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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톨릭교회는 왜 피스빌딩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피스빌딩에 접근해야 하는가.’ 이 책 『피스빌딩』에 수록된 모든 내용은 이 질문과 관련된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의 소명으로서의 피스빌딩 과제를 학문과 실천을 연결하는 학제 간 접근법으로 검토하며, 피스빌딩 과정에 교회가 이바지한 독특한 자원, 개념, 실천 행위를 탐구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신학자, 역사학자, 평화학자, 사회윤리학자이자 피스빌딩 활동가들로, 콜롬비아, 필리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교회가 수행한 피스빌딩 경험에서 얻은 폭넓은 통찰을 신학적, 윤리적으로 연결하고 재구성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교의, 상징, 의식, 윤리가 전 세계 피스빌딩 활동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추천의 말 :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 13
한국어판 추천의 말 : 제라드 파워즈 · 15
추천의 말 : 존 오나이예칸 대주교 · 20
서문 : 제라드 파워즈 · 26
1부 가톨릭이 다른 활동가들과의 관계 맺기
정치 공동체
1장 피스빌딩과 가톨리시즘 - 관련성, 수렴성, 가능성 · 스콧 애플비 · 35
2장 인간성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 존 폴 레더락
- 무장 세력과 이루는 가톨릭 피스빌딩 · 73
3장 우리는 어떤 종류의 평화를 추구하는가? · 매리앤 쿠시마노 러브
- 주요 정치 기관의 새로운 피스빌딩 규범 · 135
4장 화해 - 정치 질서에서 피스빌딩을 위한 가톨릭 윤리 · 다니엘 필포트 · 197
5장 가톨릭 구제회 - 가톨릭 피스빌딩 실천 · 윌리엄 헤들리?레이나 노이펠트 · 259
6장 피스빌딩과 그 도전 과제 · 토드 휘트모어
- 정의, 인권, 개발, 그리고 연대 · 315
7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진실, 화해, 인간 존엄성 추구 · 피터-존 피어슨
-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한 교훈 · 381
종교와 문화
8장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과 피스빌딩 - 의식, 성사, 영성 · 로버트 슈라이터 · 436
9장 종교간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
- 인도네시아의 ‘슬픈 시기’로부터 배운 몇 가지 교훈 · 토마스 미셸 · 474
2부 가톨릭 피스빌딩이 성장해 가야 할 분야
10장 피스빌딩과 가톨릭 사회교리 · 케네스 하임즈 · 521
11장 피스빌딩을 위한 신학 · 리사 소울 케이힐 · 583
12장 피스빌딩과 화해 - 종교간 대화와 가톨릭 영성 · 피터 판 · 642
13장 치유, 용서, 화해의 실천 신학 · 로버트 슈라이터 · 699
14장 연대의 이야기들 - 가톨릭 피스빌딩의 도전 · 데이비드 오브라이언 · 754
15장 가톨릭 피스빌딩의 미래 방향 · 로버트 슈라이터 · 798
한국어판 추천의 말 : 제라드 파워즈 · 15
추천의 말 : 존 오나이예칸 대주교 · 20
서문 : 제라드 파워즈 · 26
1부 가톨릭이 다른 활동가들과의 관계 맺기
정치 공동체
1장 피스빌딩과 가톨리시즘 - 관련성, 수렴성, 가능성 · 스콧 애플비 · 35
2장 인간성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 존 폴 레더락
- 무장 세력과 이루는 가톨릭 피스빌딩 · 73
3장 우리는 어떤 종류의 평화를 추구하는가? · 매리앤 쿠시마노 러브
- 주요 정치 기관의 새로운 피스빌딩 규범 · 135
4장 화해 - 정치 질서에서 피스빌딩을 위한 가톨릭 윤리 · 다니엘 필포트 · 197
5장 가톨릭 구제회 - 가톨릭 피스빌딩 실천 · 윌리엄 헤들리?레이나 노이펠트 · 259
6장 피스빌딩과 그 도전 과제 · 토드 휘트모어
- 정의, 인권, 개발, 그리고 연대 · 315
7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진실, 화해, 인간 존엄성 추구 · 피터-존 피어슨
-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한 교훈 · 381
종교와 문화
8장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과 피스빌딩 - 의식, 성사, 영성 · 로버트 슈라이터 · 436
9장 종교간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
- 인도네시아의 ‘슬픈 시기’로부터 배운 몇 가지 교훈 · 토마스 미셸 · 474
2부 가톨릭 피스빌딩이 성장해 가야 할 분야
10장 피스빌딩과 가톨릭 사회교리 · 케네스 하임즈 · 521
11장 피스빌딩을 위한 신학 · 리사 소울 케이힐 · 583
12장 피스빌딩과 화해 - 종교간 대화와 가톨릭 영성 · 피터 판 · 642
13장 치유, 용서, 화해의 실천 신학 · 로버트 슈라이터 · 699
14장 연대의 이야기들 - 가톨릭 피스빌딩의 도전 · 데이비드 오브라이언 · 754
15장 가톨릭 피스빌딩의 미래 방향 · 로버트 슈라이터 · 798
책 속으로
대부분의 현대 평화 신학자들과 평화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필자들은 이 장 서두에 기술한 피스빌딩에 대해 보다 포괄적이고 탄탄한 정의를 채택한다. … 피스빌딩에는 갈등 해결, 평화유지, 전후 사회 재건이라는 활동이 모두 포함된다. 이 일련의 활동에, 가톨리시즘은 일군의 뚜렷한 가르침, 실천 행위, 감수성, 그리고 제도적 자원을 부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성경과 전통, 신학에서 파생된 근본적인 도덕 원리를 표명하는데, 이 원리가 가톨릭의 사회적 실천을 이끈다. 평화와 정의, 전쟁과 무력의 사용에 관한 구체적인 교회의 가르침, 통합적 인간 발전에 대한 요청이 이 근본 원리에 적용된다. 가톨릭 사회 윤리의 초석에는, 인간 생명의 신성함 과 각 개인의 본질적인 존엄, 특정 계급, 인종, 민족 또는 종교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공동선 추구에 투신하기, 그리고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 포함된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히 권위를 지닌 것이지만, 이런 원리와 가르침은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고, 그렇기에 세속적 대화 상대자나 종교적 대화 상대자 모두가 똑같이 접근할 수 있는 2차(신학적이지 않은) 언어로 전달된다.
---「‘1장 피스빌딩과 가톨리시즘 - 관련성, 수렴성, 가능성’」중에서
이 장은 가톨릭 지도층이 무장 단체, 무장 활동가와 겪은 경험에 관한 탐구로 시작한다.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초기 실증 탐구로, 교회 지도자들이 무장 세력과 얼굴을 맞대고 접촉해야 했던 노골적인 폭력의 맥락에서 직면한 경험들, 접근법, 그리고 도전에 관한 개요를 제공하려 한다. 이 작업은 기껏해야 주로 콜롬비아, 필리핀, 우간다 지도자들과의 접촉과 토론에 기초한 것이기에, 하나의 조사이자 탐구를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둔다. 둘째로, 훨씬 다루기 어려운 사안으로, 교회 지도층이 무장 세력이라는 현상에 마주하여 교류하는 정통-실천(ortho-praxis) 이 이를 지탱하는 신학과 신념 체계인 정통-교리(ortho-doxa) 와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는지에 관한 초기 프레임으로, 피스빌딩 신학을 제안하고 탐구해 보려 한다. 이 책의 더 넓은 목적은, 과연 실천과 그 실천에 동기를 부여하는 신념에 특별히 가톨릭적인 측면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2장 인간성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 무장 세력과 이루는 가톨릭 피스빌딩’」중에서
한쪽은 침략자이고 다른 쪽은 피해자이며, 정당한 전쟁이 갈등에 선행했다는 이런 법률주의적 가정은 상당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쟁은 부룬디에서처럼 침략자와 피해자를 명명하기 어려운 내전이며(국제전은 거의 드물기에), 모든 면에서 도덕적 침해가 발생한다. 40년간의 콜롬비아 분쟁에서 많은 국가와 비국가 활동가 중 어느 쪽이 침략자인가? 아무도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전 세계 대부분 분쟁의 현실을 다루지 않는 전쟁 종식 정당성 기준은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행 분쟁이 정당한 전쟁이 아닐 때는 더 많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한 전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국방부와 국무부, 분쟁 후 재건에 관여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피스빌딩 행동을 인도하기 위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3장 우리는 어떤 종류의 평화를 추구하는가 - 주요 정치 기관의 새로운 피스빌딩 규범’」중에서
정치적 화해는 정의의 한 개념으로, 정치적 불의에 연루된 피해자, 가해자, 공동체 구성원, 그리고 국가를 정치 질서에서 또는 정치 질서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라는 조건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기본권의 보장과 인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조건으로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포함한다. 정치적 화해는 정치적 불의가 초래한 뚜렷한 상처에 대해 사람과 관계를 회복할 것을 목표로 6가지 실천 행위로 구성된다. 이런 회복은 정치 질서의 정당성, 신뢰, 국민의 충성,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자본 - 정의로운 제도의 안정성, 경제 성장, 국가 간의 평화, 여러 사회적 재화를 촉진하는 - 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과 판단을 낳을 수 있다.
---「‘4장 화해 - 정치 질서에서 피스빌딩을 위한 가톨릭 윤리’」중에서
CRS의 경험으로 보건대, 기술적 우수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전문적인 구호와 개발 기관이 신앙에 기반을 둔 성찰을 유지하기에는 일정한 어려움이 있다. 정의의 렌즈, 통합적 인간 발전, 연대성에 대한 스텝들의 성찰은 기관 전체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 활동에 공통의 기초를 제공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CRS 내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해 단지 그 방향성에 대해 동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교리의 언어와 개념에 대한 더 많은 인식과 통합이 필요하다. 이 일에는 평화에 대한 개념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개념을 국제 비정부기구 프로젝트에 통합하는 일은 하나의 도전적인 과제인데, 윤리적 성찰, 신학, 영성은 프로젝트 상의 활동이나 기술, 또는 운영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영성적 깊이가 긴 시간에 걸친 사회 변화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부룬디 사례는 이런 도전 과제를 강조한다.
---「‘5장 가톨릭 구제회 - 가톨릭 피스빌딩 실천’」중에서
난민법 프로젝트는 소극적 평화의 추구는 정의에 기초한 적극적 평화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의 적절한 ‘순서(sequencing)’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문장을 뒤집어, “정의를 원한다면 (소극적) 평화를 위해 활동하라”인 것이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이 보고서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2006년 7월 남수단 정부의 보호 아래, 우간다 정부와 신의 저항군 대표들이 협상을 시작했다. 2006년 8월, 양측이 적대관계 종식 협정(the Cessation of Hostilities Agreement)에 서명한 뒤, 월평균 납치와 살인 횟수는 한 자릿수로 급속도로 떨어졌고, 캠프에 머물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 모든 일이 책임성과 재건에 관한 어떠한 합의도 없이 이루어졌다. ‘야간 통행자(night commuter, 집에서 납치되는 일을 피하고자 밤에는 무역 센터에 와서 지내는 아동 - 역자 주)’ 숫자가 1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북우간다의 가장 큰 마을 굴루는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와 남수단의 수도 주바를 잇는 주요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상대적인 소극적 평화가 두 수도를 잇는 도로의 보수와 개선을 허용한 것이다.
---「‘6장 피스빌딩과 그 도전 과제 - 정의, 인권, 개발, 그리고 연대’」중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톨릭 피스빌더를 위한 근본적인 교훈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피스빌딩의 기술과 과정이 한 사회에서 전개될 때, 사회의 모든 분야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열린 대화와 참여를 요구하고, 그 기술과 과정이 힘 있는 엘리트의 특권을 유지하지 않아야 하며, 과거의 균열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평화 과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교 활동가는 참여의 폭을 확장하고 진실과 인간 존엄성의 기준에 관해 설명하며, 그럼으로써 평화적 실천을 고양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7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진실, 화해, 인간 존엄성 추구 -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한 교훈’」중에서
존 폴 레더락이 『도덕적 상상력』에서 제시한 것, 즉 대안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에다 종교적 상관성을 뚜렷하게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이라는 틀에 따라, 화해의 영성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평화와 화해를 가져오는 궁극적인 원천이기도 한 초월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8장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과 피스빌딩 - 의식, 성사, 영성’」중에서
진실 말하기는 피스빌딩의 필수 도구다.
인도네시아에서 거짓 소문과 비난을 퍼트리는 것이 공동체 갈등을 조장하는 성공적인 수법이었기에, 정확한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하는 일은 폭력의 확산을 막고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핵심 작업이었다. 악의적인 루머만큼 민족이나 종교 집단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의심과 원한은 사람들에게 ‘적’이 지닌 최악의 모습을 믿게 한다. 범죄와 만행에 대한 과장되고 일방적인 설명은 호전적인 명분을 지지하게 만들고, 폭력 사태를 연장시키는 일에 동원되는 자원자들을 모집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반쪽 진실, 거짓말, 과장, 그리고 욕설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주의 깊게 진실을 모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었는데, 아마도 이 작업은 인도네시아 주교들이 만든 위기 센터가 피스빌딩을 위해 한 가장 큰 공헌일 것이다. 진실에 대한 헌신은 갈등 양측이 자신의 관점과 불만을 제시할 때도 일관되게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가 저지른 잘못과 범죄에 대해 자기 비판적으로 인정하는 의지를 포함한다.
---「‘9장, 종교간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인도네시아의 ‘슬픈 시기’로부터 배운 몇 가지 교훈」중에서
넓은 범위의 ‘발전할 권리’는 사실상 인간과 공동체 번영에 필수적인 자유, 재화, 관계를 한데 모은 개념으로 작용한다. 주교단은 계속해서 개인의 발전과 집단적 발전에서의 ‘사회 구조의 객관적 장애’에 대해 논한다. 시노드 주교단은 사회와 국제 구조의 역할이 다뤄지지 않는다면 발전할 권리로 망라되는 자유, 재화,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 주장을 피스빌딩이라는 주제에 적용하면, 평화를 창조하는 일은 통합적 발전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으로, 평화 활동이 기본적인 자유를 확립하고 기초 재화를 보장하며 필수적인 관계를 증진하고, 발전할 권리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사회 구조와 기관을 개혁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스빌딩은 정부와 비정부, 서로 다른 수준의 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통합적 발전이라는 다차원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벌이는 일련의 활동으로 광범위하게 이해된다. 발전이 평화의 새로운 이름이기에 그렇다.
---「‘10장 피스빌딩과 가톨릭 사회교리’」중에서
콜롬비아와 부룬디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폭력과 박탈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키우는 연대의 실천에 참여하는 일은 용기와 상상력을 요구한다. 레더락이 지적한 것처럼, 피스빌딩은 위험이 따르는 사업이다. 상황을 일으킨 원인이나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상황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이미 일종의 위험이 따른다. 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위험 요소다. 군벌 지도자와 협상을 하거나 무장 집단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거대한 위험 요소다. 위험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취약성을 인정하고, 어떤 프로세스나 인간이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선험적으로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는 일이다.” 피스빌딩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는 용기는 희망을 요구하고, 또 미래를 상상할 능력을 요구한다.
설령 우리에게 그런 미래를 지성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인지적으로 이해할 근거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런 미래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매혹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폭력이 인간 공동체를 에워싸기 위해 둘러치는 얇은 벽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인간의 영 안에 심어 주신 창조성이 언제나 우리 손닿는 곳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창조성은 창조주로부터 인류의 정신 안에 부여되었고, 성령에 의해 쇄신된다. 동료 인간 존재와의 창조적 연대는 우리의 구원이 의미하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구원은 상상으로나마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희망을 키우는 연민, 용서, 평화를 실천함으로써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
---「‘11장, 피스빌딩을 위한 신학’」중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일부러 한 번 더 강조) 종교간 대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교황이 종교간 대화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했든, 적어도 종교간 대화가 어떤 사람의 신앙을 괄호에 넣는 일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중 양식으로 이루어진 종교간 대화는 누군가의 신앙을 괄호에 넣지 않고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실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대화는 신앙으로 활력을 얻고 한 사람의 종교 신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유지될 때 가장 좋은 결실을 맺는다. 더 나아가 문화와 신앙의 분리나, 함축적으로 말해서, 문화간 대화와 종교간 대화의 분리는, 서구에서 특히 계몽주의 이후 서구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세계 여러 지역, 특히 종교가 곧 문화이거나 문화가 곧 종교인 아시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간 대화, 또는 종교간 대화를 반대하며 종교적 결정의 문화적 결과에 관한 대화, 즉 종교 문제에 대한 대화를 옹호하는 일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증진하려고 했던 바로 그 문화간 대화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며, 특히 대화의 목표가 피스빌딩과 화해인 곳에서는 더 그렇다.
---「‘12장 피스빌딩과 화해’」중에서
일정한 사과 의식이 있어야 한다. 사과는 그 표현을 피해자와 함께 만들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경험한 고통을 앞서 기억의 치유에서 언급한 ‘증언’ 차원으로 표현하고, 가해자가 표현하는 후회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캐나다 연합교회와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는 캐나다 서부 원주민(First Nation Peoples in Western Canada : 메티스나 이누이트 같은 인디언 원주민을 지칭한다. - 역자 주)에게 과거에 자행한 학대와 문화적 논쟁에 대한 사과를 표현했다. 2008년 호주의 케빈 러드(Kevin Rudd) 총리가 호주 원주민에 대해 ‘죄송하다’고 표현한 것이 또 다른 예이다. 사과는 의례적 행위다. 사과가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재구성할 수는 있다. 때로 그런 의식 행위는 계획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아우슈비츠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독일?폴란드 관계를 치유하는 데 수많은 문서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한 것은 유대인?가톨릭 관계를 위한 마찬가지 행위였다. 사과는 종종 기념비나 다른 기념관의 설립으로 영구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13장 치유, 용서, 화해의 실천 신학’」중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은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움직임으로, 교회 자체의 정치학이다. 레더락은 ‘탄탄한 수직적, 수평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가톨릭의 특별한 잠재력, ‘대화의 기반’이라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조항, 그리고 일치, 용서, 화해의 상징과 의식에 주목한다. 그러나 모든 연대 이야기를 살펴보더라도, 이런 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교회의 정치학에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천슨은 피스빌딩은 ‘교회를 정의하는’ 문제이자 ‘교회를 분열시키는’ 문제라고 말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피스빌딩 경험 이면에는, 과거든 현재든, 교회 정치학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데, 지역 교회가 역사적 책임과 다른 방식을 취하면 결국 평화에 거스르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를 경험해 온 사람들은 굳이 교회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북미 신학자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필요도 없다.
그들은 교황청의 정책에 따라, 교황대사의 성격에 따라, 주교들의 선택에 따라,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종교 교단들의 지도력과 정책들에 따라 어떤 차이가 생겨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피스빌딩 과정에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다. 크리스천슨과 다른 여러 학자들은 평화에 관한 교회 가르침에서 이루어진 의미심장한 변화들, 피스빌딩 이론과 실천을 뒷받침하는 변화에 관심을 갖기를 요청해 왔다. 교황들의 담화문과 교황청 정책은 대개 평화에 관한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과 화해를 위한 지역 교회의 노력을 지지하지만, 그것이 피스빌딩의 전부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신학자들과 사목 지도자들이 전도유망한 계획을 추진하려 한다면, 교회 자체의 결정 수립 과정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4장 연대의 이야기들 - 가톨릭 피스빌딩의 도전’」중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미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일어날 법한 것을 예측하는 방법이기도 하려니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 같은 일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본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해서도 이런 점이 언급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논의한다고 해서, 가톨릭 피스빌딩이 세상이 설정한 의제를 따르는 교회만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만일 피스빌딩 활동에 대한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성찰이 경험과는 동떨어진 채 추상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가톨릭 피스빌딩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또 만약 가톨릭 피스빌딩이 가톨릭 윤리와 신학적 전통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지속적인 연관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
---「‘1장 피스빌딩과 가톨리시즘 - 관련성, 수렴성, 가능성’」중에서
이 장은 가톨릭 지도층이 무장 단체, 무장 활동가와 겪은 경험에 관한 탐구로 시작한다.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초기 실증 탐구로, 교회 지도자들이 무장 세력과 얼굴을 맞대고 접촉해야 했던 노골적인 폭력의 맥락에서 직면한 경험들, 접근법, 그리고 도전에 관한 개요를 제공하려 한다. 이 작업은 기껏해야 주로 콜롬비아, 필리핀, 우간다 지도자들과의 접촉과 토론에 기초한 것이기에, 하나의 조사이자 탐구를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둔다. 둘째로, 훨씬 다루기 어려운 사안으로, 교회 지도층이 무장 세력이라는 현상에 마주하여 교류하는 정통-실천(ortho-praxis) 이 이를 지탱하는 신학과 신념 체계인 정통-교리(ortho-doxa) 와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는지에 관한 초기 프레임으로, 피스빌딩 신학을 제안하고 탐구해 보려 한다. 이 책의 더 넓은 목적은, 과연 실천과 그 실천에 동기를 부여하는 신념에 특별히 가톨릭적인 측면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2장 인간성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 무장 세력과 이루는 가톨릭 피스빌딩’」중에서
한쪽은 침략자이고 다른 쪽은 피해자이며, 정당한 전쟁이 갈등에 선행했다는 이런 법률주의적 가정은 상당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쟁은 부룬디에서처럼 침략자와 피해자를 명명하기 어려운 내전이며(국제전은 거의 드물기에), 모든 면에서 도덕적 침해가 발생한다. 40년간의 콜롬비아 분쟁에서 많은 국가와 비국가 활동가 중 어느 쪽이 침략자인가? 아무도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전 세계 대부분 분쟁의 현실을 다루지 않는 전쟁 종식 정당성 기준은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행 분쟁이 정당한 전쟁이 아닐 때는 더 많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한 전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국방부와 국무부, 분쟁 후 재건에 관여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피스빌딩 행동을 인도하기 위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3장 우리는 어떤 종류의 평화를 추구하는가 - 주요 정치 기관의 새로운 피스빌딩 규범’」중에서
정치적 화해는 정의의 한 개념으로, 정치적 불의에 연루된 피해자, 가해자, 공동체 구성원, 그리고 국가를 정치 질서에서 또는 정치 질서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라는 조건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기본권의 보장과 인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조건으로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포함한다. 정치적 화해는 정치적 불의가 초래한 뚜렷한 상처에 대해 사람과 관계를 회복할 것을 목표로 6가지 실천 행위로 구성된다. 이런 회복은 정치 질서의 정당성, 신뢰, 국민의 충성,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자본 - 정의로운 제도의 안정성, 경제 성장, 국가 간의 평화, 여러 사회적 재화를 촉진하는 - 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과 판단을 낳을 수 있다.
---「‘4장 화해 - 정치 질서에서 피스빌딩을 위한 가톨릭 윤리’」중에서
CRS의 경험으로 보건대, 기술적 우수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전문적인 구호와 개발 기관이 신앙에 기반을 둔 성찰을 유지하기에는 일정한 어려움이 있다. 정의의 렌즈, 통합적 인간 발전, 연대성에 대한 스텝들의 성찰은 기관 전체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 활동에 공통의 기초를 제공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CRS 내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해 단지 그 방향성에 대해 동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교리의 언어와 개념에 대한 더 많은 인식과 통합이 필요하다. 이 일에는 평화에 대한 개념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개념을 국제 비정부기구 프로젝트에 통합하는 일은 하나의 도전적인 과제인데, 윤리적 성찰, 신학, 영성은 프로젝트 상의 활동이나 기술, 또는 운영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영성적 깊이가 긴 시간에 걸친 사회 변화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부룬디 사례는 이런 도전 과제를 강조한다.
---「‘5장 가톨릭 구제회 - 가톨릭 피스빌딩 실천’」중에서
난민법 프로젝트는 소극적 평화의 추구는 정의에 기초한 적극적 평화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의 적절한 ‘순서(sequencing)’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문장을 뒤집어, “정의를 원한다면 (소극적) 평화를 위해 활동하라”인 것이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이 보고서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2006년 7월 남수단 정부의 보호 아래, 우간다 정부와 신의 저항군 대표들이 협상을 시작했다. 2006년 8월, 양측이 적대관계 종식 협정(the Cessation of Hostilities Agreement)에 서명한 뒤, 월평균 납치와 살인 횟수는 한 자릿수로 급속도로 떨어졌고, 캠프에 머물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 모든 일이 책임성과 재건에 관한 어떠한 합의도 없이 이루어졌다. ‘야간 통행자(night commuter, 집에서 납치되는 일을 피하고자 밤에는 무역 센터에 와서 지내는 아동 - 역자 주)’ 숫자가 1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북우간다의 가장 큰 마을 굴루는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와 남수단의 수도 주바를 잇는 주요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상대적인 소극적 평화가 두 수도를 잇는 도로의 보수와 개선을 허용한 것이다.
---「‘6장 피스빌딩과 그 도전 과제 - 정의, 인권, 개발, 그리고 연대’」중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톨릭 피스빌더를 위한 근본적인 교훈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피스빌딩의 기술과 과정이 한 사회에서 전개될 때, 사회의 모든 분야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열린 대화와 참여를 요구하고, 그 기술과 과정이 힘 있는 엘리트의 특권을 유지하지 않아야 하며, 과거의 균열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평화 과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교 활동가는 참여의 폭을 확장하고 진실과 인간 존엄성의 기준에 관해 설명하며, 그럼으로써 평화적 실천을 고양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7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진실, 화해, 인간 존엄성 추구 -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한 교훈’」중에서
존 폴 레더락이 『도덕적 상상력』에서 제시한 것, 즉 대안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에다 종교적 상관성을 뚜렷하게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이라는 틀에 따라, 화해의 영성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평화와 화해를 가져오는 궁극적인 원천이기도 한 초월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8장 가톨릭의 사회적 상상과 피스빌딩 - 의식, 성사, 영성’」중에서
진실 말하기는 피스빌딩의 필수 도구다.
인도네시아에서 거짓 소문과 비난을 퍼트리는 것이 공동체 갈등을 조장하는 성공적인 수법이었기에, 정확한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하는 일은 폭력의 확산을 막고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핵심 작업이었다. 악의적인 루머만큼 민족이나 종교 집단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의심과 원한은 사람들에게 ‘적’이 지닌 최악의 모습을 믿게 한다. 범죄와 만행에 대한 과장되고 일방적인 설명은 호전적인 명분을 지지하게 만들고, 폭력 사태를 연장시키는 일에 동원되는 자원자들을 모집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반쪽 진실, 거짓말, 과장, 그리고 욕설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주의 깊게 진실을 모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었는데, 아마도 이 작업은 인도네시아 주교들이 만든 위기 센터가 피스빌딩을 위해 한 가장 큰 공헌일 것이다. 진실에 대한 헌신은 갈등 양측이 자신의 관점과 불만을 제시할 때도 일관되게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가 저지른 잘못과 범죄에 대해 자기 비판적으로 인정하는 의지를 포함한다.
---「‘9장, 종교간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인도네시아의 ‘슬픈 시기’로부터 배운 몇 가지 교훈」중에서
넓은 범위의 ‘발전할 권리’는 사실상 인간과 공동체 번영에 필수적인 자유, 재화, 관계를 한데 모은 개념으로 작용한다. 주교단은 계속해서 개인의 발전과 집단적 발전에서의 ‘사회 구조의 객관적 장애’에 대해 논한다. 시노드 주교단은 사회와 국제 구조의 역할이 다뤄지지 않는다면 발전할 권리로 망라되는 자유, 재화,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 주장을 피스빌딩이라는 주제에 적용하면, 평화를 창조하는 일은 통합적 발전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으로, 평화 활동이 기본적인 자유를 확립하고 기초 재화를 보장하며 필수적인 관계를 증진하고, 발전할 권리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사회 구조와 기관을 개혁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스빌딩은 정부와 비정부, 서로 다른 수준의 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통합적 발전이라는 다차원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벌이는 일련의 활동으로 광범위하게 이해된다. 발전이 평화의 새로운 이름이기에 그렇다.
---「‘10장 피스빌딩과 가톨릭 사회교리’」중에서
콜롬비아와 부룬디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폭력과 박탈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키우는 연대의 실천에 참여하는 일은 용기와 상상력을 요구한다. 레더락이 지적한 것처럼, 피스빌딩은 위험이 따르는 사업이다. 상황을 일으킨 원인이나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상황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이미 일종의 위험이 따른다. 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위험 요소다. 군벌 지도자와 협상을 하거나 무장 집단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거대한 위험 요소다. 위험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취약성을 인정하고, 어떤 프로세스나 인간이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선험적으로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는 일이다.” 피스빌딩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는 용기는 희망을 요구하고, 또 미래를 상상할 능력을 요구한다.
설령 우리에게 그런 미래를 지성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인지적으로 이해할 근거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런 미래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매혹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폭력이 인간 공동체를 에워싸기 위해 둘러치는 얇은 벽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인간의 영 안에 심어 주신 창조성이 언제나 우리 손닿는 곳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창조성은 창조주로부터 인류의 정신 안에 부여되었고, 성령에 의해 쇄신된다. 동료 인간 존재와의 창조적 연대는 우리의 구원이 의미하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구원은 상상으로나마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희망을 키우는 연민, 용서, 평화를 실천함으로써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
---「‘11장, 피스빌딩을 위한 신학’」중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일부러 한 번 더 강조) 종교간 대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교황이 종교간 대화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했든, 적어도 종교간 대화가 어떤 사람의 신앙을 괄호에 넣는 일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중 양식으로 이루어진 종교간 대화는 누군가의 신앙을 괄호에 넣지 않고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실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대화는 신앙으로 활력을 얻고 한 사람의 종교 신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유지될 때 가장 좋은 결실을 맺는다. 더 나아가 문화와 신앙의 분리나, 함축적으로 말해서, 문화간 대화와 종교간 대화의 분리는, 서구에서 특히 계몽주의 이후 서구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세계 여러 지역, 특히 종교가 곧 문화이거나 문화가 곧 종교인 아시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간 대화, 또는 종교간 대화를 반대하며 종교적 결정의 문화적 결과에 관한 대화, 즉 종교 문제에 대한 대화를 옹호하는 일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증진하려고 했던 바로 그 문화간 대화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며, 특히 대화의 목표가 피스빌딩과 화해인 곳에서는 더 그렇다.
---「‘12장 피스빌딩과 화해’」중에서
일정한 사과 의식이 있어야 한다. 사과는 그 표현을 피해자와 함께 만들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경험한 고통을 앞서 기억의 치유에서 언급한 ‘증언’ 차원으로 표현하고, 가해자가 표현하는 후회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캐나다 연합교회와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는 캐나다 서부 원주민(First Nation Peoples in Western Canada : 메티스나 이누이트 같은 인디언 원주민을 지칭한다. - 역자 주)에게 과거에 자행한 학대와 문화적 논쟁에 대한 사과를 표현했다. 2008년 호주의 케빈 러드(Kevin Rudd) 총리가 호주 원주민에 대해 ‘죄송하다’고 표현한 것이 또 다른 예이다. 사과는 의례적 행위다. 사과가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재구성할 수는 있다. 때로 그런 의식 행위는 계획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아우슈비츠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독일?폴란드 관계를 치유하는 데 수많은 문서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한 것은 유대인?가톨릭 관계를 위한 마찬가지 행위였다. 사과는 종종 기념비나 다른 기념관의 설립으로 영구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13장 치유, 용서, 화해의 실천 신학’」중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은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움직임으로, 교회 자체의 정치학이다. 레더락은 ‘탄탄한 수직적, 수평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가톨릭의 특별한 잠재력, ‘대화의 기반’이라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조항, 그리고 일치, 용서, 화해의 상징과 의식에 주목한다. 그러나 모든 연대 이야기를 살펴보더라도, 이런 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교회의 정치학에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천슨은 피스빌딩은 ‘교회를 정의하는’ 문제이자 ‘교회를 분열시키는’ 문제라고 말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피스빌딩 경험 이면에는, 과거든 현재든, 교회 정치학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데, 지역 교회가 역사적 책임과 다른 방식을 취하면 결국 평화에 거스르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를 경험해 온 사람들은 굳이 교회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북미 신학자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필요도 없다.
그들은 교황청의 정책에 따라, 교황대사의 성격에 따라, 주교들의 선택에 따라,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종교 교단들의 지도력과 정책들에 따라 어떤 차이가 생겨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피스빌딩 과정에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다. 크리스천슨과 다른 여러 학자들은 평화에 관한 교회 가르침에서 이루어진 의미심장한 변화들, 피스빌딩 이론과 실천을 뒷받침하는 변화에 관심을 갖기를 요청해 왔다. 교황들의 담화문과 교황청 정책은 대개 평화에 관한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과 화해를 위한 지역 교회의 노력을 지지하지만, 그것이 피스빌딩의 전부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신학자들과 사목 지도자들이 전도유망한 계획을 추진하려 한다면, 교회 자체의 결정 수립 과정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4장 연대의 이야기들 - 가톨릭 피스빌딩의 도전’」중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미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일어날 법한 것을 예측하는 방법이기도 하려니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 같은 일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본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피스빌딩에 대해서도 이런 점이 언급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논의한다고 해서, 가톨릭 피스빌딩이 세상이 설정한 의제를 따르는 교회만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만일 피스빌딩 활동에 대한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성찰이 경험과는 동떨어진 채 추상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가톨릭 피스빌딩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또 만약 가톨릭 피스빌딩이 가톨릭 윤리와 신학적 전통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지속적인 연관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
---「‘15장 가톨릭 피스빌딩의 미래 방향’」중에서
출판사 리뷰
가톨릭 피스빌딩의 고유한 특성과 자원에 대한 새로운 지평,
분쟁 지역에서의 피스빌딩에 관한 실질적 지침
‘가톨릭교회는 왜 피스빌딩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피스빌딩에 접근해야 하는가.’ 『피스빌딩』의 모든 내용은 이 질문과 관련된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의 소명으로서 피스빌딩 과제를 학문과 실천을 연결하는 학제 간 접근법으로 검토하며, 피스빌딩 과정에 교회가 기여한 독특한 자원, 개념, 실천 행위를 탐구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신학자, 역사학자, 평화학자, 사회윤리학자이자 피스빌딩 활동가들로, 콜롬비아, 필리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교회가 수행한 피스빌딩 경험에서 얻은 폭넓은 통찰을 신학적, 윤리적으로 연결하고 재구성했다.
『피스빌딩』은 두 챕터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가톨릭교회의 피스빌딩 행위자와 기관의 활동을 문서화하고 이론화하며, 가톨릭 관점에서 피스빌딩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제안했다. 2부는 전쟁과 평화의 윤리에 대한 가톨릭의 전통적인 접근법을 보완하고 피스빌딩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6개의 글로 구성되었다.
가톨릭교회의 피스빌딩 자원의 유용성
존 폴 레더락(2장)은 가톨릭교회가 피스빌딩 활동에 기여한 자원 중 하나로, 교회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존재(Ubiquitous presence)’라는 점을 말한다. 가톨릭 피스빌딩 행위자는 세계적이면서도 촘촘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가톨릭의 통찰력과 실천의 많은 부분이 다른 그리스도교 교단과 공유된다. 또한, 교회는 사회의 다양한 수준(최상위, 중간, 풀뿌리 수준)에서 기능하고 있으며,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치, 시민, 종교 문화적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다. 이 책의 장 구성 역시 이 삼중의 패러다임이 반영되어 있다.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는 정치, 시민 사회, 종교 문화적 역할이 동시에 필요하다. 예컨대 교회는 정치 영역에서 협상을 중재하고, 인권 침해를 감시하며, 회복적 정의 과정으로 안내한다. 시민 사회 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은 시민 사회 활동가로서 정의로운 평화라는 원칙을 통합시키며, 교회 자체의 기관을 통해 활동한다. 예컨대 가톨릭 구제회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산하 기관으로, 정책과 프로젝트에 가톨릭 사회교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피스빌딩 프로그램의 기본 틀을 통합적 인간 발전, 인권, 화해를 토대로 구성했다. 한편, 종교와 문화는 갈등과 갈등 이후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상상력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이 책 8장에서 로버트 슈라이트는 가톨릭 사회적 상상의 도구로서 의식, 성사, 영성에 대해 탐구했다. 그중 의식은 사회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의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를 회복하고 되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의식은 또 미래로의 관문 역할을 한다. 어떤 활동을 함께 한다고 해서 모든 적대감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무언가 함께하는 것은 과거가 미래를 통제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보여줄 수는 있다.
가톨릭 피스빌딩과 현대 피스빌딩 이론 사이의 반성과 공명
『피스빌딩』 2부에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인 접근과 현대 피스빌딩 이론 사이의 반성과 공명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케네스 하임즈(10장)는 국가 내 분쟁이나 침략이 합법적인 자기 방어와 쉽사리 구분될 수 없는 때에 정당한 전쟁 원리를 제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와 같이, 현대 전쟁의 성격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또한 리사 케이힐(11장)은 현대 전쟁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정확하게는 신학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자산으로써 더 깊이 헤아리도록 교회를 초대한다. 피터 판(12장)은 가톨릭 신자들이 가톨릭의 종교적 전통, 그리고 인간 조건을 바라보는 가톨릭 전통의 통찰력과, 특히 평화와 전쟁의 의미에 대해 다른 (종교) 전통 속에서 발견되는 깊은 지혜 사이를 때로는 너무 단호하고 빠르게 구분지어 버린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함께 피스메이커가 되라는 소명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 전망과 가톨릭 사회교리의 원리가 일부 전략적 피스빌더들에게는 정책과 사업으로 전환하기 곤란한 너무 일반적인 원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일반성이야말로 갈등 상황이라는 당면한 싸움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보다 초월적인 원천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인류 가족의 일치, 공동체적 유대, 상호 보완관계, 믿음과 선의로써 평화를 적극적 임무로 표현한다. 진정한 발전을 촉진하는 인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매력적인 평화 구축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피스빌딩 파트너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가톨릭 피스빌딩의 고유한 특성과 자원이라는 심오한 닻에 탄탄히 고정된 피스빌딩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분쟁 지역에서의 피스빌딩에 관한 실질적 지침
‘가톨릭교회는 왜 피스빌딩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피스빌딩에 접근해야 하는가.’ 『피스빌딩』의 모든 내용은 이 질문과 관련된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의 소명으로서 피스빌딩 과제를 학문과 실천을 연결하는 학제 간 접근법으로 검토하며, 피스빌딩 과정에 교회가 기여한 독특한 자원, 개념, 실천 행위를 탐구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신학자, 역사학자, 평화학자, 사회윤리학자이자 피스빌딩 활동가들로, 콜롬비아, 필리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교회가 수행한 피스빌딩 경험에서 얻은 폭넓은 통찰을 신학적, 윤리적으로 연결하고 재구성했다.
『피스빌딩』은 두 챕터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가톨릭교회의 피스빌딩 행위자와 기관의 활동을 문서화하고 이론화하며, 가톨릭 관점에서 피스빌딩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제안했다. 2부는 전쟁과 평화의 윤리에 대한 가톨릭의 전통적인 접근법을 보완하고 피스빌딩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6개의 글로 구성되었다.
가톨릭교회의 피스빌딩 자원의 유용성
존 폴 레더락(2장)은 가톨릭교회가 피스빌딩 활동에 기여한 자원 중 하나로, 교회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존재(Ubiquitous presence)’라는 점을 말한다. 가톨릭 피스빌딩 행위자는 세계적이면서도 촘촘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가톨릭의 통찰력과 실천의 많은 부분이 다른 그리스도교 교단과 공유된다. 또한, 교회는 사회의 다양한 수준(최상위, 중간, 풀뿌리 수준)에서 기능하고 있으며,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치, 시민, 종교 문화적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다. 이 책의 장 구성 역시 이 삼중의 패러다임이 반영되어 있다.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는 정치, 시민 사회, 종교 문화적 역할이 동시에 필요하다. 예컨대 교회는 정치 영역에서 협상을 중재하고, 인권 침해를 감시하며, 회복적 정의 과정으로 안내한다. 시민 사회 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은 시민 사회 활동가로서 정의로운 평화라는 원칙을 통합시키며, 교회 자체의 기관을 통해 활동한다. 예컨대 가톨릭 구제회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산하 기관으로, 정책과 프로젝트에 가톨릭 사회교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피스빌딩 프로그램의 기본 틀을 통합적 인간 발전, 인권, 화해를 토대로 구성했다. 한편, 종교와 문화는 갈등과 갈등 이후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상상력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이 책 8장에서 로버트 슈라이트는 가톨릭 사회적 상상의 도구로서 의식, 성사, 영성에 대해 탐구했다. 그중 의식은 사회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의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를 회복하고 되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의식은 또 미래로의 관문 역할을 한다. 어떤 활동을 함께 한다고 해서 모든 적대감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무언가 함께하는 것은 과거가 미래를 통제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보여줄 수는 있다.
가톨릭 피스빌딩과 현대 피스빌딩 이론 사이의 반성과 공명
『피스빌딩』 2부에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인 접근과 현대 피스빌딩 이론 사이의 반성과 공명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케네스 하임즈(10장)는 국가 내 분쟁이나 침략이 합법적인 자기 방어와 쉽사리 구분될 수 없는 때에 정당한 전쟁 원리를 제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와 같이, 현대 전쟁의 성격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또한 리사 케이힐(11장)은 현대 전쟁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정확하게는 신학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자산으로써 더 깊이 헤아리도록 교회를 초대한다. 피터 판(12장)은 가톨릭 신자들이 가톨릭의 종교적 전통, 그리고 인간 조건을 바라보는 가톨릭 전통의 통찰력과, 특히 평화와 전쟁의 의미에 대해 다른 (종교) 전통 속에서 발견되는 깊은 지혜 사이를 때로는 너무 단호하고 빠르게 구분지어 버린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함께 피스메이커가 되라는 소명
피스빌딩에 대한 가톨릭 전망과 가톨릭 사회교리의 원리가 일부 전략적 피스빌더들에게는 정책과 사업으로 전환하기 곤란한 너무 일반적인 원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일반성이야말로 갈등 상황이라는 당면한 싸움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보다 초월적인 원천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인류 가족의 일치, 공동체적 유대, 상호 보완관계, 믿음과 선의로써 평화를 적극적 임무로 표현한다. 진정한 발전을 촉진하는 인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매력적인 평화 구축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피스빌딩 파트너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가톨릭 피스빌딩의 고유한 특성과 자원이라는 심오한 닻에 탄탄히 고정된 피스빌딩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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