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종교의 이해 (독서>책소개)/2.한국종교

개벽의 사상사

동방박사님 2022. 7. 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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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개벽’의 시선으로 한국사상을 다시 본다
최제우 한용운 안창호 함석헌 김수영 등
변혁을 꿈꾼 사상의 거인들 깊이 읽기


근대 한국사상의 특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벽의 사상사: 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은 최근 우리 고유의 문명관이자 자생적인 변혁사상으로 재소환되고 있는 ‘개벽’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상사의 큰 줄기를 파악한 책이다. 그간 서구 담론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근대전환기 개벽사상을 소개하는 한편, 수운 최제우,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 등 널리 알려진 근현대 주요 사상가들을 개벽파의 시각에서 탐구했다. ‘근현대 한국사상’이라고 칭할 만한 연구 작업이 많지 않은 실정에서 11명의 연구자들이 3년간 공동연구를 통해 우리 근대사상의 흐름을 천착해 얻은 결실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의가 크다.

여기 소개된 사상가들은 종교, 철학, 정치, 문학 등 각자의 분야에서 자아와 사회뿐 아니라 세계로까지 시야를 넓혀 체계적 사유를 펼쳤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백년의 변혁기에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독창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을 내보였다. 외부 열강의 압력이 높아지던 19세기는 조선 말기의 혼란상에 지친 민중의 저항과 새 세상을 꿈꾸었던 변혁의 사상들이 움튼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변혁의 사상은 식민지배와 독립, 분단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한반도 개벽파’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계보를 형성했다.

집필진은 개벽을 추구한 주요 사상가들의 체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각 사상의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고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여기 소개된 사상가들은 단지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근본적인 성찰과 대전환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오늘날, 우리 사상의 거인들을 깊이 읽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근대전환기 새 세상을 꿈꾸다

1장 최성환의 무상단의 권선서 출판과 통속 윤리의 제안 / 김선희
2장 · 탁사 최병헌의 문명론과 국가건설사상 / 허남진
3장 · 동학공동체의 ‘철학적 근대’: “개벽” 개념의 성립과 계승 및 변용 / 박소정
4장 · 근대 전환기 동학?천도교의 개벽론: 불온성과 개념화의 긴장 / 허수
5장 · 김형준의 ‘동학사회주의’와 ‘네오휴머니즘’ / 정혜정
6장 · 정산 송규의 개벽사상과 그 전개: 일원개벽에서 삼동개벽으로 / 장진영

2부 근대적 국민국가 수립과 그 너머

7장 · 도산의 점진혁명론과 그 현재성 / 강경석
8장 · 만해 한용운의 님의 형이상학: 한국사상사의 맥락에서 본 『님의 침묵』 / 조성환
9장 · 경계를 횡단하는 조소앙과 변혁적 중도주의 / 백영서
10장 · 함석헌 사상 속의 비판적 쟁점들: 개벽, 소위 토발적 시각에서 살피다 / 이정배
11장 · 김수영과 근대의 ‘이중과제’ / 황정아

공저자 소개
 

저자 소개 

저 :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양철학과 동서비교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학으로 불리는 르네상스기 유럽 학술의 동아시아 전이에 관해 연구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연구서로서 <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등을 썼고, <하빈 신후담의 돈와서학변>을 번역했으며 <8개의 철학지도>, <나를 공부할 시간...
 

저 : 박소정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 박사. 저서로는 『流?的音?思? - 先秦?子音??新探』과 『?南???北?儒?的建????』(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근대의 이중과제’와 ‘개벽’이라는 관점
변화를 추동하는 현실 인식


근래에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지상주의 같은 근대적 사유를 넘어서거나 민족적 경계의 안팎을 성찰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엮은이 백영서는 이러한 다원적인 근대성 논의로는 역사적 근대인 자본주의시대가 한반도의 삶에 발휘한 압도적인 힘을 제대로 인식하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집필진은 우리 근현대 사상을 재구성하고 거기서 제대로 된 성찰과 변혁의 상상력을 끌어낼 핵심 주제로 ‘근대의 이중과제’와 ‘개벽’을 제시한다.

여기서 ‘이중과제’는 두 과제의 절충이나 선후 단계가 아니라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는 단일한 과제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근대에 적응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해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과정임을 통찰하는 이중과제의 관점이 유용하다. 체계적 이론이라기보다 사유의 방법이나 분석의 틀이라 할 이 담론은 꼭 근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상식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할뿐더러 역사적 경험 역시 그러하다.

한편 ‘개벽’은 한국 근현대사상이라는 특수한 대상에 접근할 고리다. 주로 구한말 토속 종교가 주창한 신비적 개념으로 여겨지곤 했던 이 말은 한국 근대라는 격동의 현실을 고려할 때 고통과 구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는 정치적 기획과 연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개벽은 변혁, 개혁, 전환과 같은 세속적이고 오늘날 활발히 활용되는 개념들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근현대사상의 넓은 시야와 변화의 전망을 잘 보여주는 용어라고 연구진은 판단한다.

근대전환기의 변화와 혼란을 맞닥뜨려
자기 수양과 사회변혁을 외친 종교와 사상


책 1부는 혼란기인 조선 말기에 변혁을 꿈꾸며 새롭게 등장했던 사상가들을 만난다. 1장에서 김선희는 19세기 후반에 중인 출신 무인 관료인 최성환이 참여한 도교 계열의 ‘권선서’ 출간과 유행 과정을 살피며, 당시 유학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모종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설명한다. 이는 근대전환기 첫머리에 19세기의 사회적 변화와 도덕적 혼란에 대응해 이미 내부에서 변혁의 역량을 축적하고 변화를 꾀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이어서 허남진은 토착적 신학자로 평가되는 최병헌을 소개한다. 그는 유교와 기독교를 결합해 개인 수양과 사회적 변혁을 연결시켰다. 그의 지향이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는 못했지만, 정교결합이라는 흐름은 개벽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3~5장은 동학을 정면으로 다룬다. 동학은 단지 조선 왕조의 누적된 병폐를 개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벽을 향한 사상적·실천적 돌파를 이루기 위해 출발한 것으로, 단순한 왕조 교체나 제도적 변혁을 지향한 혁명이라기보다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한 문명전환 운동이었다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3장에서 박소정은 동학과 천도교를 하나로 묶어 ‘동학공동체’로 호명하면서, 그 공동체 내부에서 개벽 개념을 재해석한 과정을 보여준다.

최제우에 의해 제시된 ‘다시개벽’은 중국에서 유래한 전통적 의미의 개벽처럼 천지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우주 속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개벽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어서 허수는 4장에서 개념의 언어적 연결망을 분석하며 수운의 ‘다시개벽’이 가진 불온성이 1910년대에 들어 사회진화론의 점진적 발전론에 의해 개념화되면서 순치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후 개벽의 불온성은 ‘혁명’이라는 용어에 의해 대체되었지만, 본래적 의미의 개벽사상은 기층 민중의 인식 속에 넓게 복류하면서 한국인의 근대 경험을 특징지었다고 말한다. 동학의 개벽 개념 자체에 천착한 두편의 글과 달리 정혜정은 5장에서 천도교가 주도한 신문화운동 2세대 김형준에 초점을 맞춰 그의 ‘동학사회주의’를 분석했다. 동학사회주의의 핵심인 변증법적 주객통일의 인간주체론은 역사변혁의 주체로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개인을 넘어서는 역사적·사회적 개성으로서 인간 이해를 제시한다.

한편 장진영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종규 대종사의 ‘일원(一圓)개벽’을 계승?발전시킨 정산 송규의 ‘삼동(三同)개벽’을 6장에서 설명한다. 원불교 정신개벽의 방향은 도학과 과학이 병진된 대안적 문명세계의 비전을 보여준다. 특히 해방 직후 제출된 정산의 정교동심(政敎同心)론은 마음의 혁명을 통해 궁극적인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독창적 관점을 선보였다.

식민, 분단, 전쟁, 독재에 맞서
싸우고 바꿔낸 사상과 사상가들


책 2부는 잘 알려진 근현대 한국사상의 거인들을 변혁의 시각에서 다시 해석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과 더 나은 나라만들기를 부단히 고민하고 성취하려 했던 사상가들의 시도가 소개된다. 먼저 7장에서 강경석은 도산 안창호를 자기 시대의 변화하는 역사와 현실, 유동하는 정세 가운데 치열하게 사유하고 실천하며 ‘변혁적 중도’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던 점진혁명론자로 해석한다. 민족해방과 독립국가 건설을 당대의 변혁과제로 삼은 안창호가 그 실현을 위해 ‘중도’를 택하고 민족역량의 최대결집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개벽 인식이 20세기 너머까지 확산해간 양상을 만해 한용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8장에서 조성환은 만해의 대표작 『님의 침묵』을 분석하며 그가 노래한 ‘님’이 생명의 님으로서 모든 님들의 님이자 그것들을 님이게 하는 ‘메타적인 님’이고, 사상적으로는 척사파나 개화파보다는 ‘개벽파’에 친화적이라고 해석한다.

9장에서 백영서는 임시정부와 해방정국의 주요 정치인 조소앙을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점에서 해설한다. 조소앙의 독창적 사유체계는 경계를 횡단한 그의 이채로운 행적의 소산인 동시에 한국 사상사를 관통하는 유불선 융합의 사유구조를 내면화한 결과임을 말한다. 한편, 정치와 종교를 아울러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탈기독교적 기독교를 주창한 함석헌의 ‘씨?’ 사상도 변혁사상의 소중한 자원이다. 그러나 이정배는 10장에서 개벽의 시각에 입각해 씨? 사상의 한계를 지적한다. 동학과의 관계를 놓친 것이 함석헌의 편중된 기독교적 시각 탓이라고 비판하는, 자못 논쟁적인 글이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황정아는 시인 김수영의 시를 둘러싼 해석에 비평적으로 개입하면서, 김수영이 근대적응으로의 일방적 몰입에 저항한 데서 더 나아가 이 땅에 ‘거대한 뿌리’를 박는 방식을 통해 근대의 극복을 도모했기에, 모더니즘적 새로움의 미학에 그치지 않고 이중과제를 수행한 적절한 사례라고 평가한다.

개화와 위정척사의 이분법을 넘어
개벽파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 근현대


우리는 구한말 근대의 물결이 한반도까지 이르렀을 때 한반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개방’을 주장한 개화파와 ‘쇄국’을 주장한 위정척사파가 있었다고 가르치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는 기층민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한반도 주민으로 시야를 넓히지 못한 시각일 뿐 아니라, 근대를 오로지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보는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개벽의 사상들은 우리 스스로 안과 밖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가치가 실현되는 새 세상을 꿈꾸었다. 그 생각들은 외부의 충격에 매몰되지도, 그 위력을 간과하지도 않았으며, 내부의 과제를 단순화하지도, 거기에 갇히지도 않았다. 당면한 과제를 넓고 깊게 사유하면서도 변화의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근대라는 과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간 ‘적공’의 과정을 새롭게 탐색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