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선시대사 이해 (독서>책소개)/2.조선의학문

우리에게 유교란 무었인가

동방박사님 2022. 7. 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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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저자 배병삼 선생이 2009년부터 2년여 동안 「녹색평론」에 연재해온 ‘생태의 눈으로 유교 읽기’ 작업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데, 그간 유교에 대하여 우리가 품어온 오해를 걷어내고, 공자·맹자를 편견 없이 다시 읽어냄으로써, 유교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과 주변의 영혼이 난폭해져가는 것을 두려움에 떨면서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우리에게, 저자는 ‘오래된 미래’의 길을 ‘유교’ 속에서 찾아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나도 지금 세상이 두렵다”

1부 유교, 오해 풀기
프롤로그 생태의 눈으로 《논어》 읽기
1장 위민은 없다
2장 민본주의는 번역어다
3장 충효는 없다
4장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
5장 가족을 다시 보자

2부 유교, 이해하기
6장 충성이란 무엇인가
7장 여민(이란 무엇인가
8장 맹자의 꿈―여민체제
9장 왜 요순인가
10장 유교의 정의란 무엇인가

3부 유교에서 길 찾기
11장 불인하도다, 카이스트여!
12장 인이란 소통이다
13장 덕이란 매력이다
14장 유교와 시장
15장 유교의 정치

에필로그 스승과 제자
 

저자 소개

저 : 배병삼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회한문연수원에서 권우 홍찬유 선생과 한학의 원로들로부터 한문과 고전독법을 배웠다. 한국사상사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고, 지금은 영산대학교의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한글세대가 본 논어』(전2권), 산문집『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가 있고 『고전의 향연』『글...
 

책 속으로

지금 이 땅은 피로감에 휩싸여 있다. 서양이라는 북극성을 향해 종종걸음 쳐온 길 뒤에는 황폐한 땅과 피폐한 사람들이 남았다. 자본주의가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오늘 이 땅은 부정의와 불균등, 불평등과 과로로 누구 할 것 없이 초조하고 불안하며 몹시 피로하다. 삶의 끝자락들에서는 지옥도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제대로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철학의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유교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논어》와 《맹자》에는 인간의 처지에 대한 아픔과, 세태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인류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맹자는 “공자가 시대를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제 자신도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꼴로 타락할까 두렵다”며 진저리쳤다. 공자와 맹자가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한 것은 고작 제 한 입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고, 급기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암울한 인간세상을 구제하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유교를 오해해왔다. 실물경제와는 담을 쌓은 도덕주의, 이기심과 욕망의 심리학을 억누른 관념주의, 현실을 도외시한 창백한 이상주의 등이 유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유교는 일용지간이라, 평범한 일상 속에 진리가 숨 쉰다고 여긴다. 진리는 지금 이곳, 너와 나 ‘사이’에 있을 따름이다. 인간조건을 넉넉히 감안하고서, 현재 삶의 문제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유교다. 비루하고 치사한 생존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고서, 산속이 아니라 질척이는 시장통에서 삶의 진실을 찾는다. ‘지금, 여기’에 제출된 역사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유교다. 피로에 찌든 우리 삶에 공자와 맹자는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문명을 예감하며, 유교를 호출한다!

저자 배병삼 선생은 지난 100년간 한국사회에서 고리타분하고 퇴행적인 것으로 다분히 매도되어온 유교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일상에 밀착하여 재미있고 새롭게 조명·해석하는 작업에 오랫동안 매진해온 정치철학자이다. 선생이 이것을 스스로 과업으로 삼은 데는, 한국의 학문연구 풍토에 대한 통탄이 있다. 우리의 사회과학 연구작업이 기본적 개념에서부터 식민지적 특성,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동양사상의 현대화 작업’은 따라서 우선 텍스트 자체를 고유의 맥락에 따라 이해하고, 꼼꼼하게 점검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선생의 신조이다.
이 책은 2009년부터 2년여 동안 《녹색평론》에 연재됐던 ‘생태의 눈으로 유교 읽기’ 작업을 바탕으로 삼아서, 그동안 유교에 대해 우리가 품어온 오해를 걷어내고, 공자·맹자를 편견 없이 다시 읽어냄으로써, 유교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불인하고 불의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혼이 난폭해져가는 것을 두려움에 떨면서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혹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 저자는 ‘오래된 미래’의 길을 ‘유교’ 속에서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유교에 대한 오해를 걷어낸다
쭉정이 개념 민본주의


맹자사상은 곧 민본주의/위민사상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민본’은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 ‘데모크라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국 및 일본 지식인들이 각각의 정치적 현실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였고 거기에 동양적 콤플렉스가 뒤엉킨 낱말임을 책은 설명하고 있다. 그런 빈껍데기 개념에 기초하여 맹자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일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오류임을 지적한다.

충효는 없다 ― 공자의 충신, 한비자의 충순

‘부모에 대한 효도’는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미지는 놀랍게도 유교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충효라는 말의 기원은 법가 한비자로서, 거기서 ‘충’은 군주(인격)에 대한 신하의 절대적 복종을 뜻한다(반면 유교의 ‘충’은 자기성찰에 가깝다). 이 법가의 원리는 제국을 다스릴 통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한나라 동중서에 의해 채택되었고, 이후 동아시아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특히 일본(에도시대)에서 충-효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의 봉건적 관습이 식민지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땅에서 맥락이나 개념적 이해 없이(동아시아 삼국이 공히 한자를 사용한 탓에 의미가 다른 개념들이 혼동되어 사용된 탓도 있다)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면서, 오늘날의 ‘유교〓충성’이라는 일반의 믿음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유교의 충성은 대상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뜻하지 않는다. 공자에게 충성은 ‘문명적 차원의 이념’ 또는 ‘자연법적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덕성에 바탕을 둔 덕치사회의 건설을 지향한다.

맹자의 비젼―여민동락의 세계

유교, 특히 맹자가 꿈꾼 세상은 인민(사람) 중심의 여민동락의 세계라고 줄여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땅(나라)의 주인은 인민이고, 군주는 그 인민을 대리하여(‘위하여’가 결코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위하여’라는 개념은 불평등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공공의 업무를 경영·관리할 뿐이다. 정치가(군주)와 인민(백성)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함께, 더불어’ 국가를 구성한다. ‘여민’체제에서 이 두 핵심 요소는 각기 주체성과 자율성을 갖고 서로 보완하며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

맹자를 정치사상가로서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여민’사상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제도를 설계하여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구상은, 인간 생존의 터전인 땅의 분배 방식인 정전제도, 국가재정(세제)에 관한 조법, ‘홀로된 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여민의 원리를 북돋워줄 학교제도, 이 모두를 감찰하고 부족한 측면을 보조하는 순수제도, 마지막으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미디어로서 시사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여민’ 이념을 현실화할 구체적이면서도 서로 연동되는 기제였다.

불인한 시대, 유교의 처방

오늘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잘사는 이들은 배가 불러서 죽을 판이고, 못사는 이들은 목숨을 연명하기도 힘든 판이다. 삶의 끝자락들에서는 한마디로 지옥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누구 할 것 없이 초조하고, 불안하며, 피로하다.
유교는 일용지간이라, 평범한 일상 속에 진리가 있다고 본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질곡이 되어있는 학교, 해체일로에 접어든 한국의 가족과 사회, 공공성을 완전히 상실한 시장경제와 그 시녀로 전락한 정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유교에 청해본다.

공자의 생태정치학, 신문명의 철학적 원리

“극기복례의 ‘극기’란 나를 이긴다는 뜻인데, 여기 나란 상대방을 수단으로 삼으려는 나, 도구로 보는 나를 뜻한다. 곧 에고(ego) 덩어리가 ‘기’다. ‘극기’란 에고를 부수고 툭 트인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을 말하고, ‘복례’란 너와 나의 경계가 툭 트이면서 우리로 승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예’란 상대방을 세계의 주인공으로서 영접하는 길들이다. 너와 내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길이 ‘예’다. 그러므로 ‘복례’에는 ‘나’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지향성이 있다.”

공자사상의 핵심, 인이란 ‘함께·더불어하기’다. 그 원동력은 ‘네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사람다움이란 홀로, 따로, 눈에 보이는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다움이란 너와 나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하여’ 논리를 거부하고, 그대가 있음에 내가 존재하는 ‘함께·더불어’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유교의 ‘정치’가 할 일이다. 여기가 덕치의 세계요, 여민동락의 세상이며, 극기복례가 실현되는 마당이다. 이곳에서 동식물, 산과 강, 너와 나는 모두 이 세계의 어엿한 주인공으로서 대접받게 된다. ‘생태정치’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공자는 어떤 세상을 구상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동료들 간에 신의가 있으며, 젊은이를 품어주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논어》5:25). 현생 인류의 ‘문명’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생존의 물리적·문화적 터전을 맹렬하게 공격해온 자살행위였다는 사실을 이제 사람들은 위태로운 나날의 삶 속에서 ‘실감’하고 있다. 한 시대 혹은 인류문명의 서막에 다가와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유교’가 보편적 의의를 갖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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