟁의 속성을 입체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목차

1장. 서론: 아시아태평양전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 김용철
2장.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어전회의의 표상: ‘전쟁화’란 무엇인가 / 기타하라 메구미
3장. ‘무모한 일본의 나’: 후지타 쓰구하루의 사투도(死??)에 대하여 / 가와타 아키히사
4장. 1938년 중국 우한 황학루 대벽화: 중일전쟁 초기의 프로파간다와 미술가 / 차이 타오
5장.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 조각의 ‘표현’: 제작·용해·공상 / 다나카 슈지
6장. 일본 영화 속의 적(敵):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스파이 영화를 중심으로 / 강태웅
7장. 태평양전쟁에서의 프로파간다 / 세실 파이팅
8장. 상품화된 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일본 백화점 / 오윤정
9장. ‘국가’ 개념의 시각화: 일본 식민 시대 대만 전쟁화의 국민정신 / 바이 쉬밍
10장. 백열의 환각: 호주 근대미술과 아시아태평양전쟁 / 워릭 헤이우드
종합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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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김용철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이며, 동아시아 근대 및 일본 미술사를 전공했다.

저 : 기타하라 메구미일본 오사카대학교 교수이며, 표상문화론 및 페미니즘을 전공했다.

일본 치바공업대학교 교수이며, 일본 근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책 속으로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하여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태평양전쟁’, ‘15년 전쟁’이라는 용어들을 대체하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미 정착 단계에 든 이 용어의 의미가 협의든 광의든 상관없이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전개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전쟁이라는 측면이 중심에 있다. 시간적으로는 1941년 진주만 공습과 말레이 반도의 공격으로 시작하여 1945년 패전까지로 설정하든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패전까지로 설정하든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광범한 지역에서 전개된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19쪽, 1장. 서론

전쟁의 종결에는 시각 이미지가 필수라고 일컬어진다. 어떤 비주얼 이미지로 종전을 연출할지, 즉 전쟁은 그 표상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패전 혹은 종전의 획기 (劃期)를 어떠한 시각 이미지로 인식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일 까? 일본에서의 ‘전쟁의 종식’이란,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한 1945년 8월 10일의 어전회의에 이어진 8월15일의 소위 ‘옥음 방송’, 즉 천황의 육성방송으로 표상하는 것이 통례가 되고 있으며, 이를 같은 해 9월 2일 미주리호에서의 조약 조인의 광경으로 나타내는 일은 거의 없다. 사토 다쿠미(佐藤卓己)에 따르 면 종전 10주년을 맞이한 1955년경에 천황의 육성방송이 내보내진 8월 15일을 ‘종전’으로 하는 것이 확립되었고 신문에서는 9월 2일의 ‘항복’ 흔적도 지워졌다고 한다.
- 42쪽, 2장.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어전회의의 표상: ‘전쟁화’란 무엇인가

중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걸쳐 일본에서 그려진 전쟁화의 양은 엄청나다. 이것들 중 대부분은 싸우는 병사나 행군 광경, 전쟁터의 한 장면, 해전이나 공중전, 승리 후의 항복 회견 등, 어느 나라의 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테마를 다룬 것으로, 당시의 일본이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타국에 유례가 없는, 어딘가 좀 색다른 테마의 전쟁화도 있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옥쇄(玉碎)’라고 불리는, 부대의 전멸도 서슴지 않는 자살 총공격을 거듭했다. 그 옥쇄를 그린 작품 등은 이 시기의 일본의 특이한 작품 사례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 64쪽, 3장. ‘무모한 일본의 나’: 후지타 쓰구하루의 사투도(死??)에 대하여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선전화는 판이한 양상을 띠었다. 중국 예술가들은 연달아 점령된 도시와 물자 부족의 위기 아래 부득이하게 임시로 설치된 야외 공간과 낡은 벽화, 만화 등의 형식을 빌어 전쟁을 선전하며 도중에 망명하는 민중들에게 호소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런 예술품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거의 보존될 수 없었다. 일본군 미술가들은 이젤 회화를 주된 매개로 그린 선전화를 흔히 ‘작전 기록화(War Documentary Painting)’라 칭했는데, 사실주의적 묘사로 일본군의 전쟁 장면을 구현해냈다. 전시 방식에서도 고전적인 전시 형태를 띠며, 관전에서 그랬듯이 명인의 명작을 순회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민중들에게는 머리 숙여 숭배하게 함으로써 성전의 분위기를 고양시키려 했다.
- 103쪽, 4장. 1938년 중국 우한 황학루 대벽화: 중일전쟁 초기의 프로파간다와 미술가

진주만 공습 직후에는 인종차별적인 캐리커처가 미국의 인쇄매체를 지배했지만, 점차 전장의 광경을 다룬 작품들을 싣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일본군은 눈에 잘 띄지 않은 적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외양이 아닌 악랄한 행동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라이프≫지는 사진 보도로 잘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29명의 예술가를 여러 전장으로 보내 의뢰한 1,000점 이상의 작품을 복제하는 대규모의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169쪽, 7장 태평양전쟁에서의 프로파간다

1940년 9월 21일 일본백화점조합은 ‘쇼윈도 헌납’을 발표했다. 각 백화점이 국책 선전의 매체로 자신들의 쇼윈도를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백화점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을 전용한 것은 국가총동원령이 공포된 전시 상황에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동시에 백화점의 다양한 시각 장치들을 통해 표상된 전쟁은 국가의 총력전 상황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소비와 오락을 충동하는 백화점은 총동원 체제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후방의 대중이 멀리서 일어난 전쟁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 백화점의 쇼윈도·대용품·위문품·전람회였다. 더불어 쇼윈도, 대용품, 위문품, 전람회로 상품화되고 구경거리화된 전쟁을 물리적·상징적으로 소비함으로써 후방의 대중들은 전쟁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었다.
- 209~210쪽, 8장. 상품화된 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일본 백화점

호주에서도 여타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939년 9월 전쟁의 발발은 제1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생생할 때였고 대공황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극도의 불안은 독일 나치가 유럽에서 승리를 거둘 것으로 여겨지던 1941년과 1942년에 절정을 맞이했다. 일본의 싱가포르 점령이 야기한 충격은 호주가 침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가중시켰다. 호주는 전쟁이 불러온 도전에 맞서기 위해 정부 당국의 정보와 사기 고양 캠페인을 통해 재빨리 경제와 노동력을 동원하고 집단적인 형태로 재편했다. 전쟁에는 상실의 공포, 대량살상의 트라우마와 함께 용감한 남녀의 영웅담이나 승리 신화에 대한 영감, 기술 발전이나 산업 달성 등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었다. 더욱이 각 나라들은 전쟁 덕택에 새로운 글로벌 관점과 새로운 사회적 고용 기회를 갖게 되었다.
- 230~231쪽, 10장. 백열의 환각: 호주 근대미술과 아시아태평양전쟁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심리전, 정보전, 사상전의 비중이전례 없이 중요해진 현대전의 개시와
더불어 전쟁과 미술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었나?


유사 시대 이래로 예술가들은 전쟁을 주제로 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흔히 역사화(?史?)라는 범주에 포괄되는 전쟁화(戰爭畵)가 그 대표적인 성과이다. 전쟁의 실상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서든 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달하기 위해서든 예술가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가히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성과를 후대에 남겼다. 이런 작품들은 미술사 내에서도 위대한 예술가들의 숭고한 정신이 빚어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아왔으며, 따라서 전쟁이라는 소재와 미술이라는 활동이 서로 연관되는 데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들게 하지 않았다.

전쟁과 미술은 흔히 서로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활동으로 보이기 쉽다. 전쟁이 명령과 강제에 따른 일사불란한 집단행동을 요구한다면 미술은 예술가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반을 둔 자율적 활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과 미술의 관계는 현대전이 개시되는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심리전, 정보전, 사상전의 비중이 전례 없이 중요해진 현대전에서 전쟁은 미술에 전혀 다른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미술 활동의 주객을 전도시켰다. 예술가들이 전쟁이라는 소재를 자율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전쟁이 예술가들에게 특정한 예술, 특정한 역할을 강제한 것이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미술은 전쟁 이후의 사후적인 활동이 아니라 전쟁의 연장선에 놓인 활동이 되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미술은 전쟁의 최전방을 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의 개인의 삶과 욕망도 통제하는 막강한 어떤 것이었다.

『전쟁과 미술: 비주얼 속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무대이자 치열한 심리전, 사상전, 정보전의 전장이기도 했던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미술이 떠맡고 미술에 부여된 새로운 역할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는 책이다. 미술은 이 전쟁에서 프로파간다 매체로서의 활약을 유감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침략을 받은 중국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전쟁의 위협 아래 놓여 있던 호주 같은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이나 대만, 만주국에서도 예술가들은 식민 모국인 일본 본토와의 연관성 속에서 프로파간다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각각의 지역은 정치적 상황, 물질적 수준, 테크놀로지의 가용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양태의 미술 활동을 펼쳐보였다.

『전쟁과 미술: 비주얼 속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전쟁 미술의 범위를 회화와 조각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전쟁이 프로파간다로서의 성과를 위해서라면 전쟁 미술의 고전적인 범주였던 회화나 조각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쟁 미술을 대표하는 회화, 조각을 비롯해서 사진, 벽화, 만화, 포스터, 우표, 영화, 상품 디자인 등 시각문화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비주얼’의 개념에 입각하여 예술 활동에 투영된 전쟁의 속성을 입체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미술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이념의 각축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과 욕망을 조직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쟁 미술이 비록 프로파간다로서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들 작품을 순전히 프로파간다로서만 간주하기는 어렵다. 예술가가 개입해 생산한 이들 작품에서도 예술작품 일반에 수반되는 표현과 형식, 매체, 양식 등의 미학적 문제를 결코 도외시할 수는 없다. 또한 이들 작품 중에는 예술가들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참여한 작품도 있지만 고전적인 전쟁 미술처럼 예술가들이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만든 작품들도 많다. 평가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전면적으로 개입한 미술 활동을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전쟁과 미술』은 미술에 투영된 침략 전쟁의 속성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저항하는 정신의 표출 양태, 그리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 나아가서 미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이르는 복잡다기한 문제들을 성찰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