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이데올로기 연구 (독서)/4.조선공산당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

동방박사님 2022. 2. 2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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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단 한번도 회자되지 않았던 ‘그들’의 역사,
스탈린에 의해 평양으로 간 고려인 엘리트 500명의 이야기


해방 이후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평양에 파견된 카레이스키(소련 고려인)는 500여 명에 이른다. 평양에 파견된 카레이스키들은 이 같은 유랑생활 속에서도 거의가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었다. 그리고 여러 분야의 실무에 밝은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초기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정의 ‘통역 정치’의 주역으로서, 소련군정과 북한 주민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에 소비에트화를 조기에 이식하면서 ‘김일성 장군’을 북한의 지도자로 추대하는 전위대였다.

일명 ‘소련파’로 불린 이들은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소련군이 철수하고도 모두 북한에 남아 북한 정권 내에서 힘 있는 그룹으로 자리 잡았으며, 6·25 전쟁에 북한인민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자타가 공인하는 ‘카레이스키 군단’의 총수 허가이가 ‘의문의 자살’로 숨을 거둔다. 당시 북한에서 허가이는 ‘미래의 권력’으로 통했다. 허가이는 소련에서 쌓은 풍부한 당 사업 경험과 실무 능력으로 북한에서 당 사업을 체계화하고, 정부를 제도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김일성이 수령이 되기까지 산파역을 맡았다. 허가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카레이스키 숙청의 서막이었다.

이 글은 북한 정권 창출 과정에서 소련군의 귀와 입, 그리고 김일성 정권 수립의 손과 발 역할을 했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의 비극적인 역사에 관한 것으로, 저자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_연해주 이주 150주년, 평양에 간 고려인의 슬픈 이야기

제1장 소련군정의 ‘손과 발’ 카레이스키 군단
제2장 카레이스키 디아스포라의 슬픈 역사
제3장 소련군정과 북한 주민의 가교
제4장 소비에트화와 ‘김일성 정권’ 터 닦은 정치일꾼들
제5장 소련파와 6·25전쟁
제6장 소련파 ‘총수’ 허가이 죽음의 숨은 진실
제7장 소련파 간부 ‘5인조 숙청사건’
제8장 소련파 숙청의 분수령 ‘8월 종파사건’
제9장 평양에 간 카레이스키 엘리트들의 슬픈 역사
제10장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부록1_북한에서 일한 카레이스키 엘리트 명단
부록2_소비에트 연표
부록3_북한사 연표
 

저자 소개 

저 : 김국후
 
조선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정치외교학 석사), 중앙일보 편집국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북한·통일부 차장, 중앙일보 사장실 부장, 편집국 기획취재부장, 편집국 부국장 등을 지냈다. 중앙일보 북한·통일부 차장으로 있을 때, 공산주의 종주국 구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인 1991년 봄부터 1993년 가을까지 구소련 전역을 장기 출장, 해방 후 북한정권을 창출한 전(前) 평양주둔 소련군정 고위 정치장교, ...
 

책 속으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평양에 들어가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한 고려인이 몇 명인지 문건으로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나 외무성 국방성 등의 고문서를 보면 북한정권 창설 과정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사실까지 기록되어 있다. 하물며 소련 공민인 고려인을 대거 동원하면서 소련 국방성은 당연히 그 근거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 국방성 고문서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에 잠들어 있다. 박길용 전 북한 외무성 부상(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정치학 박사)과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정치국장 겸 제1부상 등은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1945년 8월부터 1954년 초까지 북한에 파견된 고려인은 500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 p.15

그들은 모두 입북 전 소련군으로부터 ‘북조선에 들어가 붉은 군대의 건국사업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북한에 파견되기 이전에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고, 김일성을 북조선의 지도자로 추대하라는 미션을 받은 것은 입북 시기에 따라 달랐다. 1945년 말까지 파견된 사람들은 북한에 파견된 이후 미션을 받았고, 1946년 이후 파견된 사람들은 파견 전 김일성 추대 미션을 받고 입북했다고 답변했다. --- p.55

“당시 소련 정부의 각 부처에서도 인민위원보다 부인민위원이 실무적인 권한을 쥐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이 시스템을 동유럽에 이어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소련 출신 고려인들이 각 부처의 부상을 장악하도록 한 것은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서 각 파의 상을 견제하겠다는 ‘붉은 곰’의 발톱이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120

6·25전쟁이 북한의 계획적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제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너무도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면 6·25전쟁을 앞두고 북한은 사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했을까.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내다 소련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에 따르면, 평양 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 휘하에 있는 소련 군사고문단이 6·25 남침 계획 초안을 작성했다. 이를 북한의 인민군 고위 장성들이 번역하고 수정했다. 이 과정에 소련 고려인 출신 고위 장성이 대거 참여했다. --- p.141

1957년 모스크바에서 소집된 각국 공산당 및 노동당 회의에서 마오쩌둥은 평화와 전쟁 문제, 개인숭배 문제 때문에 국제공산주의권에서 이탈되었다. 이때부터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 간에는 이론적·전략적 문제에서 분쟁이 생겼다. 분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화되었다. 이러한 중국공산당과의 관계 변화는 북한의 피어린 사상검토 과정에서 김일성을 고무했고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그리하여 김일성은 반소친중(反蘇親中) 노선을 선택하고 사상검토를 맹렬히 벌였다. 사상검토는 전국 도처의 군부대, 직장, 촌, 당 및 정권기관 어디에서나 진행되었다. 사상검토에는 대중적 출당과 검거, 정치적 유배가 뒤따랐다.
--- p.215
 

출판사 리뷰

김일성 정권의 숙청을 피해 소련으로 귀환한 고려인 50여 명을 직접 만났다
생생한 증언과 회상록을 통한 철저한 고증과 역사의 재현!


저자는 1990년대 3년여 동안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하바롭스크, 로스토프 등 러시아 각지와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등에 살고 있는 전 북한의 당·정·군 고위인사들과 유가족, 평양의 소련군정 전 고위 장성 및 정보기관 간부 등 50여 명을 직접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 관련 희귀 자료와 사진 수백 점을 발굴했다.

특히 북한에서 조-소(朝-蘇)문화협회 부위원장, 동독 주재 북한 대사, 김일성 수상 통역담당 비서, 외무성 부상 등을 지내다 소련으로 귀환하여 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박길용 박사와 역시 북한에서 강원도당 부위원장과 중앙당학교 교장, 내무성 정치국장 겸 제1부상 등을 지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강상호, 또 북한에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다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귀환한 남봉식 등은 15년여 동안 자신들이 북한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을 자서전 또는 회고록 형식으로 기록한 미공개 육필 원고를 공개하기도 했다.

33세의 김일성은 어떻게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나?
평양에 파견되었던 고려인 엘리트의 눈을 통해 보는 북한


멀고도 가까운 북한. 우리는 북한의 근현대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나? 북한의 현재에도 근접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분단 이전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더 없이 어려운 일이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자료는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이고, 그마저도 쉽게 이념 논쟁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이 책은 평양으로 급파된 고려인 엘리트 군단의 역사인 동시에 북한의 현대사를 담은 기록이다. 33세의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될 수 있었던 이유, 6·25전쟁 직전 비밀리에 진행된 작전 계획, 주체사상의 등장과 그 즈음 북한에 불어 닥친 사상검토의 열풍 등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던 북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저자는 ①스탈린은 왜 33세의 젊은 청년 김일성에게 한반도 반쪽을 맡겼을까, ②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사실상 지명된 시기, ③‘건국 공신’ 소련파 총수 허가이와 김일성의 관계, ④남로당의 총수 박헌영과 소련파의 총수 허가이와의 관계에 대해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헤쳐 정리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북한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세세히 묘사한다. 이들은 분단 이후 북한이 소련군정을 벗어나 조선민주주의공화국으로 ‘건국’되는 길 위에 서 있었으며, 엄밀하게 그들은 북한 ‘건국의 공신’이었다. 그리고 6·25전쟁을 준비한 태스크포스였다. 우리는 그들의 눈과 입을 통해 북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잘려나간 한 페이지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인 이주 역사 150년,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러시아의 고려인 학자들에 따르면, 2013년은 고려인 1세대가 두만강을 건너 신천지 원동(遠東, 연해주)으로 이주해 대륙의 한민족 개척사를 쓰기 시작한 지 딱 150년이 되는 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전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 또는 고려 사람은 50여만 명(우즈베키스탄 17만 6,000명, 러시아 14만 8,000명, 카자흐스탄 10만 명, 키르기스스탄 1만 9,000명, 우크라이나 1만 3,000명, 타지키스탄 6,000명, 투르크메니스탄 3,000명 등)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한인들은 신천지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연해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불신했고, 이들이 소련 군대에 입대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또한 1937년부터 이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스탄 등지로 강제이주시켰으며, 빨치산 및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혁명가 출신의 고려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소련에 의한 고려인의 탄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뜻 깊은 해에 나온 이 책은 분단과 이념 대결로 일그러진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한민족 고려인의 ‘슬픈 역사’를 되새기며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킬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