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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탄생의 비밀

동방박사님 2022. 7. 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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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교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탐구
"유교는 어떻게, 누구로부터 생겨났는가?"


이 책은 유교라는 종교 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유교가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어떤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유교의 기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 김경일은 연구에 참고할 만한 수많은 문헌들, 특히 중국 고금의 문헌 및 한국과 일본, 심지어 서양 연구자들의 논문까지 뒤져보았지만 관련서의 존재는 놀라우리만치 희박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유교는 공자가 창시했다’는, 검증된 일 없는 역사 상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저자가 말하길, 동양 문헌 대부분이 이른바 [논어][맹자]와 같은 경학의 텍스트들인지라, 다시 말해 감시되고 걸러진 것들이라 이를 읽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을 거라 진단하다.

본문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원시문명 시대의 자연숭배문화부터 시작하여, 상나라의 조상신 및 절대신, 그리고 강력한 종법제도와 봉건사상이 자리한 주나라 때의 ‘천(天)’ 사상과 ‘예(禮)’ ‘성(聖)’ ‘효(孝)’ ‘인(仁)’과 같은 유교를 대표하는 주요 가치의 원형을 되짚어 나간다. 무엇보다 본문의 후반부에서 유교의 ‘유(儒)’의 자형을 찾아가며 그 정체를 고증하는 대목은 이 책의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자연스런 역사 및 문화적 흐름이 중화사상의 옷을 입은 정치적 연출과 덧입혀진 왜곡으로 인해, 유교라는 근엄하고 거대한 추상적 존재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답게 그는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논어]와 같은 경학 텍스트가 아닌 명백한 문자 사료들을 증거자료로 삼았다. 상대 갑골문과 서주, 춘추, 전국시대의 청동기 기록, 그리고 전국시대, 진대의 죽간 등 오래된 날것 그대로의 실록을 통합적·귀납적으로 다루며 살펴보았다. 역사를 지나오면서 학자들의 윤색이나 가감의 연출이 애초에 불가능한, 이 명백한 1차 사료야말로 동양사상의 태생 지점을 추적하는 데 가장 믿을 만한 증거이다.

 

목차

여는 말 - 유교는 어떤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을까?

1장 유교문화의 기원을 어떻게 살펴보아야 할까?

2장 대자연과 조상신, 혼잡으로 존재하다
- 자연숭배, 그러나 또 하나의 선별
- 궁극적 절대신의 추구, 제
- 뒤섞인 조상신

3장 상족의 조상, 절대신이 되다
- 조갑과 제례 혁명
- 순혈주의와 조상신의 재분류
- 절대신 상제의 소멸
- 조상 제사의 우주론적 정비
- 남과 여, 그리고 조상신의 영역
-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정치

4장 주족의 조상, 정치의 중심에 서다
- 혈통 숭배의 계승
- 종법제도의 심층 구조
- 천의 정치학
- 효와 통치술
- 예와 권력 관리
- 자와 손, 그리고 영원회귀

5장 주대 청동기에 인이 보이지 않다
- 인의 불편한 진실
- 인과 성의 표층과 심층

6장 유란 무엇인가?
- 신과 인간을 잇는 통혼자로서의 무
- 비를 부르는 특정 무로서의 유
- 군자, 문화 권력으로서의 유

맺는 말 - 유교는 문화의 산물이다

고문자 관련 공구서 및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자 : 김경일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였다.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로 유학한 후 세계적인 고문자 학자 쉬탄훼이 박사로부터 고대문자와 갑골문을 배웠다.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워싱턴대학에서 동양의 고대문자와 문명의 연원에 대한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등 30여 년간 동아시아의 고문자와 동양사상에 관한 연구를 고집스레 지속해오고 있다. 《공자가 죽...
 

출판사 리뷰

[논어]에서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유교문화 최고의 가치 ‘인(仁)’의 글꼴은 상대 갑골문, 서주, 춘추 청동기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유교의 ‘유(儒)’의 글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만 유(儒)가 전문적으로 비를 부르는 고대의 주술사로, 최초의 글꼴은 사람과 비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점차 수(需)와 인(?)의 자소가 결합된 형태로 전환되었음을 학계 최초로 밝힌다. 따라서 한나라 유가들의 관념에 근거해 진행되어 온 유교문헌의 해석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유교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탐구
"유교는 어떻게, 누구로부터 생겨났는가?"


저자 김경일 교수가 예전 배움의 시절에서부터 중년의 학자가 된 지금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천착했던 연구 주제였던 유교의 시원 문제를 마감했다. 바로 이 책 [유교 탄생의 비밀]을 통해서이다. 더군다나 그는 유교라는 종교 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유교가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어떤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유교의 기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주제를 탐구하는 일은 단순히 학문적 성과를 넘어,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당연시하며 넘어가곤 했던 커다란 오류, 즉 ‘유교는 공자가 창시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왜곡된 사상과 역사의 결과물이었는지를 밝히는 진실의 선언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직까지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양사회이다. 하지만 솔직히 유교가 주는 이론적 훈계만 잔뜩 습득했을 뿐, 막상 이 유교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했고 발전해왔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 경우를 찾기란 힘들다. 저자 김경일은 연구에 참고할 만한 수많은 문헌들, 특히 중국 고금의 문헌 및 한국과 일본, 심지어 서양 연구자들의 논문까지 뒤져보았지만 관련서의 존재는 놀라우리만치 희박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유교는 공자가 창시했다’는, 검증된 일 없는 역사 상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저자가 말하길, 동양 문헌 대부분이 이른바 [논어][맹자]와 같은 경학의 텍스트들인지라, 다시 말해 감시되고 걸러진 것들이라 이를 읽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을 거라 진단하다.

본문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원시문명 시대의 자연숭배문화부터 시작하여, 상나라의 조상신 및 절대신, 그리고 강력한 종법제도와 봉건사상이 자리한 주나라 때의 ‘천(天)’ 사상과 ‘예(禮)’ ‘성(聖)’ ‘효(孝)’ ‘인(仁)’과 같은 유교를 대표하는 주요 가치의 원형을 되짚어 나간다. 무엇보다 본문의 후반부에서 유교의 ‘유(儒)’의 자형을 찾아가며 그 정체를 고증하는 대목은 이 책의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자연스런 역사 및 문화적 흐름이 중화사상의 옷을 입은 정치적 연출과 덧입혀진 왜곡으로 인해, 유교라는 근엄하고 거대한 추상적 존재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유교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온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종합해보면, 유교의 뿌리는 원시종교의 출발선에서부터 더듬어 낼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과의 싸움과 교감 속에서 저절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타 종족들 간의 쟁투 속에서 선별해갈 수밖에 없었던 친족 조상들에 대한 애착이 혼합되면서 정치적으로 점차 정비된 가치와 규칙, 그리고 의례의 통합체가 유교문화이다.
(/ 본문 중에서)

자연과 조상숭배의 정치적 통합체, 마침내 유교가 탄생하다

유교의 뿌리는 원시종교의 출발선에서부터 감지된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 보이지 않는 절대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친족 조상들에 대한 애착이 혼합되면서 정치적으로 정비된 가치와 규칙, 그리고 의례의 통합체가 유교문화이기 때문이다. 원시사회구성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 속에 내재된 신이 있다고 믿었고, 특히나 강력한 신위를 지녔다고 생각한 하(河, 황하), 악(岳, 산악), 토(土, 흙의 신)를 두고 ‘근본적인 존재로서의 분리된 신’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자연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나라(은나라로도 표현) 때 이르러 절대신 ‘제(帝, 혹은 상제)’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는 다시 왕실의 순수혈통을 강화하려는 왕 조갑에 의해 도태되고 만다.

조갑은 상제를 절대신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이전의 자연숭배문화를 의도적으로 약화시켰고, 대신 조상에게 신격을 부여하는 조상숭배의식을 중점 이데올로기로 만든 인물이다. 유교의 핵심이 되는 조상숭배의식은, 그러니, 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진화된 것이 아니라 상나라 왕실의 정치적 필요와 제례혁명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주나라 때에 이르자 ‘정치적 필요에 의한 가치 연출 작업’은 더욱 다양해진다. 역사학계의 상식으로 통하는 주나라의 ‘천명사상’ 또한 하늘이나 신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天)을 곧 왕실로 인식시키려는 연출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자연스런 부모에 대한 애정으로서의 효(孝)가 아닌, 남성 혈통 계승을 염두에 둔 정치적 장치로 읽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주나라 때에 완성된 종법제도는 봉건제도라는 정치적 기제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고, 이는 유교 탄생의 주요장면이 되었다.

고대문헌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인(仁)’과 ‘유(儒)’
그렇다면 유교는 대체 어떻게 생겨났는가?


주나라 때의 실록인 청동기 명문을 통해 저자는 인(仁)의 의미를 추적하였다. 유교의 기원에 있어 공자와 인(仁)이라는 두 키워드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나라 이전뿐만 아니라 공자가 살았었다고 알려진 춘추시대의 청동기 그 어디에서도 인(仁)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仁)의 글꼴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딱 한 번 등장하는 글꼴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가 결합된 현대 한자가 아닌, 전혀 다른 글꼴들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져 의미 또한 달라진 채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 이후에야 현대 한자의 모양과 문자풀이들이 등장하게 되는 등 글자의 원형과는 상관없는 해석이 유교문화 속에서 핵심가치로 자리하게 되었다. 저자는 인에 대한 설명의 마무리에서 ‘인은 외형적인 제도만으로 지탱할 수 없어 무너져가는 종법제도를 지탱시켜야 하는, 도덕이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통해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내야 하는 가치인 셈’이라 이야기한다.

유(儒)의 기본 자소 수(需) 자형, 청동기 ‘맹궤’

주검 시(尸)와 두 이(二)의 자소로 결합된 인(仁) 글꼴. 전국시대 청동기 ‘중산왕정(中山王鼎)’에 처음으로 등장.

유교의 ‘유(儒)’ 글꼴에 대한 단락에서는 그 의심이 더욱 짙어진다. 인(?) 변과 수(需)를 자소로 하는 유(儒)의 글꼴은 종교문화적 측면에서의 상징을 감추고 있는데, 이는 상대 갑골문은 물론, 주대의 청동기, 전국시대의 청동기와 죽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유(儒)는 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주술사로, 최초의 글꼴은 사람과 비의 두 가지 이미지가 결합된 형태이다. 즉 비 우(雨)와 큰 대(大, 而로 글꼴이 변화됨)의 자소를 지닌 수(需)가 그 최초의 형태인데, 이 글꼴은 전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사람 인(?)이 결합된 글꼴은 한나라 때 [설문해자]의 자형과 마왕퇴(馬王堆)의 글꼴을 근거로 따져보니 마침내 한나라 시기에 나타났던 것을 저자는 학계 최초로 밝혀냈다. 모든 후기 형성자들이 그러하듯이 수(需)가 잃어버린 사람의 이미지를 자소 인(?)으로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와 결과들을 맞닥뜨린 뒤에 얻게 되는 결론은, 유교 탄생의 정답이 ‘공자’라느니 ‘논어’라느니 ‘춘추시대’라느니 하는 한 가지 팩트를 내세우는 것이 정말로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문화적 연원을 한 개인에게 간단히 환원시켜 성인 또는 영웅을 만들어가는 중화의 세계관, 특유의 영웅신화 작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문화적 연변의 결과’라 저자는 밝힌다. 고대로부터 상나라, 주나라, 춘추 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오랜 시간을 흘러오면서 숙성되어 온 통합적 문화의 결정체이지, 한 인간이 창시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교 기원의 비밀을 탐색한 30여 년의 연구를 마감하다

김경일 교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과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로 놀라운 관심만큼 엄청난 공격에도 시달렸었다. 일반대중에겐 파격적인 주제로 에세이를 쓴 저자로만 인식되었겠지만, 사실 그는 ‘유교 기원’과 그에 뒤따르는 ‘동양사상’에 대한 연구와 비평으로 지난 30년의 시간을 오롯이 보낸 학자이다. 이 책에서 강도 높은 현실 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낯설기만 한 동양의 고대문자와 씨름하며 문자와 역사를 탐구한 그의 30년 연구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스로 말하길, 이 책으로써 연구 인생의 1막을 마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답게 그는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논어]와 같은 경학 텍스트가 아닌 명백한 문자 사료들을 증거자료로 삼았다. 이 점은 책의 부제목으로 뽑았을 정도로 이번 저술의 특별함을 부여하는 가치이다. 상대 갑골문과 서주, 춘추, 전국시대의 청동기 기록, 그리고 전국시대, 진대의 죽간 등 오래된 날것 그대로의 실록을 통합적·귀납적으로 다루며 살펴보았다. 현재까지의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연구를 살펴볼 때 이제껏 시도되지 않았던 방법이다. 역사를 지나오면서 학자들의 윤색이나 가감의 연출이 애초에 불가능한, 이 명백한 1차 사료야말로 동양사상의 태생 지점을 추적하는 데 가장 믿을 만한 증거이다.
특히 저자가 수집한 사료들의 실제 모습과, 이를 직접 해독하여 문자와 뜻을 일일이 달아가며 연원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집필하였다.

서주시대의 청동기 ‘복존(復尊)’
‘복존’의 해독 ▶
주나라의 제후가 상으로 복에게 화폐인 조개 삼 붕을 하사했다.
이에 복이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아버지 을을 위해 보배로 삼을 제기 존을 만들었다.
족의 후예로서. (侯賞復貝三朋, 復用作父乙寶尊彛)

이 책은 유교의 문화적 원형을 형성하고 있는 조(祖), 효(孝), 종(宗), 제(祭), 부(父), 자(子), 남(男), 여(女), 인(仁), 성(聖), 군자(君子), 유(儒) 등의 요소들을 각 장별로 구분하여 그 역사적, 내면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러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당 문자들의 고석을 진행하며 글꼴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계속 반복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한 자료들은 유교를 도덕이나 철학의 관점에서만 살피던 학자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고대문자의 글꼴과 텍스트들이다. 또 저자는 실증의 입장에서 고대사회의 현장을 실록이 가급적 그대로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였다.

이 책은 유교문화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즉 평가를 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행히 유교가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착되는 한나라 이전 시기의 문화를 조명해볼 수 있는 전국시대의 죽간들이 최근 학계에 선사되었다. 그 죽간과 동일 시대인 전국시대의 청동기, 그리고 전국시대의 윗 시기인 춘추시대, 그리고 이전 시대인 서주시대의 청동기 명문들이 선명한 글꼴과 정연히 정리된 시대의 모습으로 또한 학계에 주어졌다. 이 시대에 고대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행복해진다. 아울러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검증되고 고증된 갑골문의 기록들은 한나라 이전 시대 문헌들의 정점을 찍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진행해보는 커다란 시도이자, 동시에 작은 결론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